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적응하는 방법

2023년 7월 31일, explained

장기간 이어진 폭염으로 미국과 유럽의 도로가 파손됐다. 폭염에 적응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을 알아 본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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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의 도로가 파손되고 철길이 휘어지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폭염 때문이다. 60~80년 전 기온에 맞춰 설계된 도로, 교량 등의 인프라는 지금의 더위를 견딜 수 없다.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은 뉴노멀이 됐다. 지금의 더위를 견딜 수 없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각국에서 폭염에 적응할 방법을 찾고 있다.

WHY NOW

우리나라와도 먼 얘기가 아니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된다. 달라진 기후는 여러 분야에 걸쳐 문제를 만들어낸다. 이제 더 이상 환경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 관련 대책은 여전히 환경부에 머물러 있다. 폭염의 진짜 실체를 숫자 중심으로 살펴보고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를 짚어 본다.

25도씨: 폭염이 바꾼 제도

날씨를 바꿀 수는 없다. 여러 국가가 기온 상승을 반영한 제도를 내놓고 있다. 스페인은 근무 환경의 온도를 명확하게 규제하고 있다. 사무실의 경우 섭씨 17~27도, 가벼운 육체노동이 필요한 경우 섭씨 14~25도 사이로 제한한다. 고용주가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정부 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 또 국가 기상청이 폭염 경보를 발령하면 야외 근로자의 작업을 금지한다. 독일에선 스페인의 낮잠 문화인 시에스타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2008년 금융 위기 후, 독일 언론은 스페인의 시에스타 문화를 생산성 하락의 원인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그런 독일에서 보건부 장관까지 나서 시에스타 도입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는 폭염으로 인한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10억 달러: 폭염이 만든 손실

폭염으로 인한 직접적인 비용 손실도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폭염은 치명적인 자연 재해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WHO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16만 명이 넘는다. 최고기온 43도가 20일 넘게 지속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는 화상센터를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 애리조나 화상센터를 찾는 환자 중 3분의 1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바닥에 데인 경우였다. 미국 기상청이 섭씨 46도에서 아스팔트 표면 온도를 측정한 결과, 햇볕이 심한 경우 70도를 기록했다. 이는 길거리에 잠시 앉아도 화상을 입을 정도다. 미국에서는 화상 외에도 온열질환 등 매년 폭염으로 지출되는 의료비가 10억 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95퍼센트: 열섬 현상

그런데 이런 폭염으로부터 가장 크게 위협받는 것은 도시 그 자체일 수 있다. 열섬 현상 얘기다. 도시 중심부의 기온이 그 주변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밀집된 건물, 인구로 인해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쌓이는 것이다. 도시를 덮고 있는 아스팔트의 햇빛흡수율은 최대 95퍼센트다. 2022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에서 에코스트레스(ECOSTRESS)라는 열적외선복사 관측 장비를 통해 라스베이거스 표면 온도를 측정한 결과, 최고기온이 43도일 때 포장도로의 표면 온도는 50도를 넘었다. 폭염을 겪고 있는 애리조나주 피닉스는 태양을 더 잘 반사하도록 아스팔트를 코팅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로 코팅된 도로의 표면 온도는 기존 도로보다 13도 낮게 나타났다.

34일의 폭염: 파리의 아연 지붕

유럽의 도시 중에서는 프랑스 파리가 폭염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조사됐다. 의학저널 랜싯 플래닛 헬스(Lancet Planet Health)에 발표된 보고서는 파리는 이미 ‘과열’ 상태며 2080년까지 연간 34일 폭염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파리가 뜨거운 원인 중 하나로 아연을 사용한 지붕을 지목했다. 1853~1870년 파리 시장을 지낸 오스만은 임기 중 파리를 개조했다. 도로를 넓히고 석조건물에 아연이 80퍼센트 들어간 지붕을 덧댔다. 은회색 빛이 나는 아연 지붕은 파리에게 예술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선물했지만, 아연은 열을 잘 흡수하는 특징을 지닌 탓에 폭염 대응에 취약하다. 아연 지붕이 도시 열섬 현상을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파리에 86가지 권고안을 제시했다. 아연 지붕을 교체하거나 흰색으로 칠하고, 아스팔트를 제거하고 나무를 심는 방안 등이었다.

10밀리미터: 지하 열섬 현상

하지만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표면 온도가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스팔트가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열은 지하 온도를 높인다. 지하 공간의 온도가 지상보다 높아지는 것을 지하 열섬 현상이라고 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연구팀이 시카고 중심지 지하 공간 150곳의 온도를 측정한 결과, 건물 아래 지하 공간의 온도가 지상 녹지 공간보다 약 10도 높았다. 이후 1950~2050년 사이 지하 공간 온도 변화치를 추정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1950년부터 지금까지 지표면이 10밀리미터 높아지거나 가라앉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팀은 이러한 변화가 건물에 균열을 만들 수 있으며, 지하 열섬 현상도 건축물 위험도 평가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92퍼센트: 위협받는 SOC

도시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사회간접자본(SOC)도 폭염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 미국 유타, 위스콘신, 텍사스주 등에서는 도로 파손 신고가 이어지고 있다. 열에 민감한 아스팔트 도로는 구멍이 파이고, 콘크리트 도로는 강철 이음새가 팽창하면서 파손된다. 영국 런던시는 철도가 휘어 모든 철도 서비스에 임시 속도 제한을 걸었고, 루턴시는 공항의 아스팔트 활주로가 녹아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했다. 인프라가 무너지면 이동이 멈춘다는 뜻이다. 경제를 순환시키는 운송과 물류에 차질이 빚어진다. 폭염으로 인한 도로 및 철도 손상은 2080년까지 운송 부문 전체 피해의 약 92퍼센트를 차지할 전망이다.

128조원: 건설 노동자

복구 비용뿐 아니라 인력도 문제다. 폭염으로 인해 건설 현장 등의 야외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싱크탱크 아틀란틱협의회(Atlantic Council)는 2021년 폭염으로 인한 미국의 경제적 손실이 연간 최소 1000억 달러, 우리 돈 약 12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팀은 이는 보수적인 수치이며, 관광이나 의료비 등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라고 강조했다. 그중 야외에서 일하는 농업, 건설 분야의 손실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했다. 잦은 휴식으로 작업 시간은 두 배가 되고, 집중력 저하로 작은 실수도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구팀은 폭염으로 인해 미국 야외 근로자들은 “더 다치고 덜 생산하며 더 적게 벌고 있다”고 설명한다.

IT MATTERS

폭염은 눈앞의 일이다. 이제는 예방이 아닌 적응을 말해야 할 때다. 사실 국제 사회에서 기후 변화 적응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는 꽤 지났다. 2001년 IPCC 제3차 보고서 발간 이후였다. 우리나라는 2010년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2011~2015년)을 발표했다. 하지만 중앙 정부에서 지자체에 하달할 뿐 실질적으로 이행되지는 않았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2023년 6월 환경부는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후 감시 시스템 강화, 폭우 등 기후 위험을 고려한 기반 시설을 확충, 재난 대응 역량 강화,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거버넌스 강화다. 여전히 톱다운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독일의 소도시 칼스루에서는 ‘폭염적응종합대책’을 환경부서가 아닌 도시계획부서가 맡아 진행하고 있다. 폭염 대응이 도시 계획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유럽환경청의 한 연구원은 각국 정부가 전체 행정 단위를 동원해 건물부터 교통, 건강, 생산성까지 전 분야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기후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문제를 만든다. 더 이상 특정 기관이나 조직만의 과제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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