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하려는 당원, 개딸

2023년 9월 26일, explained

팬덤 당원들은 정당이 아니라 한 명의 정치인을 선택한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오늘 오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법원에 출석한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서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다면, 없었을 일이다. 14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적어도 30명 이상의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은 이 30여 명이 누군지, ‘색출’ 작업에 나섰다. 일부 의원은 이 색출 작업을 독려하기까지 한다.

WHY NOW

168석의 거대 야당이 흔들린다. 당론도 정하지 않고 치러진 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사퇴했다. 원내대표 보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네 명의 후보들은 모두 ‘이재명 지키기’를 기치로 내걸었다. 색출이란 이름의 칼바람 앞에 어떤 의원은 찬성표를 ‘인증’하며 살아남았고, 어떤 의원은 무슨 말을 한들 믿어 주겠냐며 탄식한다. 개딸의 힘이다. 이 새로운 정치권력의 정체를 파악하면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진단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개딸의 탄생

0.7퍼센트 차이였다.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는 0.7퍼센트 차이로 졌다. 이재명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 입장에서는, 특히 강성 지지자 입장에서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결과다. 뒤집을 수 있었던 선거를 끝내 뒤집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다. 대선 이후 한 달, 더불어민주당에는 14만 4천여 명의 신규 당원이 몰려든다. 이 중 4만여 명이 2, 30대 여성이었다. 개딸이다.

새로운 팬의 정체성

국민의힘에 20대 남성 유권자의 지지는 ‘외연 확장’이라는 거대 양당의 숙제를 일정 부분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대선 당시 당대표를 맡았던 이준석 전 대표에게 정치적 힘이 실릴 수 있었던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에도 그러한, 새로운 지지자가 절실했다. 개딸의 등장은 그래서 환영받았다. 20대, 30대 여성 유권자의 지지는 정당 이미지 쇄신의 차원에서 분명 유효한 카드였다. 그런데 이들이 세력화했다. 개딸은 장식품으로 소모되기를 거부했다. 큰 목소리, 큰 힘을 원했다. 지금까지의 정치 팬덤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후원과 좌표 사이

이들은 행동한다. 입당 자체가 행동이었다. 당원 가입을 하고 꼬박꼬박 당비를 내는 행위는 커뮤니티에 계정을 만들고 글을 올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 요구했다. 검찰개혁을, 언론개혁을 요구했다. 의원들에게 1004원, 2030원의 소액 후원금을 보내 독려하는가 하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원에게는 피켓 시위, 좌표 찍기 등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개딸들은 국회의원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에게는 권력이 있다. 당을 좌지우지할 권력이다. 불과 1, 2년 사이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을까. 지난 5월 국회미래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만들어진 당원: 우리는 어떻게 1천만 당원을 가진 나라가 되었나〉는 이들을 ‘지배하려는 당원’으로 규정한다. 자신들이 바라는 대통령이나 당 대표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당비를 내고 당원이 되는 사람들, 팬덤 당원이다.

지배하려는 당원

내가 택한 정치인을 당선시켜 정치적 효능감을 획득하고자 하는 팬덤 당원들은, 온라인으로 중앙당을 통해 직접 가입하기 때문에 지역 지부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관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즉, 당의 방향을 공유받고 지지하는 당원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당이 추진해 왔던 정책과 역사는 중요하지 않거나 전복해야 할 대상이 된다. 오히려 팬덤의 대상이 되는 정치인과 직접 소통하고,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기를 원한다. 상대 진영보다 같은 당 안의 다른 의견에 더 날을 세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정당이 아니라 한 명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은 장애물이고, 적이다.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는 같은 당의 다른 의견은 더 가깝고 더 위협적인 장애물이며 적일 뿐이다.

40억 원으로 만든 대통령 후보들

이런 팬덤 당원들의 존재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보고서는 정당이 ‘싸구려’가 된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싸구려가 된 정당의 가격을 계산하려면 투표권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당비를 알아야 한다. 월 천 원이다. 국민의힘은 3개월, 민주당은 6개월간 지속해야 각각 책임당원, 권리당원이 되어 투표권이 생긴다. 각각 3천 원, 2022년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국민의힘은 책임당원의 64퍼센트에 해당하는 36만 명이 참여했다. 3개월 당비를 계산하면 대략 10억 원 정도다. 민주당도 비슷한 비율로 참여했다는 가정으로 계산해 보면 6개월 당비 약 30억 원 정도다. 거대 양당의 대통령 후보들을 만든 금액이다. 내년도 우리나라 예산안 규모는 656조 9천억 원이다.

친박, 친문, 친윤, 친명

정치인 입장에서도 팬덤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이 된 후에도 당을 장악하며 정국 주도권을 틀어쥐려면, 팬덤에 기반한 여론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삼김시대’가 끝난 후 이와 같은 경향이 시작되었고, 쐐기를 박은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였다. ‘진실한 사람’이 불러왔던 파장이 상징적인 장면이다. 친박인지, 친문인지, 친윤인지 검증하고 검증 당하는 풍토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친명인지 비명인지를 감별하고 나선 개딸들의 색출작업도 이러한 맥락의 일부일 뿐이다. 이렇게 정치는 팬덤에 의존하게 되었다. 거대 양당이 보유하고 있는 ‘전통적 지지층’을 넘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IT MATTERS

문제는 팬덤 정치가 다양한 목소리를 삭제하고 ‘소수의 지배’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른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팬덤 정치 시대에는 협상파나 온건파들이 역할을 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는 협상과 논의가 아니라 극단적으로 치닫는 대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금 민주당의 친명-비명 갈등 양상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정치 혐오는 심화하고, 결국 정치는 엘리트와 팬덤의 소유로 전락한다.

최근 《시사IN》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뢰하는 정치인을 묻는 질문에 46.6퍼센트의 응답자가 ‘없음·모름·무응답’을 선택했다. 1위를 차지한 이재명 대표가 얻은 비율은 16.9퍼센트다. 또, 지난 7월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무당층이 거대 양당 지지층의 비율을 넘어서기도 했다. 역대 최대치였다.

결국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세워야 정치가 정치답게 기능할 수 있다.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은 저서 《옳고 그름》에서 인간의 뇌를 주목했다. 선택과 판단의 순간에 우리의 뇌는 ‘자동 설정’과 ‘수동모드’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맞다, 우리 편이 맞다는 확신은 자동 설정이다. 간편하고 편협하다. 반면, 자동 설정이 내린 결론을 뛰어넘어 이성적 추론 능력을 발휘하는 수동모드를 선택하면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다양한 목소리에 기회가 생긴다. 우리 정치에도, 유권자에게도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수동모드를 작동시킬 용기와 에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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