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 FW Micro Trend
3화

소음의 시대에 집중을 위한 소리, 싱잉볼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싱잉볼은 일상을 조율하는 소리다


소리를, 음파를 느껴본 적이 있나요? 동그란 그릇을 두드리면 소리가 웅웅거리며 퍼집니다. 가장자리를 문지르면 그릇 안에서 소리가 확장되어 공간을 채우죠. 소리가 이끄는 곳은 명상의 세계입니다.

싱잉볼(Singing Bowl)은 2500년 전 불교권에서 명상과 치유의 목적으로 이용돼 왔습니다. 1970년대 뉴에이지 음악에서 사용되며 서양권으로 번진 싱잉볼의 유행은, 2020년대 들어 명상이 주목받으며 한국으로도 들어왔습니다. 금속, 크리스털 등 소재나 그릇 크기에 따라 싱잉볼은 고유의 소리와 진동을 가집니다. 당연히 사람마다 선호하는 소리도 다르겠죠. 높거나 낮은 싱잉볼 소리 중 자신의 선호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잡념을 비우는 명상과 휴식을 합니다.

힘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대입니다. 숨 가쁜 일상의 맥락에서 나 자신을 제거하고 진정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우리는 오감을 동원합니다. 숨을 돌리려고 향 제품을 늘어놓고, 피곤한 몸을 만들어 푹 자기 위해 운동하죠. 청각의 영역에서는 ASMR이 그 도구였습니다. ASMR은 이완, 수면 유도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는데요. 청각 테라피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면 사운드, 주파수 등으로 진화 및 세분화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싱잉볼입니다. 인체 곳곳을 진동시켜 고유의 주파수를 복원시켜 준다는 싱잉볼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노출되며 대중의 일상으로 들어왔죠. 새로운 소비의 흐름도 형성했습니다. 요가, 명상, 상담 등과 결합하여 테라피 프로그램이 생기고, 유튜브에는 명상과 숙면을 위한 3시간, 6시간짜리 싱잉볼 연주 영상이 올라옵니다. 이 새로운 소리는 ‘마음 챙김’이라는 현대인의 새로운 숙제를 돕고 있습니다.

LOOKS OF, Singing Bowl


조용한 방 안에서 인센스 스틱을 불에 달굽니다. 향이 방 안에 퍼지면 편안한 자세로 앉습니다. 왼손에 올린 싱잉볼을 오른손에 든 막대로 두드립니다. 사찰에서 들었던 종소리 같이 맑고, 목탁 소리 같이 깊은 싱잉볼의 음이 방 전체에 퍼집니다. 싱잉볼을 든 손에도 진동이 느껴집니다. 울림이 잦아들 때까지 싱잉볼을 신체 주변에 돌리며 소리를 느낍니다. 이번에는 막대를 들고 가장자리를 둥글게 문지릅니다. 음파는 싱잉볼 안에서 휘휘 돌며 점점 그 소리를 확장합니다. 귓속을 가득 채우는 일정한 음색에 아득한 마음이 듭니다.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듯, 싱잉볼은 강하게 두드릴수록 탁한 소리가 났습니다. 반대로 마음을 비우고 톡 하고 칠수록 맑은 소리가 났죠. 다양하게 녹음한 싱잉볼 소리를, 글을 읽으며 함께 들어 보세요.
다음으로는 유튜브에서 싱잉볼 연주 영상을 틀어 눈을 감고 명상을 해 보았습니다. 명상 초보인 저는 인터넷과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방법을 공부해 명상을 체험했는데요.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폰의 모든 알람을 끄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비록 디지털 사운드이긴 하지만, 오디오 기기에서 나오는 싱잉볼의 소리와 진동에 의지하여 천천히 호흡에서 몸으로, 머리에서부터 손끝으로, 배에서부터 발끝으로 집중을 옮겼습니다. 따뜻하거나 따끔거리는 기운이 온몸에 퍼집니다. 이유를 분석하는 게 아니라, 그저 느낌을 관찰하고 인정합니다.

청각은 시간의 흐름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감각입니다. 어떤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의 길이만큼 시간이 흐르니까요. 200년 전 고전 음악의 길이는 40분이 넘었습니다. 지금 대중음악 최전선에 선 걸그룹 뉴진스는 2분 30초대의 음악을 내놓습니다. 언제든 선택지를 바꿀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에 우리는 산만해지고 음악의 길이는 짧아지죠. 느긋하게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취미입니다. 대신 우리는 출근길, 운동할 때, 공부할 때 등 다른 활동과 연계하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음악을 듣습니다. 싱잉볼은 오랜만에 저에게 청각을 통해 시간을 감각하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다른 소리와 활동을 차단한 채, 오직 싱잉볼의 소리를 감상하고 그것을 신체로 느꼈죠. 집중할 필요가 없는 소리에 집중한 겁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 건 아닐지 몰라도, 적극적으로 썼죠. 쾌감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IN MY PHONE

(좌) 애플 아이폰의 배경 사운드 제공 화면 (우) 스포티파이 Songs for Sleeping 플레이리스트
  • 우리에겐 노이즈 캔슬링을 위한 새로운 소리가 필요한 걸까요? 애플은 iOS 15부터 ‘배경 사운드’ 기능을 통해 파도 소리, 빗소리 등을 제공합니다. 애플은 “잔잔한 소리를 재생하며 듣지 않고 싶은 주변 소음을 차단하고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를 줄여 집중력을 높이거나 편하게 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백색 소음의 효과를 이르는 기술은 ‘사운드 마스킹’이라고 합니다. 특정 주파수의 소음을 발생함으로써 다른 소음을 차단하는 효과를 이르는데요. 사무실 환경에서도 쓰이는 이 기술, 지금은 휴대 전화의 기본 기능이 되었습니다.
  • 스포티파이, 유튜브 등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는 휴식과 명상, 집중을 위한 플레이 리스트가 올라옵니다. 이 리스트를 채우는 음악은 주로 ‘앰비언트(Ambient)’ 장르의 음악입니다. 앰비언트 음악은 멜로디와 리듬 등 기존 음악의 전통적인 요소가 아닌, 주변음이나 배경음으로 여겨졌던 소리를 극대화하여 그 질감과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앰비언트 음악의 선구자인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는 이를 ‘무시할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음악’이라고 일컬었죠. 쉽게 말하자면, 일상의 배경음으로 깔아 두기 좋다는 겁니다. 휴식과 명상을 위한 플레이 리스트는 각각의 플랫폼에서 120만, 150만 회 등의 높은 조회수와 ‘좋아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Singing Bowl, INSIDE


우리는 하루 종일 듣습니다. 냉장고와 TV, 지하철, 거리의 매장과 사람들은 끝없는 음(音)을 발생시키죠. 우리는 이 소리들을 아예 인식하지 않거나 소음으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산만한 청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이즈 캔슬링이 된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자기의 세계에 집중합니다. 미국의 시인 제러마이아 모스(Jeremiah Moss)는 거리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지하철의 안내 방송도, 타인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도 듣지 않기를 선택하며 ‘공공 공간에서 개인 버블을 만든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싱잉볼 등 힐링 사운드의 유행은 이런 방식의 청취가 소음이 가득한 곳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공간과 휴식 시간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잡념, 가만히 있어도 쏟아지는 자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집중과 휴식을 위한 소리를 일부러 찾아 듣죠.

사회가 연결될수록 필연적으로 감각은 간섭 당합니다. 공동 주택의 이웃, 도심의 자동차와 사람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손에 쥐여진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새로운 소음을 발생시킵니다. 자극에 시달리며 이끌리는 우리는 청각의 주도권을 사회와 기술에 뺏겼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한 전복이 필요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를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느끼며 소리의 주도권을 찾아와야죠. 싱잉볼을, ASMR과 백색 소음 등 힐링 사운드를 선택해 듣는 것은 그 시도 중의 하나입니다. 명상과 집중, 휴식이라는 확실한 목적하에 사람들은 스스로의 청취 환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주도권을 발휘하죠. 힐링 사운드는 청각적 프라이버시뿐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효과까지 이끌어냅니다.

수많은 소음에 지쳐 귀마개와 이어폰 없이는 견딜 수 없나요? 오늘은 조용한 방 안에서 모든 소음을 차단한 채 싱잉볼의 소리에 집중하며 명상을 시도해 보세요. 잊고 살았던 감각과 적극적으로 교류할 때 새롭고 즐거운 듣기의 경험이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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