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8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김포와 대전을 제대로 묻는 법

서울에는 중력이 있다. 서울은 블랙홀처럼 모든 도시의 이야기와 땅, 사람들을 긁어 모은다. 그렇게 김포도, 대전도, 울산도 모두 서울을 지망하는 도시가 됐다. 어쩌면 이미 그들은 지망생의 단계를 넘어 이미 명예 서울이 되어 가는지도 모른다. 서울이라는 현상은 번진다. 바이러스처럼 자신의 모습과 표현을 바꿔 가며 말이다.

대전이 노잼도시로 이름을 떨쳤다면, 지금 한국의 지역 도시 중 가장 주목받는 건 김포다. 경기도 김포로 남느냐, 서울시 김포로 승진하느냐가 시험대에 올랐다. 쓰레기 매립지를 위한 서울의 검은 속내라는 진단, 혹은 정치권의 표심을 위한 무리수라는 이야기가 오간다. 이 논의에서조차 김포는 중심을 차지하지 못했다.

김포는 남쪽으로는 서울 강서구, 인천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북한을 접하는 도시다. 인구 대부분이 서울과 인천에서 경제 활동, 소비 활동을 이어 나가는데, 정부에서는 이를 생활권이 겹친다고 표현한다. 그 생활권 때문에 2기 신도시였던 김포는 ‘베드타운’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이 문제의 신도시는 현재 서울시에 일부 편입된 ‘양천’과 겹치는 자리인데, 한강신도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름이 바뀐 이유는 간단했다.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왔던 양천이라는 이름은 신도시라는 단어 앞에 붙기에는 지나치게 시골스러웠기 때문이다. 김포가 일궈 낸 이 한강이라는 이름. 여기에 한국 지역 도시들의 초상이 담겨 있다. 서울스러움을 지향하는 것. 그것이 현재 한국 지역 도시의 생존 전략이다.

서울은 무겁다. 그런데 번지기까지 한다. 정치권이 말했던 김포 한강신도시 시민의 생활권만이 아니다. 서울은 이야기를 독점하고, 문화를 독점하고, 도시를 향한 한국의 상상력에 보이지 않는 천장을 만든다. 심상 지도(mental map)는 물리적 크기와 무관하게, 지도를 그린 사람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상상적 지도를 말한다. 조선 시대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일본이 중국과 한국에 비해 작은 크기로 그려져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심상 지도의 원리를 지금의 한국에 대입하면 어떨까? 우리는 성수동의 좁은 골목을, 이태원의 인센스 가게를, 광화문 교보문고의 향기를 그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전의 그것은 성심당 매장 하나 남짓의 크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울은 볼록하다. 포토샵의 볼록 렌즈 기능으로 서울을 연타한 것처럼, 서울은 이야기와 문화로, 그만이 만들어 낸 독특한 위세로 터져 나갈 지경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지역 도시는 ‘서울처럼’ 되지 못할까? 질문이 잘못돼서 그렇다. 서울이 목표이자 목적이 되니 이야기와 문화가 없는 도시는 자연스레 오목해진다.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는 서울로 직진하던 화살표를 각자가 매일 거니는 거리에, 이따금 올려다보는 하늘에, 익숙하게 여겼던 콘크리트에 던져 보라는 제안이다. 나만의 도시를 인식하고 나면 질문은 바뀌게 되어 있다. 왜 한국의 지역 도시는 ‘사람들의 도시’가 되지 못할까?

대전이 재미없어 노잼도시가 된 것은 아니다. 한국이 서울이 되고 싶어 서울이 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서울의 중심부로 밀어 넣는지를 탐구해 볼 때다. 이제는 서울의 중력, 서울의 전염성, 서울의 볼록함을 넘어설 때다. 중력을 뿌리치고 서울의 번짐을 경계할 때, 볼록함의 픽셀 크기를 낮출 때, 우리는 김포와 대전을 진짜로 질문할 수 있게 된다.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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