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팔아 세운 벙커

2023년 12월 20일, explained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은 종말을 믿는 메시아가 됐다.

2023년 4월, 환경 운동 및 인권 단체인 멸종 반란(Extinction Rebellion)의 활동가들이 베를린에서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한 억만장자 탈을 쓰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Sean Gallup, Getty Images
NOW THIS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 2014년 8월부터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섬에 2200억 원 규모의 토지를 구입, 1298억 원을 들여 복합 단지를 건설 중이다. 소식을 전한 매체는 “많은 사람들은 이 장소가 지구 종말 이후 벙커가 될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커버그의 꿈은 종말 이후에도 굳건히 서 있을 거대한 규모의 벙커를 향한다.

WHY NOW

저커버그만 그런 꿈을 꾸는 건 아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레딧의 스티브 허프먼, 링크드인의 공동 창업자 리드 호프만 등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복합 단지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한 일이다. 그들이 파는 미래에는 지구 종말이 없다. 모두가 누릴 환상적인 미래를 파는 실리콘밸리 큰손들에게 소수만을 위한 벙커는 모순적이다. 모순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저커버그의 종말 이후

3500억 원 규모다. 면면을 살피면 지구 종말 이후 살 곳이라기엔 과분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저커버그가 짓는 복합 단지에는 축구장 크기의 저택 두 개를 중심으로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 사무실, 회의 시설, 산업용 규모의 주방이 갖춰져 있다. 본관 반대편에는 체육관과 수영장, 사우나, 테니스 코트가 포함된 건물이 들어섰고 게스트하우스와 게스트하우스의 운영자가 묵을 수 있는 숙소도 마련됐다. 464제곱미터 규모의 지하 대피소는 자체 에너지와 식량, 물 공급이 가능하다. 지금의 벙커는 비즈니스가 될 정도다. 기업 ‘비보스(Vivos)’는 가족의 생명 연장, 보안,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를 유지할 수 있는 개인 지하 벙커를 건설한다. 비보스가 짓는 벙커에는 고급 수영장과 바, 예배당이 들어선다. 종말 이후에도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은 모든 걸 누릴 수 있다.

The event

미디어 기술 평론가 더글라스 러쉬코프는 현재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이 종말론적 사고에 깊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억만장자들은 종말이라는 그 사건(The event)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방법은 기술이다. 제프 베이조스는 ‘인간 유전자 재프로그래밍’이라는 기술을 개발하는 생명 공학 기업인 ‘알토스 랩’에 거액을 투자했고, ‘페이팔’을 창업한 피터 틸은 노화를 일으키는 세포를 파괴하는 신약을 만드는 기업인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에 투자했다. 기술에 대한 낙관이 모든 종말론적 믿음을 떠받치고 있다. 러쉬코프는 그들의 마음가짐이 “물리, 경제, 도덕의 법칙을 깨는 기술을 개발해 세상을 구하는 방법”을 원한다고 지적하며 “스스로 만든 종말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도구가 있을 것이라는 실리콘밸리의 믿음이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유토피아

지금의 기술 기업은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패러다임을 만든다. 일론 머스크는 모두가 화성에서 자급자족하며 새로운 행성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샘 올트먼은 홍채 정보를 저장해 AI 시대에도 인간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홍보한다. 마크 저커버그는 호라이즌 월드를 통해 바깥이 아니더라도 무한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안 현실을 창조했다. 요컨대 그들이 팔던 것에 ‘미래의 종말’은 없었다. 그들은 꾸준히 말해 왔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과 협조, 협력만 있다면 지금 지구가 겪는 위기는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들은 유토피아를 팔았다.

종말과 평범한 사람들

벙커는 그들이 팔던 유토피아와 정반대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함께 행복한 생활을 이어 나가는 미래를 담기에 벙커는 지나치게 작다. 벙커 속 억만장자들은 종말을 믿지만, 종말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믿는 것과 파는 것 사이의 불일치다. 이 간극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이들은 종말의 극단을 믿거나 종말은 없다는 낙관을 믿는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9퍼센트는 자신들이 종말의 시대에 사는 마지막 세대라고 믿는다. 학위가 없거나 가난하다면 이 믿음은 더욱 세졌다. 동시에 미국인의 10퍼센트는 기후 위기를 믿지 않는다. 종말이 오지 않으리라는 낙관과 무력감이 공존하고 있다. 종말이 두려운 존재라서 그렇다.

메시아를 따르면

글로벌 전체가 위기에 빠진 지금, 두려운 종말을 해결할 이는 국가도, 정책도, 협력도 아닌 기술로 미래를 조각하는 억만장자들이다. 샘 올트먼에게 홍채 정보만 제공하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와 암호화폐만 있다면 화성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릴 수 있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미래를 만들려 한다는 그들의 말은 예측 불가능한 현재에서 벗어날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인다. 유토피아와 화려한 벙커 뒤에는 코앞에 닥친 종말들이 자리한다. 지속 불가능한 경제 체제와 내전으로 고통받는 국가의 혼란은 월드코인으로, 턱밑까지 차오른 해수면은 자급자족하는 도시의 청사진으로 가려진다. 유토피아는 더 힘을 얻고, 디스토피아는 점차 더 추상적으로 변해 간다.

희생

추상화되는 디스토피아와 질주하는 유토피아 사이에는 희생양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빈살만은 미래 도시인 네옴 시티를 통해 사우디를 부강하게 만들겠다 선언했다. 빈살만은 미래를 팔면서 현재의 정치적 영향력, 사우디아라비아의 가능성을 가치화한다. 그런 네옴 시티는 정말 지속 가능할까? 네옴 시티는 숲을 밀어 짓는 생태형 도시다. 화석연료를 태워 담수를 만들고, 화학물질은 바다에 버려진다. 그곳에서 1만 년을 살아온 베두인족은 소수가 누릴 빛나는 유토피아를 위해 터전을 떠나야 한다. 사우디가 그리는 지속 가능한 유토피아에는 원주민의 자리가 없다.

아메리칸헤리티지팜

누군가를 배제하는 미래에 앞서 지금을 되짚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안전한 피난처를 지향하는 ‘아메리칸헤리티지팜’은 지속 가능한 농장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거대 기업의 빠른 배송 시스템이 공급망 전체를 취약하게 만들었으며, 농업 산업의 수직 계열화는 자급자족을 환상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아메리칸헤리티지팜은 지나치게 빨라진 기술의 속도와 낙관을 꼼꼼히 점검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도는 화려한 벙커보다는 소박한 실험에 가깝다.

IT MATTERS

기술 기업은 환상적인 미래를 판다. 그리고 그 잉여 가치로 자신만의 벙커를 건설한다. 그런 점에서 벙커와 영생, 화성은 괴짜 억만장자의 기행이 아니다. 벙커는 무책임한 가속주의와 기술 물신주의, 철저한 손익 계산과 메시아 콤플렉스가 뒤섞인 덩어리에 가깝다. 러쉬코프는 기술 기업의 CEO들이 “배기가스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자동차”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 빠른 탈 것에 모두가 오를 수는 없다.

원주민의 희생, 가까운 위기의 외면, 소셜 미디어에 갇힌 정치적 메시지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어렵다. 종말 앞에 선 현재에 필요한 건 두려움도, 무조건적인 믿음도, 낙관적인 유토피아도 아니다. 현재에 발을 딛고, 기술 기업에게 모두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혼란스러울 때는 메시아와 거짓말쟁이가 함께 온다. 거짓말쟁이를 알아보려면 현실을 묻는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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