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주담대와 빚의 족쇄

8월 17일, explained

청년과 서민을 위해 주담대 만기가 길어졌다. 결국, 청년도 서민도 빚에 갇혔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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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은 평생의 꿈일까, 평생의 족쇄일까. 금융 당국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지난달 5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한 이후 한 달도 안 돼 이 상품의 대출 잔액이 1조 2811억 원을 넘는 등 가계 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일 가계 부채 현황 점검 회의를 열어 주담대를 집중 점검했다. 16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대출 한도를 늘리기 위해 50년 만기 대출이 사용되고 있다”며 은행권에 점검을 주문했다. 지금 금융 당국이 만지작거리는 카드는 대출자의 연령을 제한하는 것이다. 만 34세 이하의 차주들만 50년 만기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아이디어다.

WHY NOW

금융위의 연령 제한 논리에는 근거가 있다. 50년 주담대는 태생적으로 청년 주거를 위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2021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시작한 이 아이디어는 제21대 대선에서 안철수 당시 후보의 ‘45년 모기지’ 공약이 되었고, 새 정부 인수위 시절 정식으로 ‘50년 만기 주담대’ 정책이 되었다. 그러면 정책의 초심으로 돌아가 연령을 제한하면 부채 문제는 해결되고, 청년 주거는 안정될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 바탕에는 한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와 이를 부추기는 정책, 그리고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50년 만기 주담대, 역차별이다?

4050은 연령 제한이 역차별이라고 지적한다. 만기와 나이를 연결짓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담대의 핵심은 만기에 있지 않다. 평균 상환 기간은 7년 정도로, 만기가 오기 전에 보통의 주택 담보 대출은 상환이 완료된다. 인적 담보를 두는 신용 대출과 달리 주담대는 주택이라는 물적 담보를 둔다. 차주가 대출 상환을 연체하거나 사망한다면 주택은 경매에 부쳐진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어느 정도 방어된다면 대출금 역시 방어할 수 있다. 따라서 상환 능력이 없을 거란 이유로 연령 제한을 두는 건 비합리적이다. 정부가 연령 제한 카드를 꺼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연령 제한의 본질

정부는 50년 만기 주담대가 의도와 달리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기를 늘린 취지는 차주의 월 상환액을 줄이는 데 있지, 차주가 50년 전체에 걸쳐 모기지를 갚는 데 있지 않았다. 정책 모기지론으로 도입된 특례 보금자리론은 연령대 만 34세, 대상 주택 9억 원 이하의 제한을 두어 연 4퍼센트대의 고정 금리로 돈을 빌려주었다. 만기가 늘어나면 한 달에 갚아야 할 상환액이 줄어드므로, 청년층이 부담을 덜고 빚을 내서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의도였다. 그런데 특례 보금자리론을 넘어 시중 은행 주담대 만기까지 50년으로 늘어났다. 부동산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에게는 호재다. 50년 만기로 대출을 받으면 월 상환액이 줄어 DSR[1] 40퍼센트 룰을 빗겨가 새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 방법으로 DSR을 우회해서 주택을 산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가계 부채가 늘어났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래서 정책 취지를 살려 연령을 제한하는 걸 검토하는 것이다.

어떤 청년을 위할 것인가

정책 취지를 살리면 청년 주거 문제는 해소될까? 초장기 주담대가 도입되면 원리금 상환 부담은 줄어든다. 그러나 상환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총 이자 부담은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출 만기를 30년에서 50년으로 늘림으로써 대출 이자는 원금의 130퍼센트까지 늘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례 보금자리론의 대상 주택은 9억 원 이하의 주택이었다. 전국에서 주택 보급률이 94.2퍼센트로 가장 낮은 서울을 기준으로 볼 때,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 9354만 원이다. 전용 60제곱미터 이하의 소형 아파트의 경우에도 평균 가격은 8억 4862만 원이었다. 9억에 못 미치는 아파트는 찾기 어렵다. 영끌 매수를 해도 문제다. 5억 원을 4.4퍼센트 금리, 50년 만기로 빌릴 때 매월 상환할 원리금은 206만 원에 달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20대 근로자의 월소득은 240만 원으로 나타난다. 소득의 90퍼센트 이상을 빚 갚는 데 써야 할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특례 보금자리론은 연소득 9000만 원이 넘는 고소득층에게 집중되었다. 정부가 손실을 감수했지만, 정책은 실패로 점쳐진다.


이미 빚에 허덕이는 서민 청년층

무엇보다 청년층은 부동산 문제에 있어 적극적인 수요층이 아니다. 서민 청년층은 빚 자체를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분기 말 20대 이하의 주담대 연체율은 0.44퍼센트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전월세 시세가 뛰며 대출에밖에 의존할 수 없지만, 소득이 적어 이를 갚기도 어려운 것이다. 지금 청년층은 어른이 되자마자 빚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3월 말 시작한 소액 생계비 대출에 있어 20대 이하의 이자 미납률은 21.7퍼센트로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20대 사회초년생이 주 이용자층인 후불 결제 서비스에 있어서도 연체율은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2030 청년층의 부실 대출 문제에 주목한다. 지금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주택을 살(buy) 기회가 아니라, 주택에 살(live) 기회다.

한국의 고질병 가계부채

빚 내서 집 사라는 이야기가 유효하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정책은 부동산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지난해에 거래 절벽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수요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분양 주택은 올해 초에 7만 5000가구까지 증가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정책으로 수요 회복을 부추겼고, 덕분에 주택 매매 및 전세 소비 심리가 1월부터 양전했다. 이에 더불어 가계 대출도 확대됐다. 은행 가계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역대 최대 규모인 1068조 100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6월 발표된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의 주요 취약 요인 중에는 가계 부채가 있다. 2022년 하반기 이후 높아지는 연체 규모에 부실 위험 확대 우려도 커진다. 한국의 가계 부채 비율은 GDP 대비 102.2퍼센트 수준으로,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을 수준이다. 스탠다드앤푸어스 등 국제 신용 평가사도 가계 부채를 한국 경제의 부담 요인으로 꾸준히 지목한다. 안 그래도 대출액이 많은 상황에, 금리가 반등한다.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우리나라 은행채 금리도 압력을 받았다. 지난 9일 기준 5대 은행 주담대 변동 금리는 최고선이 7퍼센트에 가깝게 집계됐다. 빚을 갚는 데만 너무 많은 돈이 쓰이고 있다.

실물 경제 둔화

금리 수준이 올라가고 경제 상황이 불확실해지는 상황에 가계는 저축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가계가 쌓아 놓은 초과 저축 규모는 130조 원에 달하고 있다. 돈은 예금이나 주식 같이 유동성 좋은 금융 자산에 몰리고, 추가적인 소비에나 부채 상환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추세다. 가계 부채가 줄어드는 속도가 늦어지면 금융 안정에는 부정적인 요인이 된다. 금융 시장이 뜨거운 것과 달리 실물 경제는 침체기다. 경기 선행 지수 순환 변동치는 2022년 12월부터 기준점인 100을 밑돌고 있다. 경기 수축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단 의미다. 올해 1~5월의 물가 수준을 반영해 계산되는 근로자 실질 임금은 1.7퍼센트 감소해 2011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주택에 대한 정책이 가계 부채 상승으로, 가계 부채 상승이 대외 경제 상황과 만나 경제에 대한 경직성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양새다.

정책적 여력 없는 정부

사람들의 돈이 대출에 묶이면 부동산 가격은 떨어질 수 없다. 부동산이 꺼지면 금융까지 모든 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액, 장기 대출을 확대할수록 부동산에 낀 욕망과 버블이 사라질 여지는 차단된다.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는 금융 정책이 아닌, 도심 내 공공 임대 주택을 마련하는 정책이 제안된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공공 임대 주택을 확보하기보다는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더 쉽게 대출받도록 보증하는 방안을 써 왔다. 덕분에 전세 자금 대출은 2017년 48조 6000억 원에서 2022년 171조 9000억 원으로 3.5배 증가한다. 이것은 갭투자, 최근의 전세 보증금 사기와 역전세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간 전세대출 규모가 70조원 증가했다는데 (...) 이만큼의 금액이 공공 임대 주택에 투여됐다면 세입자의 주거권이 확보되지 않았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IT MATTERS

공공 임대 주택은 윤석열 정부의 공약이기도 했다. 총 50만 호를 약속했다. 그런데 2023년 주택도시기금 운용 방안을 보면, 공공 임대 주택을 위한 출자·융자 예산은 4조 7663억 원이다. 2022년의 6조 1690억 원에 비해 23퍼센트가량 줄어든 수치다. 토지주택연구원에 따르면 공공 임대 주택은 청년층에게 주거 사다리가 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주거 복지를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줄어들었다. 예산이 떨어졌다면, 더 늘려서 편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를 위한 세금도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는 상반기에만 한국은행에서 100조 원 이상의 돈을 빌려다 썼다. 올 초 소득세와 법인세 등에 대한 감세 정책을 추진해 세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경색되며 거래세 역시 줄어들어, 상반기 세수는 1년 전보다 40조 원가량 덜 걷혔다. 일반적으로 고금리 시기에는 통화 정책의 여지가 높다고 여겨지지만, 금리를 조절해서 실물 경제를 움직일 여지도 많지 않다. 주택 담보 대출 규모가 증가할 때 금리를 인하한다면 사람들은 더욱 빚을 낼 거기 때문에 금리를 내리기도 어렵고,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게다가 미국과의 기준 금리 차이는 이미 2.0퍼센트포인트나 벌어졌다. 적절한 시기에 기준 금리를 인상해 격차를 줄였다면 후폭풍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면 우리나라의 국채, 금융채, 회사채 모두 영향을 받게 된다.

한국은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 비율이 가계 재산의 64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은 지금 상황에 부채질을 할 뿐이다. 높은 가계 부채, 부족한 세수의 결과로 재정 운용의 가능성은 축소되었다. 통화 정책을 건드리기 힘들 때는 다른 데서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정부는 추경도, 국채 발행도 거부한다. 총선 이후에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추가적인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예고하고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혜택이라는 비판을 받는 정책이다. 

부동산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는 무너진다. 이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방어해야 하는 논리를 만든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의 바로 옆에는 주거 복지를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 서민들에게 빚을 지우고 집을 사게 하는 정책이 아닌, 부담을 덜고 집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정책 말이다. 50년 만기 주담대로는 이것을 달성할 수 없다. 지금 한국에는 주거 복지가 필요하다.
[1]
DSR은 Debt-to-Income Ratio의 약자로, 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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