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전쟁

2023년 12월 29일, explained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2024년에는 마침표를 찍을 가능성이 높다.

2023년 10월 2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재활 센터에서 병사들이 아로마테라피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재활 센터는 2주 동안 병사들을 지원하며 불안, 우울증 및 기타 정신 건강 문제의 개선을 돕는다. 사진: Chris McGrath, Getty Images
NOW THIS
 
2023년, 잊힌 전쟁이 있다. 바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다. 우리의 관심이 챗GPT로 향하는 사이, 우리의 시선이 가자지구로 향하는 사이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러시아가 사실상 승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차근차근 점령해 크림반도까지 육로를 확보했다.

WHY NOW
 
2024년 일어날 몇 가지 사건이 있다. 선거나 생성형 AI의 더욱 빠른 보급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종식도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2024년에는 어떤 형태로든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이 지지부진한 소모전에서 발을 뺄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종전이든 휴전이든, 이대로라면 푸틴의 판정승이다. 전 세계 권위주의 정부, 극단주의 정치 세력에 반가운 레퍼런스가 생긴다. 우리 입장에서도 긴장할 필요가 있다. 이 전쟁이 끝난 후, 세계 질서는 새롭게 재편될 것이기 때문이다.

황제, 푸틴
 
러시아는 푸틴의 제국이다. 지금까지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예정이다. 푸틴은 지난 12월 8일, 내년 대통령 선거 출마 의사를 공식화했다. 참전 용사들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극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당선될 경우 5기 집권, 3연임이다. 이번에 당선되면 최장 2030년까지 권력을 잡을 수 있다. 30년 장기 집권이다.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에서 푸틴에 대한 지지율은 80퍼센트에 육박한다. 푸틴이 절대 군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전쟁이다.

러시아의 경제 호황
 
민심이 좋으려면 경제가 좋아야 한다. 지금, 러시아 경제는 좋다. 의아하다. 전 세계가 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는 와중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는 러시아를 향한 제재의 끈을 죄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선 경제적 맞대응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주요 경제 지표를 보면 선방하고 있다. 성장률을 보면 명확하다. 러시아의 분기별 실질 GDP 성장률을 보면 전쟁 초기 -4.5퍼센트까지 곤두박질친다. 그런데 점점 회복 추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올해 3분기에는 5.5퍼센트까지 뛰어올랐다. 프랑스나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보다 상황이 오히려 좋다고도 할 수 있다. 러시아가 전시 경제 체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22조 원의 힘
 
전쟁 인플레이션이다. 전쟁이 시작된 후 러시아는 국가 예산의 3분의 1 정도를 국방 예산으로 쓰고 있다. 이 돈이 러시아의 경제를 띄워 올리고 있다. 일단, 고용 창출이 된다. 러시아의 자원입대자 중 상당수는 소수민족 출신이나 변방의 저소득층으로 알려져 있다.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나가는 만큼, 급여 수준도 높은 편이다. 러시아 일반 근로자보다 4배 정도 많다. 전사할 경우에는 유가족에게 막대한 보상금이 지급된다. 군수 산업도 호황이다. 조선업이 흥하면 거제도 등의 지역 경제가 살아나듯, 전쟁으로 러시아의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지역이 우랄산맥 주변이다. 지난 9월까지 러시아가 전쟁에 쏟아부은 돈은 222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푸틴의 자금줄
 
앞으로도 푸틴은 계속해서 돈을 쓸 생각이다. 내년 지출 규모를 올해 대비 25퍼센트 가량 증액했고, 이 중 국방 예산은 70퍼센트 가까이 늘렸다. 대체 이 많은 돈을 어디서 조달하고 있을까. 오일머니다. 러시아는 세계 3위의 원유 생산국이다. 지금까지는 생산량 대부분을 유럽으로 수출했다. 그런데 서방의 제재로 유럽 수출길이 막혔다. 굳이 팔겠다면 싸게 팔라며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까지 도입됐다. 하지만 이 지구는 온전히 미국의 편이 아니다. 2020년대의 외교 문법은 세계화의 시대와는 달라졌다. 중국과 인도라는 변수를 빼고 생각해서는 계산이 자꾸 틀려버린다.
 
인도의 기름 세탁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이 등을 돌린다고 러시아가 잡을 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냉전 시대나 세계화 시대와 비교해 체급이 달라진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의 새 고객이 되어 주었다. 특히 인도와 러시아의 공생 관계가 단단하다. 인도는 가격 상한제로 가격이 저렴해진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인 뒤, 이를 정제해 다시 수출한다. 돈세탁이 아니라 ‘기름 세탁’이다. 인도에서 정제된 석유는 가격 상한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유럽 등 서방 세계로도 이 원유가 흘러든다. 인도가 쏠쏠하게 돈을 챙기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인도가 러시아에 커미션을 나누어주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27일,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수출분의 40퍼센트를 사들이고 있다며 서방의 경제 제재가 소용없다고 선언했다.
 
돈은 마르지 않는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석유 부국들이다. OPEC과 OPEC+를 통해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을 결정할 권한이, 이들에게 있다. 푸틴이 중동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이 증가하면 러시아산 원유의 실질 가치는 더 떨어진다. 돈줄에 이상이 생긴다. 지금처럼 감산 기조가 이어지면 푸틴의 전쟁은 당분간 기세를 이어갈 수 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직접 전화까지 걸어 “왜 이스라엘 편을 들지 않느냐”며 불만을 토로해도 푸틴은 모른 척할 수밖에 없다.
 
삼면초가에 갇힌 젤렌스키

전쟁을 발판 삼아 30년 장기 집권 노욕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푸틴과는 달리,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의 상황은 ‘삼면초가’다. 미국이 외면한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 거부 움직임이 힘을 얻고 있다. 유럽이 외면한다.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유럽 연합에서 헝가리가 반발하면서, 직접 지원이 불가능해졌다. 군부가 외면한다. 50만 추가 징병을 제안한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잘루즈니 총사령관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가장 뼈아픈 벽이다. 젤렌스키는 이 전쟁에서 물러설 수 없다. 외세의 침략에 용감히 맞선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정치적 자산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지쳤다. 긴 병에 효자 없듯, 긴 전쟁에 애국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징병 과정에서 각종 부정부패가 만연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도 높아졌다.

IT MATTERS
 
2024년은 푸틴에게 승리의 해가 될까. 선거에서는 그렇다. 전쟁에서는 알 수 없다. 당장은 전쟁이 푸틴의 인기를 떠받치고 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민족주의적인 프로파간다가 먹히는 데다, 전쟁 특수로 먹고 살 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이 더 길어졌다가는 푸틴의 장기 집권에 악수가 될 수 있다. 전쟁 특수로 과열된 경제 상황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에서는 높은 건물에서 떨어진 고드름에 맞아 행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한계에 달했다는 신호다. 지자체가 돈이 없어 고드름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승리까지 밀어붙일 시간은 푸틴에게 없다. ‘휴전’이 강력하게 예상되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다. 2024년, 대선을 앞둔 것은 푸틴뿐만이 아니다. 미국 대선은 11월에 치러지지만, 그 특성상 2024년 내내 계속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밑 빠진 독이 되어버린 우크라이나는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이제 아픈 손가락이다. 전선의 교전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승리할 수 없다면 휴전이 답이다. 휴전하고 나면 우방국들에 약속했던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도 시작할 수 있다. 결국 2024년, 우리는 2년여 만의 휴전 소식을 듣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휴전 이후의 국제 정세에 얼마나 대비 되어 있는지, 늦지 않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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