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프티의 정치

2023년 11월 15일, explained

‘스위프트적인 가치’가 팬덤을 타고 정치에 나섰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2023년 11월 9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디 에라스 투어’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 Marcelo Endelli,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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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덤 ‘스위프티’가 아르헨티나 대선에 목소리를 냈다.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다.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도 밀레이 후보의 러닝메이트 빅토리아 비야루엘을 비판했다. 비야루엘 후보가 과거 BTS 그룹명과 멤버를 향해 혐오적 발언을 뱉었다는 이유에서다.

WHY NOW

비판한 대상은 비슷했지만, 이유는 달랐다. 스위프티는 밀레이 후보가 임신 중단을 주장하고,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가 지향하는 가치가 스위프트적인 것과 배치된다는 논지다. 그들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아닌 스위프트적인 가치와 현상을 말한다. 기존의 팬덤과는 다르다.

비틀마니아

팬덤은 목소리를 모은다. 그렇게 모인 거대한 목소리는 시대적 변화를 읽는 리트머스인 동시에 변화를 만드는 신호탄이 되기도 한다. 집단으로서의 팬덤은 1960년대 전면화된다. 10대 여성으로 구성된 비틀스의 팬덤 ‘비틀마니아’가 대표적이다. 평론가 존 새비지(Jon Savage)는 비틀스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비틀스는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현상에 가까웠다. 이들은 비틀스가 그려진 티셔츠와 앨범 가게에서 구매한 포스터를 벽에 붙였다. 여성 청소년들만이 모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도 했다. 미국의 작가 바바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는 비틀마니아 현상이 “여성의 가장 극적인 봉기”였다고 지적했다.

스위프티

지금 비틀마니아의 뒤를 이은 건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덤 스위프티로 보인다. 강력한 힘에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인기가 한몫했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투어를 통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는 50억 달러로 추산된다. 50개국의 GDP보다 높은 수치다. 그의 고향인 테네시에서 열린 콘서트의 관객 수는 하루 7만 1000명, 3일 동안의 관객 수는 21만 명을 기록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에 따라 한 나라의 관광 수익 전체가 요동친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서 투어 중인 스위프트의 공연이 연기되자 남미 최대의 항공사 ‘라탐 에어라인(LATAM Airline)’은 팬들이 무료로 항공권을 다시 예약할 수 있도록 했다.

대안 우파의 아이콘

데뷔 초는 지금의 이미지와 조금 달랐다. 금발을 가진 백인 여성, 남부 시골의 농장 출신의 컨트리송 싱어라는 속성은 테일러 스위프트를 ‘대안 우파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백인 우월주의 웹사이트 ‘더 데일리 스토머(The Daily Stormer)’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아리아의 여신이라 칭했고, 2013년에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사진과 아돌프 히틀러의 경구가 합성된 밈이 유포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음모에도 불구하고 테일러 스위프트는 2018년까지 공개적으로 정치적 입장 표명을 꺼려 왔다. 2012년의 한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저는 누구에게 투표해야 하는지를 말할 만큼 많이 알지는 못해요.”

성장 서사

그런 테일러 스위프트가 2018년 돌연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테네시주의 공화당 여성 상원의원 후보인 마샤 블랙번을 비판한 것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그가 남녀동등임금법, 여성폭력방지법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을 지적하며 “여성의 정계 진출을 늘 지지하지만, 마샤 블랙번은 지지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넷플릭스는 2020년,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를 통해 그 변화를 그린다. 영화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라고 소개한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테일러 스위프트는 성장해 왔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컨트리송을 부르는 백인 여성에서 성 소수자와 인종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세계적인 팝 스타로 말이다. 그에겐 성장 서사가 있었다.

성인이 되는 법

음악 평론가 앤 파워스(Ann Powers)에 따르면 “우리는 아이가 없는 여성을 성인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른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그런 세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싱어송라이터인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신의 성장을 10집의 앨범에 담아낸다. 그와 함께 자랐던 밀레니얼 세대, 그를 보며 자란 Z세대는 스위프트의 서사에 자신을 의탁한다. 스위프트가 벽장을 깨고 나온 것처럼, 스위프티의 정치적 목소리도 점차 커졌다. 언론사 ‘가넷(Gannett)’이 고용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전담 기자를 두고, 스위프티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스위프트라면 여성에게 자리를 주고 싶어 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스위프트처럼 성장하기

스위프티는 중산층 백인 여성 팬덤에 다채로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비틀마니아처럼 소리를 지르는 광신도의 이미지, 록밴드의 뒤를 쫓는 그루피의 이미지가 강했던 과거와는 다르다.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NFL에는 그녀를 따른 여성 팬들이 모이고, 정치적 목소리 바깥에 있던 10대 여성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 그렇다고 그들이 스위프트의 말을 따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스위프트처럼 성장한다. 수동적이지 않다. 그들의 목소리가 정치권, 언론에까지 강력하게 가닿는 이유다.

역할 모델

202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53퍼센트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이다. 그중 74퍼센트가 백인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분명 말하고 성장해 나가는 여성의 역할 모델을 제시했지만, 결국 그가 모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는 없다. 스위프트라는 현상 다음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스위프티가 발휘하는 영향력을 어떻게 다른 모습의 역할 모델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지다. 이때 테일러 스위프트가 만들어 온 서사가 시사점을 준다. 새로운 팬덤은 완벽히 완성된 상품을 소비하기보다는 함께 성장하고 담론을 만들어 나가길 원한다. 그들이 사랑하는 테일러 스위프트는 벽장을 용감하게 깨고 나온 그 과정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IT MATTERS

팬덤 정치는 인물을 좇는다. 스위프티의 정치는 인물의 서사와 가치를 좇는다. 기존의 가치를 답습할 수밖에 없는 정치와 달리, 팬덤의 정치에서 가치는 변하고, 새로워질 수 있다. 결국 스타는 멋있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쌍방향적으로 그 멋있음의 가치와 서사를 쌓을 수 있다는 것. 그게 팬덤의 정치가 가진 힘이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무해한 백인 여성에서 정치적 목소리로 성장한 것처럼 점차 멋진 것의 이미지는 다양해질 것이다. 샘 스미스와 릴 나스 엑스​​​​의 그것처럼 말이다. 다양해질수록  팬덤의 정치적 움직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아르헨티나의 스위프티는 ‘스위프트의 말’이 아닌 ‘스위프트적인 가치’를 지향했다. 가치를 덕질하는 집단은 언제나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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