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의 정치학

2024년 2월 16일, explained

돈이 영향력이 된다. 그래도 괜찮을까?

클라우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 리즈 매길 펜실베니아대 총장, 파멜라 나델 아메리칸대 역사 및 유대학 교수, 샐리 콘블루스 매사추세츠공대 총장 등이 2023년 12월 5일 하원 교육 및 노동위원회에서 캠퍼스의 반유대주의에 관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 Kevin Dietsch/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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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스라엘이 또 다른 전쟁에 나섰다. 상대는 UN(국제연합)이다. 정확히는 UN 산하의 국제기구,  UNRWA(UN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가 타깃이다. 이스라엘은 UNRWA 직원들이 작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유럽 국가들이 속속 UNRWA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했다.

WHY NOW

전쟁을 시작한 것은 하마스였지만, 국제사회의 비난은 이스라엘을 향했다. 가자 지구의 주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봉쇄 작전에 ‘인도주의’가 오랜만에 힘을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인도주의가 실질적인 지원으로 환전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UNRWA에 대한 이스라엘의 의혹 제기는 이를 간파한 전략이다. 여론을 만들고 정치적 결론을 뒤집으며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열쇠, ‘기부금’은 지금 이 세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힘이다.

부르디외의 자본

돈은 ‘경제 자본’이다. 취향과 지식은 문화 자본, 인맥은 사회 자본이다. 각 자본이 일정 이상의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되어 존경과 명예 등을 획득하게 되면 ‘상징 자본’이다. 일종의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부는 경제 자본을 상징 자본으로 환전하는 방법이다.

카네기의 기부

돈을 어느 정도 써야 그러한 ‘환전’이 가능할까. 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9세기 미국 사업가 앤드루 카네기는 현대적인 의미의 ‘슈퍼리치’의 시조새쯤 되는 인물이다.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으로, 자수성가하여 ‘철강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동시에 ‘기부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생전 3억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현재 가치로는 62억 달러에 해당하는 돈이다.

환전 사례

카네기는 기부의 목적을 확실히 했다. 도서관과 교육이 그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도서관을 통해 지식을 채울 수 있었던 배경이 작용했다. 미국에만 2500여 개의 도서관을 지었다. 대학 등 고등 교육 기관에도 통 큰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멜런 대학교, 카네기 홀 등이 그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문화계 인사, 철학자 등과 교류하게 되었고 시민들의 인정도 받게 되었다. 상류사회의 문이 열렸다. 정치적 영향력도 생겼다. 실제로 카네기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등 다수의 정치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조언하고, 강의했다. 신문과 잡지를 통해 관세나 노동문제, 노조 등에 관해서도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었다.

빌 게이츠의 차이

빌 게이츠도 기부를 통해 영향력을 획득한 슈퍼리치다. 카네기처럼, 그의 기부 목적도 확실하다. 기술을 통해 질병과 기아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카네기의 기부와 게이츠의 기부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이다. 인맥과 존경을 통해 발언권을 얻게 되었던 카네기와는 달리, 빌 게이츠는 직접 결정권을 휘두른다.

Philanthrocapitalism

질병은 많다. 그만큼 세계보건기구(WHO)도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해져야 할까. 혹은 누가 정해야 할까. 2015년 기준으로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WHO 예산의 11퍼센트를 제공했다. 영국 정부가 공여한 금액의 14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리오넬 아스트뤽은 저서 《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에서 WHO의 2011년 소아마비 퇴치 운동을 비판한다. 게이츠의 관심 분야인 소아마비 퇴치 운동에 집중하느라 나이지리아, 인도, 파키스탄 등의 국가에서 파상풍, 백일해, 홍역 등 압도적으로 더 많은 아동을 위협하는 질병들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졌다.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홍역으로 죽어 나가는데 왜 소아마비 백신을 놔 주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업하듯, 정치하듯

이것이 자선 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다. 사업하듯 기부한다. 확실한 혁신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그 혁신의 형태와 크기 모두 슈퍼리치 개인의 선호에 따라 결정된다. 때로는 그 혁신의 목적이 영리와 닿아있기도 한다. 백신의 개발과 보급에 집중적으로 기부하는 부호가, 실은 제약 회사의 투자자라든가 하는 식이다. 정치적인 대립과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2020년대에는 자선 자본주의가 정치적으로 기능하는 경향이 도드라진다. 정치하듯 기부하는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상징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냈다.

기부금의 힘

하버드 대학의 클로딘 게이 전 총장의 사퇴도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이었다. 하버드대 최초의 흑인 여성 총장이었다. 게이 전 총장을 비롯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총장들은 2023년 12월,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유대인을 죽이자’ 등 학내 일부 학생들의 발언에 관해 집요하게 추궁당했다. 게이 총장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며 맞섰고, 그 결과는 유대인 및 친이스라엘계 기부자들을 중심으로 한 퇴진 요구였다. 버틸 수가 없었다. 하버드는 지난해 대학 수입 중 45퍼센트를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IT MATTERS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기부의 힘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부의 분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경우 전체 기부자 중 100달러 이하를 기부하는 ‘소액’ 기부자의 비율이 6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러나 금액으로 따지면 이들의 기부는 3퍼센트에 불과하다. 경제 자본이 상징 자본으로 직접 환전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을 수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 슈퍼리치는 쉽게 인플루언서가 된다. 돈으로 가치와 영향력을 직접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얘기다.

옳고 그름,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결정할 권한이 기부금, 즉 경제 자본에 직접 주어지면 무슨 일이 또 벌어질 수 있을까. 캐나다의 온타리오 미술관에서는 사상 첫 ‘원주민 예술 수석 큐레이터’가 사직했다. 소셜 미디어에 올려왔던 팔레스타인 지지 게시물 때문이었다. 캐나다 원주민의 경험과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 경험의 연관성에 주목했던 큐레이터의 관점이었다.

이제 더 이상 온타리오 미술관에서는 그 소수자성에 기반한 관점을 만날 수 없다. 미술이 무엇에 주목할 것인지, 무엇을 표현하고 어떻게 경험될 것인지에 관해 미술관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미술관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기부자들이다. 시민이 미술관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사유를 얻어갈지도 기부금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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