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카카오가 마냥 악덕 재벌인건 또 아닙니다. 한때 네이버는 스타트업들한텐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괜찮은 창업 아이템을 구상해놓고도 네이버가 내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자체 검열을 해버리기 일쑤였죠. 어차피 네이버라는 빅테크한테 시장을 빼앗길테니까요. 스타트업의 좋은 창업 아이디어들은 네이버 탓에 묻혀 버렸습니다. 악순환이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풍요로워지려면 중간 엑시트가 활발해져야만 합니다. 기업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IPO는 창업자라면 모두가 꿈꾸는 궁극의 엑시트입니다. 쿠팡처럼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대안은 어느 정도 회사가 성장했을 때 더 큰 회사에 인수되는 것입니다. 중간 엑시트죠.
실리콘밸리에선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들이 수시로 스타트업들을 인수합니다.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기술과 인력을 원하기 때문이죠. 스타트업들도 빅테크들에 합병되면 자본과 인력의 제한에서 자유로워지고 더 큰 포부를 펼칠 수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건 불문율이 있기 때문입니다. 빅테크는 스타트업의 사업 아이디어를 함부로 빼앗지 않습니다. 대신 스타트업에 온전한 대가를 지불하고 아이디어와 기술과 인력을 구매합니다. 빅테크들도 생태계 전체가 번영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들한테 유리하다는걸 아는 겁니다. 과거의 네이버는 몰랐죠. 지금의 카카오는 압니다.
지난 10년 동안 카카오는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간 인수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카카오의 계열사가 115개에 달하게 된 배경입니다. 계열사 숫자만 놓고 보면 SK그룹에 이어 2위죠. 카카오 그룹이라고 불려야 마땅한 수준입니다. 대신 카카오는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기술과 인력을 부당하게 빼앗기보단 정당하게 사들였습니다. 적잖은 창업자들을 상당한 부자로 만들어졌죠. 스타트업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줬단 뜻입니다. 2021년 상반기에만 카카오가 M&A하거나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한 스타트업은 15개가 넘습니다. 패션이커머스 지그재그가 대표적이죠. 더군다나 카카오는 플랫폼입니다.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스타트업들의 발랄한 아이디어와 결합하면 시장 파괴력이 커지죠.
역설적으로 이런 중간 엑시트 시장 조성자로서의 역할은 카카오한텐 양날검이 됐습니다. 플랫폼과 결합력이 높은 스타트업들 위주로 인수하거나 투자하거나 창업하면서 골목상권까지 지네발을 뻗치게 된 겁니다. 지금 창업 트렌드는 단연 O2O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이죠. 오프라인의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유통시키는 겁니다. 배달업이 대표적이죠. 숙박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창업자들은 온라인화 할 수 있는 오프라인 서비스를 찾아서 두 눈 부릅뜨고 신발이 닳도록 골목길을 헤매고 있습니다. 카카오에 중간 엑시트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히 다음 목표는 상장이 됩니다. IPO에 성공하려면 비싼 가격으로 사들인 창업 아이템을 더 비싸게 만들어야 합니다. 성공만 하면 중간 엑시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돈방석 위에 앉게 됩니다. 매출과 영업이익에 집착하게 됩니다. 카카오 모빌리티처럼 가격을 올리고 카카오페이처럼 금융상품을 사실상 판매하게 되고 카카오톡에서 헤어샵 수수료 20%를 받아챙기게 됩니다. 탐욕스러워지는 것이죠. 성공을 위한 적당한 탐욕은 창업의 원동력입니다. 돈을 향한 무한한 탐욕은 기업을 악하게 만듭니다. 예전 구글을 말했죠. “Don’t be Evil.” 카카오는 과잉 탐욕으로 악해졌던 겁니다.
시장의 기업이 민주적 규제의 단두대 앞으로 끌려 나오는 순간은 기업 스스로 내부의 탐욕에 집어삼켜질 때입니다. 그러면 30원으로 열광하던 소비자들은 3000원으로 분노하면서 유권자로 돌변합니다. 이때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에 의거하여 정치와 관료가 규제의 칼을 꺼내들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국감 시즌입니다. 우리는 카카오한텐 한없이 너그러웠던 금융위와 공정위가 표변하는 상황을 목격하게 될 겁니다. 기관장들도 국감장에 끌려 나와서 국회의원들한테 감시 받을 시기니까요. 국감장에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나와야 한다거나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가 나와야 한다는 식의 소모적 논쟁은 분명 눈에 거슬립니다. 그래도 본질은 선명합니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하는 현장입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여론의 카카오 때리기까지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혁신 기업을 키워내는 것도 혁신 기업을 죽여버리는 것도 결국 소비자입니다. 10년 전 30원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었던 카카오는 3000원을 욕심 내다가 소비자의 마음을 잃었습니다. 결국 김범수 창업주 일가로까지 사정권이 넓어졌죠. 여당과 금융위 그리고 공정위까지 나섰다는 건 사실상 행정부가 모조리 카카오 때리기에 나섰다는 의미입니다. 카카오뱅크를 핀테크 혁신으로 추켜세우던 금융당국도 하루 아침에 규제에 앞장서기 시작했습니다. 규제당국이 돌아선 건 소비자의 마음이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규제가 아니라 시장인 것이죠. 그래서 카카오는 솟아날 구멍도 역시 소비자한테서 찾아야만 합니다. 소비자 후생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카카오가 미움 받는 건 더 싸고 편리해져야 하는데 더 비싸고 불편해졌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가 돌아서면 온 세상이 돌아섭니다. 지금 카카오가 겪고 있는 일입니다.
《
어제를 버려라》.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자서전 제목입니다. 김범수 창업자가 자주 하는 말이 재정의입니다. 문제를 해결책을 찾으려면 문제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시각이죠. 카카오의 문제도 문제를 재정의해야 해결됩니다. 성장이란 문제를 풀기 위해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터는 건 답이 아닙니다. 어떻게 소비자한테 이익이 돌아가게 할까라는 문제로 문제를 재정의하면 성장이란 문제는 자연히 풀립니다. 그러자면 탐욕스러운 어제부터 버려야 합니다. 결국 30원의 초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