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슈퍼스타, 오가노이드

2024년 2월 23일, explained

기술에 따라잡히기 전에 알아야 한다.

연구진이 암시야 현미경 장비를 이용해 돔형 세포외기질의 나노물질 투과도를 관찰하고 있다. 사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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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개발에 사용되는 나노 입자 단백질의 독성을 평가할 수 있는 오가노이드 배양법이 세계 최초로 개발되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구진들의 결실이다. 주로 동물 실험에 의존해 왔던 인체 독성 평가에 실용적인 대안이 제시된 것이다. 바이오 연구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는 오가노이드의 가능성이 한 차원 더 넓어졌다.

WHY NOW

신약 개발은 물론이고 화장품, 먹거리 등 사람이 흡수할 신제품 개발에는 항상 안전성 테스트가 따라붙는다. 지금까지는 동물이 주로 희생되어 왔다.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동물 실험의 신뢰도에도 의문이 제기되면서 여러 대안이 개발되고 있다. 그중 주목 받는 것이 바로 오가노이드다. 쉽게 말하면 사람의 장기와 비슷하게 키운 세포 덩어리다. 그리고 이 세포 덩어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말이다.

미니어처 인간 장기

오가노이드를 아주 간단히 표현하면 인간 신체 장기의 미니어처다. 이름부터 ‘장기(organ)와 유사한(oid) 것’이란 뜻이다. 심장, 간, 소장은 물론 뇌까지 오가노이드로 만들 수 있다. 3D 프린터나 조직공학 기술을 통해 인공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도 있고,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들 수도 있다. 다만, 인공 오가노이드는 실제 장기처럼 작동하기 어렵다.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만들어야 다양한 기능을 하는 세포들이 DNA의 설계도대로 얽혀 기능하는, 인간 장기에 가까운 세포 덩어리를 만들 수 있다.

콩알만 한 심장

크기는 현미경으로 봐야 하는 수준부터 콩알만 한 정도까지다. 작지만 실제 장기처럼 기능한다. 예를 들어 소장 오가노이드는 아무리 작아도 소화하고 흡수하는 소장의 기능을 한다. 심장 오가노이드는 심실과 심방으로 나누어진 최소한의 구조를 갖추고 펌프질한다. 더 크게 키워 진짜 장기처럼 만들 수 있을까. 아직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 장기는 혈관을 통해 구석구석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아 자라나고 생존한다. 반면, 오가노이드는 외부 배양액에 영양을 의존한다.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라나면 내부까지 필요한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기 어렵다. 하지만 연구를 거듭하며 방법을 더듬어 찾아나가는 중이다.

혁신의 단초

신기하긴 한데, 이걸 왜 만들까. 인간의 생로병사 원칙을 바닥부터 뒤집을 신기술 개발을 위해 만든다. 예를 들어 뇌염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한다면, 뇌염에 걸린 뇌를 직접 연구해야 그 원인과 치료 방법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뇌염 환자의 뇌를 꺼내 실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2019년, 방법을 찾았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팀이 뇌 오가노이드에 ‘라크로스 뇌염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후 뇌세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했다. 대부분의 뇌세포는 죽었지만, 살아남은 뇌세포도 있었다. 살펴보니, 이들은 ‘인터페론’이라는 당단백질을 분비했다. 이것이 열쇠였다. 이제 라크로스 뇌염 바이러스로부터 뇌세포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동물 실험 해방

그렇다면 오가노이드를 이용할 수 없던 때에는 어떤 방법을 썼을까? 동물 실험을 했다. 물론, 지금도 한다. 쥐를 뇌염에 감염시킨 후, 그 뇌를 사용해 연구하는 식이다. 신약 개발에도 동물 실험이 빠지지 않는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이전에 동물에게 적용해 치명적인 부작용이 없는지, 실제 질병에 치료 효과가 있는지를 실험한다. 하지만 동물 실험은 두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하나는 실험동물에 대한 비윤리적 처사와 그에 따른 비판이다. 다른 하나는 안전성이다. 동물에게 문제가 없었다고 해서 인간에게도 문제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탈리도마이드 비극

대표적인 사례가 탈리도마이드 사태다. 수면제 성분으로, 임신부의 입덧 완화를 위해 1950년대 후반 널리 사용되었다. 제약회사는 동물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했지만, 부작용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다르게 작용했다. 1960년대, 팔다리가 짧거나 아예 없는 아기 환자가 급증한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탈리도마이드 때문이었다. 결국, 사람에게 적용해 봐야 신약의 위험성을 완전히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뒤집어 말하면 사람이 미지의 위험에 노출되어야만 안전한 신약 개발이 가능하다. 이걸 돌파할 방법이 오가노이드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의 장기처럼 작동한다. 윤리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롭고, 기술적인 완성도에 있어서도 유리하다. 그런데 오가노이드를 둘러싸고도 최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게임 배우는 뇌세포

인간의 야망이 커져서 그렇다.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학습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 ‘미니어처 뇌’는 예상보다 똑똑하다. 지난 2023년 호주에서 개발된 ‘접시 뇌’ 형태의 오가노이드는 단 5분 만에 ‘퐁 게임’을 익혔다. 당시 기술로 AI는 90분 걸려 익혀야 했던 게임이다. 미국 연구진은 뇌 오가노이드를 컴퓨터에 연결해 수학 방정식을 풀게 했다. 뇌세포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 컴퓨터 개발을 위한 연구들이다.

최고의 CPU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바이오 컴퓨터 개발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단순하다. 특정 분야에서는 AI보다 성능이 좋고, 슈퍼컴퓨터보다 에너지는 덜 먹는다. 추측이 아니라 실제로 미국의 슈퍼컴퓨터와 사람의 뇌를 비교해 본 결과가 그렇다. 뇌와 인공지능을 합치겠다는 야망도 그래서 나온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 링크’ 얘기다. 이제 오가노이드는 무병장수의 꿈을 넘어 인류의 지능 확장의 꿈까지 달성할 도구가 되고 있다. 손상된 피부를 복원하거나, 암 치료제 개발에 이용하는 정도를 넘어 CPU처럼 사용할 뇌세포를 만드는 단계다.

IT MATTERS

놀랍긴 한데, 좀 머뭇거리게 된다. 지금은 그 기능이 매우 제한적이지만, 기술이 진보할수록 뇌 오가노이드는 인간의 뇌와 닮아갈 것이다. 만약 의식을 갖게 된다면,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대체 어쩌려고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인간의 뇌보다 더 거대한 오가노이드가 개발된다면 초지성이 나타날 가능성도 완전히 배재할 수 없다. 현재의 AI는 전원을 뽑으면 일단 멈춘다. 그런데 뇌 오가노이드를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망설임 없이 뇌 오가노이드를 정지 혹은 파괴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도 이런 우려를 알고 있다. 지난 2022년, 바이오 컴퓨터 연구자들이 모여 ‘볼티모어 선언’을 발표했다.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지능 구축에 있어 기술적 문제는 물론 윤리적 문제까지 해결하기 위해 과학 이외의 학문 분야와도 협력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그 선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과학 외의 분야에 되어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이름도 생소한 오가노이드에 관해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과학이 인문학을 이해해야 하는 만큼, 우리 사회도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윤리적 고찰이 기술 발전에 따라잡히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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