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 FW Micro Trend
1화

취향을 통한 네트워킹, 무드보드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Mood board는 취향의 용광로다


무드보드라는 이름, 꽤나 직관적입니다. 무드(mood)를 보드(board)에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드보드는 본래 디자이너와 작가의 영역이었습니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마구 모아 콜라주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일종의 재료였죠. 디지털의 출현 전, 디자이너들은 물리적인 무드보드를 만들었습니다. 잡지와 신문 기사의 일부를 메스로 자르고, 폼 보드 위에 사진과 텍스트를 올려 뒀습니다. 완성된 무드보드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잘 보이는 곳에 전시됐습니다. 웨스턴 무드의 외투를 디자인하려는 패션 디자이너의 무드보드에는 말과 석양, 회전초와 선인장이 담겼을 겁니다. 떄로는 직접 뜯어 낸 카우보이 밧줄의 질감이 붙었을 수도 있습니다. 무드보드는 아이디어의 완성을 향해 가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런 무드보드가 새로운 세대를 만났습니다. 바로 Z세대와 알파세대입니다. 이들은 일기장보다 SNS가 익숙합니다. 일기장에 작은 자물쇠가 달렸던 것과 달리, SNS에는 친구들의 관심과 좋아요가 달리죠. 또 하나의 특성이 있습니다. 일기장이 대개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선형적 구조를 취하는 데 반해, SNS의 피드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피드 페이지를 보는 순간, 이 사람의 관심 분야가 전달하는 무드(분위기)가 보이죠. 인스타그램 세대인 잘파(Z+Alpha) 세대에게 취향의 전시는 당연한 감각입니다. 무드보드는 잘파 세대가 자신의 취향을 마구 넣고, 뒤섞고, 전시하는 취향의 용광로가 됐습니다. 그런 잘파 세대에게 무드보드는 과정이나 도구보다는 완성품이자 목표에 가깝습니다.

LOOKS OF, Mood board


최근 잘파 세대 사이에서 소소하게 인기를 끄는 한 어플리케이션이 있습니다. '랜딩(Landing)'이라는 어플리케이션입니다. 엘리(Ellie)와 미리(Miri), 두 여성 창업자가 만든 플랫폼 랜딩은 "집단적 영감, 진정한 표현, 의미 있는 연결의 교차점에서 역동적인 경험을 창출하기를 열망"하는 플랫폼입니다. 거창한 목표지만 제공하는 서비스는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플랫폼 랜딩에서는 버추얼 무드보드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랜딩은 수많은 이미지를 태그로 분류하여 제공합니다. 같은 종류의 피사체를 담은 사진이어도, 그 이미지가 전달하는 무드는 제각각입니다.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고양이, 락앤롤 느낌을 주는 고양이, 웃긴 표정을 한 코믹한 고양이까지 말이죠. 그래서 태그가 필요합니다. 랜딩에서는 이미지 검색 기능을 제공하는데요, 저는 최근 유행하는 y2k를 검색해 저만의 무드보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메탈릭한 소재의 캠코더와 은색 핀과 헬멧, 반짝거리는 치마로 유사한 분위기를 나타내려 했습니다. 이미지를 담다 보면 가끔 일관성이 없는 사진도 끼어들기 마련인데요, 그런 에러마저도 덕지덕지 붙은 무드보드에 자연스레 녹아 들어갑니다. 큰 손재주가 없어도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머지 않아 랜딩에서 알람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제가 만든 무드보드에 글리터(glitter)를 뿌린 겁니다! 제가 만든 무드보드가 마음에 든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리터는 취향을 전시하고, 그 취향을 기반으로 한 느슨한 커뮤니티 형성의 시작점이 됩니다. 마치 싸이월드의 일촌 신청, 인스타그램의 팔로우 신청 같은 겁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훨씬 느슨하고, 부담이 없죠. '나'를 전시하고 선보이는 게 아니라 '나의 취향'을 전시하고 선보이는 일이라 그럴 겁니다.

IN MEDIA

  • 취향의 전시와 공유는 뉴스 분야에서도 서서히 보이는 현상입니다. 뉴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표방하는 '아티팩트'는 뉴스를 스크랩해 마치 무드보드처럼 꾸밉니다.
  • 유튜브에서는 플레이리스트 콘텐츠가 새로운 형태의 무드보드가 됩니다. '5월의 햇살, 처마에 누워 듣는 플레이리스트'와 같은 형태의 자세하고 구체적인 제목은 플레이리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취향과 무드를 담고 있습니다. 감성적인 화면도 마찬가지입니다.

Mood board, INSIDE


무드보드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어플리케이션 핀터레스트도 이 흐름에 본격적으로 올라탔습니다. 1년 전, 핀터레스트는 콜라주 제작 어플리케이션인 셔플스(Shuffles)를 출시한 바 있습니다. 별도의 어플리케이션이었던 셔플스는 최근 핀터레스트 어플 내에 추가되는 기능을 테스트 중입니다. 사용자는 핀터레스트 어플 내에서 직접 사진을 찍거나 라이브러리에서 추가해 자신만의 콜라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핀터레스트는 이러한 무드 보드에 쇼핑 기능을 추가했는데요. 타인의 무드보드를 통해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바로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핀터레스트는 영감을 제공하는 무드 보드에서 더 나아가 쇼핑 플랫폼이 되고자 하고 있습니다. 취향의 수집과 전시를 향한 Z세대의 욕망이 새로운 비즈니스 분야를 제공한 셈입니다.

이 욕망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닙니다. 인스타그램 세대에게 지금의 인스타그램은 너무 따분하고, 촌스럽거든요. 기존의 소셜 미디어에서 이뤄졌던 네트워킹의 의미가 희미해졌습니다. 인스타그램은 릴스와 광고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트위터는 X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죠. 초창기 인기를 모았던 스레드는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희미해지는 전통적인 네트워킹. 이 흐름 위에서 등장한 랜딩은 취향이라는 잘파 세대의 연결고리를 파고 든 서비스입니다. 글리터는 네트워킹을 통해 나의 취향과 무드를 확장하고 발견해 나가는 계기로서 작용합니다. 취향은 나 자신을 소개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시작점입니다. 뉴스 서비스도, 음악을 듣는 행위도 이 마이크로 트렌드를 조금씩 흡수하고 있습니다. 취향의 전시와 연결이라는 흐름을 보건대, 지금의 잘파 세대에게 네트워킹은 필연적 만남도, 우연적 마주침도 아닌 또 다른 나의 발견에 가깝습니다. 이 흐름에 대비해야 우리는 미래의 연결과 유대감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만의 방식으로 작은 무드보드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다른 이의 무드보드를 마주치며 취향을 확장해 나가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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