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비야디
2화

비야디의 탄생

중국의 특별한 신생 도시, 선전


비야디를 이야기하려면 선전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남부의 광둥성(广东省)에 소재한 선전(深圳)은 중국 내 최고 중점 지역으로 분류되는 네 곳의 1선 도시(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지역이다.

중국 여러 왕조의 수도 혹은 거점 도시로 운영돼 유구한 역사를 지닌 다른 세 곳의 1선 도시와 다르게 선전은 본격적으로 발전이 시작된 역사가 매우 짧다. 물론 과거에도 존재하긴 했으나 1978년 즈음부터 당시 국가 주석인 덩샤오핑이 개혁 개방의 필요성을 외치며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으므로 고작 4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신생 계획 도시다.

그래서 1700만 명의 선전 인구 중에 고향이 선전이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선전으로 유입돼 이민자의 도시가 됐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선전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가 바로 ‘선전에 오면 바로 선전 사람(来了就是深圳人)’이다. 대부분 인구가 이민자로 구성돼 광둥성임에도 불구하고 광둥어(Cantonese)보다 베이징 표준어(Mandarin)로 먼저 대화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선전이 특별한 것은 텐센트, 화웨이, DJI, 비야디, 핑안보험을 비롯한 수많은 중국의 대표 민영 기업의 본사가 선전에 소재하기 때문이다. IT, 전자 관련 하이테크 제조업, 선전증권거래소와 관련된 각종 금융업 그리고 수많은 스타트업의 중심지로서 선전은 미래를 사는 도시라 할 만하다. 도시 전체 인구의 평균 연령도 33세에 불과하다. 이렇게 젊은 도시지만 이미 2020년에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었을 정도로 소득과 소비는 중국 내 최고 수준이다.

최초의 개혁 개방이 이뤄진 경제특구답게 정책의 테스트베드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중국의 각종 최신 정책들은 선전에서 시작해 본 후 다른 지역으로 확산한다. 1990년 중국 본토 최초의 증권 거래소가 선전에 문을 열었고, 2020년 세계 최초로 국가 법정 화폐를 전산화해 스마트폰 전자 지갑에 넣게 만든 ‘디지털 위안화’ 역시 선전을 비롯한 몇 개 도시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선전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선전 시민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 사람들도 선전을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개방 도시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홍콩을 대체하고자 선전을 육성한 중국 정부 입장에서 이곳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가장 좋은 예시이자 자랑이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선전에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으니 그것은 다른 중국 도시에 비해서 공기가 무척 깨끗하다는 것이다. 겨울철 극심한 미세 먼지와 황사로 수백 미터 앞도 분간 안 되던 2010년대 초반에 비해 중국 전역의 공기가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도 있지만 여전히 타 도시를 갔다가 돌아오면 선전 공기는 확실히 냄새부터 다르다. 연료가 불완전 연소하며 방출되는, 중국 도시 특유의 매캐한 매연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지리적으로 거의 중국 최남단에 있는 선전은 홍콩과 바로 인접해 있어 날씨가 거의 동남아 수준이다. 1년에 반 이상은 평균 기온이 30도 이상일 정도로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의 우기에는 날씨가 전반적으로 흐리다. 그렇지만 이때를 제외하면 선전의 날씨는 늘 맑고 푸르다. 더운 날씨임에도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을 보고 있으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은 여기가 진정 중국인가 싶을 정도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날씨와 미세 먼지, 공기 이야기인가 싶지만 선전의 깨끗한 공기는 느낌상 절반 이상은 신에너지 차량 덕분인 듯하다. 선전 길거리에 나다니는 차량 중에 언뜻 봐도 3할 이상은 신에너지 차량이다. 참고로 중국의 신에너지 차량은 번호판이 녹색으로 파란색의 일반 차량 번호판과는 다르다. 한국의 친환경 차량의 번호판이 파란색인 것과 유사하다.

도시 밖에서 불어오는 미세 먼지에는 선전도 속수무책이지만 도시 내에서만큼은 확실히 오염 물질의 배출 자체가 훨씬 적다.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왕복 8차선 대로 옆을 지나다녀도 확실히 한국 대로변의 공기 질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깨끗함이 느껴질 정도다. 전기차가 많다 보니 자동차 매연이 절반도 안 되는 듯하다. 반대로 내연 기관을 달고 다니는 차량에서 뿜어 대는 매연이 공기를 얼마나 악화시켰는지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바로 선전시 모든 택시가 하늘색 바탕에 흰색이 조합된 완전히 동일한 차종이라는 점이다. 택시는 물론이고 공공 버스까지 모두 전기차로 운영되고 있는데 해당 택시와 버스 차량의 대부분을 제조하고 납품한 기업이 바로 중국 신에너지 차량의 선두 주자 비야디다. 선전과 중국 정부의 사랑(자금 지원 및 각종 혜택)을 듬뿍 받은 비야디는 선전과 함께 컸다. 선전의 미세 먼지 저감 정책과 동행했기 때문이다.

 

선전 블루를 이끄는 비야디


이런 선전의 깨끗하고 맑은 공기는 비단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2021년 6월 7일 선전위성TV뉴스(深圳卫视深视新闻)는 선전 공기가 좋다는 대명사인 ‘선전 블루(深圳蓝)’에 대해서 본격 탐구하는 보도[1]를 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선전의 공기는 365일 중 355일간 양호한 공기 질을 나타냈다. 1년 중 공기가 깨끗한 날이 97퍼센트나 되는 것이다. 2.5마이크로미터(㎛)의 초미세 먼지 농도를 표현하는 PM(particulate matter) 2.5 농도는 2022년 기준 입방미터당 16마이크로그램(μg)수준으로 낮아 중국 내 대도시 중 1위다. 같은 기간 상하이는 25마이크로그램, 베이징은 30마이크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중국 특유의 과장이 섞였을 수 있겠지만 선전 거주민으로 느끼기에 공기는 확실히 좋다. 참고로 스위스의 공기질 감시 및 기술 업체인 아이큐에어(IQAir)에 따르면 2022년 서울의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19.7마이크로그램이었고 선진국 중에서는 핀란드가 5.5마이크로그램으로 가장 공기질이 좋았다.

이런 선전도 늘 공기가 좋았던 건 아니다. 2004년 기준으로는 미세 먼지 위험 일수가 연간 187일에 달할 정도로 공기가 좋지 않았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선전시는 ‘선전 블루’를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 기존 공장들에 대한 오염 배출 규제와 더불어 오염 산업을 퇴출시키는 등의 산업적 구조 조정을 진행했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선전시는 ‘2018년 선전시 신에너지 자동차 보급 응용 재정 지원 정책’을 발표해 2018년 6월 12일부터 2018년 12월 31일 사이 출시된 연료 전지 차량에 대해 승용차는 한 대당 20만 위안, 소형 여객차 및 화물차는 한 대당 30만 위안, 대형 여객차 및 중대형 화물차는 한 대당 50만 위안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선전 시내 어디서나 보이는 핑안보험 본사 건물과 선전의 맑은 하늘
이런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과 더불어 선전시는 대대적으로 대중교통을 전기차로 교체하기 시작해서 2018년경부터 모든 시내 버스를 전기차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2022년 선전 국제 저탄소 발전 포럼에 참석한 탄웨이중(覃伟中) 선전시 부서기 겸 선전 시장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으로 선전에 등록된 신에너지 차량은 총 74만 대다. 중국 내 도시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대해도 선두 주자다. 또한 2022년 기준 선전의 신에너지 차량 침투율[2]은 무려 57퍼센트에 달하고 당해 새롭게 등록된 신에너지 차량만 22만 대에 이른다.

2020년에만 해도 39만 7000대였던 신에너지 차량 등록 대수가 불과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시장에서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신에너지 차량이 증가하고 있다. 선전시는 2025년까지 신에너지 차량 보유량을 130만 대까지 올려 신에너지 차량의 교통 분담률을 81퍼센트까지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11월 선전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선전에 등록된 총 차량 대수는 397만 6600대로 신에너지 차량이 약 18.6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은 정책을 상회한다.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발에 차이는 게 신에너지 차량이다. 차량 호출 어플인 중국판 우버Uber 디디추싱을 불러도 항상 전기차가 왔고 택시와 버스도 전기차였다. 체감상 전기차 비율이 최소 30~40퍼센트 이상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수치가 20퍼센트도 안 되는 점이 오히려 놀라웠다.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는 개인용 내연 기관 차량은 어딘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을 가능성을 생각 못 한 것이다. 영업용 차량이 일반적으로 평균 주행 거리가 훨씬 기므로 선전의 영업용 차량이 대부분 신에너지 차량이라는 것은 공기 질 개선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선전시는 지속적으로 선전 블루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 《“선전 블루”의 지속 가능한 행동 계획(2022~2025년)》을 발표해 탄소 배출 저감 및 신에너지 차량 확대를 추진해 나가는 중이다. 비야디를 비롯한 신에너지 차량 기업은 이 계획의 핵심이다. 시 정부와 기업 간 협업의 중심엔 비야디가 있다. 선전이 이토록 비야디를 아껴 주니 비야디 역시 선전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비야디의 창업자 왕촨푸는 늘 “선전이 없었다면 비야디도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선전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곤 한다.

선전에는 텐센트, 화웨이를 비롯한 수많은 중국의 대표적 기업들이 즐비하지만 비야디야말로 선전과 가장 애틋한 관계를 맺은 기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비야디의 수상한 포트폴리오


비야디,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기업이다. 어떤 말 못 할 사연이 있길래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싶지만 예상외로 중문으로도 별다른 뜻이 없고 그렇다고 다른 외국어의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2022년 방송 인터뷰에서 왜 기업명을 비야디로 지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창업자 왕촨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전에는 기업이 무척 많아서 두 글자의 기업명은 통과가 쉽지 않았다. 애초 지으려고 했던 다섯 개의 기업명은 이미 다른 기업이 등록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세 글자의 이름을 짓기로 했고, ‘비야디’ 같은 다소 특이하고 이상한 이름이 (정부 심사를) 더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이 ‘중국식도 아니고 외국어도 아닌(不中不洋)’ 이상한 이름의 기업이 점점 더 성장하자 여러 가지 의미로 이름을 포장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비야디의 이니셜인 ‘B-Y-D’에다가 좋은 의미를 열심히 찾고 붙여넣어서 지금의 “Build Your Dreams”가 된 것이다. 왕촨푸 본인도 기업명을 정부 심사에 통과하기 쉽게 지은 것이 우스울 때가 있었는지 여러 자리에서 “사실 BYD는 ‘Bring Your Dollar’의 약자”라며 좌중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테슬라를 위협하는 비야디지만 현재 비야디는 자동차 외에도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있다. 주요 사업 분야를 살펴보면 도대체 이 기업의 정체가 뭔지 더욱 궁금해질 것이다.

비야디의 주요 사업 분야
  • 자동차 분야에서 전장 부품, 센서, 배터리, 전력 반도체 및 파워트레인 등을 수직 계열화하여 모두 자체적으로 제조 가능한 신에너지 차량 메이커
  • 배터리를 포함한 여러 자동차 부품을 타 부품사와 타 완성차 메이커에 납품하는 1차 공급 업체
  • IT 전자기기 부품 및 스마트폰 OEM 제조
  • 모노레일 제작, 신에너지 사업, 대용량 저장 장치(ESS) 및 마스크 제조 등의 기타 사업 분야

자동차와 배터리, ESS 등은 전기차 사업자라면 충분히 진출할 만한 분야지만 테슬라가 스마트폰과 마스크까지 만든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이상할 것이다. 사업 분야가 다양하긴 하지만 어쨌든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는 바로 ‘생산’이다. 비야디 소속 직원은 총 57만 명으로 그중 생산 인력이 44만 2000명을 차지하여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기술 인력이 7만 6000명, 행정 인력이 2만 5000명, 영업 인력이 2만 4000명으로 뒤를 잇는다. 이처럼 생산직이 대다수를 차지하기에 석사 이상 인력은 1만 1000명, 대졸자 6만 5000명, 전문대졸 이하가 49만 3000명이다.

그렇다면 사업 분야별 매출 구조는 어떨까? 2023년 매출액 기준으로는 자동차, 자동차 부품 및 기타 상품이 80.27퍼센트, 전자·스마트폰 부품, 조립 등이 19.6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환산 시 전체 약 111조 원 규모의 매출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2022년 대비 약 42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자동차 관련 분야의 매출은 2022년 대비 48.9퍼센트 증가했다.

비야디의 수상한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는 이유는 이 속에 비야디의 저력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기업 한화가 원래 ‘한국 화약’의 준말이며 이것이 한화가 방산 분야에 강한 이유라는 점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렇다면 비야디는 원래 무엇을 하던 기업일까? 2023년 기준으로는 완성차 판매 및 자동차 부품의 매출액 비중이 80퍼센트를 초과해 자동차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지만 비야디는 원래 배터리를 만들던 기업이다. 중국 사람들조차 이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초 비야디 주식회사에서 매년 발표하는 연간 보고서의 주요 매출 현황 부분에서 가장 앞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은 배터리 사업이다. 이제 각각 자동차 부품 및 스마트폰 제조 범주로 포함돼 별도로 표기조차 되지 않고 있지만 배터리 사업은 여전히 비야디의 핵심 경쟁력이자 모든 사업군의 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배터리 신화와 스마트폰 팩토리


비야디의 탄생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20세기 말만 하더라도 파나소닉, 산요, 소니 등의 일본 기업이 배터리 시장을 꽉 잡고 있었고 선전에 자리 잡은 많은 중국 기업도 서서히 산짜이(山寨·모조품) 제조에 필요한 기술력을 쌓아 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중국 기업은 기술력 위주의 생산이 아니라 단순 조립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비야디 역시 초창기에는 배터리 생산 설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 생산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비야디는 엉뚱한 선택을 한다. 당시 많은 중국 기업처럼 큰 비용을 들여서 해외 기술 도입 및 대량 자동 생산 설비를 도입하기보다는 반자동 개인 제조 설비를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비싼 배터리 제조 원가를 중국의 값싼 인건비를 활용하여 노동 집약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초창기 비야디 배터리 사업의 특징이다.

자동화된 기계 생산 설비 대신 확충된 건 여러 명의 인력이다. 비야디는 이 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당시 고작 100만여 위안을 들여서 배터리 생산 설비를 구축해 냈다. 이는 비야디의 생산 제조 원가를 크게 절감할 수 있던 원동력이다. 다만 인력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프로세스상 불가피한 불량률이 문제였다. 비야디는 인적 교육 및 훈련을 강화하고 별도로 개발한 작업 도구를 활용하는 등 이를 힘겹게 극복해 나간다.

비야디 초기의 주요 분야는 니켈카드뮴, 리튬이온, 니켈수소 등을 활용한 이차전지(재충전용) 개발 및 제조였다. 아무래도 기존의 강자인 일본 기업보다 기업 인지도와 기술력에서 한참 밀리기 때문에 비야디는 최대한의 성능 개선과 함께 생산 원가 절감에 치중해 평균적으로 일본 제품보다 약 40퍼센트 이상 저렴한 가격을 시장에 선보였다.

일본 기업과 가격 전쟁에 나선 비야디는 엄청난 가성비 제품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간다. 비야디와 관련한 중국 서적과 각종 언론 및 뉴스 사이트에서는 당시 비야디가 가격만 저렴했던 게 아니라 배터리 성능도 일본 기업을 능가했다고 하는데,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부분의 신빙성은 상당히 떨어진다고 보인다.

설립 첫해인 1995년 하반기에 비야디는 당시 대만의 최대 휴대폰 제조사인 타이완 ‘따빠그룹(台湾大霸集团)’에게 자체적으로 개발한 배터리의 샘플 테스트를 맡겼는데 상당히 괜찮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따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해 말 따빠는 배터리 공급처를 기존에 맡기던 일본의 산요에서 비야디로 전환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격적 메리트와 기본적인 성능이 당연히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비야디는 점차 자체 휴대폰 배터리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1997년에는 리튬 이온 전지 등으로 배터리 생산 범위를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비야디에는 천운도 따랐다. 1997년에 한국을 비롯한 전 아시아에 불어닥친 금융 위기, ‘IMF 사태’로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휴대폰의 수요도 급감했다. 당연히 배터리 수요도 바닥을 쳤고 배터리 가격도 곤두박질쳤다. 비야디의 경쟁사인 여러 일본 배터리 기업은 주문량 감소에 따른 생산 시설 유지 등에 막심한 영업 손실과 경영 애로를 겪는다. 그러나 애초부터 일본 기업보다 40퍼센트 이상 낮은 생산 원가를 유지하던 비야디는 이 상황을 버텨 낼 수 있었다. 외환 위기가 마무리되고 다시 경제가 회복세를 탈 즈음, 늘어난 배터리 수요의 수혜는 비야디를 향하고 있었다. 필립스, 파나소닉, 소니 등을 비롯한 유수의 글로벌 IT 전자 기업은 당시 무명소졸에 불과하던 배터리 제조사 비야디에 러브콜을 보낸다.

이렇듯 고작 창업 2년 만에 연 매출 1억 위안 이상을 올리는 중견 기업으로 단번에 올라선 비야디는 이후 3년간 매년 무려 100퍼센트 이상의 성장을 기록한다. 창립 3년 만인 1998년에는 니켈카드뮴 배터리 분야에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40퍼센트를 달성한다. 결정적으로 2000년에는 모토로라, 2002년에는 노키아의 리튬이온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이런 대규모 실적을 바탕으로 비야디는 전 세계 2위의 휴대폰 배터리 제조 업체로 올라선다.

2002년 7월은 비야디에게 잊을 수 없는 달이다. 당시 기업 공개 최고가 기록을 새로 쓰면서 홍콩 주식 시장에 상장까지 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대망의 2003년, 드디어 일본 산요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을 넘어서며 왕촨푸는 중국 내에서 ‘배터리 왕’으로 불리게 된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며 비야디 배터리 사업 분야는 스마트폰 분야뿐 아니라 자사의 전기차에 들어가는 차량용 배터리로 점차 발전했고 2018년에 최초로 자사가 아닌 동펑자동차(东风汽车)에 차량용 배터리를 납품했다.

비야디는 배터리로는 이미 정점을 찍었고 배터리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기업이 됐다. 그러나 왕촨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비야디는 휴대폰 배터리를 만들던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휴대폰 단말기 부품 제조 분야에 진출해 큰 성과를 보였다. 비즈니스 기회에 대한 왕촨푸의 동물적 감각이 빛을 발했다. 휴대폰 비즈니스가 향후 중국에서 한동안 크게 뜰 것으로 판단해 진입을 결정한 것이다. 2000년 초반부터 중국에서는 휴대폰 보급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었기에 비야디는 기존의 휴대폰 배터리 고객사인 휴대폰 제조사를 대상으로 다양한 휴대폰 부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휴대폰 관련 플라스틱, 케이스 등의 휴대폰 금형 제품, 강화 유리, 키보드, 액정 모듈 등이 그 대상이었다. 휴대폰 외산 제조사인 모토로라, 노키아, 삼성, 소니에릭슨, 교세라 및 중국 기업인 화웨이, ZTE 등이 비야디의 휴대폰 부품을 썼다.

이 휴대폰 부품 사업은 2005년 전까지 비야디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이던 배터리를 밀어내고 2006년부터는 3년간 비야디의 주력 부문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성공적인 사업 확장이었다.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비야디는 스마트폰 등의 전자 제품 위탁 생산 기업(EMS·electronic manufacturing service)으로 애플의 생산 공장으로 유명한 폭스콘에 버금가는 세계 2대 기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폭스콘이 소화 못 하는 애플의 물량, 혹은 애플이 전량을 폭스콘에 맡기는 것을 피하고자 의도적으로 타 기업으로 배분한 생산 물량을 비야디에서 일부 제조 및 납품하고 있다. 2020년대 애플 아이패드 프로의 10~20퍼센트, 아이폰의 생산량 일부를 비야디 일렉트로닉스가 납품했다. 또한 비야디 일렉트로닉스는 2023년 8월 미국 전자 부품 회사이자 애플 공급 업체인 자빌의 중국 사업을 158억 위안(2조 8050억 원)에 인수한 바 있다. 이는 당연히 애플 공급을 늘리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애플은 이미 2010년부터 비야디의 주요 고객 중 하나였다. 배터리는 당연하고 그 외 각종 휴대폰 및 아이패드 등의 부품을 납품하고 있었다. 비단 애플뿐만이 아니라 중국 기업인 화웨이, 샤오미 그리고 심지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도 비야디에서 일부 개발 및 생산했다. 참고로 삼성전자 역시 2016년 비야디의 1.9퍼센트 지분을 약 5000억 원에 인수한 비야디 주주였다. 삼성전자는 비야디에 자사의 휴대폰 위탁 생산을 맡기기도 하지만 역으로 삼성의 반도체, 센서, LCD 등을 공급하는 쌍방향 협력사이기도 했다. 인수 당시 삼성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성장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두 기업이 적극적으로 반도체 관련 협력을 도모했거나 성과를 얻은 것은 없다. 인수했던 지분도 2021년 4분기까지 0.1퍼센트만 남기고 모두 매각하여 투자 이익 1조 5000억 원 이상을 거두었다. 매각 사유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차량용 반도체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시점에 삼성도 해당 분야에 더 집중하기 위해 지분을 정리했을 수 있다. 비야디는 차량용 반도체를 자체 제작하기에 동종 업계의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부품 생산과 위탁 생산은 연관성이 짙지만 확실히 다른 분야다. 비야디는 어떻게 폭스콘에 버금가는 휴대폰 위탁 생산 회사가 됐을까? 이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비야디는 이미 중국 배터리 업계의 대부였고 배터리는 스마트폰의 중요 부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자 제품 위탁 생산 기업(EMS)인 폭스콘과 업무 관계가 생겼다. 폭스콘 회장인 궈타이밍郭台铭은 왕촨푸를 폭스콘으로 초청한 적이 있었고 왕촨푸는 폭스콘의 생산 공장을 둘러볼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러나 궈타이밍이 예상 못 한 것이 하나 있었다. 폭스콘 참관 이후 왕촨푸가 휴대폰 위탁 생산에 완전히 꽂혔다는 것이다. 왕촨푸는 고작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무려 400여 명의 폭스콘의 직원을 스카우트해서 데려갔다. 이로써 폭스콘과 비야디는 거의 원수지간처럼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가 된다. 지난 2021년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분야에서 치열하게 인력 및 기술 유출 등을 이유로 법정 공방을 펼쳤던 일이 겹쳐 보인다.

2007년 이미 휴대폰 등 전자 기기 위탁 생산이 궤도에 오른 비야디는 비야디 일렉트로닉스의 이름으로 상장을 준비한다. 그러나 상술한 사연으로 인해 폭스콘은 영업 비밀 침해를 이유로 비야디 일렉트로닉스에 소송을 제기한다. 이 때문에 비야디 일렉트로닉스의 상장은 반년 정도 연기되고 소송은 5년간 지속됐다. 홍콩 법원이 피소된 비야디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 사건은 겨우 종료된다. 이제 5G 시대에 접어들고 스마트폰 시장 자체는 이미 포화 상태이니 다소 철지난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겠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에서 끊임없는 업그레이드가 일어날 것이며 여전히 매년 신제품이 쏟아질 것이라는 데 시장의 이견은 별로 없다. 따라서 이 비야디의 휴대폰 부품 및 OEM 생산의 전망은 여전히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휴대폰 배터리에서 나아가 휴대폰 부품 제조와 휴대폰 위탁 생산 공장으로의 사업 영역 확장은 연관성 있는 분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2003년, 비야디가 자동차 분야에 진출을 선언했을 때 시장에서는 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자동차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서 비야디에겐 인수 합병 말고 다른 옵션이 없었는데, 이러한 방식 역시 그간의 행보를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휴대폰 부품 및 휴대폰 위탁 생산은 비야디 기업 내부적인 사업 확장이었기 때문이다.

비야디의 자동차 사업은 이 책에서 심층적으로 다룰 비야디의 주력 분야이므로 3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1]
深圳新闻网, 〈央视30分钟揭秘“深圳蓝”〉, 2021.6.7.
[2]
침투율이란 기존 시장에서 새로운 브랜드, 제품 및 서비스가 진출했을 때 확보한(이를 한 번이라도 이용한) 이용자의 비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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