노인이 대안이 되려면

2024년 2월 7일, explained

할생님과 시니어 아미의 시대다. 노인이 아니라면, 가까운 대안은 없다.

한국에는 목적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노인이 많다. 대한민국 노인의 절반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사진: NurPhoto/NurPhoto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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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으로 인한 병력 문제 해결을 위해 50~70대 남성을 재입대시키자는 ‘시니어 아미(senior army)’ 주장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남자는 70살이 넘어도 군대에 가라는 거냐”는 반응을 내놨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인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맞섰다.

WHY NOW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병력 부족에 대한 대안으로 여성 징병제 정책을 내놨다. 여성 징병제도, 시니어 아미도 모두 저출생에서 기인한 논의다. 저출생은 인력과 병력만 줄이지 않는다. 노동의 형태와 모습, 사회적 인식까지 바꾼다. 시니어 아미를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시대의 신호탄일지 모른다. 슬기로운 저출생 시대를 나기 위해, 우리는 인력의 정의를 체계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할생님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의 기간제 교사는 2013년 4만 493명에서 지난해 6만 5756명으로 10년 사이 2만 명이 늘었다. 교육 격차 해소, 신규 교원 채용 감소 등을 이유로 늘어난 교원 수요가 기간제로 충당된 것이다. 이처럼 기간제 교사의 수요는 꾸준하다. 반면 공급은 줄고 있다. 이 공백을 50대, 60대 퇴직 교원이 메웠다. 젊은 교사가 나타날 때까지 수업을 비울 수 없으니 ‘할생님(할아버지, 할머니 선생님)’을 모셔오는 실정인 것이다. 교육부는 이런 흐름에 맞춰 기간제 교원의 65세 이하 연령 제한을 완화했다.

교사가 없다

일단 학교에 교사가 없는 게, 또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게 문제다. 대입 결과는 교사의 미래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지표다. 2023년 대입에서 전국의 13개 교대, 초등교육과 정시, 수시 합격선은 최근 4년 사이 가장 낮았다. 2020학년도 정시 합격선은 90.3점이었는데 2023년에는 82.9점이었다. 학부모 갑질, 교권 추락 등 최근 이슈의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학령인구 감소다. 실질적으로 신규 교사를 채용하는 규모도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고등학생들의 수요도 줄었다. 학생이 없는 학교, 미래가 밝기는 어렵다. 꿈의 직장이었던 교사가 이제는 기피 직업이 됐다. 그 빈자리는 할생님들이 메우고 있다.

병력이 없다

당장 저출생으로 인해 소멸이 가속하는 또 다른 분야는 병력이다. 2020년, 20세 남성 인구는 33만 3000명이었지만 2040년이 되면 13만 5000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부터는 육군 1, 9, 25사단의 신병 교육 대대 임무가 해제됐다. 한 해 입영하는 현역병이 23만여 명에서 18만여 명으로 크게 줄면서 신교대를 별도로 운영할 필요성이 줄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는 병력 감소 대응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최근 불이 붙은 여성 징병제 논의도 그중 하나다. 개혁신당은 경찰, 소방 등 직렬에 따라 병역을 의무화해 점차 “한쪽 성별만 부담했던 병역을 나머지 절반이 조금씩 더 부담해 나가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시니어 아미

개혁신당의 정책은 여성과 남성, 젠더 문제에만 얽힌 이슈가 아니다.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의 저자는 성 평등 프레임이 “병역의 다기한 논점을 단순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사실이다. 시니어 아미 논의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공정, 그 바깥을 소환했다. 최영진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이준석 대표의 정책 발표 이후 《한겨레》에 칼럼 하나를 발표했다. 그는 55~75살, 691만 명의 남성에게 자원 입대를 받아 병력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에는 순수 민간 단체인 ‘시니어 아미’가 출범하기도 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쟁이 나면 참전해 싸우겠다는 이들이 모였다. 이들에게 군대와 훈련은 불공정한 의무보다는 자아실현으로 가는 과정에 가깝다.

노인이 대안이 되려면

할생님과 시니어 아미, 두 논의에서 주목할 만한 건 저출생의 대안으로 노인이 거론된다는 점이다. 이제 노인은 인력인 동시에 저출생 시대의 소중한 자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노인을 제대로 된 대안으로 대우하지 못한다. 할생님을 향한 동료 교사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은 시험 출제나 각종 행정 업무가 서툴러 보직 교사들이 업무 폭탄을 떠안게 된다”, “나이 든 분들은 학생부 특기 사항에 한두 문장 이상을 적지를 못 하더라”는 지적이 나왔다. 시니어 아미와 관련한 논의에서 노인은 보호받아야 할 약자,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 먼 해결책을 찾아 나선 것일지 모른다. 저출생을 극복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고령화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폐지 줍는 노인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너무 무력하다.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근로자 중 60세 이상 비율은 2022년 기준 45.5퍼센트에 이른다. 물론 고령자는 젊은 노동자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 저임금으로 갈수록 고령층의 비율이 높은 것 자체는 이례적이지 않다. 그러나 고령 인구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숙련 노동자마저도 단순 서비스직이나 아르바이트성 일자리에서 일해야 한다는 건 저출생 시대의 위기 시그널일 수 있다. 빈곤층의 노인들은 폐지를 줍거나, 전단지를 돌린다. 고강도의 노동이지만 그만큼의 보상을 주지는 못한다.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5시간 24분 동안 105킬로그램의 폐지를 주운 노인들은 하루에 6625원을 얻는다. 월로 환산하면 15만 9000원이다. 지금 노인의 일자리는 변두리와 길거리에 머문다.

고령화 안에서 희망 찾기

지금부터 출생률을 늘린다고 해도, 그들이 생산 인구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최소 20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노인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생산 인구는 줄어든다. 복지 제도만이 이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회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그 근미래를 어떻게 대비하고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저출생에 집중해 젊은 인력을 어떻게 더 낳고 기르는가에 초점을 맞춰 왔다. 고령화 관련 논의는 연금 이슈, 보건 의료의 지속 가능성과 같은 특정 분야에 한정돼 왔다. 닫힌 담론은 어린 노동력만을 ‘쓸모 있는 인력’이라 전제하며 더더욱 노인들을 변두리와 길거리로 내몬다. 가치 있는 인력의 범위에 노인이 사라질수록 20년 뒤의 생산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IT MATTERS

총선을 앞두고 노인 표심을 잡으려는 정책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연금 제도, 복지 제도, 생활 밀착형 정책만으로는 20년 뒤의 노인 포화 시대를 준비할 수 없다. 사회와 만나는,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인력으로서의 노인에게 주목해야만 우리는 건강하게 저출생 시대를 지날 수 있다. 현재까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은 양적 확장에 주력해 왔다. 2004년 3만 5000명이었던 노인 일자리 사업은 2023년 84만 8000개로, 올해는 103만 개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필요한 건 시혜적 차원의 일자리가 아닌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자아 실현에 맞닿아 있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다.

기술 역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AI를 활용해 인지적 기능을 보조한다거나 웨어러블 로봇을 통해 노인의 노동 분야를 확장할 수 있다. 노인 기피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연령주의도 노인과의 접촉면을 늘림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길거리나 변두리에서 마주치는 노인들은 멀게만 느껴진다. 교실에서, 직장에서 마주치는 동료는 그렇지 않다. 만나고 부딪혀야 인식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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