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가마솥이 만들어진 이유

2023년 10월 6일, explained

거대 가마솥은 지방 자치가 무력하다는 증거다. 무엇이 지역의 정치를 바꿀 수 있나?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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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와 괴산군이 성금과 예산 5억 3000만 원이 투입된 괴산 가마솥의 활용 방법을 두고 고심 중이다. 지난 8월 괴산군은 ‘괴산 가마솥 활용 아이디어 공모’를 추진했다. ‘김장 축제와 연계’, ‘경관 조명 설치’가 우수상에 뽑혔고 ‘가마솥 테마 포차 거리 조성’, ‘실패 박물관 건립’ 등의 일곱 건은 장려상에 선정됐다. 최우수상은 없었다. 혁신적이고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WHY NOW

반주현 괴산군 부군수는 가마솥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신규 공무원 등이 실패, 교훈 사례로 관람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라 밝혔다. 애물단지 가마솥이 소중한 교훈이 되기 위해서는 그대로 두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괴산 가마솥 안에는 우리나라 지방 자치의 문제,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의 공백이 담겨 있다. 가마솥 안을 들여다봐야 할 때다.

괴산 가마솥

2004년 초, 괴산군에 가마솥 제작 추진 위원회가 생긴다. 지름 5미터, 둘레 17미터, 무게 43.5톤에 이르는 거대한 가마솥을 만들어 군민 3만 8000명이 ‘한솥밥’을 먹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표였다. 안타깝게도 한솥밥이라는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가마솥이 너무 크고 두꺼워 열이 제대로 전도되지 않았던 탓이다. 뚜껑을 들어 올리기 위해 크레인이 필요한 괴산 가마솥은 전시 행정, 예산 낭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초대형 가마솥을 그 자리에 영구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낡은 사고와 성과주의”라는 말로 가마솥을 수식했다.

2003년의 괴산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가마솥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 건 2003년 11월이다. 당시 괴산 내 증평으로 분류된 지역이 군으로 승격하면서 괴산군은 인구 4만 명의 작은 도시가 됐다. 행정구역이 분리되면서 괴산군은 인구 및 면적이 줄어들며 예산 역시 감소했다. 타개책이 필요했다. 경제적 타개책은 관광이었다. 김문배 당시 군수는 “호기심이 많은 우리 민족은 가마솥을 보고 갈 것”이며 “이 가마솥이 괴산군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가마솥으로 기네스북에 오른다면 세계에서 주목받는 도시가 될 수도 있으리라 단언하기도 했다. 군민을 하나로 모을 계기 역시 필요했다. 12개의 화로에는 괴산군 내 읍, 면의 이름이 적혔다.

예산과 방향성

가마솥을 만드는 데 든 돈은 총 5억 원으로, 군 예산 2억 7000만 원에 군민 성금 2억 3000만 원이 지출됐다. 당초 배정된 예산보다 1억 4000만 원이 추가로 소요됐다. 지름이 5미터에서 5.7미터로 늘었고, 용 문양 등이 추가되면서 사업비가 늘었다. 제작 자체도 쉽지 않았으나 멈출 수는 없었다. 2004년, 거푸집이 터지는 등 사업에 차질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괴산군은 가마솥 제작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박중호 당시 기획경제실장은 “가마솥은 많은 분들에게 공약한 상황이고 군민들로부터 성금과 고철도 모았으며 군비까지 투자했기 때문에 이 사업은 어려움이 있어도 제작을 완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향성은 희미해졌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돈이 들어갔으니 결과물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사용되지 않은 가마솥은 매년 1000만 원의 유지 비용을 발생시켰다. 반면 경제적 효과는 미미했다.

지역이 필요로 하지 않는 공약

방향성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마솥은 지역의 현안에 맞는 사업도, 면밀한 검토를 거친 사업 아니었다. 이길준 당시 군의원은 솥을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한 사항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사업에 착수해 주민이 “집행부에 대한 믿음을 못 갖는 상태까지 왔다”고 지적했다. 안재인 당시 군의원 역시 가마솥 제작을 포함한 15대 핵심 사업이 지역 발전에 기초를 확실히 닦을 사업인지가 의심된다는 지적과 함께 괴산의 농업군에 걸맞고 농촌을 개혁하는 사업이 없다는 지점을 지적했다. 지역의 현안과 멀어진 사업을 억지로 추진하고, 그에 예산을 쏟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예산을 많이 썼다고 애물단지가 되는 건 아니다. 지역, 주민이 필요로 하지 않는 공약일 때 사람들은 가마솥을 금방 잊는다.

중앙 정치 따라하는 지역 정치

지역의 현안과 멀어진 구조물들이 계속해 생기는 이유는 뭘까? 지역의 정치는 지역민의 일상 생활과 밀접히 연관된 현안을 다뤄야 한다. 때문에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지역 정치의 핵심이다. 중앙 정치의 지향은 조금 다르다. 중앙 정치는 국가의 주요 정책의 우선 순위를 설정하고, 사회가 지향할 가치를 다룬다. 지역 정치와 중앙 정치의 지향점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지역 정치는 중앙 정치의 구도를 답습한다. 지난 2022년 치러진 지방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방 선거가 대선의 연장전으로 프레임화되면서 민생 공약과 지역의 현안은 뒤로 밀리고, 여야의 비리 의혹으로 지방 선거의 의제가 형성됐다. 일당 독주 체제가 없는 지역의 경우 랜드마크, 미래 먹거리라는 추상적인 말로 포장된 포퓰리즘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쏟아진 공항 정책이 그 사례다. 지역이 당면한 현안과는 거리가 멀다.

저녁 시간

지방 자치 제도는 주민과 자치 단체가 지역 공동체의 공동 과제를 해결하는 형태의 제도다. 하나의 주체라도 빠지면 자치는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의 문제는 그것이 너무도 많은 저녁 시간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방 자치도 마찬가지다. 2003년의 괴산 주민들은 성공적인 가마솥을 위해 성금을 내고, 집 안의 쇠붙이를 기부했지만 실제로 그 가마솥이 어떤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지는 알지 못했다. 예산이 어떻게 산정됐는지, 지역이 당면한 문제 해결에 필수적인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주민이 아닌 단체장이었기 때문이다. 2023년의 지방 자치는 오스카 와일드의 현실적인 진단을 넘어서야 한다. 지방 자치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더 많은 저녁 시간을,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야 한다. 결국 가마솥을 만든 건 주민이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

지역 언론은 그 저녁 시간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지방 선거가 다가오면 지역 신문은 선거 입후보 예정자와 후보자를 소개한다. 주민이 후보 선택에 들일 수고와 시간을 줄여 준다. 지역의 문화와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도 지역 언론의 역할이다. 때로는 언론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대구·경북 지역의 독립 언론 〈뉴스민〉은 영천시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회사의 노조 이야기를 담아 10년 동안 바뀌지 않은 태극기를 갈았다. 사소한 변화지만 그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앙 언론은 영천시에 위치한 회사의 노조 이야기를 주목할 수 없지만 지역 언론은 가능하다. 지역의 정치도, 지역의 언론도 중앙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움직여야 한다.
IT MATTERS

지방 선거 투표지는 어렵다. 뽑아야 할 사람은 많은데, 뽑을 사람이 없다. 2022년 지방 선거에서는 무투표 당선자가 500명에 육박했다. 전체의 12퍼센트에 해당한다. 중앙 정치의 구조를 답습하는 지방 자치, 주민과 지역 정치의 괴리는 지역 소멸을 겪는 한국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제임스 윌슨은 주민이 직접적인 편익과 비용을 감지할 수 없다면, 주민은 자치 활동에 참여하려는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간 한국의 지역민들은 지방 자치로 인한 효용감, 편익을 감지한 적이 없었다. 가마솥처럼 비용이 눈에 보이는 문제가 다뤄질 때에야 잠깐 이목을 끌 뿐이다. 주민의 저녁 시간이, 지역 언론이, 지방 행정의 체질 개선이 둔감해진 주민의 정치 감각을 다시 벼릴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정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실험 중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베르그루엔 연구소는 개방형 소프트웨어 ‘오픈 인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주민의 참여가 절실한 중규모 지방 정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정치인과 유권자는 지역에게 필요한 의제를 쉽게 구조화할 수 있다. 주민은 플랫폼을 통해 조례의 입법 과정을 알 수 있고, 통과된 법안이 어떠한 현안과 관련돼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역 정치의 구조가 풀뿌리 의제라는 본질로 돌아갈 때, 괴산의 가마솥은 비로소 녹슨 실패의 모범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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