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은행을 습격하다
1화

마침내, 금융업에 불어닥친 디지털 돌풍

마침내, 금융업에 불어닥친 디지털 돌풍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 사람들은 디지털 서비스가 경제와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을 목격했다. 택시, 영화, 소설, 면 요리, 병원 그리고 반려견 산책 서비스까지 모든 것을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불러낼 수 있다. 유통, 자동차, 미디어 분야의 대기업들이 이 새로운 경쟁자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한 산업만은 이 같은 격동 속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 왔다. 바로 금융업이다. 부유한 나라에선 은행 지점에 가서 줄을 서고, 은행과 우편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19세기에 설립된 은행의 로고가 찍힌 수표를 예금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기술은 마침내 금융업까지 흔들고 있다. 아시아 국가에서 스마트폰 결제 애플리케이션은 10억 명이 넘는 사용자의 삶의 일부다. 서구에서도 모바일 뱅킹을 사용하는 고객이 임계점에 도달했고 ― 49퍼센트의 미국인이 스마트폰으로 금융 거래를 한다 ― 거대 기술 기업들이 이 시장에 가담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 3월 25일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손잡고 출시하는 신용 카드를 공개했다. 페이스북은 이용자들이 계정을 통해 티켓을 사고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은행은 평범한 회사들과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의 영향은 엄청나다. 블록버스터 비디오(Blockbuster Video)[1]도 기술 변화로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그 희생양이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라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전 세계 보유 자산이 100조 달러(11경 7000조 원)를 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은행들은 ‘만기 전환’(고객이 맡긴 요구불 예금, 즉 단기 수신을 바탕으로 만기가 그보다 긴 장기 대출을 해주는 것)이라는 고도의 술수를 이용해, 예금자가 소비와 투자를 미루고 대출자는 돈을 더 빨리 대출해 갈 수 있게 했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보여 준 것처럼 은행은 너무 중대한 존재여서 이들이 휘청거리면 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뱅커들과 정치인들은 기술적인 변화에 저항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변화에 따라오는 이점들 ― 조직 슬림화, 사용 친화적 서비스, 개방적인 금융 시스템 ― 이 위험 요인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잘못된 대응일 수 있다.

규제로 기업가 정신이 발현되지 못한 탓에 은행업은 스마트폰 시대에 뒤처져 있다. 게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서구 은행들은 대차 대조표를 복구하고 구식의 비용을 절감하는 데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늦은 게 낫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은 이미 부상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중국의 알리바바(Alibaba)와 텐센트(Tencent), 동남아시아의 그랩(Grab) 같은 회사들이 결제 애플리케이션과 전자 상거래, 채팅뿐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잡을 수 있는 서비스를 한 묶음으로 제공한다. 이런 회사들은 은행들과 연계돼 있지만, 동시에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은행들과 경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대형 은행들이 여전히 주도권을 잡고 디지털 금융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JP모건체이스(JPMorgan Chase)에선 5분 안에 계좌를 열 수 있다.

그러나 위협은 시작됐다. 지점을 내느라 비용을 들일 필요 없이 모바일로만 이용할 수 있는 ‘네오뱅크(Neobank)’[2]는 조금씩 기존 대형 은행의 소비자들을 빼앗아 오고 있다. 페이팔(PayPal) 같은 결제 회사들은 서구 은행들과 함께 일하고 있지만 더 큰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 자산 관리처럼 수익성이 좋은 틈새시장은 새로운 시장 진입자들의 공세에 직면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젊은 층은 더 이상 부모 세대처럼 한 은행에 머물지 않는다. 18세에서 23세의 영국 젊은 층 가운데 15퍼센트는 네오뱅크를 사용한다. 애플, 아마존처럼 사람들이 신뢰하는 기술 기업들은 거대한 금융 기업으로 클 수 있는 잠재 후보군이다. 미국 4대 은행은 고객 지원을 최적화하고 더욱 현명하게 데이터를 캐내기 위해 매년 250억 달러(29조 2500억 원)를 투입하고 있다. 벤처 캐피털들은 지난해 신흥 금융 기업들에 370억 달러(43조 2900억 원)를 투자했다.

기술적인 변화가 가져올 이익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은행 지점들이 문을 닫으면서 비용은 크게 줄고, 삐걱거리던 중앙 집중 시스템이 사라지고, 관료주의가 도태할 것이다. 전 세계에 상장한 은행들이 비용을 3분의 1로 줄인다면, 절약되는 금액만 해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연간 80달러(9만 3600원)씩 줄 수 있을 정도다. 2000년에 네덜란드는 인구 1인당 은행 지점 수가 미국보다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형편없던 서비스도 개선될 것이다. 이제 친구에게 돈을 보낼 때, 은행에 송금을 신청하는 것보다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것이 더 쉽다. 자본의 재분배라는 은행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시스템도 더욱 개선될 것이다. 풍부해진 데이터를 통해 대출 심사 직원들이 곤란에 빠지는 대신 은행이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사기는 더욱 쉽게 발견될 것이다. 비용 절감과 소셜 미디어의 민주화 효과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금융에 더욱 쉽게 접근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더 많은 회사들이 더 빠른 속도로 대출을 받고,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위험을 수반한다. 금융 시스템은 경제 전반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혁신은 불안을 낳을 수밖에 없다. 1950년대 등장한 신용 카드는 쇼핑의 혁신을 일으켰지만, 미국의 소비자 부채 문화를 촉발했다. 1980년대 자산 유동화[3]는 자본 시장을 윤택하게 했지만 서브프라임 위기에 일조했다. 게다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서 누가 이길지 불분명하다. 한 가지 디스토피아적인 시나리오는 극소수 은행이 소셜 미디어 기업처럼 무자비하게 데이터를 착취하는 법을 배워 권력이 더욱 집중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과 웰스파고(Wells Fargo)의 이종 교배를 상상해 보라. 소비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고 조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자를 누르기 위해 독점적으로 경제 데이터를 활용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디스토피아는 분열과 불안을 수반한다. 은행들은 검증되지 않은 네오뱅크에 예금자를 잃을 수 있는데, 이는 은행들의 자산과 부채 규모의 불일치를 낳고, 은행들을 신용 경색에 빠뜨릴 수 있다. 만약 은행 고객들이 핀테크와 간편 결제 플랫폼을 통해 거래한다면 은행들의 회계 장부는 윤택해지겠지만 은행이 고객들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은행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면 파산하게 되는데, 이 경우 주택 담보 대출을 해주거나 단기 예금을 흡수하는 은행의 기능은 불안한 자본 시장에 완전히 떠맡겨지게 된다.

기술의 이점을 안전하게 활용하려면 정부는 개인 정보를 보호하고 기업이 개인 정보를 비축하는 것을 막으면서 고객에게 정보 통제권을 줘야 한다. 2017년 산업계는 9분마다 규제 경고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혁신 친화적인 규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또 금융 규모에 걸맞은 안전 완충제를 유지해야 한다[전 세계 은행은 기본 자본 7조 달러(8190조 원)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새로운 시장 참가자가 적절히 자본화했다면 중앙은행들은 위기가 터졌을 때 이들에게도 대피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종 대출자 기능을 확대해 줄 수 있다.

은행의 추악한 비밀은 이들이 퇴보하고 있고, 비효율적이며 편협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막강한 로비 파워를 갖고 있다. 은행 지점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줄어들면 고객과 정치인, 그리고 노동조합은 변화를 꺼리면서 불평한다. 우리는 최근 독일의 메가 뱅크 합병이 이 같은 이유로 무산된 것을 목격했다.[4] 규제 당국은 소수의 거대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문제는 세계 경제 성장은 둔화하고, 생산성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업에서 스마트폰 혁명은 경제를 활성화하고 이익을 재분배하는 최고의 수단을 제시하고 있다.
[1]
스트리밍 서비스 등장으로 고사 위기에 처한 미국의 DVD, 비디오 게임 타이틀 대여점.
[2]
모바일이나 PC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100퍼센트 디지털 뱅킹을 의미하는 신조어.
[3]
여러 형태의 자산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하는 것.
[4]
독일의 자산 규모 1, 2위 은행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가 수익성 악화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2018년부터 추진해 온 합병 논의가 2019년 4월 “수익성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최종 결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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