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칩을 심었다

2024년 2월 1일, explained

뉴럴링크가 사람의 뇌에 칩을 심었다. 뇌와 컴퓨터가 연결된다.

뉴럴링크가 개발한 N1 칩. 이 칩을 뇌에 이식해 뉴런이 주고받는 전기 신호를 수집한다. 사진: 뉴럴링크
NOW THIS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뇌신경 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Neuralink)가 사람의 뇌에 칩을 심었다. 지난해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 시험 승인을 받고 9월부터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5개월 만에 첫 수술이 이뤄졌다. 1월 29일 머스크는 엑스에 이 소식을 알렸다. “어제 첫 환자의 뇌에 칩을 이식했다. 환자는 잘 회복하고 있다. 초기 결과는 조짐이 괜찮은 뉴런 탐지를 보여 준다.”

WHY NOW

뉴럴링크는 뇌에 칩을 심어 생각만으로 각종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 있다. 영어로는 Brain-Computer Interface, 앞 글자를 따서 BCI라고 한다. 머스크는 앞으로 BCI를 통해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이 걸을 수 있고, 선천적인 시각 장애인이 앞을 볼 수 있고, 나아가 사람의 기억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BCI 기술은 어떻게 작동할까. 어디까지 왔을까. 어디로 향할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2016년 일론 머스크는 차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아이폰에 타이핑을 하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불편함을 느꼈다. 하고 싶은 말을 자판을 거치지 않고 기계로 곧바로 입력할 수는 없을까. 뇌 신호를 컴퓨터로 직접 보내고, 컴퓨터가 처리한 정보를 액정 화면이 아닌 뇌로 직접 받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정보의 입출력이 100만 배는 빨라지지 않을까. 말 그대로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해 말 머스크는 신경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모아 뉴럴링크를 설립한다.

게임하는 원숭이

설립 5년 뒤인 2021년, 머스크는 3분 27초짜리 실험 영상을 공개했다. 원숭이가 뇌 활동만으로 공놀이 비디오 게임을 하는 모습이었다. 실험 과정은 이랬다. ①원숭이의 뇌에 칩을 심는다. ②원숭이에게 조이스틱을 움직여 게임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③게임을 하는 동안 뇌에서 발생하는 신경 정보를 칩으로 수집하고 해독한다. ④뇌에서 특정 신경 정보가 감지되면 게임기에 특정 동작이 입력되도록 한다. ⑤조이스틱의 코드를 뽑는다. ⑥원숭이는 전원이 연결되지 않은 조이스틱을 조종하는데, 커서가 움직인다. 이번에 FDA의 승인을 얻어 임상 시험에 들어간 바로 그 기술이다.

뇌 임플란트

사람과 동물은 신경 세포인 뉴런을 통해 신체를 작동시킨다. 예를 들어 내 머리를 향해 야구공이 날아온다고 가정하자. 눈이라는 감각 기관이 공을 감지하면 감각 뉴런이 전기 신호의 형태로 연합 뉴런에게 정보를 보낸다. 연합 뉴런은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머리를 숙여 피하라는 전기 신호를 운동 뉴런으로 보낸다. 운동 뉴런이 이 신호를 근육에 전달하면 목 근육이 움직이며 공을 피하게 된다. 뉴럴링크는 뇌에 칩을 심어 뉴런이 전달하는 이런 전기 신호를 수집하고 해독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뉴럴링크는 이걸 ‘뇌 임플란트’라고 부른다.



뇌에 심는 칩은 동전만 한 크기다. 칩에는 가느다란 선 64개가 연결돼 있다. 이 선에는 전극 1024개가 붙어 있는데, 이 전극을 통해 뇌의 전기 신호를 감지한다. 선은 사람 손으로 다룰 수 없을 정도로 가늘어서 뇌 임플란트 전용 수술 로봇이 있다. 재봉틀처럼 생긴 로봇이 환자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운동 명령을 내리는 대뇌 피질에 칩을 심고 한 땀 한 땀 꿰매듯 뇌와 선을 연결한다. 칩은 뉴런의 전기 신호 데이터를 포착한 다음, 뉴럴링크 앱으로 무선 전송한다. 칩에는 소형 배터리가 부착돼 있는데, 무선 충전할 수 있어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디코딩

전기 신호 데이터가 앱에 충분히 쌓이면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의 의도를 디코딩한다. 예를 들어 상반신이 마비된 사람이 마우스 커서를 오른쪽으로 옮기고 싶다고 생각하면 이때 뇌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전기 신호 패턴이 있다. 뉴럴링크의 AI가 그 패턴을 학습해 전기 신호만으로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외부 전자 기기에 명령을 전송해 마우스 커서를 오른쪽으로 옮기는 식이다. 이론상 이 기술을 이용하면 다리가 마비된 사람이 로봇 다리를 장착하고 생각만으로 로봇 다리를 움직여 걷을 수 있다.

임상 시험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기술인데, FDA는 지난해 5월 뉴럴링크의 임상 시험을 승인했다. 환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임상 시험의 위험보다 더 크다고 봤다. 머스크는 뉴럴링크 기술을 이용하면 척수를 다친 사람도 걸을 수 있고,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도 앞을 볼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실제로 이번 임상 시험의 대상도 경추 척수 손상이나 루게릭병으로 사지가 마비된 사람이었다. 뉴럴링크는 이들이 생각만으로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영생

임상 시험의 명분은 중증 장애와 불치병 치료였지만, 머스크의 최종 목표는 BCI 기술을 비장애인에게 적용해 인간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다. 머스크는 언젠가 사람의 뇌를 인터넷에 업로드하고 로봇에 다운로드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죽지도 않고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영생(永生)이다. 머스크는 인류가 인체를 통해 존재하지 않게 되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기억과 자아가 여전히 머물러 있다면 그것 또한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IT MATTERS

우리는 뇌를 모른다. 우주처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뇌 임플란트에 기대도 많지만, 우려도 많은 이유다. 기술 측면에선 전극이 오작동하거나 배터리가 과열해 피질이 손상될 수 있다. 보안 측면에선 뇌 데이터가 해킹될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FDA는 한 업체의 심장 박동기가 해킹 위험이 있다며 리콜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법적인 물음도 많다. 예컨대 뇌 임플란트가 사용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사용자가 한 말이나 행동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도 있다. 사람과 기계가 결합하면 어디까지가 사람일까. 뉴럴링크의 이번 임상 시험은 6년간 진행될 예정이다. 비의학적인 용도로 사용되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것이다. 그사이 우리는 이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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