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토시 비긴즈

2024년 1월 26일, explained

아름다운 컴퓨터를 만든 사람들에겐 철학이 있었다.

1984년 1월 24일,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의 매킨토시에 기대어 포즈를 취한 스티브 잡스 사진: Cap Carpenter, MediaNews Group, The Mercury News,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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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PC 라인업, Mac 시리즈가 불혹을 맞았다. 1984년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Macintosh)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던 모델이 모든 전설의 시작이다. 스마트폰 시대를 거치며 PC 시장은 한풀 꺾인 모양새지만, 내년 출시가 예상되는 애플의 새로운 Mac 라인업에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AI 전용 칩이 탑재된 ‘AI Mac’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WHY NOW

애플만큼 성공적으로 혁신의 아이콘이 된 기업은 없다. 우리의 현대는 아이폰과 함께 새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의 현대를 만든 것은 PC였고, PC의 시작은 바로 매킨토시다. 무엇이 특별했을까. 아름다운 디자인에 녹아들어 있는 그 혁신의 정체를 알면, 다음 혁신의 단초가 보일지도 모른다.
애플이 최초로 내놓은 PC, ‘APPLE I’.

태초의 PC

매킨토시 이전의 PC 사용 경험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그래픽이 거의 없었고 마우스도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4년 이전까지의 PC는 다 그랬다. CLI(Character User Interface), 명령줄 인터페이스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DOS(Disk Operating System)와 같은 운영체제를 사용한다 치면 ‘COPY’, ‘DEL’, ‘DIR’ 등의 명령어를 입력해 구동시켰다. 마우스로 클릭할 휴지통 아이콘은 없었다. 따로 공부해야 쓸 수 있는 기계였던 셈이다.
 
애플이 1984년 내놓은 매킨토시의 지면 광고.

매킨토시 비긴즈

그 장벽을 무너트린 것이 1984년 출시된 매킨토시였다. 매킨토시는  GUI(Graphical User Interface),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시대를 연 제품이다. 파일을 삭제하려면 명령어를 입력하는 대신 휴지통 아이콘을 클릭하면 된다. 최초의 PC도 아닌데, 게다가 한동안은 시장의 외면을 받기까지 했는데 40년간이나 살아남은 이 독보적인 PC는 사실, 컴퓨터를 모두의 도구로 변모시킨 혁신이었다. 그리고 그 혁신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제록스 PARC가 1973년에 연구 목적으로 만든 개인용 컴퓨터 ‘제록스 알토(Alto)’.

혁신의 조건

사실, 초기 애플 제품들을 만든 사람은 애플의 공동 창업자였던 천재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이었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라기보다는 아티스트였고, 경영자라기보다는 기획자였던 사람이다. 그래서 제록스의 팔로 알토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작업창, 아이콘, 메뉴, 마우스 포인터 등을 포함한 GUI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직관적인 유저 인터페이스라는, 당시 컴퓨터를 만들던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가치다. 제록스는 혁신이 되지 못하고 매킨토시는 혁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스티브 잡스라는 독특한 사람의 혜안 덕분이었다.
 
Adobe의 Indesigne 프로그램 전신인 Aldus Pagemaker 구동 화면.

계산기 이상의 PC

GUI의 도입은 PC의 가능성도 크게 확장시킨다. 사실 컴퓨터는 계산기였다. 좀 더 넓게 보자면 데이터 처리 기기였다. 그런데 이제 디자인 영역으로도 가능성이 확장된다. 예를 들면 지금 출판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레이아웃 프로그램, 어도비의 ‘인디자인’의 전신인 ‘페이지 메이커’ 같은 프로그램의 구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매킨토시는 고유의 막강한 정체성도 드러냈다. 아니, 드러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바로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하르트무트 에슬링거가 디자인한 베가의 ‘system 3000’.

잡스가 사랑한 디자인

사실, 잡스는 ‘소니(SONY)’의 디자인을 사랑했다. 검정과 은색을 기본으로 깔끔하게 각진 제품 디자인은, 전 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지배했던 소니의 상징과도 같았다. 특히, 소니가 1975년 독일의 전자 회사 베가(Wega)를 인수한 이후 그 디자인은 한층 유려해진다. 그래서 잡스는 베가의 디자인 브레인을 영입했다. 바로 애플의 1세대 디자이너,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다. 하지만 정작 잡스가 그에게 요구했던 것은 소니의 DNA가 아니었다. 브라운의 DNA였다.
 
디터 람스의 대표작 ‘SK 5’.

탈(脫) 소니 선언

잡스는 1983년, 사내 연설에서 소니의 스타일은 위대하지 않다며 “브라운사의 전자기기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선언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기면도기의 명가, 그 브라운이다. 다만, 당시의 브라운은 그 입지가 지금과는 달랐다.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로 불리는 디터 람스의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의 대표작이 ‘백설 공주의 관’으로 불리는 복합음향기기 ‘SK 5’다. 수많은 전자 제품에 영감을 주었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 10원칙에는 시대의 기획자 스티브 잡스가 반할 만한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이를테면, 좋은 디자인은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디자인한다, 좋은 디자인은 제품의 이해를 돕는다,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백설 공주 디자인 언어’가 적용된 대표작, 매킨토시 SE.

백설 공주 디자인

잡스의 디자이너 에슬링거는 그 선언에 화답했다. 그가 확립한 ‘백설 공주 디자인 언어’에는 누가 봐도 확연하게 디터 람스의 영향이 묻어나 있다. 에슬링거가 만든 디자인 원칙은 90년대 이전 애플 제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밝은 회색과 베이지 색상을 기본으로, 군더더기 없는 외형에 얇은 직선이 제품 표면을 채운다. 매킨토시 시리즈도 바로 이러한 원칙하에 만들어졌다. 군더더기 없이 제품의 이해를 돕도록, 제품이 더 유용하도록.

IT MATTERS

디터 람스 디자인의 뿌리는 바우하우스에 있다. 파울 클레, 오스카 슐레머, 바실리 칸딘스키, 라슬로 모호이 너지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교수진을 맡았던, 20세기의 예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1919년에 설립되었다가 나치의 박해로 1933년 폐교된다. 이 짧은 역사 동안, 이곳의 목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예술이었다. 대량 생산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맞는 아름다움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에도 이런 정신이 녹아들어 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탄생한 디자인이야말로, 세계를 바꾼 혁신의 제품에 어울리는 것 아닐까.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의 뒤를 이은 애플의 디자인 심장, 조너선 아이브스도 디터 람스를 흠모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오랜 침체기를 지나 iMac G3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매킨토시의 제2의 전성기는 조너선 아이브스의 디자인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디자인 철학은 스티브 잡스의 애플 복귀를 알렸던 iMac 이후 Mac이 추구했던 전략과 닮아있다. 혁신적으로, 그러나 대중에게 더 가까이.

잡스는 피카소가 남긴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PARC의 GUI를 사 왔고 디터 람스의 디자인을 훔쳤다. 그리고 그게 혁신이 되었다. 팀 쿡은 훌륭한 관리자이며 리더이지만, 잡스 같은 기획자는 아니다. 애플은 혁신을 잃어버렸다는 평가에 직면해 있다. 지금 애플에 부족한 것은 최첨단의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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