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도미노를 이해하려면

2024년 1월 5일, explained

태영건설이 빚에 몰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는 따로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2005년 4월 22일 촬영. 사진: Chung Sung-Jun,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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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일, 태영건설의 윤세영 창업 회장이 90세의 고령으로 채권단 앞에 섰다. 어떻게든 태영건설을 살릴 테니 도와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눈물까지 보였다. 그런데 채권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태영그룹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WHY NOW

태영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존재감 있는 건설 회사다. 작년부터 흉흉하게 떠돌았던 부동산 PF 붕괴 시나리오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이 소식을 이해하려면 낯선 단어들부터 접해야 한다. 시행사와 시공사, PF에 워크아웃, 법정 관리까지. 불편하지만 올해 뉴스에 여러 차례 등장하게 될 용어들이다.
태영건설은 어떤 회사인가?

우리나라 시공 순위 16위의 중견 기업이다. 방송사 SBS를 소유한 태영그룹의 모태 기업이기도 하다. 설립자인 윤세영 회장은 1933년생으로, 정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건설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1973년에 본인 사업을 시작한 것이 태영개발, 지금의 태영건설이다. 1기 신도시 건설 당시 급성장했다. 아파트 브랜드, ‘데시앙’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런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지난 2023년 12월 28일까지 갚았어야 할 432억 원 규모의 PF 대출 만기를 갚지 못해서다. 기업 규모를 생각하면 그리 큰 액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줄줄이 물려 있는 PF 대출이 9조 원 규모다. 그동안 태영건설은 빚을 빚으로 돌려 막아 왔다. 그런데 그 돌려 막기가 어느 순간 막혔다.

PF란 무엇인가?

태영건설은 시공사다. 말 그대로 건물 지어 주고 돈 받으면 되는 회사란 얘기다. 그런데 어쩌다 빚더미에 앉게 되었을까. 부동산 개발의 구조 때문이다. 아파트, 사무용 빌딩은 물론 레고랜드 같은 대형 시설까지, 빈 땅에 건물을 짓는 사업은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 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에 기대고 있다. 말 그대로 사업 계획(project)을 검토해 준공 시점의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담보 삼아 돈을 빌려준다(financing). 한마디로, 빈 땅과 사업 계획서만 보고 몇백억에서 수조 원의 돈이 오가는 것이다.


시공사가 왜 빚을 졌나?

이렇게 사업을 계획하고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이 바로 ‘시행사’다. 그런데 이 시행사로부터 건물을 지어 달라는 의뢰, 즉 ‘수주’를 받기 위해 태영건설과 같은 ‘시공사’가 직접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 주는 경우가 많다. 태영건설도 마찬가지다. 직접 PF 보증을 선 사업장만 120여 곳, 금액은 9조 8000억 원에 달한다. 부동산 개발이 잘되면 문제없다. 건물을 잘 지어 분양하고, 그렇게 들어온 돈으로 PF 투자자에 원금과 이자를 갚은 다음, 남은 돈으로 이익을 보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금리는 오르고 부동산 시장은 침체다. 돈 빌리기는 어려워지고 지은 건물이 팔리기도 어려워졌단 얘기다.

법정 관리란 무엇인가?

기업이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없게 되면 결론을 내야 한다. 파산 절차를 밟거나 법정 관리에 들어간다. 파산은 말 그대로 파산이다. ‘빨간 딱지’ 붙인다는 얘기다.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아서 전부 빚 갚는 데에 쓰고, 회사는 사라진다. 반면, 법정 관리를 신청하면 법원이 회사를 살릴지 말지를 결정한다. 살리기로 하면 법정 관리에 들어간다. 법원이 경영과 재산을 관리하며 빚을 어느 정도 면제해 주고, 남은 빚을 수시로 검사하는 식이다. 즉, 회사를 살리기로 하면 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회사를 살리지 않기로 하면 회사는 파산한다.

워크아웃은 무엇인가?

태영건설은 파산이나 법정 관리가 아닌,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우리말로 하자면 ‘재무 개선 작업’에 해당한다. 워크아웃의 주체는 법원이 아니라 채권자들이다. 워크아웃을 받기로 하면 채권단이 경영 주체가 되고 회사를 살리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빚 갚을 날짜를 미뤄 주거나 이자를 깎아 주는 등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회를 준다. 빚을 일정 정도 탕감해 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채권자들의 결정이다. 빚을 진 기업이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부채를 상환할 계획을 제시하면 이를 검토해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태영건설의 운명은 누가 결정하나?

돈 빌려준 사람이 결정한다는데 이상한 것 없어 보인다. 그런데 면밀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빌려준 액수 기준으로 전체 채권자의 75퍼센트만 동의하면 된다. 태영건설과 같은 큰 기업의 경우 대형 은행 등이 주요 채권자인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채권단 대표는 산업은행이다. 즉, 은행들이 태영건설을 살릴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는 얘기다. 지난 1월 3일 태영건설이 채권단에게 설명한 자구책은 충분치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크아웃을 받기에는 태영건설과 지주 회사인 TY홀딩스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계열사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빚을 갚겠다고 했지만, 태영건설이 아닌 TY홀딩스의 빚을 갚는 데에 대부분 쓰인 식이다. 계열사 중 가장 덩치가 큰 SBS의 지분 매각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워크아웃 여부는 오는 1월 11일 결정된다.

IT MATTERS

업계에서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이 어쨌든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인질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 설명회 자리에서 윤세영 회장은 “국가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힐까 봐 너무나 두렵다. 협력 업체와 투자해 주신 기관, 채권단, 나라와 국민에게 큰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즉, 워크아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국가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는 얘기다. 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단 얘기다. 당장 어음이 부도나게 생긴 협력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아파트 입주를 앞둔 분양자들의 미래에 빨간불이 켜졌다. 태영건설의 협력사는 1075곳, 수분양자는 1만 9871가구에 달한다.

업계 전망의 또 다른 근거는 총선이다. 오는 4월로 예정된 총선 이전에 태영건설이 주저앉을 경우 정부 여당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워크아웃의 결정권은 채권단에게 있고, 그중 은행권에 있다. 은행권의 의사 결정은 정부와 밀접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기 며칠 전,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가 되는 법으로, 지난해 11월 일몰로 효력을 상실했다. 다시 제정되었고, 첫 수혜자는 태영건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나온다. 큰 회사나 금융사는 정부가 반드시 구제해 준다는 얘기다. 이들이 주저앉으면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경제 주체들이 피해를 본다. 정부가 나서지 않을 도리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구제 비용은 누가 내는가. 우리 국민이 모두 N분의 1로 낸다. 은행이 이자를 면제해 주고 빚을 깎아 주면 다 손실로 남는다. 나라에서 돈을 풀면 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된다. 금리가 오르든, 은행 이자가 깎이든 경제 주체 모두가 그 피해를 나누어지게끔 되어 있다. 윤세영 회장이 보였다는 눈물에 쉬이 마음이 약해질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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