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투자, 투자의 미래
8화

한국의 임팩트 투자

임팩트 투자의 현재와 미래


임팩트 투자를 사회적, 환경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기업이나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한국의 임팩트 투자는 2007년 제정된 사회적 기업 육성법에 근거한 사회적 기업 투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적 기업 육성법의 핵심은 고용노동부에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고 인건비를 지원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 약자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 인증의 중요 요건이다.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는 재무적 수익보다는 사회적 가치 우선 투자의 성격이 크다. 따라서 열매나눔재단이나 함께일하는재단 같은 비영리 조직들을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졌다. 2008년 통일부와 열매나눔재단, SK의 투자로 새터민 중심의 사회 취약 계층을 고용하여 골판지 상자 제조업을 하는 메자닌 아이팩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설립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주식 지분 투자는 투자 수익률이나 투자 자금 회수의 불확실성이 크다. 그래서 일반 투자자의 자금 유입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초기 지분 투자에 나섰던 비영리 재단들도 투자 자금 회수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뿐 아니라 비영리 재단이 기업 지분을 5퍼센트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법 제도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이후 사회적 기업에 대한 자금 투입은 보조금 성격의 사업 지원으로 방향을 틀었고 정책성 자금의 저리 융자 업무 대행에 치중하게 되었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기업, 사회적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는 대부분 융자 및 보증 성격의 방식에 국한되고 있다.

융자 성격의 정책성 임팩트 우선 투자로는 2008년부터 시행된 서민금융진흥원(전 미소금융)의 사회적 기업 임대차 보증금, 운영 자금 대출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2010년부터는 중소기업진흥원의 중소기업 정책 자금 중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에 대한 대출이 시작되었다. 서울시 사회 투자 기금이 2012년부터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사회적 프로젝트, 소셜 하우징 등 폭넓은 사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자는 총 기금 규모 703억 원의 사업이었다. 대출 금리는 대부분 2.0~4.5퍼센트로 재무적 리스크를 반영하지 않은 수준이다. 사회적 가치가 재무적 수익에 우선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보증 성격의 정책 금융 지원은 2012년부터 시행 중인 신용보증기금의 정책성 특례 보증,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사회적 기업 전용 특례 보증을 들 수 있다. 5년 만기, 90~100퍼센트 보증 비율,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은 연 0.5퍼센트의 보증 요율을 제공한다. 이들 보증 기관들은 기업은행을 비롯한 시중 은행의 융자와 연계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들에 대한 융자 및 보증 프로그램은 정부의 사회적 경제 활성화 정책 기조에 발맞춰 2018년 들어 규모를 확장하고 있다.

2010년 즈음에는 사회적 기업을 일부 포함한 신생 벤처 중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진 소수의 투자자 그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투자자 그룹은 이전의 비영리 기관 또는 정책 자금을 수행하는 중간 조직이 아닌 순수 민간 투자의 성격이었다. 이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사업 모델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동시에 재무적 투자 가치를 함께 만들어 내는 소셜 벤처에 투자하는 명실상부한 임팩트 투자자 그룹이다.

이 가운데 D3쥬빌리는 국내외 소셜 벤처에 대한 임팩트 투자 기회를 소개하고 투자 자금을 모집하여 소규모이지만 선도적으로 투자했다. 대표적인 투자 사례가 공정 여행 소셜 엔터프라이즈인 트래블러스맵, 신용 불량자 회생을 돕는 ‘희망 만드는 사람들’, 법률 시장의 문턱을 낮춘 로앤컴퍼니 등이다. 수차례에 걸친 임팩트 투자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하고 몇몇 소셜 벤처에 대한 분석 리포트를 발행하는 등 여러 실험적 시도를 통해 임팩트 투자를 한국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IT 관련 개발 및 컨설팅 업체로 출발한 청년 벤처 크레비스 파트너스도 사회적 가치를 창의적인 방법으로 창출해 내는 소셜 벤처에 지분 투자를 하고 있다. 크레비스 파트너스의 대표적인 투자 사례가 트리플래닛이다. 이 소셜 벤처는 이용자들이 온라인에서 모바일 앱 게임을 하면 오프라인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 실제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로 연결시키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자본 시장의 벤처 캐피털이 소셜 벤처에 투자를 시작한 것이 다음(Daum) 창업자 이재웅 대표가 설립한 소풍(Sopoong)이다. 소풍의 대표적인 투자 사례는 카셰어링 업체인 쏘카(Socar)다. 이외에 MYSC, HGI, SK행복나눔재단 등이 소셜 벤처의 육성과 인큐베이팅을 주된 사업의 하나로 삼아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지분 투자도 하고 있다. 일반적인 벤처 캐피털이지만 모태 펀드의 사회적 기업 투자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고 있는 쿨리지코너 인베스트먼트도 임팩트 투자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정책성 자금으로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융자 및 보증이 아닌 자본 시장을 통한 지분 투자를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2011년 설정된 고용노동부의 모태 펀드다. 고용부가 선정한 자본 시장의 투자 운용사가 민간 투자자를 유치하여 만든 자(子)펀드인 사회적 기업 투자 조합에 모태 펀드가 출자하는 구조다. 시작한 의도는 좋았지만 민간 투자 운용사의 투자 기준에 부합하는 사회적 기업들을 찾기가 무척 힘들어 실제 지분 투자 규모는 초라하다. 2016년 4호 조합의 투자 규모는 15억 5000만 원에 그쳤다. 지분 투자를 언제 어떻게 회수할 수 있을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운용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사회적 기업 투자 펀드에 운용사로서는 충분한 인력을 배치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는 지분 투자의 대상이 인증 사회적 기업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지분 투자 성격의 임팩트 투자에 참여하는 정책 자금이 융자 및 보증 성격의 정책 자금과 궤를 같이하여 도입되고 있다. 2018년 초 금융위원회의 성장 사다리 펀드와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한국 모태 펀드는 각각 사회적 경제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 투자 펀드와 소셜 벤처를 주 대상으로 하는 임팩트 투자 펀드에 출자하는 민간 매칭 펀드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우수한 소셜 벤처에 대한 투자는 목표로 하는 사회적 수익뿐만 아니라 양호한 재무적 투자 수익률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세컨더리 마켓(secondary market)을 통한 지분 양도, 전략적 투자자로의 매각, 나아가 코넥스(Konex)나 코스닥(Kosdaq) 시장 기업 공개를 통해 투자 수익을 거두며 투자 자금을 회수하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간 부문의 자생적 소셜 벤처 캐피털과 같은 성격의 펀드를 정책 자금의 주도하에 만들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18년 2월에는 정부가 영국의 BSC를 벤치마킹한 사회 가치 기금을 향후 5년간 3000억 원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민간의 자발적 기부와 출연을 통해 기금을 마련하고 정부로부터 독립시켜 사회 투자 금융 중개 기관을 통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기업에 대한 투·융자 사업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사회적 금융 도매 기관, 즉 한국형 BSC를 설립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영국에서도 10여 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던 일이다. 우선은 기금의 법적 실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민간의 자발적 기부와 출연을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 사회 투자 금융 중개 기관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 등의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임팩트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국내에서는 주식, 부동산 시장 등 경쟁적 시장 수익률과 비견할 재무 수익률을 거둘 임팩트 투자 기회가 제한적이다. 둘째,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로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셋째, 임팩트 투자는 보통 5~10년의 장기 투자인데, 이를 수용할 준비가 미흡하다. 넷째, 법규가 비우호적이다. 예컨대 사학 재단은 주식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없다. 비영리 재단은 기업의 주식 지분을 5퍼센트 이상 보유할 수 없다. 다섯째, 비상장 기업이나 벤처 외에 상장 기업 주식 또는 전환 사채를 대상으로 임팩트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없다. 임팩트 투자의 확산을 막는 이러한 장벽들을 극복한다면 국내 시장에서도 변화는 가능하다. 앞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가 이윤 창출로 이어지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임팩트 투자는 투자의 일부가 아니라 투자의 미래다.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모두 잡으려면


벤처 투자 조합이나 정책 자금 매칭 펀드가 아닌 데다 국내 투자에만 국한되지 않은 순수 민간 자산 운용사의 임팩트 전문 투자형 사모 펀드는 2018년 초 출범한 아크 임팩트 글로벌 사모 펀드가 처음이다. 재무적 투자 성과만 추구하는 한국 자본 시장에서 자산 운용사가 임팩트와 재무적 투자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치열한 시장 경쟁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아크 임팩트는 한국 자본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본격적인 임팩트 투자의 선구자로 평가할 수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곳이지만, 한국 임팩트 투자를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크 임팩트 글로벌 사모 펀드는 포트폴리오 구성이 독특하다. UN의 SDG와 연결된 글로벌 임팩트 테마 투자로 일반적인 소셜 벤처 투자 펀드와는 다르다. 일반 펀드와 수익률에서도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의 임팩트 사업 전문가를 찾아 그 사업 또는 펀드에 유한 책임 투자자(limited partner)로 참여한다. 기대 수익률이 높은 투자 대상을 선별하지만 단일 투자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7개 내외의 투자 대상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한국에서 임팩트 투자는 대상, 방법, 투자자 범위, 규모 면에서 이제 걸음마를 뗀 상태다. 임팩트 투자 스펙트럼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임팩트 우선 투자가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재무적 가치를 균형 있게 추구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투자 대상인 경우가 많다. 이는 투자 회수 방법이 불확실한 주식 지분 투자보다는 회수가 확실한 융자나 보증을 택하는 이유가 된다. 임팩트 투자 참여 그룹도 재단이나 비영리 중간 조직, 정책 자금이 주도하고 있다. 임팩트 투자에 대한 일반 투자자의 인식도 매우 낮은 상황이다.

그러나 글로벌 흐름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임팩트 투자 역시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소셜 엔터프라이즈 융자에서 소셜 벤처 지분 투자로 변화하는 양상이 보이고 있다. 매우 고무적이며 바람직한 현상이다. 성공적인 소셜 벤처들은 사회적 문제를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며 이를 시장을 통해 확산시킴으로써 사회적 임팩트뿐 아니라 양호한 투자 수익률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 벤처 캐피털로 분류될 수 있는 투자 운용사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임팩트 투자의 대상이 소셜 벤처뿐 아니라, 중견 소셜엔터프라이즈, 도시 및 공동체 재생 같은 부동산 관련 사회적 프로젝트로 점차 확산될 것으로 본다. 국내를 넘어 UN의 SDG와 관련된 해외의 임팩트 테마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도 조금씩 시작될 것이다. 민간 고액 자산가들과 기관 투자가들 중에서 자산의 일부를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임팩트 투자에 할당하는 경우도 점진적으로 생겨날 것이다.

한국에서의 임팩트 투자 발전 속도가 아주 빠를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임팩트 창출이라는 목적을 투자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 및 철학으로 삼는 투자 주체들은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소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투자자들은 사회적 가치 추구는 기본적으로 자선의 영역이지 투자의 영역이 아니며 그 둘을 혼합하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실현 불가능한 시도라고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임팩트 우선 투자와 그 대상이 되는 사회적 경제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러한 견해가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확장된 임팩트 투자 스펙트럼에서는 무엇을 더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투자 참여자, 대상, 방법이 있다. 사회 문제를 혁신적인 방법으로 시장을 통해 해결하는 소셜 벤처나 소셜 엔터프라이즈의 프로젝트는 사회적 가치 추구가 재무적 수익으로 이어지는 임팩트 투자의 대상으로 주목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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