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가 나타났다

2023년 10월 25일, explained

빈대가 출몰했다는 소식이 전국에서 들려온다. 공포가 퍼진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빈대가 나타났다. 지난 13일 인천 사우나에서, 그리고 19일 대구의 한 사립대 기숙사에서 빈대가 발견된 데 이어 경기도 부천의 한 고시원에서도 빈대 신고가 접수됐다. 빈대는 침대 매트리스나 프레임에 서식하며 사람들이 잠든 사이 피를 빨아 먹는다. 질병은 옮기지 않는다고 알려졌지만, 물리면 심한 가려움과 통증을 유발하고 박멸이 어려워 성가신 존재로 여겨진다. 전국적으로 빈대가 퍼질지도, 이미 퍼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람들은 떨고 있다.

WHY NOW

1970년대에 박멸된 것으로 알려진 빈대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에 언론과 소셜 미디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두려움이 번지고 있다. 빈대 물린 자국을 모기 물린 자국과 비교하는 사진, 락스와 규조토를 이용해 빈대를 박멸한 후기는 인터넷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국내의 빈대 출몰 사례는 이미 지난 6개월 전에도 알려진 바 있다. 반 년 전에는 작은 사고이던 것이, 지금은 사건이 된 것이다. 두려움은 어디서 시작했을까? 전 세계적인 빈대 공포가 시작된 바로 그 곳, 한 달 전의 프랑스를 보면 답이 나온다.

빈대가 나타났다

9월 초였다. 파리 시민 200만 명의 발인 지하철, 프랑스 전역을 다니는 고속 열차, 어두컴컴해 앞도 잘 안 보이는 영화관에서 빈대에 물렸다는 시민들의 증언이 보고됐다. 수많은 빈대가 조용하고도 넓게 프랑스 전역에 퍼진 것이다. 우려가 커지면서 학교와 도서관은 문을 닫았고 아무도 지하철 천 의자에 앉지 않았다. 공공 시설은 조용해지고, 대신 언론이 시끄러워졌다. 파리에서 예정된 큼직한 국제 행사 때문이었다. 9월 말의 패션 위크, 내년의 올림픽을 앞두고 빈대가 퍼졌다는 소식에 프랑스 언론뿐 아니라 미국 등 전 세계 언론이 프랑스의 빈대 위협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의 공포 전략

수많은 전쟁과 테러, 감염병을 거치며 언론이 체득한 전략이 있다. 공포를 이용하는 것이다. 위협의 실체가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공포는 대중의 관심을 붙잡아 두기에 쉽고 효과적인 전략이다. 언론은 모든 각도에서 빈대를 조명하고, 몇 시간 동안 토론을 벌이고, 말장난을 하거나 패러디로써 조롱했다. 관심이 돈으로 직결될수록 메시지와 화면은 자극적이었다. 미국 매체들은 패션 위크 시즌의 파리 방문자들이 호텔에서 어떻게 짐을 간수하고 매트리스를 체크해야 하는지 경고했다. 주류 미디어를 넘어 인스타그램과 틱톡에도 기차에서 빈대를 찾거나 집에서 빈대에 시달리는 개인의 영상이 올라와 주목을 끌었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몽드》는 이 현상을 비판했다.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지렛대로 재난 상황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빈대, 가짜 뉴스일까

전 세계의 시선이 꽂히는 데 대해 프랑스 언론은 의문을 제기한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재난 영화를 만든다”며 저격한 건 미국의 CNN이다. CNN이 고속 열차 떼제베(TGV)의 빈대 문제를 제기하며 기차 안에서 촬영되지 않은, 즉 전혀 관계 없는 영상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도 빈대를 경계할 필요는 있지만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아니며, 단지 관심이 늘어났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프랑스 언론은 자극적인 보도가 공포를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너무 빠르게 퍼지는 공포를 감당하는 건 결국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움직인 시민과 정치

SNS와 뉴스에서 빈대 이미지를 본 프랑스 시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불안으로 인해 밤에 잠들지 못했고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 파리 길거리에는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가 산처럼 쌓였다. 빈대는 프랑스에 언제나, 그것도 열 가구 중 한 가구 이상 존재했음에도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기어코 미디어가 사람들을 움직인 것이다. 시민들의 공포에 정치권도 움직였다. 의회에서 야당 의원은 빈대가 지옥을 가져 왔다며 정부의 조치를 촉구했다. 이윽고 여당도 빈대 퇴치를 위한 초당적 움직임에 나섰다. 처음에는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라며 모르쇠하던 내각도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근거 있는 공포, 그러나
 
공신력 있는 언론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다. 빈대에 대한 공포도 실존하는 이야기다. 팬데믹 상황이 종료하고 국제 여행과 무역이 증가하며 빈대의 출몰 건수는 늘어나고 있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그나마 안전한 살충제인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 대해 빈대가 내성을 획득하면서 박멸은 더욱 어려워진다. 여기에 기후 변화가 겹친다. 국내에도 이전에 열대 지방에 살던, 일반 빈대에 비해 운동성 좋은 반날개빈대가 발견되고 있다. 이동의 증가와 생물의 진화, 기후 변화가 합쳐져 전 세계적으로 빈대 공포는 더욱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언론 보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하는 즉시 폭발적으로 보도가 나온다. 그 결과, 우리는 빈대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도 전에 공포부터 느끼게 된다.
 
너무 빠른 미디어의 부작용
 
빈대가 어떤 양상과 속도로 퍼지는지보다 언론사가 빠르게, 많이 기사를 내보내 관심을 얻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가 필요한 언론과 정치인은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빈대가 지금 프랑스에서 ‘정치적인 곤충’이 된 이유다. 한창 문제가 확산하던 지난달, 방송사 쎄뉴스(CNews)의 진행자 파스칼 프로는 출연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민자들의 위생 상태가 빈대 확산과 관련이 있나요?” 다분히 인종 차별적인 발언에 여기저기서 비판이 일었다. 노골적이고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지라도 빈대가 가난이나 위생과 관련돼 있다는 통념에 대한 팩트 체크를 제외한 보도가 퍼지며 빈대에 물린 이들은 이와 관련한 낙인이 찍히는 것에 트라우마를 느끼고 있다. 이로써 빈대는 신체를 넘어 우리의 정신 건강에도 위협을 가한다.
 
국내의 빈대 보도

국내의 빈대 관련 보도에서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몇 가지 의심스러운 사례가 나오자 보도량은 폭발하고 공포는 확산한다.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을 유럽과 한국에서 빈대 확산의 원인으로 꼽는 보도도 등장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유념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에서 빈대는 박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빈대는 적은 사례지만 꾸준히 발생해 왔다. 지난 4월에는 서울 금천구의 숙박 업소에서 빈대가 발생했고, 2019년에는 목포의 개인 자택에서, 그리고 해마다 몇 번씩 미군 기지에서 빈대는 출현해 왔다. 프랑스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빈대를 경계해야 할 상황은 맞지만 공포를 과하게 조장하거나 원인에 대한 추측인 난무할 경우 해결은 요원해진다.

IT MATTERS

빈대는 단기간에 확산돼 세계적으로 퍼진 바, 유전적 다양성이 낮은 생물이다. 그래서 특정 국가에서 유입됐다고 판단하기도, 차단하기도 어렵다. 유럽에서는 이미 공중 보건의 문제가 되었으며, 프랑스 파리는 저소득층 세입자를 위해 주택 관련 보험에 빈대에 감염될 위험을 포함하자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대처할 방법은 발견됐을 때의 빠른 방역이다. 2020년에 발표된 국내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곤충에 대한 대규모 모니터링 시스템, 그리고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를 대체하는 성분의 살충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출몰하는 빈대를 이해하려면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언제나 곁에 존재하는 위협은 위협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어느 순간 눈에 보이며 실감이 될 때 우리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공포는 무기로 작용한다. 지금 프랑스의 경우가 그렇다.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자극적인 보도는 대중의 불안을 잠재우는 게 아니라, 확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양치기 소년이 아니다. 느리고 지루한 과정일지라도 정확한 연구와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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