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펜던트 워커
2화

정혜윤; 레퍼런스가 되는 삶

좋아하는 게 많아도 괜찮아


정혜윤은 프리랜서 마케터이자 작가, 유튜버다. 10년간 국내외 광고 에이전시 및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며 경쟁력과 전문성을 쌓아 2020년 독립했다. 2019년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인 《퇴사는 여행》을 출간했고, 현재는 차기작인 《독립은 여행》을 집필 중이다. #인스타그램

정혜윤은 2017년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며 홀로서기 실험을 한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서다. 3년이 흐른 지금 그는 한 명의 개인이자 매체인 동시에 플랫폼이 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결된 덕분이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본인을 어떻게 소개하나?

마케터이자 글을 쓰는 작가다. 다능인(多能人)을 위한 뉴스레터 ‘사이드 프로젝트’도 운영한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스토리텔러다. 브랜드 마케터 혹은 콘텐츠 제작자로서 흩어진 소재를 정리해 하나의 이야기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하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우선 고정적으로는 팀포지티브제로(TPZ)라는 회사의 브랜딩, PR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TPZ는 경험을 기반으로 부동산을 혁신하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이다. 로스트 성수, 카페 포제, 아러바우트, 스탠 서울 등의 공간이 모두 TPZ가 운영하는 브랜드다.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파트너로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회사 비전에 매력을 느껴 합류 제안을 수락했다. 다만 정직원처럼 출근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특정 회사에 소속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와 탄력적 고용을 긍정적으로 생각한 회사의 방향성이 일치해 프리 에이전트 형태로 일하는 중이다. 그 외에 마케팅 관련 단기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고, 작가로서는 《퇴사는 여행》의 차기작인 《독립은 여행》을 집필하고 있다. 틈틈이 강연이나 모임에 참석하고 얼마 전부터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다능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처음 마케팅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제였나?

고등학생 때다. 하나의 적성을 찾는 게 어려워서 고른 분야가 마케팅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적성을 빨리 찾은 게 됐다. 사실 어려서부터 미술을 하고 싶어 했는데, 막상 미대에 지원하자니 다른 분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림만 그리고 살기에는 뭔가 아쉽다고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마케팅이라는 분야를 접하게 됐다.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면서 좋아하는 것이 많은 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미술을 부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 마케팅 일을 바로 시작했나?

첫 회사는 광고 회사였다. 비즈니스와 예술이 결합한 분야라고 판단해서 광고를 선택했다. 마케팅 전공자로서 크리에이티브 팀에서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기획자로 지원했는데, 인사 담당자로부터 역으로 카피라이터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뉴욕에 있는 애드아시아라는 아시아계 광고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2010년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광고 에이전시에서 4년, 스타트업에서 6년 근무했다. 꼽아 보니 10년 동안 6개의 회사를 거쳤다.

적지 않은 회사를 경험했다. 회사를 선택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

하루 중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 만큼, 내 삶의 목적이나 방향성에 부합하는 회사를 찾으려 노력했다.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사람, 나의 성장 가능성이다. 우선, 누구와 어떻게 일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거의 일하면서 만난 사이다. 가치관이나 철학이 통하는 동료를 많이 만난 덕분에 회사를 나온 후에도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일하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인지도 중요한 요소다. 내가 이 회사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일했다. 시키는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많은 권한과 자율성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펼쳐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그렇게 할 때 훨씬 더 많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벗어나 일하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됐나?

우리는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 아주 높은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만약 이 일을 안 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나. 코로나 이후에 내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이 좀 더 의미 있게 내 시간을 쓰겠다는 거였다.

물론 회사에 소속된 시간이 의미 없다거나 잘못됐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모든 건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이다. 그저 이런 방식으로도 일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다.
다능인을 위한 뉴스레터 ‘사이드 프로젝트’


 

회사에서 쌓은 내공
 

지금까지 음악과 관련된 일을 유독 많이 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PR 회사인 프레인 글로벌 근무 당시,  개인적으로 매년 참석하던 음악 페스티벌의 SNS 마케팅 담당자가 됐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일로 연결된 ‘덕업일치’의 첫 번째 경험이었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음악 관련된 일을 많이 맡게 됐다. 올윈이라는 회사에서는 프로모터 겸 MD로 일하며 옥상달빛, 카더가든, 김사월 등 좋아하는 뮤지션들과 공연, 전시 등의 문화 이벤트를 기획했고, 그 후에는 스페이스오디티의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며 음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페이스오디티 마케터로 기억할 것 같다. 그만큼 활발하게 활동했다. 처음에 어떻게 입사하게 됐나?

2017년 올윈에서 퇴사하고 나서 1년쯤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미국 사막에서 일주일간 열리는 실험적 공동체인 버닝맨, 실리콘밸리의 여러 기업 등에서 경험한 것들을 브런치에 올렸는데, 내 글을 본 스페이스오디티 대표님이 같이 일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무언가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감, 그리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 자체가 좋아서 합류를 결정했다. 3년 동안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일했다.

그렇게 재미있게 일했는데, 작년 여름 독립했다.

사실 구체적으로 독립을 고민한 건 2017년부터다. 당시에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일을 쉰 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혼자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자발적인 백수로 홀로서기 실험을 한 셈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때 일하는 방식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이런 방식으로도 돈을 벌 수 있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놓치기 아까운 기회라는 생각에 스페이스오디티에 합류했지만, 2017년부터 일하는 방식의 거대한 변화 흐름을 느낀 만큼 2021년에는 주 5일 출근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여름 퇴사했으니 목표를 빨리 성취한 셈이다.

빨리 성취했다기보단 2017년부터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야 조금씩 실천하는 느낌이다. 재택근무로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고, 나만의 정체성을 더 키워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퇴사했다.

자신의 경쟁력에 확신이 있어야 독립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베르베르가 쓴 단편 중에 브랜드를 국가로 표현한 글이 있다. 국적은 달라도 특정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결국 브랜드에는 고유의 문화와 룰이 담겨 있다는 내용이다. 회사도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여러 나라의 회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일, 리더의 태도 등을 접했다. 일에 대한 표본이 많아진 셈이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할 수 있게 됐다.

2019년에 출간한 《퇴사는 여행》도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여행이라는 주제 안에서 일에 대한 고정된 편견을 깰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여행과 일, 자칫 상반된 개념 같아 보이지만 사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아닌가. 이런 면에서 일과 삶이라는 키워드를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보다 꺼낼 수 있는 소재가 많아진 게 나만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경쟁력을 쌓는 과정에서 구축한 본인의 전문성은 무엇인가?

최근 독립해 집을 꾸미면서 깨달았는데, 정보를 분류해 구조를 짜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게는 맥락이 있는 것끼리 분류해 배치하는 일을 잘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게 모든 기획의 기본이다. 행사를 진행하거나 글을 쓸 때, 커뮤니티를 운영할 때도 모두 적용된다.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축적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무언가가 생겼을 때, 그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할 사람에게 연결하는 일도 잘한다.
집이자 작업실인 ‘융지트’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회사 생활이 필수라고 생각하나?

확답은 못 하지만 회사에서의 경험 자체는 혼자 일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일단 회사에서만 배울 수 있는 언어가 있다. 간단하게는 메일 작성하는 방법부터 마감일을 제때 지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예의까지. 독립해 일하면서 ‘알고 보니 이게 다 회사에서 배운 거였네’ 싶은 순간들이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스타트업에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일했는데, 그 안에서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고루 경험했던 게 큰 자산이 됐다. 소소하게는 협업 방식이나 업무에 쓰고 있는 다양한 툴도 회사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들이다.

회사나 조직 안에서의 경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가 쉽지만은 않다.

일단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이건 회사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의 내공을 쌓는 시간이라고 되뇌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한 일을 틈틈이 정리하고 글로 기록해 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글을 쓰면서 내 일의 어떤 점이 좋았고 아쉬웠는지 곱씹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 배우게 되는 것도 있고 ‘다음에는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라고 깨닫게 되는 것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공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브런치 등에 올리면 그 자체가 포트폴리오이자 개인 브랜딩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수많은 사람, 기회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 있는’ 브랜딩


개인 브랜딩 측면에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잘하는 일을 좋아할 때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 외국계 애드테크(AD Tech) 스타트업인 앱리프트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사실 나는 모바일 광고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글로벌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꼈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스타트업 올윈에서 합류 제안을 받았다. 가파르게 성장 중인 글로벌 스타트업에서 이미 매우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었음에도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할 기회가 생기니 신기하게도 한순간에 확 관심이 커졌다. 아무리 잘하는 일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와 접목돼야 오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각자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책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가 될 수도, 특정 장소나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생산성을 따지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다 보면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관련 키워드나 주제로 여러 가지를 검색해 보기를 추천한다. 아주 쉬운 디깅(digging) 방법인데, 검색하다 보면 내 눈길을 사로잡는 또 다른 무언가가 분명 보일 거다. 그렇게 계속 연결해 들어가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좀 더 명확해진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 뭘 좋아하는지 찾아보면서 취향의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개인 브랜딩을 결심해도, 한편으로는 회사 눈치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공감한다. 나는 회사 대표나 리더들께 실무진의 애정 담긴 경험담이야말로 사랑받는 브랜드의 비결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회사 대표가 공식적인 언론 인터뷰에서 한 정제된 말보다, 투박하더라도 자기 일에 애정이 있는 구성원의 이야기에서 더 큰 매력이 느껴진다. 브랜드의 진정성 또한 구성원이 자기 회사를 애정하고 있는 모습에서 느껴진다. 회사의 브랜딩은 결국 그 안에 모여 있는 구성원에게서 나온다.

브랜드에 영혼이 있고 없고는 증명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느낀다. 그리고 끌리는 브랜드에 지갑을 연다. 회사 브랜딩은 내부에 존재하지도 않는 무언가를 다듬어 포장하는 게 아니다. 사소하더라도 내부에 실존하는 우리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밖으로 꺼내 자연스럽게 알리는 게 브랜딩이다. 그리고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구성원이고.

지금 개인 브랜딩이나 독립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얼마 전 이슬아 작가가 쓴 《부지런한 사랑》을 읽었는데, 이런 문구가 있었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도 시작이 어려울 수 있다. ‘나는 전공자나 전문가가 아닌데?’, ‘관련 자격증이 없어도 괜찮을까?’ 등등 여러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권한이란 건 그냥 내가 나에게 주면 된다. 내가 어떤 일에 쏟은 시간이 결국 나를 증명하는 자격증인 셈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걱정 대신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한 시간이 쌓여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계속하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내가 그린 궤적이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궤적이 보일 때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글을 써도 될까?’, ‘나는 작가가 아닌데’ 등의 고민을 했다. 우리는 모두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사람이지만, 결국 차이는 한 가지다. 어쨌든 실행으로 옮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결국 독립은 좋아하는 일에 더 시간을 쏟기 위해 내리는 결정 같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독립할 때 미리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쨌든 독립이라는 건 나 자신을 책임지는 행위다. 무작정 회사를 나왔다가는 조급해지기 쉽다. 특히나 지속적인 수익은 현실적으로 너무 필요한 요소다. 나는 계속해서 같이 일하는 팀이 있어 불안함을 덜 느낄 수 있는데, 이런 경우가 아니라 정말 무(無)에서 무언가 도전하겠다면 최소한 4~5개월은 버틸 수 있는 생활비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

본인만의 업무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스타트업에서 경험했던 노션, 구글 캘린더, 구글 드라이브는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인 업무 관리 툴은 물론,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한 나름의 규칙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독립 이후에 여러 루틴이 생겼다.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고 시작한 것 중 하나가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이불 정리하는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행위가 신기하게도 하루를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혼자 일할수록 스스로 몸과 마음을 모두 잘 챙겨야 하는데, 작은 루틴들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혼자 일하면 외로울 때는 없나?

글쎄. 사실은 혼자 일한다는 생각을 잘 안 한다. 인디펜던트 워커로서 일하며 새로운 일의 흐름을 만드는 모든 사람이 동료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고민이 있을 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정말 많다. 그리고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언제든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늘면서 회사 밖에서도 동료애를 느낄 때가 많다. 최근에는 새로운 일의 형태를 고민하는 마케터들의 느슨한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동료 마케터들과 함께 포스트웍스(POST/WORKS)라는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그런 동료들은 어디에서 만났나?

일하면서 만난 사람도 많지만, 나만의 작업을 이어 가며 만난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숭(이승희) 마케터님과는 같은 필름 카메라 야시카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먼저 인사를 나눴고, 손하빈 마케터님과는 에어비앤비의 트립 호스트로 참여하면서 인연이 생겼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따라서 길을 만들어 나가자 어떤 지점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연결되는 순간들이 생겼다. 만나면 시너지가 날 것 같은 친구들을 내가 소개해 주기도, 소개받기도 한다.

일할 때는 프로젝트에 따라 적임자를 찾아 TF를 꾸리는 경우가 많다. 어떤 프로젝트에 디자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가장 잘해 줄 수 있는 디자이너를 찾아 클라이언트 측에 먼저 제안하는 식이다. 그러면 그 디자이너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재미와 멋


동료들의 피드백 외에, 지금 하는 일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나?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내가 하는 일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는 마음이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잘 가고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더 많은 연결이 일어나고 있다. 좋은 징조다.


개인적으로는 일할 때 재미와 멋, 이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일이 재미있는가’, ‘멋있는가’를 따져 보는 것이다. 전자는 일하는 동안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수시로 점검이 된다. 그런데 후자는 그렇지 않아 의식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멋이란 밖으로 보이는 겉치레가 아니라, 하는 일에 담긴 의미와 진정성이다.

독립적으로 일하다 보면 일과 휴식의 분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마케터로서 하는 일은 가능한 한 주말에는 안 꺼내려고 노력한다. 다만 나머지 일들은 회사를 나오고 난 후에 경계가 훨씬 흐려진 것 같다. 예를 들어 사이드 프로젝트는 내가 좋아서 만든 일이지만 현재 수익을 내는 일은 아니다.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은 맞다. 마찬가지로 늦은 밤까지 책을 쓴다고 해서 ‘맙소사,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니!’라는 생각은 안 한다. 지금 하는 것들 모두 회사에 다닐 때는 퇴근 후에 따로 시간을 내서 할 만큼 너무 좋아했던 것들이라 굳이 일이냐 아니냐를 구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본인이 정의하는 쉼, 휴식이란 무엇인가?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나 자신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면 그 모든 게 쉼이 될 수 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 것, 피아노를 치고 식물에 물을 주는 것,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무언가를 배우는 것 모두가 내겐 쉼이자 휴식이다. 이런 쉼은 마음을 단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독립 이후 내 마음을 좀 더 건강하게 보살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덕분에 일하는 시간을 좀 더 밀도 높게 보낼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예전부터 우리나라 로컬이나 인디 문화를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한국의 로컬 콘텐츠나 브랜드, 혹은 인디 아티스트들을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 예전에 에어비앤비의 트립 호스트로 외국인 게스트들을 홍대에 데려가 인디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여 주고 함께 뒤풀이를 갖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한국엔 케이팝뿐만 아니라 이렇게나 훌륭한 인디 밴드가 많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한국에 이렇게 다양하고 좋은 밴드가 있는지 잘 몰랐다”는 후기를 보며 뿌듯함과 약간의 사명감도 느꼈는데, 그 일을 하는 동안 굉장히 즐거웠다.

돈을 버는 일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40대 초반? (웃음) 사실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지금의 이 상태에 너무 만족하고 있다. 수익과 상관없이 인디펜던트 워커로서 글을 써서 기록하고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어떤 형태로든 죽을 때까지 할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은 이유는 내 자신이 인디펜던트 워커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레퍼런스(reference)가 되고 싶어서다. 거창하게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인디펜던트 워커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아주 약간의 용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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