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조사, 공천과 공해 사이

2024년 1월 31일, explained

총선을 앞두고 전화가 쏟아진다. 어쩌다 여론 조사는 공해가 되었나.

2022년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개표 작업이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진행 중이다. 사진: 김재환/Gettyimages
NOW THIS

22대 총선이 70일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들은 괴롭다. 복잡한 정치판 이야기만큼 울려대는 휴대전화 때문이다. 여야가 본격적으로 공천을 위한 지지도 조사에 나서면서 후보의 지지 호소 전화, 각종 여론 조사가 들이닥치고 있다. 하나의 당이 1000명의 응답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지역구별로 최소 3만 5000명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 한 지역구당 무려 7만 명이다.

WHY NOW

유권자들은 여론 조사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동시에 피로감을 호소한다. 이 괴리는 여론 조사 자체가 정치권에서 갖는 모순에서 발생한다. 무력한 여론 조사의 힘이 너무 세다. 뉴스의 한 줄로 적히는 숫자가 정치권의 주요 결정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과정에서 여론과 여론 조사가 멀어진다. 언론의 간편한 보도, 정치권의 간편한 선택이 여론 조사를 공해로 만들고 있다.

59곳

현재 우리나라에서 각종 여론 조사를 진행하는 기관은 59곳이다. 2023년 12월 31일까지만 하더라도 88개였던 것이 29개 줄었다. 올해 들어 등록 요건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선거 여론 조사 기관에 등록하고자 한다면 분석 전문 인력을 세 명 이상을 포함해야 하며 관련한 연간 매출액이 1억 원을 넘어야 한다. 지난 10월 34개 여론 조사 기관은, 이번 총선부터 자동 응답 방식(ARS)의 여론 조사를 폐지하고 사람이 하는 전화 면접 조사만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성과 객관성, 더 높은 응답률을 위한 결정이다.

전화 폭탄

여론 조사 기관의 수는 줄었는데 휴대전화로 걸려 오는 전화는 줄지 않았다. 지금이 공천 시즌이라 그렇다. 양당 모두 적합도 조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경우 공천에서 배제되는데, 이 과정에서 여론 조사가 유력한 증거로 쓰인다. 총선 관련 여론 조사뿐 아니라 각 후보의 지지 호소 전화도 늘었다. 여론 조사 전화와 공천을 위한 홍보 전화가 뒤섞여 걸려 오는 상황이다. 사실 모두가 이런 종류의 전화 홍보가 무용하다는 걸 안다. 민주당의 한 보좌진은 ‘하고도 욕먹는 짓’이라 표현했다. 거는 쪽도, 받는 쪽도 피곤한데 다른 방법이 없다. 여론을 파악하고 전달한다는 기존의 목적은 흐릿해졌고,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의무감과 피로함만 남았다.

응답률

총선이든 공천이든 빠르고 정확하게 유권자의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유리하다. 욕먹는 짓이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짚어 볼 것은 이렇게 알려진 여론이 과연 대중의 뜻을 정확히 담고 있느냐다. 일단 응답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적은 게 하나의 문제다. 2022년 지방선거 여론 조사 전화 가운데 63.8퍼센트는 유권자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받은 이후 거절했다. 그보다 4년 전인 2018년(55.4퍼센트)보다 8.4퍼센트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정치 여론 조사의 평균 응답률은 3퍼센트 안팎이다. 사실상 ARS 음성을 끝까지 들으며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정치 고관여층만 참여하는 셈이다.

필요성과 신뢰도

여론 조사는 정치적 목소리를 갖지 못한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다. 대의 민주주의의 보조 장치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여론 조사의 필요성을 수신 거부 버튼을 누르는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 2023년 8월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93퍼센트의 사람들은 여론 조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70퍼센트, 민주주의를 유지 및 발전시키는 필수 요소라는 응답이 74퍼센트를 차지했다. 반면 신뢰도는 높지 않았다. 여론 조사를 얼마나 신뢰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38퍼센트의 응답자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일정한 절차에 따라 선정된 표본을 대상으로 하는 표본 추출 조사 결과가 사람들의 생각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답변도 과반인 53퍼센트를 차지했다.

괴리

필요성에는 공감하는데 신뢰도는 높지 않다. 왜 이런 괴리가 나타나게 됐을까. 여론 조사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60퍼센트였지만 정책과 정치 여론 조사의 신뢰도는 각각 42퍼센트와 40퍼센트로 드러났다. 정책과 정치 여론 조사가 특히 더 낮은 신뢰도를 보이는 것인데, 정치 여론 조사를 떠받치는 세 가지 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여론 조사는 조사를 직접 진행하는 회사와 결과를 인용하는 여론, 그를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정치권을 통해 작동한다. 각각의 기능 부전이 여론 조사에 대한 필요성과 믿음을 떨어트려 놓았다. 조사 기관은 올해부터 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은 건 두 축, 언론과 정치권이다.

언론

여론 조사를 검색해 보면 대다수 기사가 제목과 첫머리에서 어느 후보, 어느 당이 몇 퍼센트의 지지율을 보였는지를 언급한다. 사실상 여론이 몇 가지의 숫자들로 기억되는 것이다. 기사의 맨 끝에는 해당 여론 조사가 몇 명을 대상으로, 어떻게 조사되었는지, 표본오차와 신뢰수준은 몇인지가 적혀있다. 기사의 말미까지 관심을 기울이기도 쉽지 않지만, 관심을 기울인다 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조사에 대한 이해도를 쌓기도 어렵다. 납작한 여론 조사 보도만큼 편향 보도 역시 문제로 거론된다. 한쪽 입장에만 따옴표를 붙인다든지, 오차 범위를 무시한다든지, 조사 방법이 다른데 서로 비교하는 식이다. 대중의 뜻이 여론에 포함되기는 쉽지 않은데 여론이 대중을 만들기는 쉽다. 그게 숫자가, 언어가 가진 힘이다.

민주 정치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 평가는 일반화돼 있지만 보도되는 양태는 다르다. 선거 때가 아니면 지도자 지지율은 정치의 흐름을 읽거나 민심을 분석하는 과정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여론 조사 결과가 팬덤 정치의 결정체가 되기도 하며 공천과 단일화의 주요한 행위 주체로 나서기도 한다.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도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숫자로 대표되는 여론 조사 결과가 선거 과정 전반에 너무 큰 힘을 행사한다. 정치권은 말한다. 여론 조사 결과를 정치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민주 정치라고. 그러나 진짜 민주 정치는 승패와 숫자로 말하지 않는다.

IT MATTERS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4.10 총선에 나올 후보의 경선 규칙을 바꿔 서울 강남 3구와 영남, 강원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당원 20퍼센트, 일반 국민 여론 조사 80퍼센트의 경선 반영 비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응답률 5퍼센트 이하인 ARS 여론조사를 공천 심사에 40퍼센트 반영한다. 둘 다 민심을 더 반영하겠다는 의도다.

어쩌다 여론 조사는 정치권이 말하는 민심과 동의어가 된 걸까? 우리나라 정당 정치의 기형적 구조가 원인 중 하나다. 당원 수는 폭증하는데 상위 두 당의 독과점 구조가 심화한다. 정당 내부의 정치는 양극적 담론으로 향한다. 당원의 목소리와 대중의 목소리가 유리되니 여론 조사 결과를 민심이라 정의하는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여론 조사 결과는 정치인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일 수 있다. 민심을 모으고 세심히 살피는 일은 어렵다. 숫자는 명확하고 간편하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선택에 이유가 생긴다. 그렇게 여론 조사는 공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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