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BlizzWalkout. 피해자들과 지지자들은 이 해시태그를 달고 시위에 나섰습니다. 이번 액티비전 블리자드 사태의 심각성만큼이나 시위는 격화되고 있고,
비슷한 일을 겪은 유비소프트의 직원들은 연대를
표명했습니다. 서론에서 21세기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곤 믿기지 않는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지금도 이렇게 상식을 벗어난 문화가 어느 조직 내에서 횡행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임에도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하고 있고, 이것이 개인의 수준이 아닌 사회의 각 분야에서 조직적인 형태로 드러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앞서 제이슨 슈라이어가 기사를 통해 밝힌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성비는 1대 4였습니다.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이죠. 물론 어떤 직업군의 성비를 거론하는 것은 다분히 논쟁적입니다만, 본 사건의 본질은 실리콘밸리와 근방의 남성 중심적인 기업 문화에서 기인합니다. 만약 다양성을 위해 여성의 고용을 장려하거나 그들의 안정적인 근무를 위해 노력했다면, 프랫 보이 문화는 금세 깨져버렸을지 모릅니다. 또한, 액티비전 블리자드에서 여성들은 취업, 승진, 보상 등에서 확연한 차별을 겪었습니다. 작위적 성비 맞추기에 대한 반론으로 늘 역차별의 문제가 거론되곤 하는데 적어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다릅니다.
임금 격차 역시, 단순히 “여성이 덜 벌고 있다”는 식의 공허한 수치로만 접근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여성이 동일 노동을 할 때 임금이나 고용 면에서 차별이 전혀 없거나, 흔히 ‘돈이 되는’ 직종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식의 접근도 위험합니다. 여성 할당제가 매우 공고한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정량적 임금 격차의
예시와 이런 부류의 사건은 크게 다릅니다. 블리자드에 온 여성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게임사에 근무하며 꿈을 이루고 싶고, 승진의 욕구도 있는 직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상식적으로 퇴사하는 게 당연한 직장에서 참고 근무할 수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2020년 기준, 게임계의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해 분석한 <
Skill Search>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임금 격차는 여성의 경력과 상관없이 모든 연차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과연 지금 무리한 시위를 하는 걸까요?
물론 남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모든 직종에서 이런 문화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특정 성별의 특수성이 과도하게 대표되고 그것이 왜곡된다면 잘못된 조직 문화로 자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에게 폭력적입니다. 앞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성적 괴롭힘이 여성에게 향한 사례만 소개하였지만, 남성들 역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전 블리자드의 엔지니어였던 셰르 스칼렛은 고위 관리자들이 남직원들의 성기를 쓰다듬는 게임에 참여한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프랫 보이 컬쳐를 거부하고 싶은 남직원들 역시 거북한 음담패설과 성추행, 성희롱, 성적 행위 강요 등으로 고통받은 것이죠. 이들은 일종의 ‘동류 집단 압박(Peer Pressure)’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에 없는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서로를 지칭할 대명사를 사전에 조사하고 성 정체성도 꼼꼼히 파악하며, 구체적인 성교육을 통해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지요. 다양성이라는 말 속에는 모두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만 있을 뿐, 정량적 비율을 맞춘다는 의미는 없습니다. 한쪽의 성 문화가 과격하게 정착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대표성을 확보해주는데 그 의의가 있지요. 그러므로 어찌 보면 이는 민주주의에서 역차별 논란을 늘 안고 가야 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성의 필요성과 함께 사회적 약자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암시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요즘의 기업이 얼마나 환경친화적인지를 어필하는 것 못지않게 건강한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는 경각심을 줍니다. 지속적인 공론화와 연대로 피해자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모든 현대 기업 조직의 반면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