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 교량 붕괴의 충격

2024년 3월 28일, explained

다리가 무너졌다. 균열은 여기저기에 있었다.

2024년 3월 26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화물선 달리가 프란시스 스콧 키 브리지와 충돌하여 붕괴됐다. 사진; Tasos Katopodis/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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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무너졌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릿지’에 추진력을 잃은 대형 컨테이너선이 충돌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사망자가 발생했다. 인근 볼티모어 항을 중심으로 한 지역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무너진 다리가 드러낸 균열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WHY NOW

재난이 남기는 경종은 대개 때늦은 것이다.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너져 내린 잔해 속에서 우리가 애써 찾아내어야 할 것들이 있다. 남겨진 사람들의 삶, 다음 참사를 막기 위한 경고 등이다.

메이데이(Mayday)

조난을 알리는 긴급 신호다. 프랑스어 ‘m'aidez(도와주세요)’에서 유래했다.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정말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 단순 고장 상황이라면 ‘팬팬(pan-pan)’이라는 신호를 사용한다. 현지 시각 26일, 새벽 1시 20분이 좀 지날 무렵 볼티모어 항을 떠난 컨테이너선 ‘달리’ 호가 메릴랜드주 교통국에 ‘메이데이(Mayday)’를 외쳤다. ‘키 브리지’와의 충돌이 임박한 상황이었다.

2분

대응은 신속했다. 그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 공개됐다. 오전 1시 27분, 다리의 남단과 북단에 각각 교통을 통제해 달라는 요청이 전달된다. 오전 1시 28분, 경찰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으며, 다리 위 모든 교통이 정지되었다는 답신이 돌아온다. 오전 1시 29분, 다리에서 공사 중이던 작업자들을 데리고 나오겠다는 교신으로부터 10초 후 다리가 무너졌다. 더 큰 참사를 막는 데 걸린 시간은 2분이었다.

6명

구하지 못한 6명은 다리 곳곳에 생긴 땅 꺼짐(포트홀)을 복구하던 작업자들이었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다. 가족의 끼니를 벌러 나왔다 참변을 당했다. 이주민 지원단체 카사(Casa)에 따르면, 볼티모어와 워싱턴 지역의 건설업에 종사하는 이민자는 전체 노동력의 39퍼센트를 차지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하지 않는 일을, 이주민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목소리다.

5천만 달러

키 브릿지는 볼티모어 항 근처에 있다. 달리 호도 항구를 떠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사고를 냈다. 볼티모어 항은 물동량으로 따졌을 땐 미국에서 9위에 그친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에서 출발한 자동차가 주로 이곳을 거쳐 미국에 도착하며, 미국에서 수출되는 석탄도 이곳을 거쳐 나간다. 다리가 붕괴하면서 항구도 폐쇄됐다. 만 5천 개의 일자리를 품고 있는 항구다. 만 4천 개의 일자리는 항구와 관련이 있거나,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다. 다리 붕괴의 여파는 지역 경제를 흔들고 있다. 매일 약 5천만 달러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추산이 나왔다.

볼티모어

문제는 볼티모어시가 이런 파장을 감당할 체력이 될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볼티모어시는 최근 몇 년간 높은 범죄율과 싸워왔다. 2015년, 경찰로부터 과잉 진압을 당한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의 사망 이후 시 전체가 분노에 휩싸였다. 그리고 시위와 폭동 사이에서 약탈과 살인이 급증했다. 변화를 꾀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볼티모어는 항구와 제조업으로 성장했지만, 제조업이 몰락하면서 경제 상황까지 악화했다. 남은 것은 항구다. 물류센터와 항구가 지금의 볼티모어를 떠받치는 중요한 경제적 기둥이다. 그러나 하루에 3만 4천 대의 자동차가 오가던 다리가 무너졌다. 항구도 멈춰 섰다. 주민들은 상황이 더 나빠질까 우려한다.

미국의 항구

항구가 다시 문을 열고 제 기능을 하기까지는 몇 주가 소요될 전망이다. 볼티모어에겐 태풍이다. 전세계적으로는 어떨까. 타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동부 해안에는 고속도로와 항구가 많다. 대체재가 있다는 뜻이다. 이미 많은 수의 화물선이 버지니아 항구와 뉴욕 및 뉴저지 항구로 경로를 변경하고 있다. 다만, 세계 경제는 이미 부품을 쌓아 두는 대신 시장 상황에 따라 수요를 판단하고, 그때그때 조달하는 방식의 ‘적시 생산(just in time manufacturing)’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가뭄에 시달리는 파나마 운하, 후티 반군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수에즈 운하 등 글로벌 해상물류는 이미 위기 상황이다. 멈춰 선 볼티모어 항의 여파가 더욱 뼈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너무 오래된 다리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 정부가 항만을 포함한 공급망 인프라에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2021년, 미국의 교통부는 미국 도로와 교량 등이 ‘심각한 파손 상태’라고 지적한 바 있다. 50년도 넘은 인프라가 낡아가는 동안 세계화가 진행되었고 적시 생산 방식이 자리 잡았다. 즉, 글로벌 물류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맞춰 파나마운하가 확장하는 등 대형 선박이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지난 50년 동안 컨테이너선의 크기는 8배 증가했다. 키 브릿지를 비롯한 미국 교량의 절반가량은 이렇게 커다란 배가 다니는 환경을 예상하지 못했던 시대에 지어졌다. 언제든 사고가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IT MATTERS

다만, 교량이든 항만이든 보강과 확장에는 돈이 든다는 점이 문제다. 때문에 해운 회사들이 몰고 다니는 대형 컨테이너선을 감당하기 위해 세금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인프라를 정비한다고 사고를 100퍼센트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배가 커지면 피해 규모도 커진다.

이번 키 브릿지 붕괴로 보험사들이 많게는 5조 원 이상의 보험액을 지급해야 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무너진 다리를 세우고 물류 지체로 인한 피해도 보상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무너진 다리를 재건하기 위한 비용은 연방정부가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용은 약 8천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인류가 쌓아 올린 것들은 단단해 보인다. 현재는 과거에 비해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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