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담론에 갇힌 청년 세대

2024년 1월 2일, explained

2024년, 청년 세대는 행복해질까? 데이터는 아니라고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대한민국 대통령실
NOW THIS

올겨울, ‘영끌’이 다시 화두다. 정확히는 빚내서 집 산 2030을 걱정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아파트 가격은 하락세에 금리는 높아졌으니,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은 맞다. 정부가 나섰다. 금융당국은 최근 청년들이 위험한 금융 행태를 보인다며 금융 교육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고, 더 이상 갚을 수 없는 빚을 낼 수 없게 하겠다며 ‘스트레스 금리’ 도입도 예고했다.

WHY NOW

언론과 정부의 시각은 공고하다. ‘영끌’을 선택하는 청년 세대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하고 제한한다. 정작 무책임한 것은 언론과 정부다. 청년 세대를 ‘영끌’과 ‘빚투’ 담론에 가둬버렸다.
2030 영끌족의 최후?

20대 열 명 중 여섯 명이 빚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빚은 줄지 않고 늘어난다. 청년 세대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연령별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을 보면 20대 이하가 압도적으로 1위다. 특정 단지의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면 ‘영끌’로 집을 산 청년층이 고금리를 이기지 못하고 헐값에 집을 내놓았기 때문이라는 논리도 설득력을 얻는다.

일하지 않는 젊은이

청년이 집을 사는데, 왜 이렇게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일까. 젊은 나이에 열심히 일 안 하고 투자해서 돈 벌려 한다는 시선이 그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 보수지는 “MZ에게 부동산은 ‘변동성 높은 금융 상품’”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미국발 금리 인하 소식에 벌써부터 ‘빚투’ 열풍이 다시 불어올까, 걱정하는 사설도 나왔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망한’ 청년의 숫자는 증가 추세다. 2023년 상반기,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 중 20대의 비율은 16.8퍼센트를 기록했다.

사실과 다르다

그런데 더 구체적인 통계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정반대다. 개인회생을 신청한 20대 중 투자 목적으로 첫 대출을 받은 비율은 7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이들을 처음 빚의 굴레로 끌어들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생활고다. 42퍼센트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첫 대출을 받았다. 당연한 결과다. 20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득이 줄어드는, 유일한 세대다.

20대, 자립의 조건

한국에서 20대로 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부모에게서 독립해 경제적으로 자립했다면 더욱 그렇다. 단순히 돈이 많고 적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들에게는 어제보다 내일이 더 암울하기 때문이다. 숫자가 증명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 세대 통틀어 20대 이하 가구주의 소득만 줄어들었다. 2018년 대비 2021년도의 추이를 조사한 결과다. 같은 기간 동안 20대 가구주는 빚도 늘었다. 빚을 진 비율은 50퍼센트에서 60퍼센트로, 금액은 평균 25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늘었다. 두 배다. 손에 쥐고 있는 돈도 없다. 이들의 자산 중 70퍼센트 이상이 전세 및 월세 보증금에 묶여 있다.

실업자가 없다는데

20대의 삶은 원래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아니다. 고용 환경이 급변해서 그렇다.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2023년 9월 기준으로 5퍼센트대다. 이례적으로 낮은 수치다. 윤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핵심 취업 연령대인 20대 후반 청년 고용률이 지난해 평균 72.3퍼센트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이 통계를 그냥 봐선 안 된다. 취업을 위해 졸업을 미뤘다면 실업자가 아니다. 구직 활동에 지쳐 잠시 쉬고 있다면 실업자가 아니다. 취업을 희망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1인 커피숍이라도 시작했다면 실업자가 아니다. 현실은 다른 통계를 같이 봐야 있다. 지난 2023년 11월 기준 청년 취업자 수는 13개월째 감소했다.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냥 쉬는’ 20대 이하 청년층도 40만 명을 넘어선다.

신입인데 경력은 있는

‘중고 신입’의 시대, 기업은 더 이상 신입사원 공채를 시행하지 않는다. 한 취업 정보 플랫폼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 신입 사원을 1명이라도 채용한 회사의 비율은 68퍼센트였다. 경력직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중산층 사다리’에 해당하는 대기업은 특히 힘들어졌다. 채용 규모가 대폭 줄어든 곳이 많았다. 신입을 뽑아도 5명 중 1명은 직무 경험이 있는데도 신입 사원으로 지원한 경우다. 청년들은 알고 있다. 깨끗한 이력서로는 어디도 합격할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돈과 시간을 들여 경력을 만든다. 기업이 담당했던 직무 교육 비용이 취준생에게 전가되는 현상이다.

제너레이션 렌트

그렇다면 언론과 정부가 걱정하는 ‘영끌’과 ‘빚투’에 뛰어든 청년들은 다 어디 있을까. 여기, 우리 사회에 함께 있다.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컵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원서 쓰기에 바쁜 청년과 갭투자에 뛰어들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청년은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소득은 물론 부모의 자산까지 충분해 영끌도, 빚투도 필요 없는 청년 또한 우리 시대의 청년이다. 그래서 ‘청년 세대가 영끌하고 빚투한다’는 말은 틀렸다. 그리고 나쁘다. 그 말이 지옥고의 청년 세대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Z세대는 없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잠재적 제너레이션 렌트(Generation Rent, 평생 세입자로 사는 세대)가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그 이름표를 떼기 위해 영끌하고, 누군가는 그러지 못한다.

IT MATTERS

담론은 실제 존재하는 사회 집단을 쉬이 배제한다. 그리고 담론이 드러낸 특정 사회 집단을 향한 정책을 촉구한다.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대표적인 비과세 정책이 대표적이다. 주식을 50억 미만 보유한 투자자는 양도세를 면제받는다. 신혼부부 대상 최대 3억 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취업에 성공해 월급을 받게 되면 소득세는 꼬박꼬박 내야 한다. 출발선은 다를 수 있다. 경기장은 과연 평평한가.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는 없고, 취업에 성공해도 앞선 사람들과 격차는 더 벌어진다. 지옥고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영끌’은 무책임하다. 결국 제너레이션 렌트로 남으란 얘기다. 이런 환경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시그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중년 ‘캥거루족’, 독립했지만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오는 ‘리터루족(Return+kangaroo)’의 부상이 그것이다. 모범 답안은 없다. 다만 ‘좋은 담론’을 만들 수는 있다. 권력화한 담론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사회집단을 배제하지 않는 포용적 담론이다. 언제나 사건의 시작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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