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운동장
3화

정쟁의 대상으로

문화 전쟁의 도구가 되다


사회 갈등의 조정자인 정치권은 과연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 선수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은 정당, 국가 이념, 개인의 신념에 의해 갈린다. 보통 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정당은 군소정당인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거대 정당의 정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마치 지난 2022년 6월 24일에 49년 만에 뒤집힌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 때의 양당의 모습처럼 말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임신 24주 이전까지 임신 중단을 인정한 1973년의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임신 중단권을 수정헌법 14조의 ‘사생활 보호 권리’로 보고 소를 제기한 원고인 ‘제인 로(Jane Roe)’의 손을 들어줬다. 이 임신 중단권 논쟁은 총기법이나 동성 결혼, 비판적 인종 이론(CRT·Critical Race Theory) 등과 같이 양당이 맞붙는 문화 전쟁(Culture War)의 양상을 띠었다. 공화당은 보수주의 정당으로 주로 임신 중단(pro-choice)보다 태아의 생명권(pro-life)을 존중하고 총기 소지에 우호적이며 동성 결혼에 비판적이다. 보수적 가치관에 기반한 사고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은 자유주의 정당으로 위 문제에 대해 주로 공화당과 정반대의 입장을 견지한다. 미국에서는 이것이 상당 부분 정치적 도구이자 문법으로 쓰여 지지자 결집이나 상대당 공격에 쓰이고 있다.

트랜스 여성의 여성 스포츠 참여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공화당은 주로 반대, 민주당은 주로 찬성의 입장이다. 트랜스젠더 인권을 상징하는 연방대법원 판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스톡 대 조지아 클레이턴카운티(Bostock v. Clayton County, Georgia)’는 성적 성향이나 지향에 따른 고용 차별이 위법이라는 연방대법원 1964년 판례다. 그러나 로 대 웨이드 판례도 뒤집히는 마당에 이 판례 역시 안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하지만 한편으로 이 이슈에 대한 논의가 가장 진전되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 역시 거대 양당 구도가 고착화하며 미국의 정치 지형을 닮아가고 있어 미국 정치의 현재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벌이고 있는 문화 전쟁은 언제든 한국에서 정쟁의 소재로 유사하게 비화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20년째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공회전을 반복하고, 고 변희수 하사의 생명 역시 지켜내지 못한 한국은 스포츠계의 ‘뉴 노멀’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미국 성인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 2월 조사에 따르면 “더 많은 트랜스젠더를 수용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61퍼센트의 응답자가 ‘중립’ 혹은 ‘사회에 나쁠 것’이라고 답했다. 도움이 된다는 쪽은 32퍼센트였다. 이 여론 조사는 미국의 정치 지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양당 내 여론을 보자면, 민주당원의 59퍼센트가 더 많은 트랜스젠더를 수용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고, 공화당원의 65퍼센트가 사회에 나쁘다고 답했다. 답변을 가르는 변인에 비단 정치적 성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별, 연령, 교육, 인종에 따라 흥미로운 경향성이 발견됐는데, 해당 조사를 진행한 퓨리서치센터의 연구원 안나 브라운(Anna Brown)에 따르면 ‘노년층, 학사 학위가 없는 자, 남성’일수록 반대의 경향이 있었고 ‘아시아계 미국인, 학사 학위 이상의 교육을 받은 자, 여성’일수록 찬성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이는 스포츠라는 영역에 한정한 조사가 아니다. 그러나 트랜스 여성의 여성 스포츠 참여 문제는 곧잘 트랜스젠더의 사회 수용에 대한 문제로 연결된다. 둘은 유사한 문제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쟁점이 되는 요소가 다르다. 스포츠로 논의를 끌고 오면 다양성 문제보다 공정성 시비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가 정치적 도구로 소비되며 트랜스 여성 선수의 문제 역시 문화 전쟁에 포함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는 결국 다양성에 대한 가치관 차이로 귀결되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제도적, 생물학적 문제를 상당 부분 가린다. 현재 트랜스 여성 선수가 시스젠더 여성 선수에 비해 객관적으로 얼마나 경기력 차이를 보이는지 과학적으로 완성된 데이터가 없음에도 쉽게 그들의 참여를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여론이 빗발치는 것이 그 방증이다.

정치권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다. 민감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의 두 정치 지도자는 이 이슈에 대해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폭탄 발언으로 유명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미국 대통령은 로렐 허버드의 도쿄 올림픽 참여 소식을 접하고는 한 경기에 남녀가 동시에 참여해 도쿄 올림픽을 망치고 있으며 이는 남자가 여자 스포츠에 출전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게다가 민주당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지원이 ‘민주당이나 하는 행위’임을 프레임화하기도 했다.

한편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학교 내 스포츠 성차별 금지’ 행정 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성별을 이유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제외되거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의 성차별을 막기 위한 일종의 포용 원칙이었다. 닷새 후에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다시 허용하는 등 트럼프 정부와 정반대의 정책을 실시하며 사실상의 문화 전쟁에 돌입했다. 2022년 6월 15일에는 “비인간적이고 위험하다”며 전환 치료를 금지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전환 치료는 성 소수자의 성 정체성이나 지향성을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보고 강제로 성 정체성을 바꾸려는 정신적 치료 행위다. 바이든의 정책은 다양성을 고려한 조치임과 동시에 성 소수자에 배타적인 텍사스나 플로리다 등 공화당 지역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차별을 조장하는 주법은 미국의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며 아이들과 가족을 전환 치료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권이 바라본 토머스

NCAA 대회 자유형 500미터 우승 후 인터뷰 중인 리아 토머스 ⓒNCAA Championships 유튜브
서론을 장식한 리아 토머스는 프롤로그에 언급한 ‘38초 차이’의 시합 이후 몇 차례의 경기를 더 가졌는데, 지난 2022년 3월의 NCAA 디비전 I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는 자유형 여자 500야드에서 우승했다. 2위 선수와 1초 75차였다.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우승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사례는 최근 미국 정치권에서 ‘입법 전쟁’을 야기했다. 양원을 넘어 주 의회에서도 당론과 개인의 신념, 선동과 비방이 얽히고설킨 각축전이 벌어졌다. 특히 공화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플로리다 주지사 론 디샌티스(Ronald DeSantis)는 반(反)트랜스젠더 행보의 선봉장이다. 그는 2022년 3월 토머스 사건을 두고 “여성 스포츠를 파괴하려 하고 생물학보다 이데올로기를 우위에 두려는 NCAA에 플로리다는 저항한다”고 밝혔다. 플로리다는 2021년 6월 여성 스포츠 공정성 법안을 서명 및 발효시켰는데 아이오와, 텍사스 등 11개 주도 비슷한 시기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법안은 태어날 때의 성별 외 다른 성별의 경기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대회 참가를 근절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입법으로 해석된다.

차기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인 사우스다코타의 크리스티 놈(Kristi Noem) 주지사 역시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사우스다코타에서 여성 스포츠를 보호하는 것으로 국제 여성의 날을 기리게 됐다. 곧 이 법안에 서명하게 돼 기쁘다”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밝혔다. 그가 말한 ‘이 법안’ 역시 여성 스포츠 공정성 법안으로, 하원을 50대 17로, 상원을 20대 15표로 유유히 통과했다. 테네시 역시 적극적으로 트랜스젠더를 겨냥한 입법이 이뤄진 곳 중 하나다. 학생 리그에서 트랜스 여성의 여성부 경기 참여를 막거나 사춘기 이전의 미성년자에게 호르몬 치료를 금지하는 법안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트랜스젠더 운동선수가 설 자리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한 약 25개 주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 또는 추진되고 있다. 플로리다 등에 이어 유타는 미국에서 12번째, 인디애나는 17번째로 여성 스포츠 공정성 법안이 통과된 주가 됐다. 2022년 6월 6일 18번째로 루이지애나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며 이 문제는 임신 중단권처럼 지역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주 의회에서 발의되어 논의가 시작되면 주지사 입장도 난처해진다. 루이지애나의 주지사 존 에드워즈(John Edwards)는 이미 공화당이 주의회 의석을 장악한 상태에서 관련 법안에 대한 거부권도 포기하고 “루이지애나에서 트랜스젠더 선수 출전이 없었다”며 사실상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가장 극단적인 주는 공화당이 주의회를 장악한 아칸소다. 스포츠계를 논하기도 이전에 이미 트랜스젠더 혹은 트랜지션에 대한 반대 입법이 이뤄지고 있었다. 아칸소 주의회는 2021년 4월 6일 18세 미만 청소년의 성전환 호르몬 치료 및 수술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칸소의 주지사는 공화당 소속 에이사 허친슨(Asa Hutchinson)인데, 그는 트랜스 여성 선수의 여성 경기 참여를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한 바 있지만 트랜지션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엔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해당 법안이 청소년들을 우울증과 자살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사회 복지사,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 등의 탄원에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주의회는 거부권을 뒤엎고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처럼 트랜스 여성의 여성부 경기 참여 문제는 트랜스젠더 자체를 억누르는 입법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규제 수위가 높아지며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법안도 나온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공무원을 일종의 ‘젠더 경찰’로 만들었다. 만약 생물학적 성별의 특징과 어긋나는 미성년자를 발견할 경우 해당 미성년자의 부모에게 즉각 고지하라는 게 법안의 골자다. 노스캐롤라이나는 사실 2016년부터 ‘화장실법(Bathroom Bill)’이 큰 논란이었는데 이 법안의 약칭은 ‘HB 2’다. 출생 성별에 따라서만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법안이다. 성 중립 화장실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는 행동주의 기업들의 보이콧을 유발했다. 2017년 AP통신은 노스캐롤라이나가 향후 10년간 37억 6000만 달러 이상과 3000개의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측했다. 2019년에 결국 주정부는 공공건물에서 성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이듬해인 2020년에 그 법안의 일부가 만료되어 원점으로 돌아오게 됐다.

물론 정쟁의 성격을 띤다고 하여 모든 공화당 의원이 반대하는 건 아니다. 유타와 인디애나 주지사는 이러한 법안이 트랜스젠더의 기본적인 권리를 해친다고 보고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여를 금지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인디애나 주지사 에릭 홀콤(Eric Holcomb)은 이 법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일관성과 공정성을 역으로 해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타 주지사 스펜서 콕스(Spencer Cox)는 해당 법안이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잠재적으로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그는 “실수를 해야 한다면, 나는 항상 친절과 자비, 연민의 편에서 실수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공권력의 무차별적 권력 행사를 경고한 이 두 주지사는 디샌티스와 같은 공화당 소속이다. 보수 유권자들이 보통 입법에 찬성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홀콤과 콕스의 싸움은 패배로 끝난다. 2022년 5월 24일 인디애나 주의회는 트랜스젠더 여학생(MTF·Male to Female,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경우)이 여성 스포츠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상하 양원 법안 1041호 HEA 1041’에 대한 홀콤의 거부권을 기각했다. 유타 역시 앞선 3월 25일, 주의회의 투표를 통해 위와 유사한 법안인 ‘HB11’에 콕스가 던진 거부권이 무효화됐다. 이로써 유타와 인디애나는 모두 7월 1일부터 트랜스젠더 여학생이 여성 스포츠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이 과정에서 독특한 장면이 연출됐다. 다니엘 대처(Daniel Thatcher) 유타 공화당 상원의원 등 몇 명이 유타 주의회 투표에서 콕스의 편에 선 것이다. 대처는 그 과정에서 “나는 거부권 무효화를 지지할 수 없다”면서 “내 자리를 빼앗는다면 그렇게 하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 후보 경선 격인 코커스 (Caucus)를 앞둔 상황이었다. 소신 발언이 쉽지 않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디애틀랜틱(The Atlantic)》은 이 입법 전쟁에 대해 “공화당은 지난 30여 년 동안 표를 결집하기 위해 소수 그룹을 사회적 위협 세력으로 ‘악마화’하는 전략을 써왔다”고 논평한 바 있다. 게이, 무슬림에 이어 이번에는 10대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그 타깃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유권자만을 의식한 정치 행보가 아니다. 민주당을 향한 정치 공학적 계산도 있다. 민주당은 소수자 인권을 중시하면서도 지지층의 외연 확장을 위해 일정 부분 보수표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는 다른 민주당의 의제보다 급진적 성격으로 비칠 수 있다. 따라서 쉽게 부차적 문제로 치부되거나 리스크가 된다. 민주당의 딜레마다.

문화 전쟁이 악마화의 양상을 띠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결탁과도 관련이 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종교 민족주의 단체와 결합해 트랜스젠더 선수, 트랜지션, 혹은 LGBTQ+ 전체를 악 또는 적으로 치환해 이에 대응하는 것을 성스러운 전쟁으로 묘사한다. 이 같은 기독 민족주의(Christian Nationalism)가 아니더라도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성장 과정에서 생기는 병으로 간주하는 일이 흔하다. 전환 치료는 그 결과물이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문화 전쟁이 스포츠로 옮겨붙느냐 스포츠계가 먼저 그 기준을 세우느냐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이 같은 정쟁은 미국 내 모든 스포츠 종목에 빠르게 전염되고 있다. 국제럭비리그(IRL) 역시 트랜스 여성 선수의 여성부 출전을 전면 금지했고, 잉글랜드의 럭비풋볼연맹(RFU)도 같은 조치를 했다가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반면 최근 미국의 스포츠 선수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 또는 정치권을 향해 거리낌 없이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6년 노스캐롤라이나주가 성 소수자 차별법인 ‘화장실 법’을 통과시켰을 때 미국 프로농구협회 NBA는 2017 올스타전 장소 변경을 신중하게 검토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릴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또 NBA 전설이자 현 방송 해설자로 활동하는 찰스 바클리(Charles Barkley)도 “나는 백인, 히스패닉, 동성애자 등 어떤 종류의 차별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성 소수자에 힘을 실어줬다.

이 논쟁은 스포츠가 활발한 미국을 넘어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영국에선 2022년 4월 1일 트랜스젠더 여성 사이클 선수인 에밀리 브리지스(Emily Bridges)의 내셔널 옴니엄 챔피언십 여성부 경기 출전이 좌절됐다.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은 브리지스로 불거진 해당 논쟁에 관해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 스포츠 경기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성 소수자에 대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는데 이 사안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난제인지 보여주는 발언이다. 2022년 6월 국제수영연맹(FIN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Natation)이 ‘젠더 포용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의 여성부 경기 출전을 더 엄격하게 제한하며 대표적 트랜스 여성 수영 선수인 토머스를 중심으로 논란은 거세지고 있다.

호주에서는 이 문제가 2022년 5월 총선의 핫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시드니 와링가 지역구에서의 일인데 여기서 격돌한 두 후보는 모두 스포츠 관련 활동 이력이 있는 인물이다. 해당 지역구의 자유당 후보였던 캐서린 디브스(Katherine Deves)는 변호사 출신으로 ‘세이브 위민스 스포츠(Save Women’s Sport)’라는 단체의 공동 설립자다. 해당 단체는 여성 스포츠인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생물학적 구분(biological distinction)을 주장한다. 디브스는 스포츠에 있어 포용성만큼 여성에 대한 공정성과 안전, 기회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를 위해 다양한 캠페인 및 가이드라인 제정 활동을 해왔는데 말 한마디가 발목을 잡았다. 소셜 미디어에 “트랜스젠더는 의학적 불구”라고 남겼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한 것이다. 그는 SBS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해당 발언으로 인해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디브스는 스포츠에서 여자 선수들이 트랜스 여성 선수와 경쟁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호주의 당시 총리였던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도 같은 자유당 후보 캐서린 디브스를 공개 지지했다. 모리슨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직을 유지할 경우 성전환 선수가 여성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도입할 것이라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한편 디스브의 총선 경쟁 상대는 무소속 후보인 잘리 스테갈(Zali Steggall)이었다. 그는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법정 변호사다. 무소속이지만 과거 자유당의 표밭이던 와링가 지역구에 2019년부터 혜성처럼 등장해 당선된 강력한 하원 의원이다. 그는 디브스의 태도에 “국제 스포츠 기구와 연맹은 트랜스젠더 참여에 대한 자체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당 진영은 이 문제를 자유당과 후보 자신의 정책 부재를 가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고 비판했다. 총선 결과는 스테갈의 승리였다. 당시 호추 총선은 전반적으로 집권당인 자유당의 패배였는데, 각종 정책에 실패하며 감정 몰이에 집중한 탓도 있지만 특히 와링가 지역에서는 디브스의 발언이 자충수가 되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정서가 정치적 도구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국가나 정치 지형에 따라 정치적 리스크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 적의 이념


이와 같은 문화 전쟁은 국제적 규모로도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러시아는 보통 동성애를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유럽이 러시아를 괴롭히기 위해 이념적으로 침략하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러시아 제국주의자들은 유럽 동진의 시작이 동성애 이념이라고 규정한다. 2020년 러시아는 국민 투표에 따라 헌법에 동성 간 결혼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었다. 무려 78퍼센트의 국민이 이를 지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러시아 내 성 소수자 탄압이나 차별은 없을 것이라는 모순적 발언을 했는데 그는 과거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동성 부부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2013년엔 18세 이하 청소년에게 ‘비전통적 성적 관계’ 선전을 금지하는 일명 ‘동성애 선전 금지법’이 러시아에서 제정됐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가 조사 대상에 올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는 비단 러시아의 사회 문화가 보수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도층이 성 소수자 혐오를 장기간 프로파간다로 이용해 온 탓이 크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1차전 격인 돈바스 전쟁은 2013년 말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Euromaidan) 시위(혁명)’에서 비롯됐는데 러시아 정부는 이때도 우크라이나 마이단 시위대를 향해 관련도 없는 동성애를 끌어들여 비판했다.[1] 유로마이단 시위는 우크라이나의 친러 세력 집권에 반발해 유럽 연합EU과의 통합을 강조하고자 일어난 시위다. 러시아 정부는 EU는 동성애적이며, 동성애를 필두로 EU가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이려 한다는 식의 이해하기 어려운 논평을 냈다. 러시아 방송 채널 NTV는 우크라이나를 ‘동성애 독재’라며 비판했고, 기자인 빅토르 셰스타코프는 시위대를 향해 “마이단 광장에 동성애라는 유령이 어슬렁거리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열성적인 EU 통합론자들이 성 도착자들이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익히 알려져 있다”고 기고했다.

2020 도쿄 올림픽 당시에도 러시아의 주요 언론과 정치권은 가만있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정치인 표트르 톨스토이는 로렐 허버드의 올림픽 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평했다. “서방은 올림픽에 자신들만의 평등한 권리를 이식하고 LGBT와 성 도착자들에 불공정한 권리를 주려 한다.” 푸틴은 2021년 연말 기자 회견에서 허버드의 참가에 대해 “한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역도와 다른 스포츠에서 경쟁한다고 생각해 보자. 여성 스포츠는 절멸할 거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나?”라며 올림픽을 서구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비판했다. 발언만 놓고 보면 트럼프와 매우 유사하다.

정부가 동성애를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의 수단으로도 이용하는 만큼 성 소수자를 향한 향한 러시아 일반 여론 역시 좋지 않다. 러시아의 비정부 여론 조사 기관이자 독립 연구 기관인 레바다 센터(Levada Center)의 2021년 10월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퍼센트가 동성 관계에 부정적이었다. 2013년 동성애 선전 금지법 제정 이전 60퍼센트던 이 수치가 9퍼센트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반대로 지지하는 여론 역시 2013년 23퍼센트에서 2021년 25퍼센트로 약간 증가했는데, 레바다 센터는 이것이 러시아 내 성 소수자에 대한 여론이 양극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견해를 밝혔다.

동성애 혐오로 인한 범죄 역시 자주 보도된다. 2013년에는 동성애 관계를 커밍아웃한 20대 남성이 혐오자 두 명에게 사망할 때까지 폭행당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러시아 남부 체첸에서 게이 남성 수십 명이 납치되어 고문을 당하고 숨지기까지 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2017년 이와 같은 탄압을 다룬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지만 러시아의 협력 거부로 조사가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러시아의 LGBTQ 중 다수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2]

러시아의 사례는 극단적인 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매우 진보한 국가에 속하는 미국이나 호주마저 LGBTQ의 인권이 아직 정치인들의 관념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경기 참여 권리는 기본적으로 성 소수자 인권과 맞닿아 있지만 스포츠와의 특수성과 연계해 사고할 수 있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가뜩이나 관련 연구는 부족하고 핵심 쟁점인 공정성에만 초점을 맞춰도 해결책을 구상하기 쉽지 않기에 독립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 이슈가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는 동안 더 많은 트랜스젠더 선수가 잊히고, 시스젠더 여성 선수도 피해를 입으며 그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차후 한국에서 관련 논의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면 지금과 같은 정쟁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할 공산이 크다.
 
[1]
티머시 스나이더(유강은 譯),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도둑 정치, 거짓 위기, 권위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부키, 2019., 180쪽.
[2]
〈러시아: 체첸 당국, 동성애자 고문 등 탄압 재개〉, 국제엠네스티,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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