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봄’은 요원하다

2023년 12월 19일, explained

홍콩은 모든 면에서 침몰하고 있다.

《빈과일보》의 창립자 지미 라이가 지난 2020년 12월 31일, 보석 심리를 위해 홍콩 최종 항소 법원에 도착하는 모습. 사진: Anthony Kwan, Getty Images
NOW THIS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재판이 시작됐다. 홍콩판 성공 신화의 주인공, 지미 라이의 재판이다. 돈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패스트 패션 브랜드, ‘지오다노’의 창업자다. 힘도 가진 사람이었다. 지난 2021년 폐간한 《빈과일보》의 창립자다. 그런 그가 체포되었고, 기소되었고, 재판이 시작된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WHY NOW

《빈과일보》는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신문이었다. 서구 언론은 지미 라이를 가리켜 “중국에 대항하는 유일한 홍콩의 백만장자”라고 묘사했다. 이번 재판의 결과를 낙관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과 영국 등은 성명을 내고 라이의 석방을 촉구했다. 그러나 규탄하고 촉구할 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다. 지미 라이의 재판 결과는 선고가 될 것이다. 우리가 알던 홍콩에 대한 ‘사망 선고’다.

2020년 홍콩 보안법

홍콩은 빛났고, 뜨거웠고, 살아있었다. 2014년 시작된 ‘우산 혁명’은 역설적이게도, 홍콩의 삶의 의지, 생명력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본격적으로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2020년 6월 30일,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다. 국가 분열이나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세와의 결탁 등에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무시무시한 죄목 같지만, 들여다보면 경계가 모호하다. 중국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그 어떤 행동도, 죄라고 하면 죄다. 국제사회는 우려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정치; 젊은 정치인의 망명 행렬

지난 10일, 홍콩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27.5퍼센트,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민주화 열망 속에 치러졌던 2019년 지방선거의 투표율, 71.2퍼센트와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이유가 있다. 지난 2021년 선거법 개정 이후,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게 됐다. 홍콩 시민들이 투표로 뽑을 수 있는 의석수도 전체 440석 중 88석으로 대폭 줄었다. 뽑을 사람이 없으니, 투표할 이유도 없었다.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젊은 정치인들의 미래는 둘로 갈렸다. 체포되거나 망명하거나. 조슈아 웡, 에드워드 렁 등은 구속되었다. 아그네스 차우, 네이선 로는 해외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홍콩 정치의 미래는 그 싹부터 잘려버렸다.

시민; HExit

해외를 선택한 것은 젊은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홍콩의 일반 시민도 마찬가지다. 홍콩 행정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까지 4년간 홍콩 노동시장에서 사라진 순유출 인구는 약 22만 명에 달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홍콩 시민의 절반가량이 ‘중국의 힘과 영향력은 홍콩에 주요한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홍콩 시민의 약 38퍼센트가 기회가 되면 홍콩을 떠나고 싶다고 답변했다. 떠나는 이들은 젊다. 이민 컨설팅 업체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30대에서 40대 사이의, 자녀를 둔 부모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자녀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서다.

학문; 자기검열의 비극

학부모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홍콩을 떠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홍콩이 더 이상 공부하기 좋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치원은 물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상교육이 실시된다. 대학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학자들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무섭다. 그러나 학자에게 더욱 무서운 것은 자기 검열이다. 경계가 모호한 국가보안법은 학계가 스스로를 검열하게 했다. 2021년과 2022년, 2년간 홍콩의 8개 공립대학에서 360명이 넘는 학자들이 떠났다.

경제; 금융허브의 몰락

홍콩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돈도 빠져나가고 있다. 최근 ‘홍콩ELS’ 사태는 홍콩 증시의 부진으로 불거진 것이다. 부진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미 홍콩은 ‘폐허’로 불리고 있다. 그럴 만하다. 홍콩 항셍지수는 올해 20퍼센트 하락했다. IPO 시장도 사상 최악의 불황을 맞았다. 작년과 올해, 70곳이 넘는 증권사가 문을 닫았다.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허브였다. 그러나 이제 대만에, 인도에 추월당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비구이위안, 헝다 등 대형 부동산 개발사를 중심으로 휘청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기조도 악재로 작용했다.

전망; 답을 알아도 제출할 수 없는

국제 경기가 나아지면 홍콩도 나아질까?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떠난 사람도 돌아오고,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불투명하다. 국제 신용 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5일과 6일, 중국과 홍콩의 신용등급 전망을 각각 ‘부정적’으로 강등했다. 무디스가 밝힌 홍콩 신용등급 전망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중국 본토와의 관계가 보다 긴밀해졌으며 국가보안법으로 자율성이 약화하고 있다.”

언론; 사망 선고가 시작된 곳

홍콩은 이렇게 주저앉았다. 비판의 자유를 잃은 홍콩은 특유의 생명력도 함께 잃었다. 우리는 먹고 싶어 하고 자고 싶어 한다. 욕심을 부리며 애정을 갈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비판은 욕구이며 권리이며 자유 그 자체다.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인간은 가능성과 미래를 가질 수 있다. 《빈과일보》를 시작으로 《입장신문》, 《시티즌뉴스》, 《팩트와이어》 등 홍콩의 신문이 줄줄이 폐간 수순을 밟고 있다. 매체의 정치적 입장 때문이다. 2021년 약 600명이었던 홍콩 기자협회원 수는 올해 220여 명까지 하락했다.

IT MATTERS

입을 틀어막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수단은 다양하다. 지난 2022년 9월,  홍콩과 미얀마의 축구 경기를 앞두고 중국 국가가 흘러나오자, 홍콩의 관중들은 일제히 뒤돌아섰다. 표현이었다. 홍콩의 국가처럼 불렸던 음악, 〈글로리 투 홍콩〉은 지난 6월 아이튠즈 등 음원 사이트에서 역주행 기적을 일으켰다. 반정부 시위곡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될 것이라는 소식에 음원을 미리 사두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다.

그럼에도 ‘홍콩의 봄’은 요원해 보인다. 이제 ‘온건한 저항’도 원천 봉쇄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보다도 훨씬 모호한 개념이다. 홍콩 행정부가 제시한 예시를 보면 더 기막히다. 홍콩 정부가 중국 본토와 상호 장기 이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히자, 장기기증 신청 철회가 폭주했던 사례, 국제 인권 단체 앰네스티가 위구르 출신 대학원생이 홍콩에 방문했다 중국으로 압송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던 사례다. 온건한 저항에 대한 처벌 수위 윤곽은 내년 결정될 예정이다.

중국 입장에서 홍콩은 영국에 빼앗겼던 동생이다. 겨우 우리 집에 다시 데려왔는데 홍콩은 자꾸 중국은 싫다고, 영국이 좋다고 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괘씸하다. 집안에서 분란이 일어나면 곤란하다. 하지만 능력 있는 동생의 입을 막고, 손과 발을 묶어 집안에 주저앉힌들, 과연 동생을 되찾았다고 할 수 있을까? 홍콩은 이제 시대의 끝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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