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가 돌아왔다
완결

몰락하던 IT 제국의 역습

황제의 귀환

 
2018년 11월 30일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귀환을 만천하에 알린 역사적인 날이다. 이날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랜 라이벌 애플을 제치고 미국 기업 시가 총액 1위에 등극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종가 기준으로 시가 총액 1위에 오른 것은 2010년 이후 8년 만이었다. 예전처럼 경쟁자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어서 애플, 아마존과 한 치 양보 없는 경쟁을 벌여야 했으나, 돌아온 마이크로소프트는 16년 만에 처음으로 시가 총액 1위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약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9년 4월 15일에는 애플, 아마존에 이어 미국 기업 중 세 번째로 시가 총액 1조 달러(1190조 원)를 돌파했다.

사람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잊힌 기업이나 다름없었다. 인텔과 함께 ‘윈텔 듀오’로 불리며 PC 시대를 주도했던 추억의 기업. 한때 무지막지한 반독점 행위로 악의 제국이라고 불리다가 스마트폰 열풍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이끄는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모바일 혁명을 주도하는 동안 급격히 약화됐다. PC 앞에 앉던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릴 때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주력 상품 윈도우(Windows)와 오피스(Office)에 의존했다. 구글, 애플, 아마존이 21세기를 대표하는 혁신 기업으로 주목받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옛 성공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식 기업 취급을 받은 이유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부활은 그래서 더 극적이다. 이 부활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깨닫기 위해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화려했던 과거를 봐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PC 시대를 어떻게 열었는지, 또 얼마나 무기력하게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왔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을 45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무자비한 지배자


1974년 12월 어느 토요일 아침, 하버드 대학 신입생 빌 게이츠(Bill Gates)는 친구 폴 앨런(Paul Allen)과 함께 잡지 한 권을 읽고 있었다. 강력한 미니컴퓨터의 등장을 알리는 표지 기사가 실린 잡지였다. 그 잡지를 본 둘은 컴퓨터 언어 개발에 착수하기로 의기투합했고, 이듬해인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했다.

그 무렵엔 소프트웨어가 상품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소프트웨어를 컴퓨터 살 때 공짜로 끼워 주는 제품 정도로 생각했다. 당연히 마이크로소프트도 제대로 된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당대 최고 기업 IBM이 구원의 손길을 뻗치기 전까진 말이다. 1980년 7월, IBM은 극비리에 개발 중이던 개인 컴퓨터용 운영 체제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맡겼다. 그렇게 IBM PC가 탄생했다. IBM PC의 인기는 엄청났다. 그해 시사 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PC를 선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IBM은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IBM PC에 설치된 운영 체제 MS-DOS 배포권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긴 것이다. MS-DOS는 IBM PC에 침투한 트로이 목마나 다름없었다. IBM PC가 팔릴 때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꼬박꼬박 사용료가 입금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래픽 기반 운영 체제인 윈도우를 선보인 건 그로부터 5년 뒤인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의 거침없는 행진은 빌 게이츠를 31세의 나이에 세계 30대 갑부로 떠오르게 했다.

물론 초기 마이크로소프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 바람이 불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위기설이 널리 퍼졌다. 넷스케이프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라는 브라우저를 내놓으면서 인터넷 혁명을 주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에 익스플로러를 끼워 파는 전략으로 맞서 넷스케이프를 시장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PC 시대의 지배자가 인터넷 혁명까지 주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운영 체제에 브라우저를 끼워서 판매한 것이 독점 금지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혐의가 제기됐다. 1998년 미국 법무부가 마이크로소프트를 기소했고, 미국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길고 지루한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판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PC 업체들을 협박한 사실까지 폭로됐다.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악의 제국, 빌 게이츠를 잔혹한 자본가라며 비난했다.

법정 공방 2년 만인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법원에서 회사 분할 판결을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운영 체제와 응용 소프트웨어 회사로 쪼개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송에 참여한 20개 주와 일일이 협상한 덕분이었다. 대신 그해 빌 게이츠가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의 오랜 친구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가 마이크로소프트 2대 최고 경영자로 취임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엔 유럽 연합(EU)에서 반독점 재판을 받아야 했다. 미국보다 반독점 행위에 대해 훨씬 더 강력하게 대처하는 유럽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4억 9700만 유로(6600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받았다. 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뺀 윈도우를 출시해야 했는데, 이 조치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브라우저 시장 지배력을 사실상 포기해야 했다.

이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세는 대단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와 오피스, 그리고 브라우저 등 PC를 기반으로 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특히 2001년 선보인 윈도우 XP는 윈도우 역사상 최고 명품으로 꼽힐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해 말 내놓은 엑스박스 게임기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 시장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세 번의 실패


미국과 유럽의 압박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불편하게 만든 건 분명했다. 하지만 이 압박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정상에서 밀려난 건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진짜 위협은 변해 버린 시장 상황이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무게 중심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의 성공에 취해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2010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폰을 출시했다. PC 시대 운영 체제를 완전히 장악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폰이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용자가 모바일에서 PC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길 원했다. 그래서 PC용 앱이 모바일에서도 그대로 구현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 PC와 모바일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유니버설 앱도 함께 선보였다. 앱 하나로 모든 플랫폼을 잇겠다는 전략이었다.[1]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실패했다. 애초에 PC와 모바일은 화면 크기부터 달라 사용자의 경험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시대의 성공 방정식을 스마트폰에 그대로 접목한 실수를 인정하며 윈도우폰을 포기했다. 그사이 애플은 아이폰을 통해 PC와는 완전히 다른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 내며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다.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노키아 휴대폰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한때 피처폰 시대 세계 최고 업체였던 노키아는 애플, 구글에 밀려 시장 3위로 추락한 상태였다. 노키아는 당시 최고 경영자가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 있다”는 내부 메모를 돌릴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스티브 발머가 노키아 인수를 추진한 목적은 명확했다.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 뒤 애플, 구글을 견제할 또 다른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노키아 휴대폰 사업 부문 인수 역시 실패했다. 이 실패로 마이크로소프트는 1만 8000명에 가까운 인원을 해고해야 했다. 노키아 인수 5개월 뒤 발머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 3대 최고 경영자로 취임한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는 당시 결정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스티브는 팀원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공개 투표를 원했다. 나는 노키아 인수를 반대하는 쪽에 표를 던졌다. 나는 스티브를 존경했다. 또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려 확실한 세 번째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논리도 이해했다. 하지만 어째서 우리가 규칙을 바꾸는 대신 휴대폰 부문에서 세 번째 생태계를 탄생시켜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애플과 구글이 시장의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규칙을 바꿨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성능 경쟁에 치중하는 대신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이용자 경험(UX)으로 승부했다. 앱스토어를 통해 제3의 개발자들이 다양한 앱을 만들도록 한 것 역시 기존 시장 문법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런 점에선 구글도 마찬가지였다. 구글은 오픈소스를 개방하며 다양한 스마트폰 생산 업체를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운영 체제를 공짜로 제공하는 대신 자신의 생태계를 키우면서 광고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달랐다. 그들은 과거의 성공에 지나치게 안주해 어떠한 틀도 깨지 않았다. 윈도우폰 출시나 노키아 인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여전히 199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 사건이었다. PC 시대 문법으로 모바일 시대에 대응했던 스티브 발머에겐 마이크로소프트를 영광의 자리로 되돌려 놓을 힘이 없었다. 발머가 인터넷과 콘텐츠 사업 강화를 위해 추진한 야후 인수 시도도 실패로 끝났다. 연이은 전략 실패로 한때 700조 원에 이르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 총액은 2010년에 들어 250조 원까지 줄었다.

결국 스티브 발머는 12개월 내로 최고 경영자직에서 사퇴하겠다며 후임 물색을 요청했다. 발머의 사퇴 선언이 나오자 마이크로소프트 차기 최고 경영자 후보들이 물망에 오르기 시작했다. 앨런 멀러리(Alan Mulally) 포드 최고 경영자와 스티븐 엘롭(Stephen Elop) 노키아 최고 경영자 등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거물급 외부 인사를 3대 최고 경영자로 영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궁지에 몰린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외부 인사가 더 적합하다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때까지 외부에 크게 알려져 있지 않았던 클라우드 및 엔터프라이즈 담당 수석 부사장 나델라를 3대 최고 경영자로 지명했다.

 

새로운 리더, 나델라


몰락하던 IT 공룡 마이크로소프트는 2014년 2월 나델라가 최고 경영자로 취임하면서 빠르게 변했다. 《블룸버그》는 2018년 5월 2일 “현재 시가 총액 1위인 마이크로소프트가 나델라상스(Nadellaissance)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나델라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2]

나델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었던 빌 게이츠나 스티브 발머와는 많이 달랐다. 초대 최고 경영자 빌 게이츠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몰아냈다. 자선 사업가로 변신한 지금의 빌 게이츠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2대 스티브 발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애플, 구글 같은 기업들을 적으로 간주했다. 오픈소스 진영의 축인 리눅스 역시 발머에겐 시장에서 쫓아내야 할 존재였다. 발머는 전쟁을 이끄는 강력한 전사를 자처했다. 당연히 적들과의 타협이나 협력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나델라는 회사 공식 행사 때 아이폰을 꺼내 들 정도로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나델라에게 적과의 파트너십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제품과 혁신을 위한 필수 요소다. 나델라는 최고 경영자로 취임한 지 두 달 만인 2014년 3월, 애플 iOS 운영 체제에 오피스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구글, 페이스북과도 손잡았다. 고립된 악의 제국이 ‘함께하는 혁신 기업’으로 변신하는 신호였다.

소프트웨어 황제이자 PC 혁명의 불씨를 지핀 신화 시대의 인물 빌 게이츠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직원들을 이끌며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빌 게이츠의 대학 친구인 스티브 발머는 열정 넘치는 지도자였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행사 때 무대 위에 올라 관중 앞에서 “윈도우, 윈도우”를 연호할 정도로 힘이 넘쳤다. 두 지도자는 대화와 소통보다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회사를 이끄는 유형이었다.

나델라는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직원들의 말을 듣고, 함께 소통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나델라의 함께하는 리더십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위기에서 구하고, 상처받은 직원들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나델라는 무엇보다도 경청을 중요하게 여겼다. 최고 경영자로 취임하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저서 《히트 리프레시》에는 이런 과정이 잘 묘사돼 있다.

“나는 직위나 소속을 가리지 않고 수백 명의 직원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익명으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도록 포커스 그룹을 꾸리기도 했다. 경청은 내가 매일 실천한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앞으로 몇 년간 내 리더십의 기초를 다질 요소였기 때문이다.”[3]

창업자 빌 게이츠도 나델라의 이런 행보를 높이 평가했다. 게이츠는 《히트 리프레시》 서문에서 “나델라는 사용자와 전문가, 경영진과 끊임없이 대화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나델라가 늘 경청하며 함께하는 리더십을 보여 줄 수 있었던 건 그의 아들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의 중요성을 깨달은 덕분이었다. 나델라에게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감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야 했다.

나델라는 마이크로소프트 최고 경영자가 된 이후 윈도우에 쏠려 있던 회사의 무게 중심을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같은 신성장 사업 쪽으로 옮겼다. 그는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를 외쳤다. 이 전략이 효과를 내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IT 산업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부활에 성공했다.

그렇다고 나델라가 과거와 완전히 결별한 건 아니었다. 그는 회사의 전략을 ‘새로 고침’했다. 브라우저 화면의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면 페이지의 근간이 되는 내용이 업데이트된 내용과 함께 남아 있다.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혁신을 할 줄 알았던 나델라는 새로 고침 기능처럼 기존 강점들을 버리지 않으면서 시장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큰 혼란 없이 윈도우 중심 접근 방식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새로 고침 리더십 덕분이었다.
미국 주요 기업 시가 총액 추이 *Bloomberg Businessweek

제국의 역습


나델라가 최고 경영자로 취임하던 날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36달러(4만 3000원)를 조금 웃돌았다. 하지만 5년이 지난 2019년 5월에는 130달러(15만 5000원)를 넘어서면서 시가 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게 이런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을까?

마이크로소프트 부활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윈도우 퍼스트 전략’을 과감하게 벗어던진 점이다. 윈도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혼이나 마찬가지다. 창사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를 지탱해 온 최고 상품이었다. 즉, 윈도우 퍼스트는 마이크로소프트 전략의 핵심축이었다. 하지만 윈도우 퍼스트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윈도우폰을 비롯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전략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윈도우에 대한 집착이 이용자들의 욕구와는 상반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나델라는 윈도우 퍼스트를 윈도우 앤드(Windows and)로 바꿨다. 스마트폰용 윈도우에 대한 집착을 과감하게 버리고 애플이나 구글의 모바일 운영 체제에 자신들의 소프트웨어를 덧입히는 쪽에 주력했다. 다양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도 추진하면서 모바일 생태계 속에서 지분을 확대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단순히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동안 고수한 가치를 버렸다고 봐서는 안 된다. 윈도우 퍼스트 전략 포기는 회사가 지향했던 궁극적인 가치를 달라진 상황에 맞게 변형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변화는 나델라가 취임 직후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잘 드러난다.

“혁신의 속도를 높이려면 우리의 영혼, 즉 우리만의 독특한 가치를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 세상을 위한 생산성 기업이자 플랫폼 기업입니다”[4]

더는 윈도우 퍼스트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영혼인 윈도우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달라진 세상의 생산성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앤드 전략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부활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클라우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티브 발머 전임 최고 경영자 시절에 이미 클라우드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나델라가 2011년 클라우드 사업을 총괄한 것도 역시 발머의 적극적인 권고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머 시절 마이크로소프트 전략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윈도우 퍼스트였다. 클라우드 사업이 중요하긴 했지만 회사 전체 전략에서는 늘 윈도우에 밀렸다. 나델라는 1980년대 PC혁명, 1990년대 네트워크 혁명에 이어 2010년대에는 컴퓨터 자원을 표준화하고 공유하는 클라우드 혁명이 본격화될 것으로 판단해 무게 중심을 윈도우에서 클라우드로 완전히 옮겼다.

2018년 3월 단행된 조직 개편은 클라우드 퍼스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치다. 당시 나델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을 견인해 왔던 윈도우 사업을 애저(Azure) 클라우드와 오피스 부문으로 나눴다. 또 클라우드 사업 활성화를 위해 영업 사원들의 보상 체제까지 대폭 수정했다. 라이선스 비용 기반으로 매출이 생기는 만큼 기존 체제로는 실적을 제대로 반영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이런 전략은 그대로 성과로 이어졌다. CNBC에 따르면 2019 회계 연도 마이크로소프트 전체 매출에서 애저 클라우드 사업 비중이 10퍼센트를 웃돌 전망이다.[5]

전성기 마이크로소프트는 폐쇄적인 생태계를 고수했다. 모든 작업이 윈도우 담장 안에서 이뤄지도록 했다. PC 시대를 지배했기 때문에 굳이 문호를 개방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는 손끝에서 모든 정보를 얻도록 해주겠다는 야심 찬 꿈을 제시했다. 모든 책상 위에 컴퓨터를 놓겠다는 비전도 함께 제시했다. 하지만 정보를 얻을 땐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을 사용해야만 했다. 책상 위에 놓인 모든 컴퓨터에도 윈도우가 설치돼 있어야만 했다. 빌 게이츠의 뒤를 이은 발머는 더 호전적이었다. 그는 경쟁자들을 적으로 간주했다. 발머는 자신의 눈앞에서 아이폰을 사용하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나델라는 달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드롭박스, 레드햇, 세일즈포스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시장의 경쟁자 아마존에도 문호를 개방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발머 시절 악의 세력으로 간주된 리눅스와도 손을 잡았다. 오픈소스 대표 업체인 레드햇과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형성했으며 지난해엔 오픈소스 공유 플랫폼인 깃허브를 인수했다.

2019년 들어서도 나델라의 이런 행보는 계속됐다. 5월에는 레드햇이 주최한 행사에 깜짝 등장해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보다 한 달 전에는 또 다른 경쟁 업체 델의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방의 플랫폼이 인기를 끈다면 바로 그 플랫폼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쓸 수 있도록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달라진 마이크로소프트를 이야기할 때 흔히 꼽는 세 가지 변화는 윈도우 일변도 탈피, 클라우드 주력, 개방 정책이다. 그런데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이 세 가지 요인 외에 다른 성공 비결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CNBC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인 정보에 덜 의존했기 때문에 부활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기업들이 개인 정보 유출이나 남용 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빠지고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비슷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빙(Bing) 검색 엔진이나 MSN 사업이 바로 그런 영역이다. 하지만 클라우드를 비롯한 핵심 사업 영역에선 데이터를 확보할 필요성이 그다지 크지 않다.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개인 정보 남용이나 규제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EU가 지난해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도입한 이후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주요 미국 IT 기업들이 연이어 소송에 휘말린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아무런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았다. 한때 악의 제국으로 불렸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젠 구글, 페이스북 같은 경쟁사들에 비해 착한 기업 이미지를 갖게 됐다.

 

나델라가 꿈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


나델라는 최고 경영자로 취임하자마자 클라우드 사업에 집중 투자했다. 클라우드가 PC와 서버 이후를 책임질 새로운 사업 분야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시금 세계 최고 기업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클라우드 이후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델라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혼합 현실(mixed reality)과 인공지능, 그리고 양자 컴퓨팅 기술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투자 중이다.

혼합 현실은 현실과 가상 현실, 증강 현실을 모두 포괄하면서 사용자와의 인터랙션을 더욱 강화한 기술이다. 의료와 교육, 제조업 부문에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인 혼합 현실을 효율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비디오, 오디오 등의 장비를 조합해 현실, 가상 현실, 증강 현실의 정보를 획득, 몰입감을 극대화시킬 장비가 필요하다.[6]

홀로렌즈(Hololense)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혼합 현실 대중화를 위해 야심 차게 내놓은 장비다. 2015년 처음 공개됐고, 2019년에는 좀 더 향상된 버전인 홀로렌즈2가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홀로렌즈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앱을 함께 선보였다. 또 앱 개발자들의 편의를 위해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와도 연계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바로 애저 커넥트 개발자 키트다.

혼합 현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리는 미래 컴퓨팅 환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과 환경, 그리고 사물을 인식하는 센서를 중심으로 새로운 컴퓨팅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에서 승리하기 훨씬 전부터 많은 기업들이 미래 핵심 기술의 하나로 인공지능을 깊이 있게 연구해 왔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다. 2014년 인공지능 비서인 코타나(Cortana)를 선보인 것을 필두로 다양한 기술들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각종 서비스와 인프라 전반에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나델라는 《히트 리프레시》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비전을 네 단계로 설명한다.

① 코타나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방식을 변경한다.
② 오피스 365, 다이내믹스 365 같은 애플리케이션에 인공지능을 탑재한다.
③ 전 세계 모든 개발자들이 패턴 인식 능력, 지각 능력, 인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
④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 슈퍼컴퓨터를 제작해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궁극적으로 개인 비서 인공지능을 꿈꾼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비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 분석이 굉장히 중요한데, 클라우드를 비롯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반 기술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리는 인공지능 기술의 미래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어떤 기업보다 인공지능 기술의 윤리를 강조한다. 윤리적인 인공지능이란 가치가 제대로 뿌리내려야만 인류에게 도움이 될 기술 혁신이 가능할 터이기 때문이다.

혼합 현실, 인공지능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는 양자 컴퓨터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0과 1로 구성된 비트가 기본 단위인 일반 컴퓨터와 달리 양자 컴퓨터는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 큐비트(qubit)로 구성된다.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갖게 되면 데이터를 병렬적으로 동시 처리할 수 있어 처리 가능한 정보량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따라서 양자 컴퓨터가 제대로 구현될 경우엔 현재 컴퓨터가 갖고 있는 많은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 컴퓨터 실현을 위한 경쟁은 이제 막 출발한 상태나 다름없다. 그만큼 가야 할 길이 멀다. 또 인공지능, 혼합 현실처럼 일반인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세대 전략임에도 아직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복잡한 계산을 단숨에 수행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가 실현될 경우엔 그동안 불가능했던 여러 가지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가령 불치병으로 꼽히는 HIV 치료를 위한 백신을 만드는 데도 양자 컴퓨팅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또 환경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는 비료 개발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식량 부족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극적인 성공을 이끈 기본기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근 20년은 상당히 극적이다. 세계 최고 자리에서 밀려나 기업 위기 상황까지 내몰렸다가 다시 세계 최고 기업으로 부활했다. 어쩐지 애플이 떠오른다. 매킨토시로 초기 PC 시대 강자로 군림했던 애플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리면서 회사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애플은 돌아온 스티브 잡스의 통찰력에 힘입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연이어 내놓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애플을 밀어내며 신흥 강자로 떠오른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시대를 완전히 지배하며 2000년대 이후까지 세계 최고 기업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변화된 바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애플이 주도한 스마트폰 강풍에 PC 시장 자체가 흔들리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벼랑 끝 위기로 내몰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또 한 번 멋진 성공 신화를 써냈다. 성공은 극적이지만,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극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본적인 것부터 충실하게 실천한 것이 화려한 부활의 밑거름이다.

나델라의 도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새로 고침’이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호의 선장이 되자마자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를 외쳤다. 여기까지는 흔한 성공 스토리처럼 들린다. 그게 그 시기에 가장 적합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델라의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가 기존 판을 완전히 깨는 것은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보 혁명 등 창업 당시부터 목표로 세웠던 것들은 최대한 살렸다. 뛰어난 소프트웨어 기술을 비롯한 회사의 강점도 잘 유지하며 모바일 시대에 대응했다.

부활은 나델라가 누구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잘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의 혈관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피가 흐른다. 이사회가 처음 나델라를 스티브 발머의 후임 최고 경영자로 선택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체제 내에서의 개선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나델라는 새로 고침 버튼을 눌렀다. 강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버릴 것을 확실히 버리는 전략이었다. 물론 쉬운 전략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어정쩡한 변화에 머무를 우려도 있다. 새로 고침 전략이 멋지게 성공하기 위해선 나델라처럼 냉정한 현실 분석과 과감한 실천이 결합돼야 한다.

노키아는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직후인 2007년 4분기엔 휴대폰 시장의 40퍼센트를 점유했다. 2위 업체를 멀찍이 따돌린 수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노키아는 최절정기에서 불과 6년여 만에 휴대폰 사업 자체를 포기하며 무기력하게 몰락했다.

흔히 노키아의 몰락은 스마트폰 대응 실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키아는 결코 스마트폰 돌풍을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경쟁자 못지않게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노키아는 과거의 성공을 버리지 못했다. 핵심 수익원이었던 피처폰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의 성공을 상수로 놓고 전략을 짜다 보니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7]

나델라 시대의 마이크로소프트는 달랐다. 여전히 윈도우와 오피스는 주 수익원이었지만 이를 과감하게 혁신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혼이나 다름없던 윈도우를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뤘다. 또 클라우드 시대에 맞춰 윈도우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판매 방식도 단품 판매 대신 구독형 모델로 바꿔 버렸다. 당장 손에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달라진 환경에 맞는 비즈니스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더 큰 그림을 위해 눈앞의 달콤한 과일을 포기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과일이 서서히 말라 죽어 가는 나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것이라면, 제아무리 화려했던 과거의 산물이라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노키아는 내리지 못한 그 결단을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감하게 내렸다. 바로 그 차이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최고 기업으로 부활시켰다.
[1]
심재석,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실패, 《바이라인 네트워크》, 2017. 11. 11.
[2]
Austin Carr and Dina Bass, The Most Valuable Company (for Now) Is Having a Nadellaiance, 《Bloomberg BusinessWeek》, 2019. 5. 2.
[3]
사티아 나델라(최윤희 譯),《히트 리프레시》, 흐름출판, 2018, 124쪽.
[4]
사티아 나델라(최윤희 譯),《히트 리프레시》, 흐름출판, 2018, 129쪽.
[5]
Jordan Novet, How Microsoft bounced back, 《CNBC》, 2018. 12. 3.
[6]
백정열, 〈혼합 현실 기술 동향〉, 《주간기술동향》, 정보통신기획평가원, 2019. 2.
[7]
김익현, 겉돌고 있는 한국 언론의 디지털 혁신, 《기자협회보》, 2016.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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