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비야디
7화

전기차 시대, 한국의 위기와 기회

한국의 전기차 산업 경쟁력의 현주소


유엔의 세관 통계 데이터베이스인 유엔 컴트레이드의 국가별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전기차 수출액은 81억 7575만 달러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264억 5524만 달러를 수출한 독일과 200억 8888만 달러를 수출한 중국에 이은 세계 3위다. 독일은 한 세기 이상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전통 강국이다. 중국은 내수를 바탕으로 급성장한 비야디와 각종 전기차 기업이 즐비한 신흥 강국이다. 한국이 이들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2023년 한국의 전기차 수출액은 143억 달러로 집계돼 전년 대비 약 74퍼센트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의 이 외형적 성장은 거의 현대자동차그룹 혼자서 이뤄 낸 성과에 가깝다. 현대·기아차 이외 기업의 존재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KG모빌리티(구 쌍용차)도 2022년에 전기차를 수출했지만 고작 301대에 불과했다.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는 국내에서 전기차를 제조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에서 전통적 내연 기관 자동차 회사와 비야디, 테슬라뿐 아니라 3대 신흥 전기차 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웨이샤오리 외에 수십 개의 스타트업이 전기차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과 크게 대조된다. 경쟁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경쟁에서 생긴다. 국내에서 현대·기아차의 경쟁자가 딱히 없다는 사실은 뼈아픈 지점이다.

게다가 미래 전기차 경쟁력을 향상할 수 있는 설비 투자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KDB산업은행의 설비 투자 계획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 전체 설비 투자액은 2023년 5조 7151억 원으로 전망된다. 2015년 10조 853억 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한국 자동차 부품 기업도 아직 배터리, 인버터 등 전기차 핵심 부품을 만들 역량이 부족하며 설사 역량을 갖춘 기업들도 신차 중에 전기차 비중이 10퍼센트 정도로 높지 않아 손익 분기점을 넘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듯 실제로 한국 전기차 산업 경쟁력은 외형적으로는 일단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내부를 잘 살펴보면 현대차그룹 외에는 뚜렷한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내수 시장이 작고 인건비가 비싸서 테슬라 같은 핵심 전기차 기업을 투자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중국의 웨이샤오리(니오, 샤오펑, 리샹 신흥 3대 전기차 기업)나 미국에서 제2의 테슬라를 꿈꾸는 루시드, 리비안, 피스커 등도 한국에서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체적으로 전기차 관련된 새로운 플레이어가 진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 때문에 국내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인센티브로 전기차 시설 투자 세액 공제액을 기존 1퍼센트에서 크게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3년부터 전기차 생산 시설, 전기차 충전 기술 및 시설은 국가 전략 기술에 포함되어 중소기업은 최대 35퍼센트, 중견기업과 대기업은 최대 25퍼센트까지 투자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비록 한국의 전기차 선수층이 얇고 전기차 산업 생태계가 아직은 성숙한 편은 아니나 전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먼저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6, 기아 EV6 등 여러 신차의 잇따른 성공으로 해외 수출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국산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며 판매량이 늘고 있다. 2022년 현대차그룹의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37만 1802대를 기록했다. 그리고 2024년 현대차그룹 발표에 따르면 2023년 현대(제네시스 포함)와 기아는 51만 6441대 전기차를 판매해 전년 대비 38.9퍼센트 증가를 기록했다. 2022년 500만 대 이상 전기차가 판매된 중국과 직접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의미 있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늘어나는 판매량과 함께 규모의 경제 효과와 배터리 가격 하락으로 전기차 가격이 저렴해지고 있으므로 소비자의 진입 장벽도 낮아지고 있다. 기존 삼원계에서 LFP 배터리를 채택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가격을 인하했음에도 기술 발전에 따른 성능 개선으로 최대 주행 거리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 충전 시설이 점차 잘 구비되고 있다는 점도 한국 전기차 산업의 선순환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에 따라 2022년까지만 해도 전기차 분야에서 존재감을 썩 드러내지 못하던 KG모빌리티에서도 SUV 전기차를 보조금 적용 시 3000만 원대에 내놓으며 가성비를 찾는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단, 국내 완성차에서 전기차의 가성비를 끌어올리기 위해 장착한 LFP 배터리의 많은 부분이 중국산이라는 점은 여전히 우려된다.

 

IRA 시대, 미중 갈등 속 한국의 대응 방향


무엇보다 한국이 주목하고 있는 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다. IRA는 기후 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을 골자로 한 미국의 법으로, 급등한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2022년 8월 16일 발효됐다. 표면상으로는 상기 이유지만 미국이 전기차 가치 사슬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에서 전기차 구매 시 보조금(세액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전기차 제조에서 중국 등 우려 국가의 배터리 부품과 광물을 일정률 이하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IRA의 세부 규정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북미 지역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50퍼센트 사용 시 3750달러, 북미 또는 미국과 자유 무역 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 및 가공한 핵심 광물의 40퍼센트 이상을 사용 시 3750달러의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은 최대 7500달러의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엄청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IRA의 이 같은 규정으로 인해 현대·기아 전기차는 세제 혜택에서 제외됐다. 미국 전기차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에서 2023년 상반기에 각각 208만 1462대, 157만 5920대를 판매하며 전년 동기대비 10.1퍼센트, 11.0퍼센트의 괜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전기차 분야에 있어서는 부진한 성적을 받았다. 2023년 상반기 전기차 분야에서 1위인 테슬라가 33만 6892대로 전년 동기 대비 30퍼센트 이상 성장했고, 3위인 GM은 3만 6322대로 전년 동기 대비 365퍼센트 성장해 전체 차량 판매에서 현대·기아차를 바짝 쫓아오고 있다. 이에 반해 같은 기간 현대·기아차 전기차 판매량은 3만 8457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퍼센트 성장하는데 그쳤다. 현대차는 보조금 지급 조건이 예외적으로 인정받는 렌트나 리스 분야의 비중을 늘리며 대응했지만 기아차는 오히려 26.4퍼센트의 하락을 맛봤다. IRA 세액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해 올 1분기부터 EV6, 니로EV 등 대표 차량의 판매가 꾸준히 감소한 것이다. IRA로 인한 가격 경쟁력 하락이 한국 기업에게 상당한 효과를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현대차그룹이 선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미국 에너지부는 2023년 6월 테슬라 모델3(기본 트림)가 IRA에서 규정한 부품 제조 규정, 배터리 광물에 대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했다며 7500달러의 전기차 보조금 전액을 수령한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사실은 테슬라 모델3에는 중국 CATL이 만든 배터리가 장착됐다는 점이다.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에선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위해 만든 IRA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와 동시에 현실적으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전기차 관련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미국 주 정부에서 이에 대해 일정 부분 눈감아 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미국 주 정부의 인센티브가 IRA의 우회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다양하다. 2023년 2월 포드와 중국 CATL은 미국 미시간주에 35억 달러를 투자해 전기차용 LFP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포드는 해당 공장이 일반적인 합작 투자 방식이 아닌 포드의 100퍼센트 자회사가 될 것이며 CATL은 기술 지원만 하고 로열티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즉, 포드의 미시간 공장은 실질적으로 중국 CATL와 합작 공장이지만 형식적으로는 포드의 100퍼센트 자회사이므로 IRA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해당 공장이 미시간주 정부로부터 보조금과 세면 감면 혜택을 받는다면 그 규모는 총 17억 달러에 달한다. 총투자액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다. 포드로서는 만약 IRA 보조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주 정부의 거액의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으므로 CATL과의 합작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물론 포드가 2023년 9월 이 계획을 전면 중단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 배경에는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미국 공화당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미국 주 정부가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와 배치되는 정책을 펼치면서 막대한 인센티브까지 제공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전기차 배터리 공장 유치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시간에 본사를 둔 포드는 SK온과 114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합작 공장 부지로 켄터키주와 테네시주를 택했다. 그 외에 인디애나, 오하이오, 애리조나, 택사스 등이 배터리 공장 유치에 뛰어들면서 각 주 정부의 인센티브는 점점 커지고 있다.

CATL도 이런 상황을 십분 활용해 포드에 이어 테슬라와도 손잡고 텍사스주에 배터리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포드와 같은 방식으로 테슬라가 공장 지분 100퍼센트를 소유하고 기술 제공에 따른 로열티를 받는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중국 5위의 배터리 기업인 고션하이테크도 2022년 10월 미시간주에 23억 달러를 투자해 양극재 15만 톤, 음극재 5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밝혔고 2023년 9월에도 일리노이주에 20억 달러를 투자해서 배터리 공장을 내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렇듯 IRA은 중국 기업의 미국 진출을 막고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미국의 완성차 업체가 중국 배터리 기업과 편법적인 형태로 합작을 시도하면서 한국 기업들만 IRA의 불이익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미국 완성차와 중국 배터리 기업의 합작 공장은 아직 승인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7월 미국 하원의 세입 위원회와 중국공산당특별위원회는 공동으로 서한을 발표하고 포드와 CATL의 합작 배터리 공장 문제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포드의 공장 설립이 무산됐듯 다른 공장 역시 설립 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

IRA을 편법적으로 우회하는 미국-중국의 합작 공장이 계속 생겨난다면 당연히 한국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에 한국 입장에선 중국의 실질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IRA 시행 초기에는 중국 외에서 광물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CATL 등 중국 경쟁사의 입지가 좁아서 한국 배터리 기업이 반사 이익을 볼 것으로 기대했으나 중국 기업들의 우회 경로가 속속 뚫리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 기업의 위기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IRA 규제는 한국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IRA와 더불어 2023년 4월 미국 정부는 2032년까지 전체 신차 판매의 67퍼센트를 전기차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판매 차량의 배출 가스 한도를 제한하겠다는 뜻이므로 미국 자동차 업체들도 이에 따라 전기차 비중을 높여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기차 점유율 증대가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시장 또한 대폭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국내 현대자동차그룹과 배터리 3사는 북미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현지 생산 거점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가 아니면, 그리고 일정 비율 이상의 광물과 부품이 북미 등의 지역에서 생산된 배터리가 아니라면 전기차 세액 공제 대상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 조건은 점점 강화돼 조립 조건의 경우 2029년에 100퍼센트의 비율로 확대되며, 배터리 부품 조건 역시 2024년부터 60퍼센트 이상이어야 한다. 이는 매년 10퍼센트씩 높아져 2028년 이후에는 역시 100퍼센트 충족돼야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현대차는 2022년 5월 조지아주 서배나 인근에 연간 3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전용 공장과 배터리셀 공장을 건설하기로 발표했고, 기아차는 멕시코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에서 SK온, LG에너지솔루션과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도 추진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먼저 북미에 진출하여 미국 미시건, 애리조나에 독자 공장을 운영 중이며 GM과 오하이오(2022년), 테네시(2023년), 미시간(2025년)에 합작 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스텔란티스와도 공동으로 캐나다 온타리오(2024년)에 공장을 신설하려 한다. 또한 애리조나주에 7조 2000억 원을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지을 계획이며, 이는 단일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의 배터리 생산 공장이다.

SK온도 단독 투자 형태로 조지아에 1·2공장을 가동 중이며 포드와 합작 법인으로 세운 블루오벌SK가 테네시, 켄터키에서도 2025년 양산 목표로 공장을 설립하고 있다. 삼성SDI는 아직 북미에 가동 중인 공장은 없으나 스텔란티스와 공동으로 배터리 생산 공장을 2025년 건설 예정이며, 미시간주에 GM과 합작으로 2026년 추가 증설할 예정이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까지 미국 내 건설 예정인 대규모 배터리 생산 공장 13개 중 11개가 국내 배터리 3사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모두 미국 주요 완성차 기업인 GM, 포드, 스텔란티스와 조인트벤쳐 형태로 진출하고 있다. 컬리어스(Colliers) 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는 테슬라에 납품하는 파나소닉이 현재 북미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2025년 국내 배터리 3사의 북미 현지 공장이 완료되면 미국 내 한국 기업들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69퍼센트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 IRA가 신설되지 않았다면 단기간 전기차 관련 한국 기업들이 공격적인 북미 투자가 이뤄지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IRA로 당장 받지 못한 세제 혜택 보조금과 미래에 대한 위기감이 오히려 북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볼 수 있다.

IRA은 한국에 또 다른 기회도 만들어 주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이 적극적으로 북미에 진출 중이고 중국 기업도 미국과 합작 법인 등으로 IRA의 우회 경로를 탐색하고 시도하는 가운데 다른 선택지를 모색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곧바로 북미로 진출하기보다 한국 공장 설립으로 우회 방향을 잡는 경우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기업들은 IRA이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한국 배터리 산업에 투자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2023년 상반기에만 중국 회사들은 한국 파트너들과 신규 배터리 공장 다섯 곳에 5조 1000억 원 투자를 발표했다. 2023년 3월에 SK온은 중국 거린메이(格林美)와 배터리 소재 생산을 위한 합작 투자를 발표했다. 거린메이는 폐배터리 처리 및 산화코발트·전구체 생산 기업으로 글로벌 시장 3위 규모의 리튬이온 배터리 양극재용 전구체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글로벌 1위의 코발트 생산 기업인 중국 화유코발트(华友钴业)도 LG화학, 포스코퓨처엠과 새만금 국가 산업 단지, 경북 포항 등에 니켈·전구체 생산 라인을 짓기로 했다. 글로벌 1위 전구체 전문 기업인 중국 CNGR(中伟)도 포스코홀딩스와 1조 5000억 원 규모의 니켈 생산 공장 라인을 신설하는 합작 투자를 발표했다. 여기에 추가로 중국 양극재 기업인 닝보 론베이(宁波容百)는 이미 지난 7월 한국 정부로부터 공장 설립 허가를 받았다고 발표하며 연간 8만 톤에 달하는 삼원계 전구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는 모두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관문으로 한국 기업을 이용하려는 목적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제조해 한국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에 공급한다. 완성된 배터리는 다시 GM, 테슬라, 폭스바겐 등의 전기차에 장착된다. 이렇게 미국 완성차 기업에 최종적으로 수출되면 IRA에 따른 세금 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덤으로 한미 FTA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물론 중국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FTA를 맺은 캐나다, 호주, 칠레, 모로코 등 국가들과 광물을 바탕으로 자원 협력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 기업이 중국의 속내를 알면서도 이런 합작을 진행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소재 공급망의 많은 부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광물 및 소재 부품의 많은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한중 합작 투자가 국내 기업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미국이 향후 한중 합작 법인을 규제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배터리 관련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차원에서 중국과의 합작은 실보다는 득이 클 것으로 보인다.

2023년 8월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배터리 기업뿐만 아니라 KG모빌리티 같은 완성차 기업도 비야디와 손잡고 전기차 배터리 합작 공장을 설립하고 있다. 만약 이 방안이 현실이 된다면 한국 완성차 업체가 중국 배터리사와 함께 한국에 공장을 세우는 최초 사례가 된다. 이에 앞서 비야디는 2021년 KG모빌리티와 기술 업무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2023년 9월에 발표한 KG모빌리티의 전기차 토레스 EVX가 각종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적용했을 때 3000만 원대로 현격히 가격이 낮아진 이유는 바로 비야디의 LFP 배터리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테슬라 역시 한국에 2023년 7월부터 시판 중인 모델Y 후륜 구동 모델도 중국 CATL의 LFP 배터리를 탑재해 기존 삼원계 배터리 탑재 모델에 비해 무려 2000만 원가량 가격을 낮춰 5499만 원에 판매 중이다. 저렴한 가격이지만 최대 주행 거리가 511킬로미터에서 350킬로미터로 줄어든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 중국 LFP 배터리의 점유율 확대는 이미 잠재적 위험이 아닌 현실이다.

앞서 살펴봤듯 삼원계 배터리 제조 기술은 한국이 앞서지만 LFP 배터리 제조 기술은 중국이 지금까지 주력했던 분야인 만큼 중국이 앞서 있다. 따라서 중국의 LFP 배터리 관련 공장이 한국에 설립된다면 이와 관련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중국도 미국 IRA 규제에 맞서서 원자재(희토류 등) 수출 규제로 맞불을 놓는 상황이므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 배터리 기업은 IRA 규제를 피하기 위한 중국의 우회적 전략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동시에 공급망 다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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