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길이 가는 길, 우리가 먹는 것

2023년 8월 28일, explained

돛을 올린 카길이 꿈꾸는 세계에는 탈탄소가 없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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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식품 대기업 카길(Cargill)이 돛단배를 띄운다. 현지 시간 21일, 카길은 “길이 37.5미터짜리 돛 두 개를 장착한 벌크선 픽시스오션의 시범 항해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갑판에는 풍력 추진용 돛 ‘윈드윙스’가 설치된다. 카길은 윈드윙스를 통해 연비를 향상시켜 픽시스오션의 탄소 배출량을 최대 30퍼센트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카길은 “탈탄소를 위해 풍력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WHY NOW

전 세계 무역의 90퍼센트가 해운 산업에 의존하며, 해운 산업은 연간 10억 톤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한다. 풍력을 이용해서 배를 미는, 돛이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돌아온 카길의 선택은 해운 분야 탈탄소 전환을 위한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표면적인 접근이다. 카길의 목표는 탈탄소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속내를 한꺼풀 벗기면 식품 대기업이 만들어가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글로벌 식품 대기업 카길

카길의 범선은 싱가포르에서, 브라질을 거쳐, 덴마크로 간다. 그런데 카길의 본사는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다. 긴 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길이 어떤 회사인지 알아야 한다. 카길은 ABCD[1]로 불리는 세계 곡물 시장의 4대 기업이자, 미국에서 판매되는 쇠고기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빅4 가공 기업[2] 중 하나로서 북미 맥도날드 햄버거에 들어가는 패티를 공급한다. 카길은 아시아에서 남미로, 남미에서 유럽으로 대륙을 오가며 곡물을 이동시키는, 미국에 본사를 둔 식품 대기업인 것이다. 8만 1000톤을 적재할 수 있는 픽시스오션에 카길이 실은 것은 옥수수다.

옥수수의 비밀

옥수수는 우리나라에선 식량이지만, 해외에선 99퍼센트 이상 사료와 액상 과당, 에탄올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카길은 브라질에서는 콩과 옥수수를 생산하고, 덴마크에서는 전분과 감미료, 그리고 돼지 사료를 만든다. 브라질에서 생산된 옥수수는 덴마크에 와 사료가 되는 것이다. 이 사료는 다시 캐나다 카길 농장의 소들에게 간다. 그리고 도축된 소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장에서 패티로 가공되어 햄버거 속에 들어가 우리가 먹게 되는 것이다. 카길은 사료에서 시작해서 햄버거 패티까지, 우리 입에 들어가는 식재료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완벽한 수직계열화를 달성한 기업이다.

식품 산업의 수직계열화

세계의 식품 기업은 수직계열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CJ제일제당의 자회사 CJ Feed&Care는 사료와 축산, 신선육 사업을 한다. 베트남에서 돼지 사육부터 가공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했으며 현지에서는 사료·축산 부문 시장 점유율 2위를 달성했다. 닭고기의 대표 하림은 어떨까. 병아리 부화장부터 사료·가공 공장, 축산물 센터를 한 기업에서 전부 영업하고 있다. 우리나라 닭고기의 97퍼센트는 하림과 마니커 등 대기업 계열 업체에서 생산된다. 기업이 이루려는 것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경쟁력 확보다.

효율과 저렴한 가격의 이면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가격이다. 소비자에게도 이점은 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먹거리를 싸게 살 수 있다는데 환영하지 않을 소비자는 없다. 하지만 전 과정을 기업이 관리하게 되었을 때 정작 생산 주체인 농민은 주도권을 잃게 된다. 농업 연구자 브라이언 핼웨일은 저서 《로컬푸드》에서 식품 대기업으로 인해 주머니가 비어 가는 농민의 사정을 풀어 놓았다. 카길은 농민으로부터 곡물을 구매하는데, 이들이 구매하는 농산물은 종자 대기업 몬산토(Monsanto)의 종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로컬 종자로 재배된 곡물을, 카길은 구입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산지 농산물에 대한 주도권과 가격 결정권을 쥐게 되며 농민의 몫은 줄어든다. 미국 소비자가 1달러를 지출할 때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1910년에 40퍼센트였으나, 1997년에는 고작 7퍼센트로 쪼그라든다.

떨어지는 농업 소득

우리나라 농업 소득은 지난해 949만 원으로 떨어졌다. 농가의 전체 소득 중 농업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도 20퍼센트에 불과하다. 원인은 쌀값과 소값의 급락, 그리고 사료비 물가 급등이 지목받는다. 이중에서 사료비를 쥔 것이 대기업이다. 정부는 농업인의 생활 안정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곤 하나, 보조금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농업 보조금은 농부들로 하여금 돈이 되는 소수의 작물만 재배하게 만든다. 이러한 관행은 시장을 교란하고 가격을 낮추어 계속해서 농부들이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게 만드는 잔인한 역설을 낳게 된다.

치킨 값 2만 원은 누구 손으로 들어가는가

우리나라 농가 비율은 총 가구의 5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식품 문제는 4.3퍼센트의 농민을 넘어 100퍼센트 국민이 당사자인 문제다. 영국의 구호단체 옥스팜(Oxfam) 2011년, 주요 식품 가격이 2030년까지 최대 두 배 이상 상승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주된 이유는 기후 변화 영향이지만, 한편으로는 식품 부문에서 과도한 기업 집중적 구조가 가격을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이익이 집중되는 동안 비용은 소농과 노동자가 지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2만 원 치킨 시대에 살고 있지만, 농가가 하림과 마니커에 납품하는 닭의 가격은 1578원에 불과하다. 이중 병아리 값 500원과 사료 값을 빼면 농가의 소득은 1000원 이하로 떨어진다.

식품 산업의 윤리

국제 환경 단체 마이티어스(Mighty Earth)는 카길이 세계 운명에 대해 정부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며, ‘세계 최악의 기업’이라고 지적했다. 카길이 콩을 재배하기 위해서 아마존 열대 우림을 파괴하고, 원주민을 땅에서 쫓아냈기 때문이다. 카길이 세계 최악의 기업인 이유는 환경과 인권만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우리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먹거리에 힘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항생제 내성이 생길 것을 우려해 사용을 중단하라고 경고한 약물 HP-CIA가 있다. 카길 등 축산 대기업은 2022년에도 여전히 그 항생제를 소에게 투여하고 있었다. 사육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다. 축산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소는 항생제를 맞고, 닭은 창문 없는 계사에서 햇빛을 볼 수 없으며, 돼지 열 마리 중 한 마리는 의식이 있는 채로 도살되고 있다. 동물권과 윤리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항생제를 품은 채 스트레스를 받으며 죽어간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게 인간 신체에도 좋을 리 없다.

IT MATTERS

현대인은 점점 더 비만해진다. 이것은 과연 개인만의 책임일까? 식품 회사들은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그리고 입맛이 환영하는 만큼 많은 식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입맛을 획일화하고, 건강하지 않은 식품을 선택하도록 몰아간다. 식품 시스템이 깨지고 신선 식품보다는 가공 식품의 소비가 늘어나며, 영양 부족과 비만율은 전 세계 모든 연령대의 문제가 되고 있다. 

카길의 새로운 범선, 돛을 단 픽시스 오션은 탈탄소 전환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떠올릴 때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카길의 꿈은 전혀 탈탄소에 있지 않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저 앞으로도 사업을 유지하고, 세계로 공급망을 뻗치기 위해 카길은 탈탄소라는 뉴웨이브에 올라탔을 뿐이다.

좋다, 나쁘다라는 가치 평가가 들어간 말로는 기업의 행위를 평가하기 힘들다. 기업은 비즈니스를 위한 선택을 할 뿐이다. 카길 역시 그때그때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 선택은 때로는 환경을 파괴하거나 인권을 침해해 왔다. 또 때로는 이번처럼 탄소 저감이라는 기대감을 낳기도 한다. 문제는 그때그때의 선택이 아니라 식품 산업을 둘러싼 전반적인 구조다. 카길이 글로벌 공급망을 유지하는 이상, 바람으로 배를 밀어도 맥도날드의 햄버거에는 탄소 발자국은 남는다. 이것이 우리가 식품이 아닌, 식품 시스템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백승민 에디터
#explained #경제 #지구 #세계
[1]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에이디엠), 벙기(Bunge), 카길(Cargill), 루이 드레퓌스(Louis Dreyfus)
[2]
카길(Cargill), JBS, 타이슨 푸드(Tyson Foods), 내셔널 비프(National Be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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