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의 시간

2024년 5월 14일, explained

전자 담배야말로 담배회사들의 미래다.

지난 2019년 뉴욕주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전자담배 브랜드였던 ‘쥴’이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만적인 마케팅 및 판매 전략을 펼쳤다는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Spencer Platt/Getty Images
NOW THIS

정부가 합성 니코틴의 유해성을 판단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다. 국회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합성 니코틴을 관련법상 ‘담배’에 포함해 규제하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심의 중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라 한국은 담배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된다.

WHY NOW

담배는 8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해 왔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흡연은 지속되었고, 금연을 권장하면서도 담배는 금지된 일이 없다. 담배가 적당한 중독 산업이기 때문이다. 담배 없는 사회는 상상 밖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지금, 흡연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지금 결정하는 정책이 우리의 건강과 건강보험 재정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

연초와 전담

한국의 경우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담배는 크게 두 종류다. 불을 붙여 태우는 연초와 전자 담배(e-cigarette)이다. 전자 담배는 다시 두 종류로 나뉜다. 액상형과 궐련형이다. 액상형은 니코틴이 든 액체를 기기에 넣어 열을 가해 끓인 뒤 그 증기를 흡입하는 방식이다. ‘베이핑(vaping)’이라는 명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궐련형은 담뱃잎이 든 전용 스틱을 가열하여 쪄낸 증기를 흡입한다. KT&G의 ‘릴’,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 브리티쉬 아메리칸 토바코(BAT)의 ‘글로’ 등이 이 방식을 사용하는 전자담배다. 그런데 최근 BAT가 우리나라에서 액상 담배 제품인 ‘뷰즈’를 출시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미국 시장 1위 액상형 전자담배 브랜드다.

니코틴이지만 담배는 아닙니다

문제는 BAT의 뷰즈가 ‘합성 니코틴’ 제품이라는 점이다. 현재 합성 니코틴은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담배사업법이 실제 담뱃잎을 원료로 포함한 것만을 ‘담배’로 정의하고 있어서다. 거리에서 자주 목격되는 전자 담배 점포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액상형 담배가 합성 니코틴을 원료로 사용한다.

법이 거르지 못한 신기술

담배가 아니니 관련 세금이나 부담금도 물지 않고 온라인 판매 및 판촉까지 가능하다. 흡연자는 더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판매자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 규제 맹점이다. 이 틈을 글로벌 대기업인 BAT가 파고들었다. BAT 측은 “세금 및 부담금 절약분을 소비자 혜택으로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을 서두르는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다.

몸에 덜 나쁜 담배?

사실 액상형 전자담배는 2019년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폐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후 급속도로 인기가 식었던 바 있다. KT&G에서도 액상형 전자담배를 출시했지만, 해당 경고 이후 단종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액상형 전자 담배는 곧 부활했다. BAT의 뷰즈가 FDA 승인을 받았고, 영국의 경우 공중보건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가 기존 연초 담배에 비해 95퍼센트 이상 덜 해롭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전자 담배는 전기차다

BAT가 무리수를 감수하며 액상 담배 시장에 다시 뛰어든 이유다. 전자 담배야말로 담배회사들의 미래다. 연초에 비해 전자 담배가 덜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는 담배를 멈추고 전자 담배를 시작하자는 주장의 단단한 근거가 된다. 내연차를 멈추고 전기차로 가야 한다는 주장과 겹친다. 실제로 지난 2021년 필립 모리스의 야첵 올자크 CEO가 전자 담배를 전기차에 비유한 바 있다. 10년 안에 내연차와 같은 담배를 금지하고 전기차와 같은 전자 담배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담배 금지법

이러한 담배 회사들의 주장과 가장 긴밀하게 보조를 맞추고 있는 국가가 영국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담배 없는 세대(smokefree generation)’를 선언했다. 2009년 출생자부터는 성인이 되어도 평생 담배를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런 강경한 정책의 이면에는 영국의 의료시스템이 있다. 정부가 국민의 의료비를 전부 부담한다.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 치료비가 고스란히 국가 재정에서 나간다. 영국 정부가 파격적인 금연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유다.

규제의 방향

그런데 이 정책의 이면에는 전자 담배가 있다. 2009년생이 구입할 수 없는 담배에 전자 담배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4월 영국의 보건사회복지부는 무료 전자 담배 키트를 100만 명에게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전자 담배를 완전 금연을 위한 중간 단계로 보는 관점과 전자 담배가 담뱃잎에 불을 붙이는 방식의 흡연보다는 몸에 덜 해롭다는 연구 결과다. 즉, 영국 정부는 연초 담배와 비교해 덜 해롭다는 전자 담배 쪽으로 시장을 이동시키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합성 니코틴까지 담배로 규제하겠다는 입장의 우리나라와는 궤도가 다르다.

IT MATTERS

물론, 전자 담배의 유해성과 관련된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근거로 들고 있는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논문도 속속 발표된다. 다만, 영국의 움직임은 우리가 이 ‘적당한 중독 물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관해 시사점을 던진다. 법으로 담뱃잎에 세금을 매기고 금연 정책을 추진하는 사이 세금도 붙지 않는 담배 아닌 담배, 합성 니코틴이 거리 곳곳을 채웠다. 글로벌 대기업까지 이 시장에 진출하고자 한다. 합성 니코틴에도 세금과 규제가 붙으면 더 많은 사람이 담배를 포기하게 될까. 우리의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요인 하나를 억제할 수 있을까.

반면, 한때 ‘전자담배계의 아이폰’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쥴(JUUL)’의 사례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쥴랩스는 전 세계 10억 명에 달하는 흡연자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창업자들의 열정으로 탄생했다. 발암 물질을 거의 내포하지 않고 니코틴만으로 이뤄진 전자 담배를 내놓고자 하는 꿈이었다. 쥴이 시장에 나온 지 1년여 만에 시장이 흔들렸다. ‘힙’했던 마케팅 콘셉트는 물론 디자인, 맛, 편의성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리고 중독 성분인 니코틴 함량도 엄청났다. 기존의 흡연자들이 쥴로 갈아탔다. 그런데 10대들까지 쥴에 빠져들게 된다. FDA가 액상 담배에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기 시작했던 이유다.

정유석 단국대 의대 교수는 소비자에게 덜 해로운 담배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해로움’과 ‘덜 해로움’의 정확한 의미와 차이가 어떤 방식으로 연구되고 설명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남는다. 담배의 유해성이 제대로 알려지기까지 업계는 과학과 데이터를 무기 삼았고 미디어를 선전 도구로 앞세웠다. 의사를 앞세워 담배를 광고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담배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합성 니코틴에 관한 정부의 판단이 정확해야 할 이유, 그 결과가 명확히 설명되어야 할 이유다. 건강 불평등은 절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