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은 정말 전통일까

2024년 2월 8일, explained

우리에겐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명절이 필요하다.

귀성객이 10만 명을 돌파한 1974년 설날 서울역의 전경. 사진: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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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설 연휴 동안 97만 명 이상 인천공항을 이용할 전망이다. 지난해 대비 50퍼센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 명절에 귀성길이 아닌 여행길을 선택하는 비율이 증가한다는 얘기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한 구직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명절 연휴를 단기 아르바이트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비율은 60퍼센트가 넘는다. 누군가에겐 아직 설날은 명절이다. 그러나 더 이상 ‘민족’의 명절인지는 의문이다.

WHY NOW

시대가 변화했다. 명절의 의미가 달라진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양상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다. 국내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휴일이나 공휴일보다 명절 연휴 때 유독 심장 마비 환자가 많으며, 사망률도 높다고 한다. 명절 스트레스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명절 연휴가 끝난 후의 높은 이혼율과 자살률, 명절 기간 급증하는 가정 폭력 건수 등과 연관 지어 설명된다. 대체 명절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설날의 풍경은, 정말 전통이며 지켜야 할 무언가일까.

설날의 탄생

시곗바늘을 18세기 이전으로 돌려 보자. 농경 사회였고, 가족은 물론, 사돈의 팔촌인 일가친척도 가까이 살던 시대였다. 설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농한기다. 농가 입장에서는 장기 휴가가 주어진 셈이다. 그렇다고 어디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시대도 아니다. 그러니 축제가 시작된다. 조상님께 올 한 해의 복을 빌며 차례를 지내고, 뒷산으로 성묘도 하러 간다. 자연스레 일가친척과 먹고 마시고 놀게 된다. 물론, 흉년이 들지 않았다면의 이야기다.

야만인의 명절

이 전통적인 축제는 일제 강점기 크게 위축되었다. 양력이 아닌 ‘음력’에 맞춰 명절을 쇠는 풍습에 ‘야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양력이 도입되긴 했지만, 일본에서도 음력 명절을 쇠는 풍습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청일 전쟁의 승리로 자신감을 갖게 된 이후, 일본은 서양의 ‘문명’을 기준점 삼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자격을 가르기 시작한다. ‘음력은 중국인의 야만적인 문화’라는 프레임도 그중 하나였다. 학교에서 그리 배웠으니,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항의했다. 왜 야만스러운 중국의 문화를 여전히 따르냐고. 결국 일본의 음력 명절은 공식적으로 폐지된다.

문화의 충돌

일본은 음력과 양력이라는 두 문화의 충돌을 통해 스스로의 과거를 부정하고 제국주의라는 미래 선택의 근거를 획득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설 명절을 꼬박꼬박 챙겨 쇨 때 쉽게 ‘야만’의 딱지를 붙였다. 음력 명절을 쇠는 ‘야만성’이 일본의 식민 침략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기능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전 세계에서 흔히 관찰된다. 침략 국가의 문화가 피침략 국가의 문화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우월성’의 논리가 개입되고, 피침략 국가의 문화 자체가 왜곡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굿, 판소리, 단오제 등 명절과 축제는 물론이고 탁주와 같은 먹거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민속의 날

해방 후에도 일제가 남기고 간 ‘문명’의 기준점은 금세 사라지지 않았다. 발전을 위해 과거를 부정해야 한다는 오해는 끈질겼다. 그럼에도 삶의 방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자연의 시계에 맞춰 1년이 흐르는 농촌의 삶은 여전히 음력 설을 자연스럽게 챙겼다. 따라서 여전히 음력 1월 1일은 비공식적으로 명절이었다. 기업은 자체적으로 쉬었고, 가족과 친지가 모여 차례를 지냈다. 결국, 설날은 다시 공식적인 지위를 회복한다. 1985년의 일이다.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당일 하루를 쉬게 되었다. 설날이라는 이름까지 되찾은 것은 1989년의 일이다.

집단 귀성의 시대

다만, 그 몇십 년 사이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경제의 중심이 농업에서 2차, 3차 산업으로 옮겨간 것이다.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나고 자란 고향과 삶의 터전이 분리되는 현상이 심화했다. 동시에 농촌에 남은 그들의 가족과 친척은 농촌 바깥의 삶에 익숙하지 않다. 아직 교통수단이나 교통망의 발달도 충분치 않아 장거리 여행은 일상에 녹아들지 않았다. 이 조건하에 ‘집단 귀성’이라는 신풍속도가 탄생했다. 서울이 탄생하고 자라던 시기의 일이다.

서울 사람들

1970년 전 국민 중 서울에서 출생한 사람은 8퍼센트대였고, 거주하는 사람은 18퍼센트에 가까웠다. 서울을 떠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서울은 삶의 터전인 동시에 지독하게도 ‘타향’이었던 셈이다. 일상이 고달픈 타향살이라면, 비일상인 명절에는 따뜻한 ‘우리 집’으로 돌아가 가족 구성원의 의무를 다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2020년대에도 ‘집단 귀성’이 자연스러울까? 그렇지 않다. 2020년 기준으로 서울에서 출생한 사람의 비율은 16.3퍼센트,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의 비율은 16.8퍼센트였다. 이제 서울 사는 사람들의 우리 집은 서울에 있다.

명절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명절은 나의 고향을 떠나 일가 어르신들의 고향으로 이동하는 시기가 된다. 삶의 배경과 시대적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헐거운 가족의 이름으로 조우한다. 이렇게, 설날은 또다시 문화 충돌을 상징하게 된다. 20세기의 가치와 21세기의 삶이 충돌하는 것이다. 20세기의 큰아버지가 21세기의 조카에게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를 질문하며 균열이 생긴다. 20세기 차례상의 풍성함은 21세기에는 불공평한 노동의 결과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서로 다른 문명이 접촉할 때 반드시 분쟁이 초래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명절 기간에는 가정 폭력 112 신고 건수가 증가한다. 이래서는 명절이 축제의 의미를 잃는다. 동일한 문화권이 함께 축하하며 즐기는 비일상이 아니다.

IT MATTERS

그렇다면 우리에겐 어떤 명절이 필요할까. 평화 연구가 하랄트 뮐러는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간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이론이지만, 실제로 문명은 다른 문명과 교류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교류하지 못한 채, 명절만을 임시로 공유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명절은 시대와 함께 유연하게 변화하고 발전하지 못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의 많은 부분은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 소실되고 변형되었으며 때로는 왜곡되었다. 시대와 함께 유연하게 변화할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명절이 더 이상 명절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면, 우리 시대에 필요한 명절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옛사람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설날에 행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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