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는 어떻게 돈을 벌까?

7월 7일, explained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연일 수주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을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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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글로벌 1위 제약사 화이자와 1조 2000억 원대 바이오 의약품 위탁 생산(CMO)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2022년 연결 기준 매출의 무려 40퍼센트에 해당하는 계약 규모다. 단일 계약 기준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역사상 최대 성과다. SK케미칼은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 위탁 생산 이후로 공동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K제약·바이오의 성장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WHY NOW

지금의 세계는 신냉전이 아니다. 기술과 자원의 격돌이다. 북미·유럽 중심의 기술 진영과 신흥국 중심의 자원 진영 사이, 한국은 힘겹게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첨단 산업에서의 제조 기술은 시장도 인구도 자원도 적은 한국의 몇 안 되는 무기다. 윤석열 정부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늘 공언해 왔다. 제약·바이오는 조선,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에 이어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케미컬과 바이오

삼바가 수주를 따냈다는 ‘바이오 의약품’은 뭘까? 제약 산업은 제조 방식에 따라 합성과 바이오로 나뉜다. 합성 의약품은 화학적 합성 반응으로 제조해 케미컬이라 불린다. 고혈압약이나 진통제 등의 약들이 대표적이다. 바이오의약품은 생물체에서 유래된 세포·조직·호르몬 등을 이용해 개발된 생약이다. 백신이나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이 포함된다. 케미컬은 더 범용적으로 쓰이지만 만들기도 쉽고 성장 동력이 다했다. 글로벌 신약 개발의 중심은 바이오로 옮겨가고 있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매출 상위 100대 제품에서 바이오 의약품의 매출 비중은 2018년 이후 5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전체 매출에서도 2020년 33퍼센트, 2021년 38퍼센트로 높게 뛰었다.

반도체와 닮은 제약 산업

인공지능은 핵으로 비유되곤 한다. 제약은 반도체로 비유하면 쉽다. 반도체는 만들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있고 후자는 설계와 생산이 분업화돼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과거부터 등장해 이미 효율화가 잘 되어 있고 만들기가 비교적 쉽다. 시장도 다소 둔화한 상태다. 비메모리 반도체 중 나노 수가 큰 것들도 그렇다. 반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더 복잡한 공정을 요구하고 앞으로 쓰일 일이 많아 성장성이 크다. 산업도 세분화해 있다. 크게는 설계하는 ‘팹리스’, 생산하는 ‘파운드리’로 나뉜다. 한국은 파운드리에 강점이 있다. 여기서 바이오 의약품을 비메모리 반도체로 치환하면 거진 동일하다. 심지어 이 분야에서도 패권주의가 작용한다. 바이오 의약품도 원료 의약품(API)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바이오 패권’ 선언과 동시에 리쇼어링 중이다.

글로벌 제약사(史)

제약·바이오는 파운드리만큼 돈이 되는 산업일까? 글로벌 제약 산업은 1900년대 초중반 아스피린, 모르핀, 항생제 등이 상용화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날고 기는 제약사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2012년을 전후로 ‘특허 절벽(Patent Cliff)’이 찿아 왔다. 주요 바이오 의약품 업체의 특허가 대대적으로 만료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복제약 시장의 비중이 커졌고 메가 히트를 칠만한 신약은 나타나지 않았다. 변곡점은 코로나19가 만들었다. 백신 개발 경쟁과 공급 부족으로 위탁 생산 수요가 늘었다. 엔데믹이 왔지만 이 산업의 열기는 꺾이지 않았다. 위고비, 오젬픽 등 과체중 치료제와 알츠하이머 치료제 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머리 숙인 국내 제약사(社)

도약의 과제는 뭘까? 지난 7월 5일 마침 ‘2023 한국제약바이오협회 CEO 포럼’이 열렸다. 회원사 CEO 100여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공동 결의문도 채택됐다. 이들이 결의한 내용의 핵심은 “준법·윤리 경영에 기반한 대국민 신뢰 확보”였다. 국가적 지원이 요구되고 외교 리스크에 민감한 반도체 분야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당 협회는 지난 2017년 이사회를 열고 ‘의약품 시장 투명성 강화 계획’을 의결해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정한 반부패 경영시스템 도입을 결의했다. 그간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흑역사

사실 K제약·바이오가 세계 시장에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까진 그야말로 흑역사를 걸었다. 신약 개발은 미진했고 100년 동안 복제약 사업에 의존해 왔다. 특히 바이오 산업은 2004년에 ‘황우석 사태’로 결정타를 맞았다. 줄기세포 관련 연구에서 논문을 조작해 화제가 된 그의 일대기는 넷플릭스 지난 6월 〈킹 오브 클론〉이라는 다큐로 다뤄지기도 했다. 흑역사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2019년엔 치료제 성분 조작 사건인 ‘인보사 사태’가, 2022년엔 주가 폭락과 경영진 배임·횡령이 문제가 된 ‘신라젠 사건’이 있었다. 통상 0.02퍼센트인 신약 개발 성공률처럼, 무너진 신뢰의 치료제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는 기회였다

과거의 불신으로 지금의 기회를 놓쳐도 되는 걸까? 사실 기회는 몇 년 전에도 있었다. 코로나19다. 정부는 2020년 9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코로나19 치료제·백신 신약 개발 사업을 벌였다. 정부가 지원한 백신 개발사 9곳과 치료제 개발사 5곳 중 신약 개발에 성공한 곳은 셀트리온과 SK바이오사이언스 단 두 곳이었다. 엔데믹에 접어들며 골든타임은 지나갔고 다른 개발 기업들은 개발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임상 철회로 인한 지원금 먹튀 논란, 데이터 부풀리기와 주가 조작 논란이 이어졌다. 결은 다르지만 코로나19는 또 다른 문제도 야기했다. 지난 2021년 미국 소비자 단체 퍼블릭시티즌은 화이자가 백신 공급 과정에서 계약 국가들을 상대로 주권 면제 포기 등 불공정 계약을 해 왔다고 폭로했다. 지원을 해도 고스란히 기업의 이익과 독점이 되는 상황, 지원의 명분 역시 약해졌다.

블록버스터를 향해

삼바나 SK, 셀트리온 CJ 등 전통 제약사가 아닌 대기업이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위탁 생산에 주로 뛰어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위탁 생산은 이미 레드오션이고 고가의 생산 설비가 필요해 대기업이 아니면 시장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전문가들은 결국 신약 개발을 끝까지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복제약 사업이라는 쉬운 길을 등지고 신약 개발에 매진해 온 바이오 벤처들은 최근 연달아 기술 수출에 성공해 수익을 내고 있다. 다만 이는 신약 개발의 뒷심이 부족하다는 뜻도 된다. 기술 수출 시장도 큰 것은 매한가지지만 결국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나올 가능성은 줄어든다.

IT MATTERS

삼성전자는 TSMC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설계 역량이 있다. 이를 이용할 가전도 있다. 이 때문에 고객사는 오로지 파운드리만 하는 TSMC를 찾게 된다. 그러나 반도체에 있어 대만과 미국의 관계를 보면 여전히 다양한 설계 역량과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이 ‘갑’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팹리스 육성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밸류체인 전반을 갖추려는 것이다.

제약·바이오 분야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공장이 될 순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기업의 몫이다. 뛰어난 바이오 벤처가 수출한 기술은 글로벌 빅파마에서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완성될 수도 있다. 신약으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 수익은 그들의 몫이 된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부가 수익을 취하는 것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K제약·바이오에서 신약 개발의 비중이 커지는 건 요원한 일일까? 반례는 한미가 보여주고 있다. 한미는 개량·복합 신약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창출되는 역량을 개발에 재투자하는 ‘한국형 R&D 모델’을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5년을 전후로 글로벌 빅파마에 수조 원 규모의 기술 수출을 하며 신약 개발 붐을 이끌기도 했다.

신약 개발의 기반에는 자본과 인재가 동시에 필요하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중인 대학원생 A 씨는 에디터와의 통화에서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약대생은 졸업 후 국내에 딱히 갈 곳이 없다”고 말한다. 산학 연계 기반이 약하고 신약 개발까지 연구비 투자를 담보하는 곳이 없으니 해외로 취업하는 이가 많다는 것이다. 무역 장벽이 높아지는 다극화 시대, K제약·바이오가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려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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