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일자리에서 어떻게 배제되는가

2023년 10월 11일, explained

미국은 연봉 1억 3000만 원의 저숙련 노동자를 ‘급구’한다. 여성은 제외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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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여성이 미국 최대 냉동 트럭 운송 회사 스티븐스 트랜스포트(Stevens Transport)를 미국 고용 평등 기회 위원회(EEOC)에 집단 신고했다. 이유는 고용 차별이다. 이들은 회사가 자신들을 훈련할 숙련된 여성 운전사가 부족하다며 채용을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장거리 트럭 운전사 인력난에 시달려 온 미국의 여성 트럭 운전사 비율은 2021년 기준 4.8퍼센트다.

WHY NOW

노동 시장의 성 격차는 간혹 형이상학적 주제로 여겨진다. 존재 여부로 논쟁이 인다. 각국 노동 시장의 현실이 다르고 가설과 변수 설정에 따라 연구 방법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론을 넘어 현실을 보면 숫자에선 발견하지 못한 딜레마가 보일 때가 있다. 여성의 경제 참여 기회는 어떻게 제한되는가?

여성은 힘든 일을 꺼린다는 착각

“트럭이 멈추면 미국도 멈춘다(When trucks stop, America stops).”라는 말은 2021년 또다시 입증됐다. 코로나19로 트럭 운전사 일명 ‘트러커’들이 대거 일을 관두자 미국 공급망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미국판 ‘블라인드(Blind)’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2023년 트러커의 연봉 평균은 6만 3000달러(8506만 원)다. 월마트는 지난해 트러커 연봉을 1억 3000만 원부터 제시해 화제가 됐다. 트럭에서 먹고 자며 생리 현상을 견디고 과로에 시달려야 하는 대표적인 고소득 블루칼라 직종이다. 흔히 여성이 꺼린다고 알려진 특징을 가졌지만 애초에 기회조차 없었다.

여성 인적 자본의 부재는 등한시

신고자 중 한 명은 상업용 트럭 운전면허(CDL) 취득을 위한 학원비로 7000달러(943만 원)를 빌렸다. 의지를 무색게 한 건 ‘동성 훈련 정책’이다. 새로 고용된 운전사는 취업 확정 전 자신의 운전 기술을 향상하거나 증명하기 위해 트레이너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를 함께 보낸다. 장거리 트럭 안엔 보통 침대칸이 있어 번갈아 잠을 자거나 함께 취침하는 일도 있다. 같은 성별의 숙련자에게만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한 이유다. 2014년 연방 법원은 EEOC의 제소에 따라 뉴프라임이라는 운송 회사의 이 같은 관행을 연방법 위반이라 판단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유효할까

트럭 회사는 대외적으로 성별을 초월한 훈련 프로그램을 갖췄다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속으로 우려하는 성적 괴롭힘은 실재한다. 일부 트럭 회사들은 숙박비를 별도 지원해 위험을 회피하기도 한다. 트럭 관련 비영리 여성 단체에서도 동성 훈련 정책에 관한 의견이 갈린다. 우먼인트러킹은 동성 교육 정책에 대해 ‘진정 직업 자격(Bona Fide Occupational Exemption, BFOQ)’ 적용이 필요하다 주장한다. 국가인권위원회 평등법 예시 법안에 따르면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 행해지는 차별이다. 여성 목욕탕의 관리자라면 남성을 배제하는 게 차별이 아닌 이유다. 적극적 우대 조치와 함께 차별금지법이 예외로 두는 조항이다. 온당한 적용일까?

포괄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

난제다. 뉴저지의 한 트러커는 미주 한인 커뮤니티 헤이코리안에서 운행의 고충을 말한다. 차체와 물류가 육중하니 사고 방지를 위해 장시간 운전에 집중해야 하고 이 때문에 급격히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차체 평균 길이만 21미터가 넘고 트레일러를 연결하면 배로 길어진다. 동승 훈련은 필수적이다. 또 다른 비영리 단체 리얼우먼인트러킹은 성별과 문제 행동을 구별한다. 기본적으로 낯선 이와 몇 주간 별도의 관리·감독 없이 보내는 생활에서 가해 행동은 비단 성별에 근거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동성 훈련 정책으로 고용 기회가 박탈되는 건 민권법 타이틀 VII 위반이며, 포괄적 교육과 감독, 신고 체계, 범죄 이력자의 배제가 필요하다 주장한다.

여성의 노동 시장 진입 효과

미국 트럭 운송 협회(ATA)는 운전자 부족이 팬데믹 시기에 비해 완화됐지만 여전히 사상 최고치에 가깝다고 말한다. 미국 연방자동차수송안전청(FMCSA)은 인프라법(IIJA)에 따라 트러커를 꿈꾸는 여성을 지원하고 차별 실태를 조사한다. 지난해 1월엔 운전자 부족을 이유로 10대도 트럭 운전을 할 수 있는 시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여성의 경제 참여와 기회 향상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중요한 의제다. 매년 성 격차 지수(Global Gender Gap Index, GGI)를 발표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은 여성이 남성과 동일하게 노동 시장에 참여할 경우 생산량의 3분의 1 이상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봤다. 평등은 모두에게 이롭다는 차별금지법의 모토를 연상케 한다.

여성을 뽑지 않던 킹차 갓산직

미국의 이야기로 치부했다면 오산이다. 한국의 고임금 생산직의 실태는 더 심각하다. 현대차 생산 공장 기술직 신입 공채의 첫 여성 합격자는 올해 7월에 나왔다. 200명 중 6명이다. 이미 공장에 근무하던 500여 명의 여성은 대부분 하청 업체 소속이었다가 법원의 불법 판결로 정규직 전환된 인원들이다. 남성과 똑같은 생산 라인에서 일하면서도 정규직 전환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여성 비율이 20~50퍼센트에 육박하는 북미 자동차 생산 공장들과 대조적이다. 몸 쓰는 고임금 일자리에 여성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은 사실상 그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해 온 실상을 시대의 문법으로 가린다. 동일 직급, 동일 노동에서 임금 격차 등 해소할 것은 산더미다.

노동을 탐욕스럽게 만든 사회

미국 자동차 공장을 포용적이고 일하기 좋게 만든 것에는 전미자동차노조(UAW)의 공도 있다. 트러커의 삶이 고되듯 전통적으로 남성이 전유한 일자리는 고임금을 대가로 높은 노동 강도와 불규칙한 근무 시간을 요구한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이를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라 부른다. 그가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요소다. 가정을 떠안은 여성은 일정 조정이 자유롭고 보수가 적은 ‘유연한 일자리’에 종속된다. 그는 전자의 보수 수준을 낮추고 후자의 생산성 강화를 강조한다. 모두가 덜 탐욕스러워질수록 일자리는 평등해진다. 기회를 확장하는 것만큼 노동의 구조적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IT MATTERS

국제 과학 학술지 《네이처》의 첫 여성 편집장 막달레나 스키퍼는 지난 10월 4일 한국을 찾아 유럽인·남성 중심의 과학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안전벨트는 대표적으로 성별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남성을 기준으로 기술이 개발되고 검증되어 교통사고 시 여성이 더 크게 다친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남성의 목소리를 더 잘 인식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과학 기술학자 임소연은 저서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에서 여성학의 시각으로 과학 기술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 역시 남성 중심적으로 발전해 온 과학 기술이 ‘가치 중립’이라는 성역을 만들어 왔다고 본다. 그는 오히려 과학 기술이 ‘가치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성이 잘하는 일, 여성이 잘하는 일은 존재할 지 모른다. 그것이 남성에 맞춰진 일, 여성에 맞춰진 일은 아닐지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은 가치적 판단을 수반한다. 트러커의 사례처럼 동성 훈련 정책과 같은 난제는 사회적 성숙을 요한다. 그러나 성별 격차를 고루한 논쟁으로 만드는 건 미온적 대책이다. 기업 내 여성 임원의 비율은 정치적 대표성 문제처럼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에 있어 중요한 지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정작 트러커와 같은 저숙련 노동, 현대차 생산직과 같은 고된 노동에서의 여성 고용률은 제자리다. 기적의 비만약 위고비의 핵심 물질인 ‘GLP-1′ 처음 합성한 여성 과학자 스베틀라나 모이소프는 생물학 최고 권위 상인 게어드너 국제상의 2021년 수상자에서 제외됐다. 결혼과 출산으로 커리어가 일부 바뀌었기 때문이다. 평등이 모두에게 이롭듯 관행적 차별은 모두에게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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