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공급 과잉인데 비싼 이유

2023년 7월 4일, explained

말레이시아에 ‘할랄’ 한우를 수출한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자 가격은 그대로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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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보차 내한한 톰 크루즈의 회식 메뉴가 화제다. 톰 크루즈는 서울 강남의 한 고깃집에서 약 500만 원을 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뉴는 한우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채끝살 짜파구리’도 식탁에 올랐다. 이름을 알린 한우는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7월 2월, 한우 2.5톤을 실은 배가 인천항을 출발했다. 앞으로 3년 동안 한우 1875톤이 말레이시아로 수출될 예정이다. 역대 최대 규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기념행사를 열었다.

WHY NOW

한우 업계엔 그야말로 경사다.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격 폭락을 겪고 있는 한우업계에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한우업계의 위기를 알지 못한다. 마트에서 보는 한우 가격이 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농민과 소비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우 가격의 48퍼센트는 유통 과정에서 나온다. 폭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농축수산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먹거리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할랄 한우

7년 만에 이뤄낸 계약이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다. 이슬람 국가에 식료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신도에게 ‘허용된 것’을 뜻하는 할랄 인증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이를 얻기 위해 7년 동안 말레이시아와 검역 협상을 벌였다. 2023년 2월, 할랄 인증 기관 자킴(JAKIM·이슬람개발부)이 한국에 방문해 도축작업장에 대한 실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3월, 국내 최초 할랄 도축장을 승인했다. 할랄 시장 인구는 19억 명으로 추산된다. 한우는 말레이시아를 교두보 삼아 할랄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아랍에미리트와는 검역 협상을 마친 상황이다.

공급 과잉

한우업계는 수출 판로 넓히기에 힘쓰고 있다. 지금 한우업계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한우 공급 과잉 우려가 제기돼 왔다. 그러다 코로나19 시기 집밥 수요와 함께 육류 소비가 상승했다. 그러면서 한우 농가의 사육두수가 늘었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올해 한우 사육 마릿수는 역대 최고치인 356만 마리를 기록할 전망이다. 팬데믹의 반사이익을 본 한우업계에 엔데믹은 직격탄이었다. 한우 소비가 다시 하락세를 보이자 도매가격도 영향을 받았다. 2023년 상반기 한우 1등급 평균 도매가격은 킬로그램당 1만 5067원이었다. 지난해보다 약 17퍼센트 낮다.

한우와 금리

엔데믹과 더불어 높은 물가, 높은 금리가 이어지며 사람들이 지갑을 닫은 것이다. 한우는 소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김민경 건국대 식품유통공학과 교수는 한우고기의 재화 성질이 필수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던 때, 한우 가격은 강세를 보였다. 같은 시기 돼지고기 가격은 하락했다. 한우는 여유가 있으면 사 먹는 사치재라는 뜻이다. 실제로 한우 외식은 줄었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의 2022년 한우고기 소비 동향 모니터링 조사에 따르면, 한우 외식 시 1인당 지출 비용이 전년 대비 14.5퍼센트 감소했다.

도매가와 소매가

농가는 가격 폭락에 비상이 걸렸지만, 소비자에게 한우는 여전히 비싸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우 1등급 안심 100그램은 1만 2433원에 팔렸다. 지난해보다 약 10퍼센트 떨어졌다. 소비자들이 접하는 한우 가격은 큰 차이가 없다. 유통 구조 때문이다. 한우는 농가에서 소비자에게 닿기까지 보통 8단계를 거친다. 도축, 발골, 정형, 운송 등 단계마다 인건비가 붙는다. 소비자 가격을 100퍼센트로 친다면, 그 중 48퍼센트가 유통 비용이다. 소비자는 비싼 값을 주고 사지만 농가의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유통 구조

유통 과정을 줄이면 문제가 해결될까? 농산물과 달리 축산물 유통 과정에는 도축과 정형이라는 단계가 있다. 이 과정을 없앨 수는 없다. 어떤 단계에서 흡수하느냐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산지에서 직송된 한우를 대형마트에서 판다고 해도, 대형마트 내 도축·가공 과정에서의 비용이 소비자 가격에 포함된다. 다시 말해, 축산물 유통 비용 절감은 각 단계에 대한 마진을 어떤 유통 주체가 가장 저렴하게 책정하는지에 달렸다. 세분화된 유통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한우업계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논의되는 것은 지원금이나 한우 쿠폰이다. 각각 생산자, 소비자를 위한 것으로 유통 과정에서 비롯된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추적 관리

유럽연합은 자국 먹거리 문제를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라는 푸드 시스템(food system)으로 접근하고 있다. 안정적인 추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육우 협회 스페인 프로바쿠노(PROVACUNO)와 이탈리아의 아쏘카르니(ASSOCARNI)에 따르면, 유럽의 소고기는 농장에서 사육, 도축, 가공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모든 유통 단계의 정보를 관리하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2012년 오리진 그린(Origin Green)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송아지에 여권 ID를 부여해 사육부터 가공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추적한다. 추적 관리를 통해 효율적인 수급뿐 아니라 동물복지, 식품안전도 확보한다.

스마트 데이터

우리나라 축산 구조를 당장 유럽처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기술을 활용해 점진적으로 해결해 볼 수 있다. 단초가 될 만한 기술의 등장도 예고됐다. 유통·물류에 사용되는 바코드의 표준화를 주도해 온 민간 국제표준기구 지에스원(GS1)은 ‘선라이즈(Sunrise) 2027’ 계획을 발표했다. 2027년까지 전 세계 바코드를 2D 바코드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큐알 코드를 말한다. 지금 쓰이는 12자리 바코드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어 효율적인 재고 관리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또 상품의 신선도, 사용법부터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업의 노력 등의 정보까지 소비자에게 전할 수 있다. 여기에 유통 단계의 정보까지 더할 수 있을 것이다.


IT MATTERS

먹거리 시스템은 크게 생산-수송-가공-유통-폐기로 나뉜다. 우리가 먹는 것들은 산지에서 출발해 식탁에 오르기까지 긴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보이는 건 처음과 끝에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뿐이다. 우리 사회가 농촌을 대하는 태도는 ‘6시 내 고향’과 배추값 사이 어디쯤에 있다는 것이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특히나 변동적이다. 공산품처럼 창고에 쌓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격이 급락하면 생산자, 가격이 폭등하면 소비자의 피해로 해석된다. 이 시소게임을 멈추기 위해선 먹거리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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