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새로운 난민

6월 26일, explained

현대 사회의 난민은 국경에서만 탄생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그리스 해안에서 난민선이 침몰했다. UN은 최소 79명이 사망했으며 최대 500명이 실종 상태라고 밝혔다. 원인은 과밀이다. 추적기도 달리지 않은 배에 700여 명이 탔다. 《가디언》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파키스탄 국적자는 배가 침몰할 때 생존 가능성이 낮은 갑판 아래층으로 밀려났다. 승조원이 파키스탄인을 학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생존자 104명 중 파키스탄인은 12명에 불과하다. 난민선에 탄 난민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었다. 그 내부에조차 정착하지 못한, 또 다른 층위의 난민이 존재했던 셈이다.

WHY NOW

세계가 달라졌다. 난민의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 1951년 제네바 협약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유대인의 국경 이동을 근거로 난민의 지위를 정의했다. 이로부터 72년이 흘렀다. 현대의 난민은 국적으로, 민족으로, 국경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제도와 환경,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상시적 전쟁 상태가 이들을 난민으로 내몬다.

비자발적 이주

UN난민기구는 난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어 자신의 나라를 떠나 국경을 넘은 사람이나 분쟁 혹은 일반화된 폭력 사태로 인해 고국을 떠나 돌아갈 수 없는 사람.” 이처럼 난민은 인류의 자연스러운 이동과는 거리가 멀다. 내전과 분쟁, 박해라는 비자발적 요소가 난민을 만들기 때문이다. 난민은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통제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에 비호국은 난민을 이유 없이 추방할 수 없다.

난민의 기준

UN난민기구가 정의한 모든 요건을 충족해도 ‘난민’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1951년의 제네바 협약은 유럽 내에서 발생하는 난민에만 한정된 것이었다. 1967년 이 기준은 비로소 전 세계로 확대되지만, 당시의 논의 역시 냉전에 치우쳐져 있었다. 난민으로 인정하는 기준 자체가 시대적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기준의 모호함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기 미국에서 부각됐다. 2018년 6월, 당시 제프 세션스(Jefferson Sessions) 미국 법무부 장관은 “가정 폭력이나 범죄 조직의 위협 등은 망명 허용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망명이 가능한 출신지, 박해의 정의는 정치인과 그 셈법에 따라 달라진다.

의료 난민

현재, 비자발적 이주의 원인은 노골적인 무력 전쟁과 불량 국가의 탓만이 아니다. 각국의 속셈이 복잡해지고 지역의 손익 계산이 철저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난민이 출현했다. 지난 3월 8일, 멕시코로 의료 관광을 떠난 미국인 네 명이 북동부 지역에서 납치됐다. 이 중 두 명이 사망했다. 이들만이 아니다. 매년 멕시코로 의료 관광을 떠나는 미국인은 연간 백만 명에 이른다. 이유는 1인당 1만 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의료비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위험성을 알지만 이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이동은 의료 ‘관광’이라기보다는 의료 ‘피난’에 가깝다. 지금 한국에서도 ‘응급실 표류’ 사태가 연일 뉴스에 오른다. 이들은 도심 거리에 멈춰 있을 수밖에 없는 의료 난민이다.

기후 난민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개발도상국, 지대가 낮은 남태평양 섬나라는 대량의 기후 난민을 낳고 있다. 경제평화연구소는 200년까지 기후 위기 등으로 인해 1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집을 잃을 위험에 처할 것이라 예측했다. 먼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 한국을 덮쳤던 태풍 ‘힌남노’는 라니냐로 인해 발생한 태풍이었다. 보통의 태풍과는 경로도, 만들어진 곳도 다른, 돌연변이였다. 예측 불가능한 기상 현상은 늘어날 전망이다. 그 피해 범위와 규모도 예상하기 어렵다. 기후 난민의 탄생은 이미 예견된 미래다.

제도 난민

미국의 칼럼니스트 찰스 블로우(Charles Blow)는 미국의 LGBTQ를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난민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 시행 중인 반(反) LGBTQ법률이 그 원인이다. 플로리다주의 한 입법 보좌관은 해당 법안의 위험성을 우려하며 뉴햄프셔주로 자리를 옮겼다. LGBTQ인 부모 1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모의 56퍼센트는 플로리다에서 이주할 것을 고려했고, 16.5퍼센트는 실제 이주 조치를 취했다. 현재 미국에서 의회에 발의된 반 LGBTQ 법안은 540개가 넘는다. 지난 5월까지 45개의 법률이 제정됐다. 낙태 금지법으로 인해 불법 수술을 찾아 다니는 여성,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자영업자도 제도 난민의 일종이다. 이들은 적대적인 제도로 인해, 때로는 그들을 못 본 체한 제도로 인해 비자발적 일시적 난민 상태를 경험한다.

전쟁 상황

1951년 제네바 협약이 정의한 난민의 핵심은 ‘전쟁 상황’에 놓인 이들이었다. 현대의 전쟁은 국가와 국가 간의, 민족과 민족 간의 전쟁만이 아니다. 지난 3월, 미국 상원은 이라크 침공과 관련해 승인했던 대통령의 무력사용권을 폐지했다. 미국은 2001년의 9.11 테러를 넘어섰다. 그렇다고 전쟁이 끝난 건 아니다. 지금 미국이 마주한 전쟁 상황은 자국 내에서 발생하는 총기 난사 테러다. 보건 정책을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 ‘KFF’에 따르면 미국인의 15퍼센트가 총기로 인해 살던 지역을 떠났다.

기술과 난민

망명 과정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기계 번역의 발전이 한 사례다. 미국의 이민 시스템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통해야 하지만, 소수 언어를 사용하는 원주민의 경우 소통이 쉽지 않다. 메이저 언어를 구사하는 변호사가 없는 망명 신청 이민자의 승소율은 13퍼센트에 불과한 반면, 변호사가 있는 난민의 승소율은 74퍼센트였다. 이 난점을 타파하는 기술로 기계 번역이 사용된다. 저렴한 비용과 높은 접근성이 장점이다. 반면 기계 번역 훈련을 위한 대규모의 데이터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 사소한 오류도 망명 신청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논의된다. 실제로 한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경우, 번역기가 ‘나(I)’를 ‘우리(We)’로 표현해 난민 자격을 얻지 못한 경우가 발생했다. 상황이 다양해진 만큼, 망명과 난민에도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 모든 망명은 매년, 매일, 매 순간 다른 경험이다.

IT MATTERS

2022년의 난민은 1억 840만 명이었다. 지구에 사는 사람 74명 중 한 명이 비자발적으로 도망친 수준이다. 의료 체계의 붕괴, 심화하는 기후 위기 등으로 인해 미래의 난민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난민의 증가는 위기지만, 한편으로 비호국에게는 기회이기도 하다. 난민의 이동은 일차적으로 각국의 인구 통계학적 불균형을 조정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 난민은 정체된 국가에 새로운 사고방식과 성장 동력을 제시하는 가치 있는 연료이기도 하다. 미국 인구 중 이민자는 15퍼센트이지만, 기업 대표 중 이민자는 25퍼센트에 이른다. 위험을 감수했던 경험, 다양한 배경에서 쌓은 노하우가 그 이유로 거론된다.

소수자 권리를 보호하는 비영리 단체 ‘AHA 재단’의 설립자 아얀 히르시 알리(Ayaan Hirsi Ali)는 “이민자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얀은 난민 심사에 있어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출신지, 망명 동기를 평가하기보다, 그들이 꾸릴 새로운 삶과 그를 위한 적응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자는 의미다. 난민을 평가했던 기성의 세계는 그간 중요하지 않은 것에만 집중했을지 모른다. 모두가 안전한 미래를 위해 난민의 정의는 더 넓어지고, 또 세심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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