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THIS
문화예술인들이 고 이선균 배우 사망 사건 관련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봉준호 감독, 가수 윤종신, 배우 최덕문 등이 모여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라는 성명을 내기로 한 것이다. 이번 사건 관련 수사당국의 철저한 진상규명, 보도 윤리에 어긋난 기사 삭제, 문화 예술인 인권 보호를 위한 법령 개정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WHY NOW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번 사건의 양상을 살펴보면, 두 가지 숙제가 보인다. 첫 번째는 도파민에 중독된 시대의 폐해다. 가십의 생산자도, 소비자도 한껏 독해졌다. 두 번째는 마약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수사 당국의 시스템이다.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마약과의 전쟁을 영원히 끝낼 수 없다.
3개월간의 보도 일지
첫 보도는
2023년 10월 19일이었다. ‘배우 L 씨’ 관련 내사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마약이라고 했다. 경찰의 내사 단계부터 사건 소식이 새어 나오는 것도 이례적일뿐더러, 일명 ‘지라시’를 통해 그날 오후 꽤 많은 사람이 ‘이선균’이라는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첫 보도 나흘 만에 이선균 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이후 보도는 이 씨의 사생활, ‘제보자’라고 알려졌다가 결국 ‘공갈 협박’ 혐의를 받게 된 A 씨의 진술 위주로 촘촘히 이어졌다. 사건이 등장한 이후 배우 이름과 ‘마약’이 함께 등장한 기사의 수는 만 건이 넘는다.
언론
그 기간에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체모와 소변을 통한 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이거나 판정 불가였다. 하지만 보도는 멈추지 않았다. 정점을 찍은 것은 KBS에서 공개한 이 씨와 A 씨의 전화 통화다. 사적인 내용이었다. 사건의 전모를 밝힐만한 명확한 내용도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설명을 붙였지만, KBS 보도국이 해당 리포트를 승인하면서 과연 ‘공익성’에 근거한 판단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모방 범죄나 인권 침해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범죄 보도는 정당화한다. 그 근거가 바로 공익성이다. 해당 범죄를 알려 경각심을 키우고, 재발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논의에 불을 붙인다. 이선균 씨 사건을 보도한 수많은 기사 중 몇 건이 공익성에 근거한, 정당한 보도였을까.
YouTube
이런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며 ‘유튜브 가십 채널보다 나은 것이 무언지’ 질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시선을 유튜브로 돌리면 ‘공익’과 ‘정당’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워진다. 고인의 통화 녹취는 더욱 여과 없이 공개되었고, 추측에 근거한 이야기나 뜬소문을 전하는 콘텐츠도 끊이지 않았다. 레거시 언론은 이런 유튜브 채널과, ‘
사이버 렉카’와 경쟁하고 있다. 이제 신문과 방송은 전통적인 수익원에만 기대어 운영할 수 없다. 유튜브에서, 포털에서 클릭을 한 번이라도 더 받아야 회사가 운영된다. 특히, 유튜브를 통한 뉴스 소비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유튜브에서 살아남기’는 언론사의 지상과제다.
도파민
인류가 가십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은밀하고 상식을 벗어난 이야기는 재미있다. 더 듣고 싶고, 더 상상하고 싶다. 그런데 요즘의 양상은 좀 다르다. 아무리 가십이라 해도, 맥락과 스토리는 실종된 채 심상만 남는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자극’으로 소비될 뿐이다. 특이점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숏폼’ 콘텐츠와 스마트폰 때문이다. 유튜브 시청자 뷰(view)의 88퍼센트 이상이 쇼츠라는
분석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출근길 대중교통 안에서 사람들이 숏폼 동영상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스토리가 아니라 자극을 흡수하는 시대다. 배우 이선균을 둘러싼 가십은 그 자극을 만들어내기에 너무나 적절한 소재였다.
수사 당국
그렇다면 그 많은 심상을 만들어냈던 이번 수사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나. 결과물은 없다. 이선균 씨와 함께 수사 대상에 올랐던 권지용 씨도 혐의를 벗었다. 이것은 무능인가.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마약 수사는 어렵다. 투약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증거는 당사자의 몸 안에만 남는다. 제보에 의존해 수사가 개시되다 보니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 차례 검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한, 법정에서 조금이라도 가벼운 처벌을 받기 위해 허위로 공범을 제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마약 투약 사건의 경우 용서를 구하거나 합의할 피해자가 없다. 재판에서 너그러운 판결을 받으려면 ‘
중요한 수사 협조’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하는 방법뿐이다.
이중적 시선
그러나 수사 당국에 면죄부를 쉽게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리한 것 아니었는지’ 묻게 되기 때문이다. 애매한 의혹 말고, 나온 사실만 놓고 봐도 그렇다. 강남에서 일어난 사건을 인천경찰서에서 맡았다. 세 차례 공개 소환에서 기자들에게 출석 시각이 공지됐다. 피의 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는데 폴리스 라인에 섰고, 플래시를 맞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나. 그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진 사람은 너무 적었다. 그가 ‘연예인’이었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독특한 존재다. 일반인도 아니며 권력자도 아니다. 사랑받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존재처럼 보이지만, 관심에서 벗어난 순간에는 일반인이다. 배우 이선균이 폴리스 라인에 섰을 때, 그는 일반인이었나, 공인이었나. 물론, 이 질문은 너무 늦었다.
마약과의 전쟁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 중이다. 전쟁을 벌일 만하다. 이미 미국은 펜타닐로 홍역을 치르고 있고, 우리나라도 작년 초부터 10월까지 단속된 마약 사범만 2만 2천여 명에 달한다. 다만,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약을 뿌리 뽑고자 하는 목적이라면, 투약자에 대한 악마화, 사회적 낙인이 정말 옳은 방법이냐는 것이다. 마약 투약은 범죄다. 그러나 중독은 질병이기도 하다. 치료해야 범죄가 멈춘다. 그다음 이들이 사회로 잘 복귀해야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보에 의존해 투약 사범들을 줄줄이 엮어 검거하면, 그것이 실적이 될 뿐인 시스템이다. 정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2022년 기준으로 치료 기회를 얻은 약물 중독자는 전체 검거 인원의
2.5퍼센트였다.
IT MATTERS
사석에서 우연히 만난 한 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 “왜 배우는 잘못을 저지른 후 생업에 복귀할 수 없는지 묻고 싶다”는 것이었다. 배우 이선균에 관한 보도가 나오고 며칠 되지 않았던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흘려들었다.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씨가 폴리스 라인에 세 번째 섰던 날 문득 생각했다. 주유소를 했던 사람이라면, 부동산 개발 업자였다면 그렇게 폴리스 라인에 몇 차례나 섰을까.
배우 이선균은 좋은 작품을 여럿 남겼다. 그리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도 남겼다. 비극이다. 이 비극이 애도로만 끝난다면 우리는 무거운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고, 이래도 되는지 자문할 책임이 이 시대의 시민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