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정당, 더 좋은 민주주의

2024년 1월 11일, explained

양당제의 양극화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양당제를 폐기하는 것이다.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Chung Sung-Jun, Getty Images
NOW THIS

올해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총선을 3개월 앞두고 정치권은 이미 선거 모드로 들어갔다. 여야 모두 공천관리위원장을 임명했고, 외부 인재 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예비 후보 등록을 마치고 선거 운동을 시작한 후보자도 있다. 그런데 정작 선거의 룰이 정해지지 않았다. 지역구 253석을 어디에서 뽑을지 정하는 선거구 획정도 이뤄지지 않았고, 비례대표 47석을 배분하는 방식도 확정되지 않았다.

WHY NOW

양당제는 수명을 다했다. 양당의 극단주의와 유권자의 정치 혐오를 깨트릴 유일한 방법은 양당제를 폐기하는 것이다. 원내 교섭 단체를 꾸릴 수 있는 20석 이상의 정당이 4~6개는 있어야 한다. 이념적 다양성을 대표하고, 다양한 연합을 위한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면서도 연합 형성을 너무 어렵게 만들지 않는 규모다. 더 많은 정당이 나오려면 선거 제도를 바꿔야 한다. 양극화된 양당제의 문제점과 현행 선거 제도를 해설한다.

온화한 양당제

동서로 길게 뻗은 해변이 있다. 동쪽 끝에 A 횟집이 있고, 서쪽 끝에 B 횟집이 있다. A 횟집이 해변 중간으로 위치를 옮기면 어떻게 될까. 맛과 가격이 같다면 A 횟집이 장사가 더 잘된다. 기존 고객은 유지되고, B 횟집을 찾던 고객 일부가 A 횟집을 찾게 된다. 그래서 B 횟집도 해변 중간으로 이전한다. 그렇게 회 타운이 생긴다. 호텔링의 법칙이다. 미국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는 이 법칙을 정치에 적용했다. 이념 스펙트럼에서 좌우 양 끝에 있는 두 진영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도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이론상 양당제는 양당이 극단을 피하고 중도에서 만나 온화함을 가져온다. 다운스의 이론은 한동안 유효했다. 그런데 2008년 이후 거대 양당은 중앙에서 멀어지고 있다.

추종하거나 혐오하거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진행하면서 여야가 전면전을 벌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여야가 잠시 협력하긴 했지만, 이후 거대 양당은 다시 정치적 공간을 남겨 두지 않고 대립했다. 당파 갈등에다 지역 갈등, 성별 갈등, 세대 갈등, 다문화와 동성애와 심지어 원자력에 대한 관점 차이까지, 사회적 정체성이 여야로 분류되어 기존의 당파성이 압도적인 ‘메가 정체성’이 됐다.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은 상황이 된 것이다. 팬덤 정치도 정치 양극화를 심화했다. 특정 정치인을 추종하고 그에 맞서는 정치인을 혐오하는 소수의 집단이 온라인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야 텃밭이 뚜렷해서 당내 경선이 본선보다 중요한 상황에서는 팬덤의 영향력이 극대화된다. 소수의 열성 집단을 충족시키기 위해 각 진영은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달려간다.

다당제

한국은 사실상 양당제 국가다. 양극화된 양당제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양당제를 폐기하는 것이다. 양당제를 끝내려면 양당제를 지탱하는 선거 제도를 바꿔야 한다. 한국 유권자의 94퍼센트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두 정당만 선택하는 이유는 그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서다. 찍고 싶은 군소 정당 후보가 있어도 어차피 당선되긴 어려우니까 차선으로 거대 양당 중 하나를 택한다. 실제로 유권자의 3분의 1이 무당층이다. 다당제가 실현되면 당파적 타협과 연합 구축이 정례화될 수 있다. 집권에 성공하려면, 집권에 성공해도 정책을 추진하려면 정당끼리 협력할 수밖에 없어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고려된다. 다당제에서 국민의힘은 민족주의 정당과 정통 보수 정당과 중도 우파 정당으로 나뉘고, 민주당은 급진 좌파 정당과 중도 좌파 정당으로 나뉠 수 있다. 정치가 더 복잡해지겠지만, 정치에서 어느 정도의 복잡성은 미덕이다.

병립형 비례대표제

국민의힘과 민주당 외에 제3당, 제4당이 출현하려면 선거 제도를 바꿔야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표를 가장 많이 얻은 한 명을 뽑는데, 이 경우 49퍼센트의 지지를 받고도 떨어지는 후보자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선거구를 더 넓힌 다음 상위 등수 몇 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총선을 석 달 앞두고 이런 큰 개편을 하기는 어렵다. 지금 당장 바꿀 수 있고, 실제로 여야가 논의하고 있는 건 비례대표 선거 방식이다. 총선에선 두 표를 행사한다. 하나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투표하고, 하나는 선호하는 정당에 투표한다. 국회의원 의석수는 총 300석이다. 그중 지역구가 253석, 비례대표가 47석이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이 47석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논의하는 것이다. 먼저, 병립형이 있다. 만약 A라는 정당이 지역구에서 10석을 얻었고 정당 투표에서 10퍼센트를 얻었다면, 비례 의석 47석의 10퍼센트인 4.7석, 반올림해서 5석을 가져가는 식이다. 이 경우 A 정당의 전체 의석수는 지역구 10석, 비례 5석으로 총 15석이 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병립형은 거대 양당에 유리하다. 나눠 가지는 비례 의석의 수가 47석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군소 정당 지지자가 많아도 실제로 국회에서 그 정당의 의석수는 얼마 안 되는 이유다. 이러한 정당 득표율과 정당별 의석수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앞선 예시에서처럼 A 정당이 정당 투표에서 10퍼센트를 얻었을 때, 이걸 비례 의석이 아니라 전체 의석에서의 비중으로 계산하면 300석 중 10퍼센트이므로 30석이 된다. A 정당이 지역구에서 10석을 얻었다면, 나머지 20석을 비례 의석으로 채워 주는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이 경우 A 정당은 지역구 10석, 비례 20석으로 총 30석을 얻는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병립형과 연동형 사이의 절충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있다. 연동형에서 A 정당에 비례 20석을 줬다면, 준연동형에서는 그걸 다 주지 않고 50퍼센트인 10석을 준다. 이 경우 A 정당은 지역구 10석, 비례 10석을 합해 총 20석이 된다. 세 제도를 종합하면 A 정당은 똑같은 수의 표를 얻어도 선거 제도에 따라 연동형이면 30석, 준연동형이면 20석, 병립형이면 15석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 비례 선거 제도는 2016년 총선까지는 병립형을 택했다. 2020년 총선에서는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다당제로 나아가기 위해 준연동형과 병립형을 섞었다. 비례 47석 중에서 30석은 준연동형으로, 17석은 병립형으로 선출했다. 2020년 총선에만 적용하기로 했던 한시적 제도인데, 개정안이 나오지 않아 여전히 현행 선거 제도다.

위성 정당

그런데 현행 제도는 맹점이 있다. 거대 양당 입장에서 준연동형은 손해다. 지역구에서 의석을 많이 얻는 만큼 비례 의석을 못 챙기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 계열은 정당 투표에서 득표율 33.35퍼센트를 얻었다. 전체 의석 300석에 정당 득표율 33.35퍼센트를 대입하면 100석이 된다. 그런데 민주당은 지역구에서만 163석을 얻었다. 준연동형에선 비례 의석을 1석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당시 거대 양당은 위성 정당을 만들었다. 사실 같은 당인데, 비례 선거를 위해 임시 정당을 만든 것이다. 본체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비례 후보를 아예 내지 않았다. 대신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 정당을 급조하고, 이 당들에선 지역구 후보를 한 명도 내지 않고 비례 후보만 냈다. 이런 위성 정당을 이용해 정당 투표에서 표를 받아 비례 의석을 가져갔다. 민주당은 비례 20석(더불어시민당 17석, 열린민주당 3석), 국민의힘은 비례 19석을 챙겼다. 선거가 끝나고는 모체 정당과 합당했다. 거대 양당제를 없애 보자고 만든 선거 제도였는데, 오히려 양당 체제를 더 강화한 셈이었다.

명분과 현실

지금 거대 양당은 한 석이라도 더 얻을 방법이 뭔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먼저, 여당인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병립형으로 회귀할 것을 당론으로 정했다. 민주당은 병립형 회귀와 현행 준연동형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 지금 양당은 신당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신당이, 민주당은 이낙연 신당이 어느 정도 바람을 일으킬지 주시하고 있다. 병립형을 택하면 과거로 회귀한다는 비판은 받겠지만, 신당의 기세를 꺾을 수 있다. 준연동형을 택하면 다당제로의 개혁이라는 명분을 얻을 수 있지만, 신당 바람을 차단할 수 없고 국민적 비판을 받았던 위성 정당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IT MATTERS

과거 사례에 비춰 볼 때 이번 총선의 선거 제도는 2월 중순이 돼서야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거대 양당으로선 급할 것 없고, 선거 제도를 미리 만들어서 신당이 대응할 시간을 줄 이유도 없다. 현재로서는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것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다. 병립형 회귀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큰 틀에선 병립형으로 하되 전국 단위가 아니라 권역별로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정도의 개편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기본소득당, 진보당, 녹색당, 노동당, 이준석 신당, 이낙연 신당 같은 정당의 원내 진입이 어려워진다. 파벌이란 말은 보통 나쁘게 사용되지만, 정치에서만큼은 파벌이 많을수록 좋다. 파벌이 많을수록 특정 파벌이 다수가 될 가능성이 작아진다. 법을 제정하려면 파벌 간에, 정당 간에 폭넓은 타협이 필요해진다. 국회의원들이 사안별로 연합을 구성하게 된다. 한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분열적이고 극단적이며 제로섬인 양극화된 정치가 해체되기 전까지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 유일한 해법은 이념적 다양성을 대변할 더 많은 정당이 나타나 여러 정당이 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선거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