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준 개혁은 곧 미국 경제 개혁입니다. 자본주의가 유발하는 불평등 그리고 격차 사회가 유발하는 내부 갈등을 해소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혁신이죠. 그래서 코로나 경제 위기가 인간을 노동 시장에서 소외시키지 않는 경제 회복으로 마무리 지어져야만 하는 겁니다. 이것이 연준 의장 파월과 재무장관 옐런의 시각입니다. 그래서 파월이 시간을 벌어 주면 옐런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콤비 플레이를 하고 있죠. 정작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옐런의 재정 정책은 아직 첫발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시장은 이미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거나 기대하고 있죠.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1.6퍼센트대를 오락가락한 지 오래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0퍼센트대였죠.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주택 담보 대출 같은 은행 금리의 기준입니다. 연준의 기준 금리는 제로 금리인데 시장의 시중 금리는 이미 2퍼센트를 향해 가고 있는 겁니다. 지난 5월 17일 방송된 〈60분〉과의 인터뷰에서 파월 의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중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반대하는 내기를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월가 격언 중에 “연준에 맞서지 말라”는 말이 있죠. 경제 격언 중엔 “시장에 맞서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연준이 지금 시장에 맞서고 있습니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이유죠.
이대로라면 파월은 본의 아니게 테이퍼 텐트럼을 유발할 공산이 큽니다.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를 축소하는 테이퍼링에 들어가면서 증시가 폭락하고 신흥국 통화 가치가 요동치는 경제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 긴축 발작이 일어나면 경제 회복도 더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월스트리트가 옐런을 칭송했던 것도 알고 보면 이런 긴축 발작을 최소화한 연준 의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옐런은 테이퍼링을 하면서 시장이 예측 가능하도록 충분히 소통했습니다. 현란한 브레이크 기술을 보여 줬죠. 파월도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테이퍼링을 교과서로 삼겠다고 분명하게 가이드라인까지 줬죠. 테이퍼링을 시작하고 대략 2년 뒤에 금리 인상을 시작하는 방식 말입니다. 그런데도 시장은 연준의 정책 변화에 자꾸만 베팅을 하고 있습니다.
파월을 믿지 않는 거죠. 파월은 옐런이 아닌 겁니다. 이러다 파월이 테이퍼링을 시사하거나 실시하면 시장이 받을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2020년 코로나 경제 위기는 전지구적 위기였습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와는 성격이 다르죠.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낮췄고 각국 정부들이 재정을 풀어 왔습니다. 미국이 금융 정책의 방향을 바꾼다면 글로벌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코로나 경제 위기가 끝나자마자 글로벌 증시 폭락과 뒤이은 글로벌 재정 위기까지 연거푸 닥칠 수도 있는 거죠. 파월이 옐런의 경제 개혁을 위해 버텨 주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테이퍼 텐트럼이 발작 수준이 아니라 광기 수준까지 커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바이든과 옐런의 미국 일자리 계획과 미국 가족 계획을 위해선 어느 시점에선 연준의 테이퍼링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최대 2조 2500억 달러에 이르는 바이든과 옐런의 경제 재건 계획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인플레이션 요소입니다. 파월 연준의 테이퍼링과 맞부딪히면 정말 서머스가 경고한 것처럼 욕조에서 홍수가 날 수도 있는 거죠. 테이퍼 텐트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욕조에서 홍수가 나는 걸 막기 위해서도 지금 연준한텐 확실히 출구 전략이 필요합니다. 연준의 완화적인 입장에는 변동이 없다는 걸 시장에 확신시키면서 동시에 옐런의 경제 구조 개혁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인플레이션 공포도 줄여 줄 묘책 말입니다.
최초의 흑인 게이 연준 의장은 묘책이 될 수 있습니다. 격차 사회에서 특히 유색 인종이나 LGBTQ 커뮤니티가 겪는 구조적 불평등은 더 극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파엘 보스틱은
프레디맥에서 일했었습니다. 오마바 정부에선 주택 공급 정책을 자문했죠. 두 경력 모두 상시적 주거 불안을 겪고 있는 흑인과 게이 커뮤니티의 최대 현안입니다. “연방준비은행과 연방준비제도가 인종 차별을 줄이고 좀 더 포용적 경제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라파엘 보스틱 총재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애틀랜타 연은 홈페이지에 써놓은 인사말입니다. 우리로 치면 한국은행 총재의 인사말에 차별과 포용이란 표현이 박혀 있는 겁니다. 라파엘 보스틱은 이미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연준의 소방수 역할을 앞장서 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카플란 댈러스 연은 총재가 통화 긴축을 강조하는 매파의 대변인이라면 라파엘 보스틱은 이미 비둘기파의 상징이 됐죠. 이쯤 되면 게이 흑인 연준 의장은 시대의 요구인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위기엔 왜 새로운 연준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