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게임들
3화

폭력성과 선정성, 새로운 규칙의 등장

1990년대를 지나며 게임 업체들은 사활을 걸고 싸우기 시작했다. 남들과 다른 시도, 방향에 집착했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됐다. 그들이 아타리 쇼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카드는 눈앞에 보이는 한계를 깨는 것이었다. 새로운 시도 앞에는 더 나은 개발 환경과 수많은 플랫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제대로 된 광고나 마케팅 방식이 자리 잡기 이전이었던 1990년대, 게임을 홍보할 수 있는 건 게임 그 자체밖에 없었다. 성공하기 위해 게임은 더 자극적으로 변했고, 더 선정적인 내용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모탈 컴뱃〉과 〈둠〉은 시대를 가로막고 있던 관념을 부순 사례였다. 이들은 게임 산업에 새로운 규칙을 도입해 산업 전체의 부흥을 이끌었지만, 한편으로는 잔혹하고 선정적인 게임이 범람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레저슈트 래리〉의 등장은 미국 성인 게임 다양화의 포문을 열었고 〈동급생〉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기반을 마련, 지금의 하위문화 탄생에 이바지했다. 새롭게 열린 온라인 게임의 시대는 게임의 재미와 사회적 문제를 동시에 안겨줬다. 범죄 게임은 과도한 폭력성에 대한 도덕적 경각심을 이끌었고, 잔혹한 연출의 공포 게임, 플랫폼에 맞춰 변화한 도박성 게임의 등장은 새로운 세일즈 포인트의 탄생이자 논란의 시작이었다. 게임 산업은 1980년대보다 빠르게 진화했고,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자극이 돈이 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게임을 즐기게 된 이 시기, 새로운 규칙은 산업 전체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더 잔혹하게, 더 살벌하게 〈 모탈 컴뱃 〉


1980년대 말 게임 산업은 자극을 찾아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우주 전쟁으로는 눈 높은 유저들의 지갑을 열 수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확실한 차별성이 필요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폭력성과 선정성이었다. 1992년 8월 아케이드 게임으로 출시된 격투 게임 〈모탈 컴뱃(Mortal Kombat)〉은 폭력성 논쟁의 시작이었다. ‘캡콤(CAPCOM)’의 〈스트리트 파이터2(Street Fighter 2)〉가 나온 지 1년 조금 지난 시점에 등장한 이 게임은 개발사가 조심하던 일종의 선을 차분하게 ‘페이탈리티(Fatality)’[1]해 버린다. 스타일도, 게임성도, 보이는 모든 부분을 말이다.

닌텐도의 패미컴은 아타리 쇼크 이후 위축된 북미 게임 시장을 장악했다. 당시 닌텐도는 논란을 피하고자 신체 훼손이나 죽음 등의 자극적 요소가 담긴 게임을 출시하지 않았다. 잔혹한 게임들은 아케이드 게임으로는 계속 나왔지만, 거실을 장악한 패미컴으로는 이식될 수 없었기에 애초에 개발조차 시작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개발자 에드 분(Edward John Boon)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에드에게 게임 개발은 하나의 창조였다. 창조 행위에 제한이 없듯, 게임 개발도 그래야 했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든든한 친구 존 토비아스(John Tobias)와 함께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기로 한다.

에드는 개발팀과 함께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빅 트러블(Big Trouble)〉부터 동양을 다룬 코믹스와 서적을 탐독하며 홍콩과 중국, 일본의 고대 문화와 무술을 연구했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수많은 필멸자(Mortal)가 영원히 싸우는(Combat) 동양풍의 아웃 월드(Out World)다. 차별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모탈 컴뱃〉은 인기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2〉와 차별화를 하기 위해 ‘실사 모션 캡처’ 방식을 도입한다. 움직임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찍고, 이를 빠르게 전환하는 방식이었지만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했다.

존이 말했다. “완벽한 승리를 느끼게 해줄 순 없을까?” 격투 게임에서 한 대도 맞지 않고 승리하는 완승(퍼펙트) 같은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던 중 나온 질문이었다. 에드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별화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중요한 키워드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 맞아. 완벽한 승리… 상대방을 완전히 보내 버리는 방법을 도입하자.”

에드는 세 명의 팀원을 불러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했다. 승패가 결정된 후 상대방을 죽일지 말지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이 기술을 비밀처럼 감춰 둔다면 유저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라 내다봤다. 이 기능이 바로 ‘페이탈리티’였다. 개발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게임성에 대한 업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스트리트 파이터2〉에 익숙한 유저들은 완전히 다른 모습의 〈모탈 컴뱃〉에 동전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 잡지에 상대방을 완전히 보내 버릴 수 있는 비밀 기술의 존재가 드러나자 이를 확인하기 위한 유저들의 발걸음이 기기 앞으로 몰리며 순식간에 화제작에 올랐다. 페이탈리티 기능 덕분에 〈모탈 컴뱃〉은 없어 못 팔 정도의 게임이 된다. 하지만 곧 페이탈리티는 여러 단체의 표적이 됐다.
〈모탈 컴뱃〉의 페이탈리티 장면 ⓒNetherRealm Studios
1993년 12월 미국의 정치인 조 리버먼(Joe Liberman) 상원의원은 〈모탈 컴뱃〉의 폭력성이 아이들을 병들게 할 것이기 때문에 게임의 유통과 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이 정치판 한가운데에 선 첫 번째 사례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게임의 화제성만 키워주는 꼴이 됐다. 〈모탈 컴뱃〉은 ‘슈퍼 패미컴’과 ‘메가 드라이브’ 같은 거치형 게임기를 포함해 20여 개의 플랫폼으로 이식됐다. 페이탈리티나 선혈 효과를 제외한 클린 버전이 나오기도 했지만, 개발사가 숨겨 놓은 또 다른 비밀 커맨드로 원작과 동일한 형태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 에드와 동료들은 1편 성공을 바탕으로 후속작 개발에 착수한다.

잔혹성 때문에 화제가 됐지만 〈모탈 컴뱃〉의 성공에는 여러 비밀이 존재한다. 〈스트리트 파이터2〉와는 철저히 다른 방향으로 제작돼 서양식 격투 게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고, 기존 게임들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한 시도로 무수한 격투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공중 콤보 도입, 가드 버튼 사용과 숨겨진 캐릭터 등장, 스테이지를 활용한 사망 신 연출, 꼼수 플레이를 방지하는 제한 요소도 모두 〈모탈 컴뱃〉에서 처음 선보인 기능이었다. 〈모탈 컴뱃〉 이후의 격투 게임은 싸워 이기는 걸 넘어서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게 됐다. 이후 〈모탈 컴뱃〉 시리즈는 〈철권〉과 〈버추어 파이터(Virtua Fighter)〉와 같은 유명 격투 게임의 등장과 1인칭 슈터 게임의 강세에 점차 인기를 잃어 간다. 64명의 캐릭터가 나오는 〈모탈 컴뱃: 아마게돈(Mortal Kombat: Armageddon)〉의 실패 이후 유통사 ‘미드웨이(Midway)’가 도산하면서 2008년 출시한 〈모탈 컴뱃 vs DC유니버스(Mortal Kombat vs. DC Universe)〉를 끝으로 사라지게 됐다. 획기적이었던 〈모탈 컴뱃〉의 성공은 〈둠〉과 같은 아류작의 탄생을 견인했다. 성인을 겨냥한 게임이 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게임의 폭력성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다양한 국가의 게임 수입 심사가 까다로워지기도 했으며, 이후의 수많은 심의 제도의 탄생을 이끌었다.

 

폭력이라는 예술 〈둠〉


1993년 12월 10일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University of Wisconsin)의 파크사이드 전산망을 통해 배포된 〈둠(DOOM)〉은 1990년대 게임 문화를 바꾼 터닝 포인트다. 〈둠〉은 게임 개발 스튜디오인 ‘이드소프트웨어(id Software)’의 존 카맥 (John D. Carmack)과 프로그래머 존 로메로(John Romero), 게임 디자이너 샌디 피터슨(Sandy Petersen)이 제작한 1인칭 슈터 게임이다. 시작은 1992년 출시된 슈터 게임 〈울펜슈타인 3D (Wolfenstein 3D)〉였다. 존은 게임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빠른 렌더링, 높낮이 표현, 제한 없는 텍스쳐 매핑이 가능한 새로운 엔진 개발에 나섰다. 이 엔진이 바로 2000년 후반까지 꾸준히 사용된 ‘이드 테크(id Tech)’ 엔진이었다. 〈둠〉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에일리언ALIEN〉의 공상과학적 요소와 영화 〈이블데드2(The Evil Dead 2)〉를 결합해 기획했다. 1년에 걸친 개발과 38시간의 테스트 후, 〈둠〉은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기 시작했다.

〈둠〉의 인기는 미국을 집어삼켰다. 가정은 물론 대학, 회사까지 모든 곳에서 〈둠〉을 만날 수 있었고, 〈둠〉이 설치된 플로피 디스크는 여러 손을 거쳐 한참 뒤에나 돌아왔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몰래 설치한 〈둠〉을 찾아 지우는 프로그램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둠〉을 일약 스타로 만든 건 게임 매장이 아닌 정치판이었다. 1980년대의 게임들은 순수했다. 기술 구현 자체에 흥미를 느꼈고, 영화나 현실 속 요소를 낮은 성능에서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둠〉은 달랐다. 악마의 지배를 받는 화성 기지에는 제물이 된 사람들의 사체가 가득했고, 악마에 씐 군인들은 서로를 공격했다. 주인공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드는 괴이한 모습의 악마들과 피가 낭자한 장면은 강렬한 자극을 원하던 유저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둠〉 게임 화면 ⓒid Software
잔혹한 영화나 공포 소설은 흔했지만 〈둠〉은 극대화된 몰입을 선사했다. 1인칭 시점으로 직접 공포를 체험할 수 있었고, 현실적인 그래픽과 강렬한 배경 음악은 실제로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 던져진 듯한 감각을 선사했다. 지옥에서 살아남느라 바쁜 유저들을 보며 정치권은 이 게임을 쟁점화시켰다. 〈둠〉의 폭력성은 매일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했고 잔인하다는 이유로 정치인과 학회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결국 1994년, 게임 유통사의 자발적인 자율 심의 기구인 ‘ESRB(Entertainment Software Rating Board)’가 등장하게 된다. 1999년에는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2]의 범인들이 〈둠〉의 열광적 팬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잔인한 게임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잔혹한 표현을 내세우는 게임은 〈둠〉뿐만이 아니었다. 한 해 앞서 출시된 아케이드 게임 〈모탈 컴뱃〉이나, 1988년 출시된 〈스플래터 하우스 (Splatterhouse)〉, 1986년도에 나온 〈칠러(Chiller)〉가 보여 준 폭력성은 〈둠〉 못지않게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둠〉이 다른 게임과 달리 직격탄을 맞은 이유는 화제성 때문이었다. 〈둠〉이 보이는 원색적인 폭력성은 단순하지 않았고 화려했으며 어떤 순간에는 예술적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많은 개발자가 앞다투어 〈둠〉을 벤치마킹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둠〉의 단순하지 않은 잔혹함은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이었다.

그 화제성 덕분에 〈둠〉은 모든 게임의 폭력성을 이끈 군주가 됐고 비난의 화살을 막는 방패가 됐다. 그러나 이 게임이 추구한 창조적 포인트는 폭력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둠〉은 1인칭 슈팅(FPS・First Person Shooter)을 규정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해 시야를 움직이고, 점프로 높낮이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고정된 시점에서 벗어난 새로운 영역을 끌어 냈다. 〈둠〉 이후 1인칭 슈팅 게임은 하나의 장르로 정착한다. 1990년대 후반에는 완전한 3D 형태의 1인칭 슈팅 게임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때의 게임들은 〈둠〉의 아류작, 클론 이미지에서 벗어나 각자만의 개성을 가진 작품들로 발전하며 게임 시장 성장의 황금기를 주도했다.
〈스플래터 하우스〉 게임 화면 ⓒBandai Namco Entertainment Inc.
하지만 이 모든 결과물도 〈둠〉이 이룩한 업적을 이길 수 없었다. 정치와 교육,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둠〉은 꾸준한 시리즈를 배출하며, 현재까지도 명성을 지켜오고 있다. 2009년 ‘제니맥스미디어 (ZeniMax MEDIA)’로 인수된 이드소프트웨어는 2020년 마이크로소프트의 품에 안긴다. 자리는 바뀌었지만 〈둠〉의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2017년에는 시리즈 첫 VR(Virtual Reality・가상 현실) 게임 〈둠 VFR〉이 출시됐고, 〈둠 이터널〉은 첫 한글 자막으로 2020년 3월 국내에 출시됐다. 현재 이드소프트웨어는 또 다른 FPS 게임인 〈퀘이크〉 시리즈 리부트를 개발하고 있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판도를 바꾼 〈동급생〉


1992년 12월 게임 업체 ‘엘프 ELF’가 출시한 비주얼 노벨 게임 〈동급생〉은 아시아 성인 게임 판도를 바꿨다. 첫 출시 당시 일본에서 10만 장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는데 이는 PC용 성인 게임으로는 최초였다. 이 게임의 성공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의 탄생을 알렸고, 〈두근두근 메모리얼〉과 같은 후속작의 탄생을 이끌었다.

〈동급생〉의 탄생은 급격히 변화하던 당시의 일본 사회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80년대 말,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침체기에 빠졌다. 1985년 진행된 플라자 합의(Plaza Agreement)[3]로 인해 엔화 가치가 상승하며 해외 합작이 크게 줄었던 탓이다. 방송국은 캐릭터 상품을 제작하기 쉽고 성공 가능성이 큰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주력하기 시작하면서, 만화 작화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분야의 구직난이 심화했다. 이들이 살기 위해 눈을 돌린 곳은 게임 외주나 하청 작업이었다. 1983년 패미컴의 인기는 많은 작화가들의 터전이 됐고, 이들은 패키지와 매뉴얼, 포스터 같은 작업물을 통한 수익으로 비수기를 이겨 낸다. 게임 전문 작화가 등장한 시점도 이때다.

그중 일부는 자신의 원화로 게임을 만들어 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마니아를 대상으로 판매되는 애니메이션인 OVA(Original Video Animation), 〈로도스도 전기〉로 잘 나가던 타케이 마사키도 그랬다. 시장의 변화를 느낀 그는 당시를 “애니메이션보다 게임의 시대”라고 말한 후 그간 쌓아온 포트폴리오를 들고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인다. 타케이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곳은 ‘재팬 홈 비디오 (Japan Home Video)’였다. 재팬홈비디오는 1991년 ‘가이낙스 (GAINAX)’에서 출시해 대박을 터뜨린 〈프린세스메이커(Princess Maker)〉와 흡사한 육성 게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른 게임과의 차별화를 위해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재팬 홈 비디오 측은 다섯 명의 여학생을 교육해 무사히 졸업하게 만드는 내용의 기획안을 보여 줬고 타케이는 흔쾌히 원화를 그려 나간다. 이렇게 탄생한 게임이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끈 〈졸업(卒業·Graduation)〉이다. 참신한 게임성과 타케이의 미려한 작화는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높은 판매량은 물론, 큰 화제를 부르며 드라마 CD[4]와 라이트 노벨, 애니메이션으로 미디어 믹스됐다.

타케이가 그린 원화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졌는데 많은 게임사가 앞다투어 원화를 요청할 정도였다. 그때 타케이의 눈에 들어온 기획안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엘프의 〈동급생〉이었다. 성인 게임이라는 셀링 포인트와 독특한 스타일의 게임성은 타케이를 매료시켰다. 개발진도 화답했다. 타케이가 그린 원화 느낌을 제대로 내기 위해 개발진이 심혈을 기울여 구현한 도트 이미지는 최고 수준이었고, 게임의 화사한 분위기는 퇴폐적인 느낌의 다른 성인 게임들과 달랐다. 이 요소들은 〈동급생〉 판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성인 게임이지만 밝은 느낌과 아름다운 원화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다.
〈동급생〉 윈도우 버전 게임 화면 ⓒDMM
게임성도 독특했다. 기존 성인 게임들은 문제를 맞히거나 미니 게임을 이기면 선정적인 이미지를 보여 주는 식의 단순한 진행이 많았다. 이와 달리 〈동급생〉은 실제 데이트를 하듯 반복적으로 만남을 이어 나가고, 상대의 일정을 파악하는 등의 현실적인 재미를 담았다. 실제 연애처럼 캐릭터들을 공략해야 했고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이벤트를 놓치면 여성 캐릭터와 헤어져야 했다. 마치 연애 소설을 읽는 듯한 수려한 문장, 그리고 마우스로 캐릭터의 반응을 볼 수 있는 ‘포인트 클릭’ 요소도 인기가 많았다. 〈동급생〉의 초기 설정은 평범한 성인 게임이었다. 개발사 대표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히루타 마사토는 타케이의 원화를 보고 “이 그림으로 이딴 게임을 만드는 건 작화가에게 실례다!”라고 성토하며 캐릭터마다 배경과 이야기를 부여했다. 캐릭터의 다양한 감정선을 살릴 수 있는 사건 전개가 더해지며 지금 모습의 〈동급생〉이 탄생했다.

〈동급생〉의 성공으로 엘프는 최고의 성인 게임 개발사로 등극한다. 〈동급생〉의 인기는 본격적인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의 황금기를 열었다. 성공작 중에는 ‘코나미’를 대형 게임 개발사로 성장시키는 데 일조한 〈두근두근 메모리얼〉이 있다. 이 게임은 최초의 전 연령 대상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PC로 출시 후 큰 성공을 거두고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의 ‘새턴’ 등의 유명 기종으로 이식됐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황금기는 ‘디지털 연애’의 시작이자, ‘오타쿠’라 불리는 팬덤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이기도 하다. 〈동급생〉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게임의 장르를 다양화하고, 다채로운 방식의 2차 콘텐츠 생산을 이끈 주인공이었다.

 

성인만을 위한 블랙 코미디 〈레저슈트 래리〉


한편 미국에서는 못생긴 얼굴에 탈모가 있는 40대 남성의 이야기로 성인 게임 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있었다. 바로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의 어드벤처 게임 〈레저슈트 래리(Leisure Suit Larry in the Land of the Lounge Lizards)〉다. 시에라 엔터테인먼트는 성인 게임에 대한 수요와 시장성을 봤던 개발사였다. 이들이 준비하던 후속작은 전작인 노골적인 성인 게임, 〈소프트포르노 어드벤처(Softporn Adventure)〉와 달라야 했다. 시에라의 대표였던 켄 윌리엄스(Ken Williams)의 고민은 내부 개발자에게도 퍼졌다. 이야기를 접한 인물 중에는 프로그래머 앨 로(Al Lowe)도 있었다. 앨은 공립 학교의 음악 교사로 살다가 1982년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워 시에라에 들어온 유쾌한 성격의 괴짜였다. 고심 끝에 켄의 사무실에 온 앨은 긴장된 모습으로 며칠에 걸쳐 만든 기획서를 내밀었다. 키 작고 못생긴 탈모가 있는 40대 노총각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녀를 찾는 내용의 기획안이었다. 켄은 앨의 기획이 은유적이면서도 과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1987년, 텍스트 타이핑 어드벤처 〈레저슈트 래리〉가 탄생한다. 주인공인 래리가 여성을 유혹하면 게임은 완료된다. 평범한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보이지만 게임의 단면들은 〈레저슈트 래리〉가 어쩌다 미국 전역에서 논란과 화제를 불렀는지를 보여 준다. 게임 속에는 매춘부의 실상부터 형편없는 치안, 그리고 각종 화장실 유머와 성적 농담이 진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수위 높은 농담과 은유적 표현은 덤이었다. 출시 당시 〈레저슈트 래리〉의 판매량은 저조했다. 광고가 어려웠던 탓이다. 아타리 쇼크 이후, 빚어진 자극적인 게임에 대한 논란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게임 소매점들도 항의를 의식해 제품을 전시, 판매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레저슈트 래리〉의 첫 달 판매량은 4000장 정도였다.

그러나 입소문의 힘은 셌다. 거칠지만 유머러스하다는 호평은 〈레저슈트 래리〉의 판매량을 견인했다. 판매량은 빠르게 상승해 그해 말 25만 장을, 다음 해엔 30만 장을 올린다. 앨의 노력으로 후속작은 꾸준히 나왔고, 후속 7편인 〈러브 포 세일!(Leisure Suit Larry: Love for Sail!)〉까지 누적 판매 200만 장 이상을 기록했다. 원작자인 앨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래리〉를 상징하는 그림체는 사라지고 노골적인 노출이 포함됐으며, 은유적인 표현이나 사회 문제를 보여 주는 블랙 코미디 대신 지저분한 성적 농담이 담겼다. 신작 〈마그나 쿰 라우데(Leisure Suit Larry: Magna Cum Laude)〉는 완전히 실패했다. 허술한 게임성과 망가진 캐릭터, 그리고 본래의 매력인 블랙 코미디가 사라지자 〈래리〉 시리즈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앨 이후의 개발자들이 〈레저슈트 래리〉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지 못한 탓이었다. 〈레저슈트 래리〉는 그저 선정적인 성인 게임을 넘어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은유적으로 접근한 작품이었다. 코미디는 당시의 시대상을 담는 일종의 방법론이었다. 이러한 사회 비판적 요소는 그간의 게임에는 부재했던 것이었다.
〈레저슈트 래리2〉 게임 화면. 성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보단 은유적이나 감성적인 연출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Assemble Entertainment
〈래리〉 시리즈는 현대 사회의 모순과 불편한 문제를 다룬 성인 게임의 등장을 이끌며 게임이 사회문화적인 콘텐츠로 소비될 수 있다는 지점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게임의 구매자 중 40퍼센트가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성인 게임이 남성 타깃의 콘텐츠였음을 생각하면 〈래리〉의 등장은 시장의 변화를 주도한 시도였다.
[1]
페이탈리티는 〈모탈 컴뱃〉 게임의 핵심 요소다. 싸움에서 승리한 후 그로기에 빠진 상대에게 특정 커맨드를 입력하면 상대를 무참히 죽일 수 있는 기능이다.
[2]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의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교내 총격과 폭탄 테러 미수 사건. 이 사건으로 12명의 학생과 교사 1명이 살해당했고 21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1990년대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기록됐다.
[3]
1985년 9월 22일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의 재무장관이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진행한 합의. 미국이 인위적으로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려 다른 나라 화폐, 특히 일본 엔화의 가치를 올린 일종의 환율 조정 합의다.
[4]
드라마 CD(Drama CD)는 일본 내 하위문화인 오디오 드라마를 뜻하는 말이다. 게임이나 소설, 애니메이션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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