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는 왜 실패할까

2023년 12월 14일, explained

한국 정당의 혁신 기구는 왜 혁신에 실패할까?

11월 3일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회의실에서 혁신위원회 전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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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12월 11일 성과 없이 활동을 종료했다. 원래 12월 24일까지 활동할 예정이었지만, 당 지도부가 ‘주류 희생’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쇄신 동력을 잃고 조기 해산했다. 혁신위는 당 지도부, 중진, 친윤석열 의원들의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포함한 6개 혁신안을 당 최고위원회에 보고하고 활동을 마무리했다.

WHY NOW

정당 혁신 기구의 수만큼 한국 정치는 불행하다. 선거에서 참패한 정당은 ‘뼈를 깎는 노력’을 다짐하며 혁신 기구를 만든다. 예상보다 크게 지면 비대위, 덜 크게 지면 혁신위를 발족한다. 국민의힘은 비대위만 열 번 꾸렸다. 거의 매년 비대위와 혁신위를 출범한다는 건 거의 매번 혁신에 실패한다는 방증이다. 한국 정당의 혁신 기구는 왜 번번이 실패할까. 인요한 혁신위가 오답 노트다.

진단

10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잘하면 이길 수 있고 져도 아깝게 질 줄 알았는데, 17퍼센트포인트 차이로 졌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필패였다. 보름 뒤 국민의힘은 혁신위를 출범시켰다. 당 지도부는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를 혁신위원장에 임명했다. 인 위원장은 첫 일성으로 “와이프,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했다. 진단부터 틀렸다. 와이프, 자식부터 바꿔야 했다. 한국 정당의 모든 병폐는 한 가지 문제에서 시작한다. 사당화(私黨化)다.

처방

대통령 또는 차기 대권 주자가 당을 자기 입맛대로 주무르는 게 한국 정당의 근본적인 문제다. 그런데 모든 혁신 기구의 장은 자신을 임명한 권력자를 겨냥하지 않는다. 진단이 잘못됐으니 처방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여야 할 것 없이 혁신 기구는 국회의원 특권 포기, 세비 삭감, 중진 불출마 같은 대증 요법만 십수 년째 반복 처방한다. 인 위원장 역시 “나는 온돌 아랫목에서 예의를 배웠다”며 윤 대통령을 혁신의 대상에서 일찌감치 제외했다.

실권

대통령 임기 초반이다. 여당의 무게 중심이 대통령에게 쏠려 있다. 혁신위가 성과를 내려면 실권자인 대통령이 힘을 실어 줘야 하는데, 인요한 혁신위는 혼자 싸웠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문재인 당 대표는 재·보궐 선거 네 곳에서 모두 패하자 퇴진 압박을 받았다. 문 대표는 돌파구로 혁신위를 택했다. 비문계를 의식해 계파색이 옅은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혁신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러고는 혁신안이 부결되면 당 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며 혁신위에 힘을 실었다.

전권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은 사람은 인요한뿐이었다. 권한이 없으니 영이 서지 않는다. 당 주류에게 희생을 요구해도 응답이 없었다. 혁신 기구의 장은 전권을 쥐여 줘야 할 사람이 아니라, 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맡아야 성공한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가 대표적이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보수 정당의 상징색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꿨다. 총선을 앞두고 현역 의원의 25퍼센트를 날렸다. 당내 반발이 컸지만, 박근혜니까 가능했다.

원외

게다가 인 위원장은 현역 의원도 아니었다. 당내 입지가 좁아 현역 의원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어려웠다. 현역 의원들은 정치를 모르는 혁신 기구가 굴러가는 한두 달만 뭉개며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다. 김희옥, 인명준, 김병준 비대위도 그렇게 실패했다. 원외 인사가 혁신 기구를 이끌어 성공한 사례는 민주당 김상곤 혁신위, 김종인 비대위 정도다. 실권자가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 주거나, 압도적인 정치 경력을 갖춘 거물이 아니라면 원외 인사는 당 장악력이 떨어져 혁신에 성공하기 어렵다.

공천

과거 정풍 운동은 초선 의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인요한 혁신위는 초선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공천 때문이다. 최근 친윤계 초선 의원 10명은 국민의힘 전체 의원이 들어가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지도부 지키기에 나섰다. 지도부 퇴진을 요구한 하태경, 서병수 의원을 “자살 특공대”, “내부 총질”이라고 표현하며 비판했다. 이 초선들은 대부분 공천이 곧 당선인 영남 지역 출신이었다. 현 지도부가 유지되는 게 공천에 유리하다. 공천권 없는 혁신위원장은 칼 없는 무사와 같다.

기준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혁신할 수 없다. 객관적 기준도 필요하다. 이제까지 성과를 냈던 혁신 기구의 장은 대부분 계파색이 옅고 중립적인 인물이었다.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 상대를 설득했다. 인 위원장은 영남, 중진, 친윤 인사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요구했는데, 이건 객관적 기준이 아니다. 혁신의 대상이 되는 의원들로선 억울할 수 있다. 그러니 더 세게 반발한다. 과거 박근혜 비대위처럼 현역 의원을 평가해 하위 25퍼센트는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 객관적 기준을 내세워야 한다. 그래야 명분이 생긴다.

IT MATTERS

인요한 혁신위는 성과 없이 조기 해산했다. 수용되지도 않을 혁신안을 마련하느라 50일을 허비했다. 혁신위의 성과 없음이 역설적으로 혁신의 불씨가 됐다. 혁신위가 활동을 종료한 다음 날, 국민의힘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다음 날인 12월 13일 김기현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국민의힘은 이제 비대위 체제로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 벌써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총선 시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들어설 비대위는 인요한 혁신위보다 혁신의 강도가 셀 것이다. 그러나 사당화라는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2024년 4월 또 다른 혁신 기구를 세우고, 또다시 ‘뼈를 깎는 노력’을 약속하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깎을 뼈가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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