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운하가 막히면 일어나는 일

2023년 12월 12일, explained

파나마에 가뭄이 들었다. 전 세계의 크리스마스가 가난해진다.

지난 9월, 파나마 운하를 지나는 컨테이너선의 모습. 사진: Justin Sullivan/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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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이 위기에 처했다. 우리 얘기가 아니다. 전 세계의 얘기다.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는 배가 들어와야 한다. 항구에 배가 들어와야 물건이 들어오고 실물 경제에 피가 돈다. 그런데 지금 세계의 뱃길이 위험에 처했다. 세계 양대 운하로 꼽히는 수에즈와 파나마 운하가 모두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WHY NOW

수에즈는 전쟁으로 막혔다. 운하로 접어드는 유일한 남쪽 통로인 홍해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무장 세력, ‘후티 반군’이 드론과 미사일로 선박을 공격하고 있다. 명분은 팔레스타인 지원이다. 파나마는 가뭄으로 막혔다. 이상 기후로 가뭄이 들면서 파나마 국민 전체보다 물을 더 많이 들이키는 파나마 운하에 물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은 정치의 문제다.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이 가세하면서 수에즈 쪽의 상황은 호전될 전망이다. 그런데 가뭄은 자연의 문제다. 인간이 저지른 욕심으로 이상 기후가 발생했지만, 이걸 당장 해결할 방법은 인간에게 없다. 파나마 운하의 교통 체증은 20세기 이후 세계 경제의 모델 하나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바로 ‘적시 생산’ 모델이다.

결정적인 지름길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 양대 운하로 꼽히는 파나마 운하. 파나마 운하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에 위치한 좁은 지름길이다. 좁지만, 결정적인 지름길이기도 하다.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배를 보낼 때 파나마 운하를 거치지 않는다면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의 칠레로 빙 돌아가야 한다. 우리 기업도 미국 동부나 유럽으로 수출하는 물량은 파나마 운하를 경유해 보낸다. 워낙에 목이 좋다 보니, 전 세계 해상 교역의 6퍼센트가량이 파나마 운하를 지난다. 무엇보다, 미국으로 향하는 컨테이너 물동량의 40퍼센트가 파나마 운하를 지난다. 매일 40여 척의 선박이 통과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는 하루에 22척 정도만 통과할 수 있다. 내년 2월부터는 18척 정도만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배가 산으로 가면

파나마 운하는 배가 산을 넘어가는 구조로 되어있다. 바다에서 진입한 배가 들어오면 갑문을 닫고 물을 채워 배를 높이 띄운다. 그리고 갑문을 열어 배가 한 단계 높은 지대로 올라간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배가 산을 넘는다. 보통 8~10시간 정도 걸린다. 사람이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사람은 다리 힘으로 계단을 오르지만, 배를 밀어 올리는 것은 갑문 안으로 채워 넣는 엄청난 양의 물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런 방식으로 배 한 척이 산을 넘는 데에 2억 리터가량의 물이 필요하다. 파나마 국민 50만 명이 하루에 사용하는 양이다.

급행료 400만 달러

그런데, 파나마에 가뭄이 들었다. 원래 운하라는 것이 땅을 파서 인공적으로 만든 물길이다. 배가 지날 수 없는 곳에 배가 지날 수 있도록 물길을 낸 것이다. 당연히 가뭄이 들면 차질이 생긴다. 배가 한 척 지날 때마다 2억 리터의 물을 쏟아부어 산을 넘어야 하는 파나마 운하에는 더욱더 치명적이다. 특히, 미국 동부 해안과 한·중·일 사이의 뱃길이 꽉 막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운하를 줄 서지 않고 통과하기 위한 ‘패스트 트랙’ 이용권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지난 11월, 일본 에네오스 그룹의 LNG선은 일반적인 통과 수수료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400만 달러를 추가로 지불하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했다.

선물이 비싸진다

때문에 지난 연말, 업계에서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중국에서 화물선을 타고 출발한 최신 스마트폰, TV, 장난감은 물론이고 플라스틱 트리와 크리스마스 조명이 실린 컨테이너의 배송까지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유럽으로 도착할 물건들이었다. 예약 없이 오는 배들의 경우 보통 4.3일 정도 대기하면 운하를 건널 수 있었다. 그런데 가뭄 이후 2주에 가까운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크리스마스에 어린이들이 선물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은 과장된 것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비싸질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이었다. 운하 근처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동안에도 배의 연료는 닳는다. 먼 길을 돌아가는 운송 경로를 선택해도 비용이 더 든다. 그 좁은 지름길이 인플레이션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시간은 돈이다

시간은 돈이다. 물류에 있어 시간은 너무나 돈이다. 그래서 역사상 인류는 더 빠른 운송 경로를 찾기 위해 탐험을 되풀이했다. 목숨도 걸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파나마 운하다. 그런데 이제 파나마 운하 앞에서 지체되는 시간이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운송비 얘기가 아니다. 탄소 경제의 관점에서도 너무나 비싼 비용이다. 국제 해운 산업은 대표적인 탄소 배출 산업으로 꼽힌다. 전 세계 배출의 3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일본과 맞먹는 규모다. 운하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대형 화물선도, 먼 길을 돌아서 가기로 한 화물선도 예상외의 추가 비용을 치르고 있다. 추가 탄소 배출이라는 비용이다. 탄소가 쌓여 기후 위기는 더 심각해진다. 가뭄을 견디고 있는 파나마 입장에서 좋은 소식은 아니다.

환경 때문에, 그리고 환경 때문에

파나마 운하 측은 새로운 저수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 먼저, 이 가뭄이 기후 변화로 인한 지속될 현상인지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다. 역사상 주기적으로 관찰되는 엘니뇨 기간의 여파일 뿐이며, 내년이나 그다음 해에는 강수량이 종전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다면 저수지를 건설한다는 선택은 장기적으로 손해다. 또 다른 장애물은 파나마 국민의 민심이다. 최근 파나마 정부는 캐나다의 한 기업과 맺었던 구리 광산 채굴권 계약을 무효로 돌렸다.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 때문이었다. 반대 여론의 가장 큰 근거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새롭게 저수지를 건설하게 된다면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을 통째로 수몰시켜야 한다. 국민의 동의를 얻기 쉽지 않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파나마 내부의 논란과는 관계없이, 해운 업계에서는 기후 위기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미시시피강의 수위가 너무 낮아져 선박이 좌초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고, 지난 2021년에는 캐나다 밴쿠버 근방에서 강력한 사이클론이 발생해 109개의 컨테이너가 바다로 떠내려갔다. 이대로라면 해운 업계는 2050년까지 기후 변화로 인해 연간 100억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된다. 세계 2위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Maersk)는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컨테이너선을 도입했다.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결정이다. 그러나 연료비가 상대적으로 비싸고 공급량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기후 위기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친환경 선박이 유효한 수준으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IT MATTERS

전 세계를 가깝게 연결했던 물류가 정체되면 세계 경제가 의존해 왔던 모델이 하나 깨진다. 바로 ‘적시 생산(just in time manufacturing)’ 모델이다. 부품을 쌓아 두는 대신 시장 상황에 따라 수요를 판단하고, 그때그때 조달하는 방식을 뜻한다. 도요타의 ‘린(lean)’ 생산 방식이 대표적이다. 맥킨지와 같은 굴지의 컨설팅 업체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자리 잡았다. 창고에 재고를 쌓아두지 않고 가장 최신의 부품을 필요한 만큼 조달해 바로 생산한다. 효율적이다. 비용이 줄어든다. 애플의 팀 쿡 CEO도 이 적시 생산 모델을 성공적으로 도입하면서 스티브 잡스의 신뢰를 얻게 된 바 있다. 그런데 이 모델의 전제가 바로 ‘그때그때 부품을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에 휘청이는 해운 업계의 사정이 이 적시 생산 모델의 전제를 흔들 수 있다. 해운뿐만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한파로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면 중국에 위치한 공장의 생산량이 줄어들거나 멈춘다. 대만에서 생산된 반도체가 패키징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운송되었다가 최악의 홍수를 만나 발이 묶이기도 한다. 결국 제조업체는 재고를 늘리거나, 공급망 다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 적시 생산 모델과 모순된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적시 생산 모델을 위한 방법을 찾아내든지, 아니면 비싸진 크리스마스를, 비싸진 일상을 받아들이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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