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자본주의자들
1화

기후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기후 변화는 세계 경제와 지정학의 문제다

최근 1년만 생각해 본다면, 여러분은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을 모아 놓고 보면, 이야기는 분명해진다. 이번 호 표지(상단 이미지)의 세로 줄무늬는 19세기 중반부터 매년 세계의 평균 기온을 보여 주고 있다. 어두운 푸른색으로 표시된 해는 더 시원했고, 붉은색으로 표시된 1971년부터 2000년 사이는 더 뜨거웠다. 누적된 변화는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이 세계는 《이코노미스트》가 막 창간됐을 때와 비교하면 약 1도 더 뜨거워졌다.[1]

인류의 역사를 단순한 줄무늬들의 집합으로 표현하는 것은 환원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시기의 인류는 세계 대전, 기술 혁신, 전례 없는 규모의 무역과 엄청난 부의 창출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러한 복잡한 역사와 단순화된 줄무늬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지구의 변화하는 기후, 인구와 부의 놀랄 만한 성장은 모두 산업 동력, 전기, 운송, 난방, 그리고 컴퓨터 사용을 위해 태운 수십억 톤의 화석 연료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


변화하는 기후가 모든 것을 넘어 모든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날씨가 인류에 등을 돌리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이런 사실들처럼 분명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문제는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들이 세계 경제와 지정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 변화의 양상을 제대로 점검하려면 광범위하고, 전방위적인 수단이 필요하다. 탄소 경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간단한 뺄셈이 아니다. 거의 전반적인 수준의 정비를 해야 한다.

젊은 이상주의자 수백만 명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전 세계 기후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편집을 마감했을 때에는 다수가 다음 주의 유엔 총회 기간에 맞춰 뉴욕으로 모여들 것이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거세하거나 뿌리 뽑는 수준의 전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결국 현 체제는 점점 더 많은 양의 화석 연료를 소비하면서 성장해 왔다. 그리고 시장 경제는 문제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각국의 정부들이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에도, 대기 중에 배출된 물질의 거의 절반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이산화탄소였다.

사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자본주의에 족쇄를 채워야 한다고 결론 짓는 것은 틀렸거나, 해로운 생각일 수 있다. 줄무늬로 표시된 지난 세기에 자유 시장이 경제 전반에 주입한 활력, 혁신, 적응력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시장 경제는 기후 변화 문제의 대응책을 만들어 낼 원천이기도 하다. 경쟁 시장은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정치인들은 대중의 요구에 응답해 행동에 나선다면, 자본주의는 그 어떤 체제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막을 수 있는 문제는 막고, 그럴 수 없는 것은 대응해 나가면서 온난화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다루는 이슈는 탄소가 초래한 기후의 위기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위기에 대해 살펴보고 대응책을 모색하는 기사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의 미래를 다루든, 석유 의존도에서 벗어나려 하는 대통령을 다루든, 기후만으로는 모든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다. 맨해튼의 주식 투자자, 말라위의 소작농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문제들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삶에서 기후 변화는 점점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후 변화 자체가 아닌 다른 모든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기후 변화는 세상의 종말이 아니다. 인류가 멸망의 끝자락이라는 위협에 내몰린 것도 아니다. 우리의 행성 자체가 심각한 위험에 처한 것도 아니다. 지구는 강인하고 오래된 존재이고, 결국 살아남을 것이다.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지구를 독특한 행성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경이로운 생명 대부분은 끈질기게 버텨 낼 것이다.

그럼에도 기후 변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심대한 위협이다. 절대적인 규모가 아니더라도, 전 지구적 범위의 위협이 될 것이다. 아무리 적어도 수천만 명의 보금자리를 앗아갈 것이다. 수십억 명이 의존하고 있는 농장을 파괴하고 우물과 수원지를 마르게 할 것이다. 저지대가 침수되고, 시간이 더 지나면 고지대 역시 물에 잠길 것이다. 물론 기후 변화가 단기적으로는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탄소의 배출을 억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위험은 더 거대해지고, 혜택은 더 희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진짜 재앙에 가까운 엄청난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기후 변화가 초래할 영향의 거대한 규모는 기후 변화 그 자체가 아닌 다른 종류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환경 문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수도자의 자기 헌신 같은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경각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변화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아직 기후 변화에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기후 문제는 정부 전체가 나서야 하는 사안이다. 이름조차 기억하기 어려운 환경부 장관 한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제 기후 변화 문제는 기후 변화 자체가 아닌 제3의 문제로 연결된다. 이는 수십 년 뒤로 미뤄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여기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허리케인 도리안 같은 극한의 상황들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손실은 이미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빙하가 죽어서 남긴 칙칙한 풍경과 하얗게 변해 버린 한때는 아름다웠을 산호초를 보면서 슬퍼한다. 지체할수록 인류는 더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더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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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이미 알고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과제는 자본주의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사람들을 더 잘살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해안에 방벽을 설치하고, 담수 처리 시설을 건설하고, 가뭄에 대한 내성을 지닌 작물을 만들어 내는 등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일에는 많은 돈이 들 것이다. 가난한 나라들에는 심각한 문제다. 기후 변화의 영향이 이들 국가에서 발전하고자 하는 희망을 앗아가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협정들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면서 타국의 도움을 덜 받아도 될 만큼 경제력을 키우려는 빈국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로 여기가 부국들이 의무를 회피하고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기후 변화의 모든 영향에 적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가 일어날수록 이를 상쇄할 적응력은 더욱 약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본은 또 다른 분야에 투입되어야 한다. 바로 배출 가스 감축이다. 이제는 실용적인 기술 향상과 많은 투자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 공급할 수 있다. 전기는 장거리 해상 운송과 비행기 여행에 적용하기는 힘들겠지만, 도로 교통 수단에는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온실 가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산업 공정은 가스의 배출을 차단하는 시설로 교체될 수 있다.
세계/ 1990년을 100으로 설정했을 때/ GDP(파란색)/ 이산화탄소 배출량(하늘색)/ 출처: The Economist
이런 모든 일들이 10년 이내에 현실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어리석다. 많은 활동가들과 미국의 일부 대선 주자들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지만 말이다. 현재 우리는 지구가 2~3도 더워지는 것조차 막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런 느슨한 대응을 개선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각 기업이 기후 변화 대응 상황을 공개하는 의무 규정을 만들면, 투자자들은 이를 근거로 기후 변화에 취약한 기업에서 자금을 빼내 다른 기업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탄소 배출 가격을 강도 높게 설정하면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감축 기술 혁신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수단이 일으키는 탄소 감축 효과는 제대로 설계된 규제를 통해 가속화되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두 가지 기준을 모두 고려해 투표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에도 한계는 있다. 기후가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대기 전체의 이산화탄소 수준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국가의 정부가 탄소 배출량을 급격하게 줄였는데 다른 나라들은 그러지 않는다면, 용감한 그 국가의 피해는 전반적으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다. 독일의 지나치게 후한 재생 에너지 보조금은 전 세계에서 태양광 패널 생산 붐을 일으켰다. 태양광 패널의 가격은 저렴해졌고, 독일 이외의 국가에서도 탄소 배출량이 줄었다. 영국에서 늘어나고 있는 연안의 풍력 발전 설비들도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례에서 거대한 장애물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해결책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는 못할 것이다. 유엔의 기후 변화 회담은 193개의 국가들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가운데 열린다. 그러나 문제는 12개의 경제권에서 배출하는 탄소의 양이 전체의 4분의 3에 달한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탄소 배출 국가들 중 일부에서는 자유 민주 성향의 젊은 유권자들이 기후 문제에 대한 정책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으로 무관심한 이들의 참여도 독려할 수 있을 것이다. “소규모 다자간” 협상을 검토하고 있는 십여 개의 강대국과 준강대국들로 구성된 클럽은 수십억 명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는 문제를 다루면서도 당사자들을 제외할 것이다. 클럽 멤버들은 새로운 무역 시스템과 위협, 뇌물을 동원해서 단일대오를 유지하려 할 수 있다. 반대로 현재의 교착 상태를 해소할 가능성도 있다. 세계 각국에게 충분한 이익이 될 수 있는 급격한 탄소 경감 조치를 밀어붙인다면, 그 전략을 모방하는 국가들이 늘어날 것이다.

기후 변화의 피해는 앞으로의 수십 년간 인류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좌파 진영의 많은 활동가들은 현재의 자유 민주주의 시스템이 기후 변화 문제에 적절한 수준으로 대처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들은 개인의 이익 추구에 대한 새로운 제한과 투자에 대한 정부의 전면적인 통제를 요구한다. 일부 통제 조치는 환영할 만한 것들이기도 하다. 반면, 우파 진영의 일부는 방관자적 태도로 이제 막 시작된 재앙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인류의 대부분에 대한 막중한 의무를 무시하고 있다.

화석 연료의 힘을 처음으로 활용했던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가 정신이 유지되려면, 기업가 정신이 가장 번성했던 국가들부터 방관자적 사고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경제가 탄생할 수 있었던 중요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세계 경제의 시스템을 기꺼이 수정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성장욕이 본질적으로 기후의 안정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는 그런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다른 많은 것들과 더불어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도 종말의 선고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해야 한다.
[1]
이코노미스트는 1843년에 창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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