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포크의 종말

2024년 1월 24일, explained

음악 리뷰 웹사이트 피치포크가 〈GQ〉와 합병한다. 위기는 음악 팬들만의 것이 아니다.

2019년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니온 파크에서 열린 2019 피치포크 뮤직 페스티벌. 록 밴드 하임(HAIM)이 공연하고 있다. 사진: Barry Brecheisen/WireImage
NOW THIS

미국의 유명 음악 리뷰 사이트인 ‘피치포크(Pitchfork)’가 남성 전문지 〈GQ〉와 합병한다. 피치포크의 모회사 ‘콩데나스트’가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모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합병의 영향으로 편집장 푸자 파텔(Puja Patel)이 회사를 떠났다. 총 12명의 직원이 해고됐고, 편집진 18명 중 여덟 명이 남았다.

WHY NOW

해외의 음악 팬들은 이번 합병을 두고 피치포크가 사라졌다고 표현한다. 그들에게 피치포크는 단순한 ‘매체’ 그 이상이었다. 작은 미디어와 거대한 기업 사이에서 매체 그 이상을 꿈꿨던 매체들이 흔들린다. 뾰족한 애호와 커뮤니티, 개방을 기반에 두고 작동하는 중간 규모의 매체들이 사라진다. 개인의 취향과 대중의 취향이 만날 중간 다리가 사라지면 도발적인 문화를 만들 동력도 희미해진다.

피치포크

시작은 소소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니애폴리스 교외의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던 라이언 슈라이버(Ryan Schreiber)가 인디 음악을 위한 웹사이트를 만든다. 1996년의 일이었다. 라이언은 자신이 표현하기로는 음악 잡지를 “탐욕스럽게 소비”하는 열성 팬이었고, 출판과 저술 경험은 전무했다. 그에게 영향을 준 건 메인스트림 저널리즘이었던 〈롤링 스톤〉보다는 1990년대의 DIY 팬진(fanzine) 문화였다. 진(zine)은 주류문화 바깥에서 자생하는 매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비트족 작가들은 미국 문화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진으로 펴냈고 197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운동이, 1980년대는 반란을 주제로 하는 펑크 문화가 진의 새로운 흐름이었다. 피치포크는 그 문화를 온라인과 인디 음악 씬으로 옮겨 왔다. 모든 음악에 3점을 주는 〈롤링 스톤〉을 비판하며 사람들을 음악 공론장에 불러 모았다.

디깅과 큐레이팅

피치포크의 매달 방문자 수는 700만 명에 달한다. 초기부터 입소문을 타면서 충실하고 열정적인 음악 팬들이 매일 피치포크를 찾았다. 피치포크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아티스트를 직접 ‘디깅’해 줬고, 0.0점부터 10.0점까지 점수를 매기며 짧거나 긴 리뷰를 제공했다. 들어본 적도 없는 밴드의 리뷰를 열면 그들의 이전 앨범들, 그들이 만드는 음악의 장르, 그들이 위치하는 음악 역사의 좌표까지 흡수할 수 있었다. 물론 초기의 피치포크는 엉성했다. 때로는 무례했다. 어떤 앨범에는 수천 단어의 리뷰가, 또 어떤 앨범에는 엽기적인 동영상 하나가 리뷰라는 이름으로 달렸다. 그 엉성함은 외려 매력이 됐다. 사람들은 피치포크가 소개한 음악을 듣고, 점수에 대해 토론했다. 새로운 음악 팬들을 피치포크 유저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피치포크 이후의 음악 감상 문화는 소수의 비평가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비평 문화와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콩데나스트

피치포크는 문화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성장했다. 설립 10년 차인 2015년, 잡지 〈보그〉, 〈GQ〉 등으로 유명한 미디어 기업 콩데나스트가 피치포크를 인수한다. 당시 추산된 가치는 8200만 달러였다. 콩데나스트에게는 젊고 힙한 음악 매체가 필요했고 피치포크는 자원과 확장을 위한 발판이 필요했다. 피치포크는 “콩데나스트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인수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으나 커뮤니티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콩데나스트는 수익성이 낮은 매체를 가차 없이 정리해 왔다. 실제로 1941년 창간돼 1981년 콩데나스트에 인수된 음식 전문지 〈고메〉는 레시피 웹사이트 ‘에피큐리어스’에 통합되며 자취를 감췄다. 이번 합병도 그때의 상황과 멀지 않다.

OK Computer

1996년부터 2024년까지, 피치포크는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컴퓨터의 변화도 그중 하나다. 2006년에 스포티파이가 생긴다. 스포티파이는 두 가지를 팔았다. 하나는 실물 앨범을 돈 주고 사지 않아도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경험, 또 하나는 나에게 초점이 맞춰진 알고리즘 기반의 플레이리스트다. 음악을 듣는 경험 자체가 보편화하니 굳이 점수를 따져 가며 ‘최선의 소비’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치 않아졌다. 신보 소식을 읽어 가며 새로운 음악을 찾지 않아도 간편한 알고리즘이 나에게 맞는 음악들을 대령해 줬다. 음악뿐만이 아니다. 피치포크의 주 수입원은 웹사이트 광고다. 이들에게 소셜 미디어의 타깃팅 광고는 너무도 강력한 적이었다. 더 많은 광고를 받아야 하니 웹사이트의 품질은 낮아졌다. 라이언은 라디오헤드의 앨범 〈OK Computer〉를 “감정과 성격을 로봇으로 대체하려는 기업 세계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담긴 앨범이라 표현했다. 지금 보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옅어진 피치포크

소비의 모습이 바뀌면 소비자의 초상도 바뀐다. 더 이상 사람들은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에 맞춰 피치포크의 지향도 점차 옅어졌다. 콩데나스트의 인수 이전, 피치포크는 과거의 앨범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다. 솔직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은 매주 일요일마다 이전에 리뷰하지 않았던 ‘중요한 앨범’들에 평가를 매긴다. 이미 명반이 된 앨범들이니 점수도 후하다. 그뿐만 아니다. 도발적이거나 비판적인 기사보다는 문화적 규범에 알맞게 정제된 시각이 올라온다. 알려지지 않았던 음악과 밴드에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팝과 힙합 음악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6년 전, 레딧 커뮤니티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LetsTalkMusic)’ 하위 레딧에 올라온 한 게시글은 자신이 피치포크를 떠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댓글이 달렸다. “상황은 더욱 악화됐고 과거의 피치포크를 대체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중간 미디어의 소멸

6년 전의 레딧 유저가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문제는 피치포크를 잃은 후, 새로이 정착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2020년대는 아주 작거나 너무 큰 미디어 사이의 중간 다리를 잃고 있다. 음악과 예술 분야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 잡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2010년대 떠올랐던 〈바이스〉, 〈허프포스트〉를 비롯해 확장성을 가진 작은 매체들이 연이어 위기를 맞고 있다. ‘복스(Vox)’의 창립자 에즈라 클라인은 중간 규모의 미디어는 “거대 미디어보다 더 구체적이고, 낯설고, 실험적일 수 있으며 소규모 출판보다 더 야심 차게 보도할 수 있”는 곳이라 지적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뉴스레터는 확장성이 부족하다. 거대 미디어에서는 지속적으로 토론하는 열성적인 팬덤 정체성을 만들기 어렵다. 그만큼 이상한 문화가 자라날 틈새가 좁아진다.

문화를 만들던 힘

과거에는 순환이 있었다. 새로운 아티스트가 음악을 내면 작은 매체는 음악을 공론장에 올리고, 팬들은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쏟아냈다. 그렇게 쏟아진 커뮤니티의 방향성은 다시 다른 음악과 앨범, 아티스트로 이어졌다. 지금은 아니다. 새로운 상상과 시도, 연대의 장이 페이스북 페이지 하나로,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로, 유튜브 채널 하나로 축소된다. 파편적으로 형성된 커뮤니티는 한 인플루언서의 팬으로 남을 뿐 음악, 스포츠, 때로는 정치라는 영역 내의 공통 의제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각자가 자신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파편적인 뉴스를 소비만 할 뿐이다. 개인의 취향과 대중의 취향을 이어 줬던 중간 미디어들이 사라진다면, 새로운 의제, 문화 자체가 강력하게 공유되기 어렵다.

IT MATTERS

웹3.0 방식의 소셜 미디어는 새로운 커뮤니티 형성의 기술적 힌트를 제공한다. 트위터의 대항마로 떠오르던 ‘마스토돈’, ‘블루스카이’와 같은 탈중앙화 커뮤니티는 지역과 주제별로 다양한 서버가 운영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프로토콜 기술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고 소통할 수 있다. 탈중앙화 시스템을 택하는 만큼, 기업의 사정과는 무관하게 커뮤니티가 지속된다. 애정을 갖고 키워 나가던 공간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일은 막을 수 있다.

문화 형성의 동맥경화를 멈출 방법은 결국 소비자에게, 애호가에게 주어져 있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과 문화를 나누고 공유하는 것으로도 작은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뉴스레터와 같이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넘어 블로그, 웹사이트 문화를 복원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까지의 발전은 모두 댓글과 대댓글에서 태어났다. 음악이든, 스포츠든, 정치든 타인과 시선을 나누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김혜림 에디터
#explained #컬처 #미디어 #음악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