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졌다

2023년 10월 20일, explained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여당은 왜 졌을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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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참모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저와 내각이 돌이켜보고 반성하겠다”는 말도 있었다. 취임 이후 첫 반성 메시지다. 그만큼 급하다는 얘기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이후,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 기조를 바꾸고 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같은 이념 논쟁이 아닌 민생을 강조하고 나섰다.

WHY NOW

보궐 선거 패배 이후 정부와 여당은 쇄신 작업을 시작했다. 국민의힘 임명직 당직자들이 총사퇴했고, 혁신 기구가 출범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의 소통도 늘리기로 했다.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돌아선 민심을 붙잡기 위해서다. 이번 보궐 선거에서 여당은 왜 졌을까. 패배 과정을 복기하면 쇄신의 방향이 나온다.

이상한 선거

구청장 자리가 비어서 다시 뽑는데, 공석 상태를 만든 사람이 다시 출마했다.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다. 5개월 전까지 김 후보는 현직 강서구청장이었다. 김 후보는 문재인 정권 시절 청와대 비리를 폭로해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는데, 5월 18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구청장직을 잃었다. 그리고 10월 11일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 출마해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17.15퍼센트포인트 차이로 졌다.

여의도의 망설임

보궐 선거 두 달 전이었던 8월 초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보궐 선거에 후보를 낼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자당 소속 구청장이 유죄 판결을 받아 치러지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당규에는 이 경우 공천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무리해서 후보자를 냈다가 선거에서 패하면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진다. 내년 4월 빅매치를 앞두고 기초단체장 한 석 가지고 수도권 위기론이니, 리더십 부족이니 하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용산의 기획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김태우 후보는 유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권력형 비리를 폭로한 공익 신고자였다. 결국 윤 대통령은 8·15 광복절 특사로 김 후보를 사면 복권했다.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을 받고 구청장직과 피선거권을 잃은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보궐 선거에 출마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면 사흘 뒤 김 후보는 강서구청장 예비 후보에 등록한다. 9월 17일 당내 경선을 통과하고 국민의힘 후보가 된다.

총선 전초전

전국 기초자치단체는 226개다. 강서구청장 선거는 그중 하나다. 그러나 선거를 용산이 기획하면서 판이 커졌다. 전국구 선거이자 총선 전초전이 됐다. 구청장 하나 뽑는 선거의 선거대책위원회에 안철수, 나경원, 권영세, 정우택, 정진석 등 무게감 있는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대선급 캠프였다. 여당의 총공세에 야당 지지자들이 결집했다. 역대 재보선 최고 사전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이 표들이 민주당 후보에게 쏠렸다.

핫라인

여당 지도부는 유세 기간 내내 김 후보가 “대통령과 핫라인이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지인 찬스를 써서 막힌 사업을 풀어내겠다는 건데, 용산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표현이다. 올해 초 안철수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나가 ‘윤안연대(윤석열+안철수 연대)’라는 말을 사용했다가 대통령실에게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어쨌거나 이 전략은 먹히지 않았고 먹힐 수도 없었다. 윤 대통령의 서울 지지율이 39퍼센트다. 김 후보는 39.37퍼센트를 득표했다.

부동층

여당은 선거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원래 지는 선거였다고 말한다. 역대 보궐 선거는 여당의 무덤이었고, 강서구는 지역구 의원 세 명이 모두 민주당일 정도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직전 구청장부터가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구의회 구성도 민주당 12명, 국민의힘 11명으로 차이가 거의 없다. 대선 때도 득표율이 비슷했다. 즉 부동층이 많은 지역인데, 이번에 그들이 투표하지 않거나 등을 돌렸다는 얘기다.

용산팰리스

전문가 다수의 예상과 여론 조사의 예측대로 여당이 크게 졌다. 그런데 대통령은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많이 낙담하고 있다”고 한다. 이길 줄 알았다는 얘기다. 대통령은 청와대가 높은 담과 숲속에 갇혀 국민과 소통하기 어렵다면서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겼다. 구중궁궐 청와대보다 확실히 도로변에 가까워졌는데, 민심과 멀리 떨어진 건 용산팰리스도 마찬가지다.

IT MATTERS

기초단체장 한 명 뽑는 선거를 용산이 전국 선거로 키웠다. 용산이 기획하고 여의도가 따라갔다. 그 결과 김태우 후보도 졌고, 국민의힘도 졌고, 윤석열 대통령도 졌다. 여당에서 수도권 위기론이 커지고 보수 신당 창당론까지 나오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변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선거 참패 이후 국민의힘은 ‘김기현 지도부 2기’를 출범시켰다. 임명직 당직자 전원이 사퇴한 자리를 또 친윤, 또 영남권 인사로 채웠다. 다음 주에 발족할 혁신 기구도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1년 전쯤 이런 보도가 나왔다. 윤 대통령이 주변에 “다음 총선은 어차피 내가 치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총선 승패는 대통령 지지율에 달렸으니 당 대표는 공천 관리만 잘하면 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 지지율이 34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용산의 선거 역량도 강서구에서 확인됐다. 내년에 또 따라가면 또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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