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비용

7월 11일, explained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가 시장에 풀린다. 1년에 3500만 원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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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치료제 ‘레켐비’가 미국 FDA(미국 식품의약청)의 정식 승인을 받았다. 정확히는 치매의 55퍼센트에서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의 진행을 늦추는 신약이다. 미국과 일본의 제약회사,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공동 개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면에서 다뤘다. 바이오 수혜주를 분석하고, 시장 규모를 전망했다. 일본에서는 1면에 실렸다. 치매가 환자와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차원의 문제라는 정서가 충분해서다.

WHY NOW

신약의 가격은 1년 치가 약 3500만 원에 달한다. 미국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면 환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약 863만 원 정도다.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원로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은 한 마디로 일갈했다. “비양심적(unconscionable)”이라는 것이다. 물론 3500만 원은 비양심적인 금액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질문해야 할 것은 양심이냐, 비양심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왜 제약회사들이 3500만이라는 금액을 부를 수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기업은 양심의 논리가 아니라 시장의 논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매는 아마도, 우리 중 다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치매약 개발 수난사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 약은 현재 없다. 우리가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알고 있는 약들은 떨어지는 인지능력을 활성화하는 성분이다. 대증요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감기약이 열은 떨어트려도, 감기 바이러스를 없애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알츠하이머는 뇌에 ‘나쁜 단백질’이 쌓이고 엉켜 발생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단백질들을 제거하면 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멈출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우리 뇌가 이물질의 침투를 쉽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백질을 제거하는 성분이 뇌혈관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알츠하이머는 현대 과학의 마지막 숙제 중 하나였다.

혁명적 등장

제약사들은 꾸준히 도전해 왔다. 특히, 쌓이는 단백질을 제거하는 신약 개발에 몰두했다. 바이오젠과 에자이는 2021년, ‘아두헬름’이라는 신약을 내놓았다. FDA로부터 신속 승인도 받았다. 검증이 더 필요하지만, 필요에 의해 일단 빠르게 승인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장에서 퇴출도 빠르게 됐다. 효능과 안전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뇌부종이나 뇌출혈과 같은 부작용이 심해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한 ‘레켐비’는 다르다. 효능이 개선됐다. 임상 결과 27퍼센트가량 인지능력 감소 속도를 늦췄다. 안전성도 전작에 비해 40퍼센트가량 좋아졌다. FDA가 정식 승인한 이유다. 정식 승인의 의미는 미국판 의료보험, ‘메디케어’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치매, 일 년에 3500만 원

그런데 이 혁명적인 등장에 찬사보다 비난이 더 거세게 쏟아진다. 비싸서 그렇다. 1년 약값이 3500만 원이다. ICER(미국임상경제평가연구소)가 매긴 가치는 1100만 원에서 2700만 원 사이다. 절대적으로 비쌀 뿐만 아니라 실제 가치에 비해서도 비싸단 얘기다. 메디케어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도 864만 원가량을 환자 부담금으로 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당장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의료보험의 불평등

레켐비처럼 비싼 약을 의료보험 재정으로 감당하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보험료가 오른다. 모두의 부담이 늘어난다. 그런데 환자 부담금 864만 원을 못 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보험료만 더 많이 내고 정작 필요한 치료는 비싸서 못 받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인종 문제를 우려한다. 백인보다 흑인 및 히스패닉이 치매 발병률이 높다. 소득은 적다. 유색인종이 치료에서 소외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는 세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치매약 도입으로 건강보험료가 더 오른다면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관련 여론이 좋지 않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갈등의 주체들이 아니라 갈등의 원인이다.

치매의 비용

제약 회사가 일 년에 3500만 원을 부를 수 있는 배짱에는 근거가 있다. 치매의 사회적 비용이다. 우리나라만 따져도 치매로 인한 사회적 비용 부담은 2020년 17조 7000억 원에 달한다. 2050년에는 100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2021년 기준, 치매‘관리’ 비용은 환자 한 명당 연간 2112만 원이었다. 이쯤 되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데 1년에 3500만 원이 비싸지 않다는 항변에 힘이 실린다.

미래가 사라졌다

치매에는 의료 비용 외에 숨겨진 비용도 있다. 바로 ‘미래 비용’이다. 치매 환자는 인지 능력과 함께 미래를 잃어버린다. 게다가 환자를 돌보는 가족도 함께 미래를 잃게 된다.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기회를, 일할 기회를, 공부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긴 돌봄이 끝난 이후, 이들에게 남은 것은 남보다 뒤처진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다. 준비되지 않은 미래다. 40대, 50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약 6만 명의 가족돌봄청년이 있다고 추정된다. 아직 배울 나이, 사회생활 첫발을 내디딜 19세에서 34세 청년 6만 명이 치매를 포함한 중증질환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버거운 혁명

결국 우리는 게임 체인저가 되어 줄 치매 신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치매가 ‘관리와 돌봄’이었다면 이제는 ‘치료’로 크게 방향 전환을 할 수 있게 된다. 혁명이다. 필연적으로 커질 불행의 크기를 어떻게든 줄여보려는 노력에서 더 이상 불행의 크기가 커지지 않도록 노력해 볼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싸다. 국가 의료재정에도 환자 개개인에게도, 곧 시장에 풀릴 신약은 감당하기 버겁다. 기대해 볼 것은 시장경제 논리다. 이번에 FDA 승인을 받은 바이오젠과 에자이 외에도 일라이릴리 등 여러 제약사가 치매약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떨어질 수 있다.

IT MATTERS

이 상황을 찬찬히 뜯어보면 기시감이 든다. 각국의 의료재정이 글로벌 거대 제약사들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던 상황, 코로나19 백신 확보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과 2021년의 상황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갑자기 닥쳐온 감염병 재난에 준비된 국가는 없었다. 재난을 끝낼 열쇠가 백신에 있었으니 부르는 게 값이고 거래 조건이 당황스러워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치매 문제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고령화 사회의 경고를 십수 년째 이야기하고 있다. 수명이 늘어나고 출생률이 떨어지면 당연히 치매 인구의 비용이 늘어난다. 어려운 계산이 아닌데도 우리는 예정된 위협을 모른 채 했다. 효도라는 이름으로, 해체되기 시작한 지 오래인 고전적 가족 형태에 치매 문제를 맡겨두려 했다.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올해 1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이 사람을 살릴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의료는 다분히 사업이 되었고 정치가 되었다. 한때 노화의 자연스러운 일부였던 ‘노망’이 길고 고통스러운 질병 ‘치매’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일본은 먼저 겪었다. 고령화와 비혼 증가 추세가 만나 돌봄이 개인의 파멸로 치닫는 경험을 이미 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치매 기본법’을 제정했다. 치매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로 첫걸음이다.

우리도 달라진 시대의 노년을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 방법론이 효율적이었느냐의 문제는 판단이 필요할지라도, ‘치매 국가책임제’가 지난 2021년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이 지워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치매정책과’가 지난해 ‘노인건강과’로 개편된 것이다. 치매가 질병이 아니라 노화였던 시대로의 역행이다. 기술이 이미 치매를 질병으로 정의했다. 정책의 상황인식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다시 국가 재정이 글로벌 제약 회사들의 입김에 흔들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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