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여자 월드컵은 무엇이 달라졌나

2023년 8월 4일, explained

2023 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이 흥행한다. 이전 대회와 어떤 점이 다른가.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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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이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다. 역대 최다인 32개 팀이 출전하고, 총상금도 직전 대회에 비해 세 배 올랐다. 대회 닷새 만에 150만 장의 티켓이 팔리며, 판매 목표를 넘어섰다.

WHY NOW
이번 월드컵은 여자 축구 역사에 남을 대회다. 상업적 스포츠 이벤트로 자립한 첫 대회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즐길 거리도 많았다. 최초라는 타이틀로 이번 여자 월드컵의 의미와 우리나라 여자 축구에 던지는 시사점을 짚어 본다.

중계권 분리

이번 대회부터 여자 월드컵의 중계권과 스폰서십이 개별 판매됐다. 그간 남자 월드컵과 패키지로 묶여 판매됐다. 2019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을 TV로 지켜본 시청자 수는 10억 명이 넘는다. 전 대회에 비해 160퍼센트 증가한 수치였다. FIFA가 여자 축구도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열린 첫 대회다. 물론 시작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유럽방송연합과 일본 NHK방송은 남자 월드컵의 1~5퍼센트 수준을 제시했다. FIFA는 최종 계약된 중계권료를 밝히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당초 기대보다 매우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폰서십 판매는 성공적이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FIFA가 체결한 스폰서십 계약 총액은 연간 3억 달러, 우리 돈 약 3854억 원을 넘어섰다.

딕 커 레이디스

여자 축구의 상업성을 인정받은 첫 대회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축구로 유명한 영국에서였다. 남자들은 전장으로 나가고, 여자들은 공장에서 군수물자를 만들었다. 한 군수업체 직원이 여성 노동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자 사내 축구팀을 창단했다. 팀 이름은 딕 커 레이디스였다. 첫 공식전에 1만여 명의 관중이 몰렸다. 티켓을 팔아 나라를 위한 기금으로 활용할 정도였다. 여자 축구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최다 관중 5만 3000명을 동원하며 인기를 이어 갔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협회(FA)는 남자 축구 클럽 경기장에서 여자 축구 경기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다. 육체적으로 위험하다는 등의 이유였다. 이후 많은 여자 축구 클럽이 문을 닫았고, 금지 조항은 50년 이어졌다.

미국 대표팀

첫 여자 월드컵은 1991년 중국에서 열렸다. 유럽여자축구연맹을 중심으로 이어진 소규모 여자 축구 국가대항전이 예상 밖의 흥행을 보이자 FIFA가 내린 결정이었다. 첫 우승은 미국이 가져갔다. 2019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 번째 우승을 거둔 뒤, 미국 여자대표팀은 미국축구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세계 랭킹 1위인 여자대표팀의 임금이 남자 대표팀보다 낮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월드컵 예선 출전료는 여자대표팀 6750달러, 남자 대표팀 1만 8125달러였다. 브라질, 잉글랜드, 호주 등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에 근거해 성별과 관계없이 동일한 출전료를 주고 있다. 이후 미국축구협회와 여자 대표팀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내용으로 합의를 이뤘다. 이번 대회부터 미국을 대표하여 월드컵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는 2만 4000달러를 받게 된다.

나데시코 재팬

이번 대회에서 정상을 노리는 것은 일본이다. 2011년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바 있다. 일본 축구 역사상 첫 성인 월드컵 우승은 당시 동일본 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져 있던 일본 사회를 위로했다. 일본 대표팀은 나데시코 재팬이라 불린다. 2004년 일본이 여자 축구 부흥을 위해 공모를 통해 마련한 것이다. 패랭이꽃을 뜻하는 말로 조신, 헌신 등 과거 일본 사회가 이상적으로 여겼던 여성상을 나타냈다. 하지만 2011년 우승을 계기로 나데시코의 의미는 재창조됐다. 우승 당시 경기에 참가했던 마루야마 카리나 선수는 “나데시코는 공동체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모두가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이후 나데시코는 강인하고 반듯한 여성을 이르는 말로 재창조됐다. 일본 대표팀은 “월드컵 최고의 팀”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2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고 있다.

히잡을 쓴 선수

다른 월드컵에서 볼 수 없던 장면도 나왔다. 모로코 대표팀의 누하일라 벤지나 선수가 히잡을 쓰고 경기에 나선 것이다. FIFA는 건강과 안전상의 이유로 선수의 히잡 착용을 금해서 논란이 있었다. 각국 운동선수와 인권 운동가의 반발로 해당 규정을 2014년 폐지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히잡을 쓴 선수는 없었다. 히잡을 쓰고 경기를 뛴 벤지나 선수의 모습은 2022년 9월 이란에서 시작한 히잡 반대 운동과는 대조된다. 그만큼 히잡의 의미는 논쟁적이다. 일각에서는 히잡이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닌 무슬림 여성의 주체성을 대변하는 복식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7년 미국 무슬림 여성 힙합 가수 모나 헤이더는 “난 계속 히잡을 두를 거야”라고 노래해 관심을 모았다. 이번 대회에서 벤지나 선수는 히잡을 쓰든 벗든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여자 축구의 상업성

스포츠는 단순히 경기만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스포츠가 사랑받는 이유는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이 나이키다. 나이키는 1995년 광고에서 소녀를 모델로 쓰면서 여성의 스포츠 참여 확대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최근 몇 년간 여성 스포츠 분야에 대한 투자를 기존에서 두 배 이상 늘렸고, 여성 6만 8000명의 체형을 연구해 우리나라 여자 축구 대표팀 전용 유니폼을 만들었다. 우리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여성 전용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뛴다. 이외에도 비자카드와 뉴질랜드의 소프트웨어 업체 제로가 여자 월드컵에만 후원하며 기업 가치를 강조했다. FIFA는 앞으로 여성 월드컵과 스폰서십을 맺는 기업이 더 많아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프로 리그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개별 리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022년 열린 유럽 여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역대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10년 뒤 유럽 여자축구의 상업적 가치가 현재의 6배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재미동포 사업자 미셸 강 회장이 체결한 계약도 관심을 모았다. 미국여자축구리그 워싱턴 스피릿의 구단주이기도 한 미셸 강 회장은 최근 프랑스의 올랭피크 리옹 페미닌을 인수했다. 리옹은 유럽축구연맹의 여자 챔피언스리그에서 여덟 번 우승한 명문 구단이다. 강 회장은 다른 나라 클럽도 인수해, 남자 축구의 시티 풋볼 그룹, 레드불 풋볼과 같은 글로벌 축구 기업을 키워갈 계획을 밝혔다. 

IT MATTERS

국제 대회에서 스포츠 선수들의 기량은 곧 국가경쟁력으로 여겨진다. 2023년 7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리 대표팀 출정식에 9127명의 팬이 모였다. 이번 대회를 향한 관심은 선수들의 기량에 대한 기대였다. 2010년 17세 이하(U-17) 월드컵 우승을 이끈 주축 선수들과 여민지, 지소연, 박은선 등 이른바 ‘황금 세대’로 불리는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모로코와 벌인 조별 리그 2차전에서 패배하며, 세대교체가 되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우리나라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8.9세로 본선 진출국 중 제일 높았다. 실제로 국내 여자 축구 선수는 10년 전보다 15퍼센트 감소했다. 특히 미래가 될 유소녀 전문 선수는 2020년에는 1000명 이하까지 떨어졌다. 우리 대표팀을 이끈 콜린 벨 감독은 다음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한국 여자 축구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자 축구 선수가 직업 선택지의 하나로 여겨질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비단 국가경쟁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자 월드컵의 흥행은 성별과 관계없이,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모든 사람에게 즐길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는 뜻이다. 스포츠의 묘미는 선수들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는지, 얼마나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어내는지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나라 여자 축구에 선수 육성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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