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올림픽의 의미

6월 22일, explained

스페셜올림픽이 열렸다. 스포츠 워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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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간 6월 17일 스페셜올림픽 하계대회가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했다. 세계 최대 발달장애인 국제 스포츠 대회로, 190개국의 70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한국 선수단 150명은 26개 종목 중 12개 종목에 출전한다. 개막 사흘째인 20일, 역도의 최재하·이은서 선수, 육상의 정선정 선수가 ‘승리자’로 시상대에 올랐다.

WHY NOW

스페셜올림픽엔 우승자가 없다. 경쟁보다 도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금은동이 아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승리자라고 칭한다. 국기를 게양하지도 국가를 부르지도 않는다.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의의를 두는 근대 올림픽의 정신은 현대에 들어와 변질됐다. 자본과 국가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스페셜올림픽은 스포츠 워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스페셜올림픽

그간 관심 밖에 있었지만 역사가 깊다. 1968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시작해 올해로 16번째 대회다. 2년마다 하계·동계 대회를 번갈아 개최한다. 지적·자폐성 장애인(발달 장애인)들만 참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패럴림픽과 다르다. 운영 방식도 다르다. 대표팀 선발은 추첨 방식으로 이뤄지며, 경기 결과도 순위가 아닌 순서로 나눈다. 1,2,3위가 아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승리자라고 부르는 식이다. 참가자 모두가 시상대에 올라 메달과 리본을 받는다. 경쟁보다 도전,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춘 올림픽이다. 때문에 국기 게양, 국가 제창 등의 행사도 없다.

장애인의 운동권

발달 장애인이 유일한 플레이어로 나서는 자리, 그것이 스포츠 행사라는 점도 중요하다. 2022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32가지 권고 사항을 전달했다. 그중 30번째가 문화, 여가, 체육 활동에 대한 접근성 향상이었다. 장애인의 운동 기능 저하는 비만, 심혈관질환 등 2차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비장애인보다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한 2022년 장애인 생활체육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은 26.6퍼센트에 불과했다. 장애유형별 비율을 살피면, 그중 발달장애인은 20.3퍼센트였다.

올림픽의 의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은 스포츠 대회 중 유일하게 스페셜올림픽에 ‘올림픽’이라는 명칭 사용할 수 있게 허락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스페셜올림픽은 운동 능력이 없어도 참가할 수 있다. 1896년 첫 근대 올림픽의 막을 올릴 당시, 올림픽은 아마추어리즘을 강조했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가 아니라 참가하는 것에 있다”며 프로 선수의 참가를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6년 스위스 로잔 총회에서 아마추어리즘을 강조한 규정이 바뀌면서 프로 선수 참가가 허용됐다. 그리고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부터 주관 방송국과 스폰서들이 큰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IOC 총수입의 약 90퍼센트를 방송중계권과 스폰서가 차지하게 되면서 대회의 취지가 상업적 이익이 됐다. 그 결과, 올림픽은 사람들에게 참여하는 스포츠가 아닌 관람하는 스포츠가 됐다.

돈과 스포츠

관람하는 스포츠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1995년 5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스포츠의 경제적 효용을 인정하는 선언이 나왔다. 제8회 유럽스포츠각료회의에서 “스포츠는 유럽 각국의 경제활동에서 점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경제발전에 기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리스본 선언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각 나라가 스포츠에 대한 투자는 ‘건전한 투자’라고 의견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상업화로 인해 자본이 경기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건전하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상황을 볼 수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6위를 기록한 영국은 다음 해 바로 정부 기구인 영국체육(UK Sport)을 만들었다. 5890만 파운드를 예산으로 편성했고 다음 올림픽에서 종합 10위로 올라섰다. 영국도 처음부터 올림픽에 돈을 쏟은 것은 아니었다.

스포츠 엘리트주의

그전까지 영국은 아마추어리즘을 중시하는 나라였다. 종합순위에 연연하지 않았고, 국가적인 지원도 없었다. 하지만 이를 기점으로 영국의 스포츠는 성과주의로 흐르기 시작했다. 영국체육은 무조건 메달 수상 가능성이 있는 종목에 예산을 우선 지원한다고 고집했다. 성적 위주로 후원금을 배당하고 심사했다. 국가와 자본이 개입하며 스포츠 엘리트주의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981년 88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전두환 정권은 국가총동원령을 내렸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자본이 기업으로부터 나왔다. 재벌 회장들을 차출해 비인기 종목을 하나씩 지원하도록 했고, 소수의 선수가 어릴 때부터 전문 지도자로부터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 스포츠 엘리트주의가 자리 잡았다.

정치와 스포츠

스포츠 엘리트주의는 정치적 산물이다. 전두환 정권은 국내 정치로부터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해 스포츠를 활용했다. 이처럼 권위주의 정부에 스포츠가 이용되는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중국의 ‘스포츠 워싱’과도 멀지 않다. 2021년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3억 500만 파운드, 우리 돈 약 4600억 원에 영국 프로축구의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했다. 이후 뉴캐슬은 24년 만에 2022-2023 카라바오컵(리그컵) 결승에 진출했다. 인권 탄압으로 논란이 됐던 카타르는 월드컵을 강행했고, 후원사엔 중국 기업이 가장 많았다. 2022년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아담 샤르프 교수진의 연구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8퍼센트에 불과하던 권위주의 국가의 스포츠 이벤트 비율이 2022년 37퍼센트로 증가했다.

나비 효과

문제는 스포츠 워싱의 효과가 이미지 개선에만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위주의 정권에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 준다. 대표적으로 2012년 소치 동계 올림픽이 그렇다. 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 국영기업 올림프스트로이(Olympstroy)는 경기장 관련 건설을 따내고, 올림픽 운영 과정을 관리했다. 이렇게 결집된 노동력은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영토 크름 반도로 향했다. 크리미스트로이(Krymstroy)로 이름을 바꿔 전쟁 사후 관리에 나서고 있다. 워싱턴 대학교의 로버트 오퉁 교수는 “소치 올림픽은 러시아의 무자비한 프로파간다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IT MATTERS

지금의 스포츠 행사에서 시민들은 관중으로 밀려나 있다. 그렇다고 선수가 주인공이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스포츠를 쥐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스포츠 엘리트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이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을 의미한다. 국민생활체육협의회는 생활체육을 이렇게 정의한다.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며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각 개인의 자발적인 참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노력의 총체.” 다시 말해, 중요한 건 당사자성이다.

발달장애인 문제에서도 당사자성이 등장한다. 장애 관련 이슈에서 발달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는 접하기 쉽지 않다. 보호자 역할을 하는 부모 단체가 대변하기 때문이다. 2013년 국내 최초로 성인 자폐 당사자 자조모임 ‘에스타스(estas)’가 만들어진 후, 우리나라 발달 장애인 당사자 운동은 아직 초기 단계다. 2022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발달 장애인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정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발달 장애인, 신경 장애인은 장애인 정책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자리에서도 소외되는 상황이다. 

반면, 발달 장애인이 당사자로 나서는 스페셜올림픽은 6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선수단과 자원봉사자를 합쳐 총 2만 5000여 명의 인원이 참여한다. 자본도 국가도 없이 이 정도 규모로 유지되는 스포츠 행사로서는 유일하다. 스포츠의 본질의 의문을 던지며,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셜올림픽은 상업주의 스포츠와 민족주의 스포츠에 대한 저항 운동이다. 스페셜올림픽을 단순한 포용의 축제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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