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일 김포국제공항에 시각 장애인용 무인 항공권 발급기가 도입됐다. 지난달엔 국내 최초 배리어 프리(barrier-free) 택시가 출범했고, 시각 장애인용 점자 디스플레이 ‘닷 패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편의를 증진하는 에이블테크에선 어떤 미래를 엿볼 수 있을까?
WHY_지금 에이블테크를 읽어야 하는 이유
첨단 기술은 결국 상용화된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는 항공 산업의 목적은 단순히 우주 탐험이 아니다. 인류가 극한의 환경을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식품, 의료, 의복 등 일상 분야에서 상용화될 수 있는 기술들이 탄생했다. 에이블테크도 마찬가지다. 특정 집단과 세대만을 위한 기술이 아니다. 채 드러나지 않은 일상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미래 기술의 초석이다.
NUMBER_ 2대
지난달 코액터스·이큐포올·닷을 비롯한 소셜벤처들의 협업으로 ‘모두를 위한 택시’가 국내 출범했다. 코액터스는 청각 장애인이 운행하는 ‘고요한택시’를 만든 모빌리티 플랫폼이다. 트렁크를 개조한 타 장애인 택시와 달리, 일반 택시처럼 승객이 옆문으로 탑승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안했다. 이큐포올의 수어 번역 서비스는 스크린을 통해 탑승자와 운전자의 소통을 돕는다. 닷이 출시한 ‘닷 패드’는 시각 장애인용 점자 디스플레이로 경로 및 예상 도착 시간을 촉각 및 음성으로 전한다. 배리어 프리 택시는 출범 의의도 크지만 앞으로의 과제가 더 많다. 현재 서울에서 운행 중인 차량은 단 두 대, 요금은 일반 택시의 두 배다.
CONFLICT_ 비급여
D-Tech(Disability Tech) 공모전을 주최한 디라이트 조원희 대표에 따르면 멘토링 단계에서 ‘업체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다수의 기업이 ‘규제 완화’라고 답했다. 의료법상 보험 급여 대상이 되는 기기 및 보장구는 한정적이다. 국내 의료기기법상 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많은 기기 혹은 서비스는 비급여 대상으로 분류돼 비싼 가격대로 책정되고, 소비자 입장에서 선뜻 구매하기 힘들다.
RECIPE_ 호환성
정보 접근성 격차를 완화할 열쇠는 호환성에 있다. 속속들이 출시되는 다양한 서비스와 앱들을 빠르게 연동할 수 있는 시스템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이다. 개별 앱들을 실행하는 코어 허브다. 애플과 구글, 삼성과 같은 빅테크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가능한 많은 에이블테크 기업과 호환·연동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달 닷(dot) 측은 애플과의 협업으로 닷 패드에서 아이폰 화면을 확인할 수 있는 호환 기능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REFERENCE_ 화웨이
화웨이의 스토리 사인(Story Sign)은 청각 장애인 어린이용 수화 앱이다. 휴대폰 카메라로 동화 텍스트를 비추면 캐릭터가 수화를 하며 동화를 읽어 준다. 화웨이 및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이용 가능하지만, 아이폰에선 구현되지 않는다. 청각 장애인-통역사-비장애인이 통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 중인 함께 걷는 미디어랩 박성환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3자 통역이 가능한 전용 단말기는 이미 있다. 하지만 이 기능을 스마트폰에 접목시킬 때 접근성은 훨씬 높아진다.” 개별 앱의 디테일이 각광받는 플랫폼 전성 시대다. 그러나 에이블테크에선, 개별 앱의 전문성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해당 플랫폼들의 연결성이다.
INSIGHT_ 아이덴티티
장애인의 선택은 많은 경우 타인의 호의와 선의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무언가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나의 취향과 습관이 노출되고, 언어와 행위는 불가피하게 재해석된다. 인간만큼 따뜻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낯선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삶의 결정권을 내가 온전히 쥐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수 있다. 에이블테크는 편의 증진의 영역을 넘어 아이덴티티를 다룬다. 기술의 발전은 누군가의 결정권을 가장 실질적으로 존중할 수 있는 방안이다.
FORESIGHT_ 교육
에이블테크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린워싱과 같이 에이블테크가 ESG 경영의 간판으로 소비되지 않고, 또 시장에서 실질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해당 서비스를 실제로 잘 이용하는 이용자가 많아야 한다. 즉 기술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소개하고,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알려 주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키오스크가 아닌 선생님의 몫이다. 코액터스의 고요한택시나 닷패드의 통역 서비스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기술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과 기술을 연결하는 것은 다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